2015년 12월호

“대의제는 타락했다 장관 사퇴는 운명”

사의 표명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5-11-18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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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원들, 국민 배제하고 자기 청중만 관리
    • ‘정부3.0’으로 ‘국민주권’ 지향
    • 박 대통령의 고민을 함께 고민
    • 대통령, 남은 2년 내 ‘숙제’ 끝내기 원해
    “대의제는 타락했다 장관 사퇴는 운명”

    조영철 기자

    정종섭(58) 행정자치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히 신임한 각료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19대 총선을 석 달 앞둔 2012년 1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박근혜)과 같은 당 공직후보추천위원회 부위원장(정종섭)으로 손발을 맞췄다. 당시 한나라당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의 양보로 단일화한 박원순에게 패하면서 지지율이 추락하자 박근혜를 호출했다. 박근혜는 ‘박·안 바람 앞의 등불’ 같던 당을 구해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박근혜에겐 기분 좋은 기억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경북고 출신과 좋은 인연이 별로 없다. 친(親)이명박계에 경북고 출신이 많았다. 그러나 정종섭 등 일부 인사는 예외”라고 전한다. 다른 여권 인사는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와 헌법 이론가인 정종섭(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은 뭔가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고 평한다. 이 인사는 “세월호 참사로 정부 조직이 개편된 뒤 각 부처의 구체적 소관업무 밖의 문제, 예를 들어 ‘정부가 나아가려는 큰 틀과 방향’ 같은 것은 정 장관과 행자부가 주로 맡아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


    11월 초 ‘신동아’는 정 장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 장관이 수락해 일주일쯤 뒤로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그 사이 그가 장관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국회가 더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와 내가 같이 가야 하니 내가 그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로 내년 4월 20대 총선에 출마할 뜻을 비쳤다. 그의 사의 표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정치적 이슈로 부각됐다. 야당은 그가 고향인 경북 경주에 예산을 특별히 많이 배정해줬다고 공격했다. 중간에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예정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후임 장관이 직을 승계할 때까지 업무를 수행한다.

    “운명이죠.”

    사의 표명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내 “퇴임하는 순간까지 혁신과제를 계속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 지난해 정부 조직 개편으로 행자부가 출범했죠. 취지에 맞게 잘 기능합니까.

    “안전행정부에서 안전과 인사가 떨어져 나갔어요. 행자부에 남은 것은 조직과 지방자치죠. 그런데 정부조직법엔, 다른 부처에 소속되지 않는 일은 전부 행자부에 속하는 걸로 돼 있어요. 저는 행정자치 차원을 넘어 국가혁신부서로 성격을 규정하고 쭉 그렇게 운영해왔어요.”

    ▼ 혁신이 누구를 위해 왜 필요하다고 봅니까.

    “제가 5개의 혁신단을 꾸렸는데, 이게 국민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봐요. 안전 문제만 하더라도 사고에 노출되는 물리적 위험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위험도 크거든요. 혁신단엔 민간위원들만 들어오게 했어요. 정말 이 시대에 뜯어고쳐야 할 것은 다 뜯어고쳐보자고 했어요. 다들 짧은 시간 안에 잘 만들어줬어요. 일정 수준까지 올려놓았어요. 예를 들어 지방공기업 혁신을 통해 부채 1조4000억 원을 줄였어요. 제 후임자가 가속화하면 될 것 같아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를 포함해 국가 전체를 혁신해야 한다고 봐요. 그 작업을 여기 진원지인 행자부에서 시작한 겁니다.”

    “행자부는 국가혁신부”


    정 장관의 ‘근무환경 혁신’은 공직사회에선 널리 소문이 퍼졌다. 그는 행자부 직원들의 주말·휴일 근무를 없앴다. 직원들이 “월요일 차관 회의와 실·국장 회의를 준비해야 해 주말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하자 그는 월요일 회의를 없앴다. 장관 주재 회의도 한 달에 한 번만 했다. “회의 많이 한다고 잘 돌아가는 게 아니다”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수요일과 금요일엔 전 직원이 오후 6시 30분에 퇴근하도록 했다. 더 남아 근무하면 경고를 했고 삼진아웃제까지 뒀다. 덕분에 행자부 직원들은 금요일 저녁~일요일의 휴식을 완벽하게 보장받는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직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 건데,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근무시간에만 집중해서 일해도 충분하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근무시간 중 생산성이 낮으면서 시간외 근무가 많다. 너무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셈인데 아무도 이를 개혁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면보고도 최소화했다. 모든 보고서는 1쪽 이내로 요점만 쓰게 했다. 대신 필요할 때 실·국장을 수시로 불러 묻는다. 이 자리엔 담당실무자를 배석시키기도 한다. 이것도 격식보다 능률을 중시하는 그의 소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장관과 자주 대화해야 하므로 실·국장이 업무를 더 잘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 사람의 일하는 관행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요.

    “아주 간단한 것, 그렇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 이런 것부터 바꾸고자 했어요. 장관이 책임진다고 하니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어요. 자기 삶이 간단히 바뀌는 걸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6개월의 실험은 성공했고요. 전 부처로 확산하고 싶어요.”

    ▼ 박근혜 정부 하면 ‘불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행자부에 따르면, 공동 데이터 개방 수준에서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네요. 우리 정부가 투명하게 국정을 운영한다는 뜻인지….

    “정보 개방 면에서 투명하게 운영하죠. 이 방향으로 가속화할 수밖에 없고요. 이에 대한 의지는 대통령이 저보다 더 강해요. 국민 생활에 밀접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이 편익을 누리게 하려는 취지죠. 과거엔 부모가 돌아가시면 유족이 유산부터 시작해 관련된 자료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어요. 이젠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로 채무까지 모든 자료를 한 번에 알 수 있어요.”

    ▼ 정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나 통계를 약간 다듬어 발표하지 않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중요한 게 통계청 자료죠. 전적으로 믿진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면 국민이나 기업이 이 자료를 쓰지 않죠. 제가 통계청장과 이 문제를 논의했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더라고요. 앞으로 정부에서 나오는 통계자료는 신뢰성이 높고 내용이 풍부해질 겁니다. ‘각 부처가 불리한 통계를 안 내놓는다’는 점과 관련해, 통계에 아예 손을 못 대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정확하겠죠? 저는 될 거라고 봅니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해요. 민간에서 정부 통계를 믿고 활용하기 시작하면 사업비용이 크게 줄어들 수 있어요.”

    청중 민주주의 의원들


    “대의제는 타락했다 장관 사퇴는 운명”

    정종섭 장관은 “박 대통령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 행복이다. 내 신념과 일치하므로 이 정권과 끝까지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 장관께서 강조해온 일 중 하나가 ‘정부3.0’이라고 들었는데요.

    “박 대통령은 ‘정부3.0이 전자정부와 다르다. 철학과 가치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정부3.0은 ‘국민행복과 국민주권’을 지향해요. 지금 진정으로 국민주권이 실현되나요? 예를 들어 세금을 부당하게 추징당한 국민은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큰 비용을 치르죠. 이건 주인으로 대접받는 게 아니죠. 정부3.0은 클라우딩 시스템, 빅데이터 분석 같은 첨단 기법을 사용해 생활의 여러 면에서 정확하고 합리적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국민을 진짜 주인의 자리로 모시는 거죠.

    아파트 주민들이 남의 단지 관리비는 몰랐어요. 지금은 전국의 아파트 관리비가 다 공개됩니다. 관리비 비리 피해를 막을 수 있어요. 약물 복용에 따르는 부작용도 예방하도록 했어요. 박 대통령은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국민주권주의를 실현하려 해요. 저는 사법부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봐요.”

    ▼ 컴퓨터가 재판을 한다?

    “웬만한 손해배상 사건은 판례와 사건 자료에 대한 분석만으로 객관적 배상금액이 나와요. 상한 금액과 하한 금액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판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고무줄 판결이 날 여지가 별로 없어요. 법정에서 옥신각신 다툴 필요가 없지요. 국민이 짊어지는 엄청난 변호사 비용, 소송 스트레스, 전관예우 관행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습니다. 미국 사법부에선 이미 시행하죠. 저는 ‘정부3.0이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지점에선 역사가 바뀐다’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어요. 이것은 조용한 혁명이고 박근혜 정부가 큰일을 시작한 거죠.”

    헌법학자인 정 장관은 일전에 기자에게 “지금 전 세계적으로 대의제도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대의제도란 구체적으로 국회나 의회를 지칭한다.

    “결단이고 자시고…”


    ▼ 대의제도에서 어떠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까.

    “루소의 일반의지(the general will)는 각 개인의 의지를 전부 합한 게 아닙니다. 그러한 부분적 의지를 뛰어넘는 공공선을 실현하는 의지죠. 법은 이런 일반의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해요. 그게 아니면 법은 특정 집단의 이익과 욕망에만 봉사하죠. 국회의원은 정당이나 지역, 직능을 기반으로 선출되지만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게 입법해야겠죠.

    그러나 최근엔 청중 민주주의(audi_ence democracy)가 나타나요. 어떤 이익을 공유하는 특정한 청중이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국회의원이 나와요. 국회의원은 자신의 청중만 관리하면 표를 얻으니 그 청중에게만 응답하는 거죠. 이것이 요즘 나타나는 대의민주주의의 전형적인 타락 양상입니다. 국민을 배제하는 변질된 상황이 벌어져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이냐 하는 논의가 진행되죠.”

    ▼ 장관께선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국회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는데요.

    “대통령께서 안타까워하는 게, 행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이 국회에서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으니까요. 대통령의 고민에 대해 뜻을 같이하며 고민하다 사의를 밝혔어요.”

    ▼ 장관께서 사임 의사를 밝힌 뒤 야당은 장관의 고향인 경주에 교부세가 특별히 많이 간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전혀. 지난해 7월 장관 취임 후 연말까지 경주 지역에 58억 원의 특별교부세가 나갔어요. 이 중 세계물포럼에 20억 원을 지원했는데,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광주U대회,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처럼 비슷한 국가적 행사에도 지원했어요. 20억 원을 뺀 38억 원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전국 시 단위 평균 지원액 40억9000만 원보다 적습니다. 야당이 국회에서 ‘장관이 자료 제출을 결단하라’고 했는데, 전 결단이고 자시고 당장 줬거든요. 야당이 보니까 (문제 소지가) 없잖아요.”

    ▼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의 해외 진출에 역점을 두고 유엔도 이를 돕는 것으로 압니다. 1970년대 사업인 새마을운동이 어떻게 지금 외국에서 유익하다는 건가요.

    “큰 나라들은 국제경찰이 되어주겠다, 분쟁을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소프트파워로 접근해야겠죠. 소프트파워 중에 새마을운동이 정말 좋아요. 새마을운동은 어떤 공동체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일종의 정신운동인데, 이게 개발도상국에서 먹혀요.

    다만 우리나라는 농촌 개발 단계에서 공업화 단계를 거쳐 정보화 단계로 발전했는데, 개발도상국은 이 세 단계를 한꺼번에 추구해요. 예를 들면 국토가 넓은 케냐는 농촌 개발과 무선통신망 구축을 동시에 진행하고 싶어 하죠. 그러면 이 나라가 원하는 것들을 함께 제공하는 거죠. 어떤 나라는 인천공항의 관제 시스템을 원하고, 다른 나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수사 시스템을 원해요. 일부는 우리가 무상으로 지원하고 일부는 그 나라가 사갑니다.

    새마을운동은 이제 세계적으로 ‘행정한류’를 상징하는 유명 브랜드가 돼 가요. 여기에 아마 정부3.0도 새 수출품으로 장착될 겁니다. 새마을운동의 이름으로 우리는 국제사회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죠. 저는 우리 퇴직 공무원들을 해당 국가에 함께 보내려고 해요. 이들이 그 나라에서 우리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일을 하면 좋겠죠.”

    정 장관은 “서울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를 초청해 자주 식사를 함께 해왔다. 외교부 장관이 바쁘다보니 내가 대신…. 그 나라와 우리나라가 서로 필요로 하는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정부는 토털로 움직여야 하는데, 외교부 장관도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더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엄청나게 독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깨알 지시’에 대해 그는 “대통령 본인이 국정의 각론까지 너무 잘 파악하고 있어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세게 강조함으로써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가 있다. 하여튼 대통령이 장관들을 엄청나게 독려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정부3.0에서 보듯, 박 대통령은 국정 방향을 명확하게 국민주권과 국민행복에 맞춘다. 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해피니스(happiness, 행복)에 두는데, 사실 모든 사람이 꿈꾸는 게 행복 아닌가. 내 신념과 일치하므로 이 정권과 끝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지금 고민하는 것은 임기가 2년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기한 내 자신의 숙제를 다 끝낼 수 있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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