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오명 낙인’ 충격 ‘취업 직격탄’ 공포 ‘내가 왜…’ 분노

‘부실 대학’ 판정 후폭풍 맞은 재학생들

  • 김상훈 | 자유기고가 loveruck21@naver.com

    입력2015-11-19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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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입생 지원 격감
    • 본교-분교 갈등
    • “입사 면접 싸늘…우려가 현실로?”
    ‘오명 낙인’ 충격 ‘취업 직격탄’ 공포 ‘내가 왜…’ 분노

    서울 한 대학에서 치러진 수시 모집 논술 고사.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지난 8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30개 대학은 ‘부실’ 딱지가 붙으면서 초비상이 걸렸다. 3개월이 지난 요즘, 이들 대학 재학생들은 후폭풍을 절감한다. 캠퍼스엔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신입생 지원이 격감한 것은 물론이다. 대학졸업장이 그 소지자의 면모를 상당 수준 대변하는 학벌 사회에서, ‘부실 대학 출신’이라는 시선은 재학생에게 커다란 부담이 될 수 있다.

    “취업 면접 분위기가 싸늘했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하반기 취업에 직격탄을 맞은 것 같다”는 한탄도 많이 나온다. 일부 대학에선 좋은 평가를 받은 서울 본교 출신과 나쁜 평가를 받은 지방 캠퍼스 출신 간 갈등 양상도 나타난다. 몇몇 재학생은 대학 당국을 향해 “도대체 학교를 어떻게 운영했기에…”라고 원망하거나 “열심히 준비한 내가 왜…”라고 분노하기도 한다.

    “면접 때 질문 받아 당황”


    2016학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게도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는 ‘뜨거운 감자’였다. 입시학원 상담에서도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서울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이번 평가와 관련된 학부모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위 등급을 받은 대다수 대학은 2016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경쟁률에서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분석한 결과, D·E등급을 받은 30개 대학 중 23곳은 평균 경쟁률이 지난해 8대 1에서 6대 1로 낮아졌다.

    D+등급을 받은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수시 경쟁률이 지난해 16.8대 1에서 8.8대 1로 반 토막 났다. 역시 D+등급을 받은 건국대 글로컬캠퍼스도 9.4대 1에서 7.5대 1로 하락세를 보였다. 하위 등급을 받은 수도권의 서경대(19.1대 1→17.2대 1), 한성대(17.3대 1→13.1대 1), 수원대(15.6대 1→11.8대 1)도 줄줄이 경쟁률이 떨어졌다.



    일부 대학은 신입생에 대한 국가장학금 제한에 대해 “자체 예산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예비 학부모·학생의 우려를 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서경대는 기획실장과 홍보담당관을 교체해 학교 홍보에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이런 노력에도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는 입시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임성호 종로학원 하늘교육 대표는 “2012년 국민대와 세종대가 부실 대학 판정을 받았을 땐 경쟁률 하락을 예상한 ‘역선택’으로 경쟁률이 오히려 상승했다. 하지만 올해는 D·E등급 지정이 경쟁률 하락으로 직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대학의 자구 노력이 없으면, 정시 모집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원 기피 현상이 계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경기도 소재 한 고등학교 교사는 “요즘 고3 학생들은 학교에 대해 자세히 안다.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4학년 박모(26) 씨는 “대학이 잘못한 건데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입사 면접에서 이번 평가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며 답답해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정원 감축도 권고받았다. 박씨는 평소 가고 싶던 기업에 지원해 3차 임원 면접까지 갔지만 결국 탈락했다. 그는 “대학평가 결과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머리가 멍해져 다음 질문까지 제대로 답을 못했다”고 털어놨다.

    같은 대학 이과 계열에 다니는 구모(25) 씨는 “평가가 발표된 후 학교가 패닉 상태”라고 표현했다. 고려대는 평가 결과가 발표된 직후 세종캠퍼스 부총장 등을 사퇴시켰다. 염재호 총장은 세종캠퍼스에서 학교 발전계획에 대해 학생들과 면담을 했다.

    “벚꽃 피는 순서로…”


    ‘오명 낙인’ 충격 ‘취업 직격탄’ 공포 ‘내가 왜…’ 분노

    모 대학의 총학생회 집회.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298개 대학에 대해 정량·정성지표로 종합적 평가가 이뤄졌다. 대학들은 A, B, C, D, E 등 5개 등급으로 구분됐다. 교육부는 부실 대학에 대해 정원 감축 비율을 권고하고 재정 규율을 엄격히 적용할 계획이다. 한석수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가만히 있으면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며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 수요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려면 이번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D나 E등급을 받은 대학의 재학생들은 당장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한다. 정부가 빼든 칼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충주 소재)도 이번에 D+등급을 받아 자존심을 구겼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단과대별로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책임론을 거론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서울 본교를 방문해 글로컬캠퍼스 보직교수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삭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글로컬캠퍼스 측은 “대학의 재정 건전성이 우수하고 학생 충원율도 122.3%로 건실해 일부에서 표현하는 부실 대학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재학생은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건국대는 이번 평가 발표 후, 서울 본교 학생들과 글로컬캠퍼스 학생들 간 이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대학 갤러리 게시판에는 건국대 본교 학생들과 분교 학생들 사이에서 오간 거친 언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 캠퍼스 학생들은 글로컬캠퍼스가 학교 명예를 실추했다고 비난한다.

    얼마 전엔 이 대학의 한 교수가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부채질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지잡대’(지방대학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너 같은 X는 졸업하면 건글(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안 나온 척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건국대 측은 이 교수를 해임하기로 했다.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의 한 재학생은 “‘지잡대’ ‘부실 대학’이라는 편견에 노출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채용설명회 안 열겠다”

    ‘오명 낙인’ 충격 ‘취업 직격탄’ 공포 ‘내가 왜…’ 분노

    8월 31일 김재춘 교육부 차관이 대학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동아일보

    이번 평가에서 하위 그룹에 속한 서울 소재 대학은 5개교에 불과한 반면 지방대는 21개교에 달한다. 해당 지방대 학생들은 이중고를 겪게 된 셈이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2학년 정모(22) 씨는 행여 취업에 지장을 받을까봐 서울 안암캠퍼스 편입을 준비하기로 했다. 정씨는 “입학할 때 국립대에 전액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세종캠퍼스로 왔다”면서 “지금까지 이곳에 온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데 요즘은 부실 대학이니 뭐니 말이 많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안암캠퍼스 담당자에 따르면, 2학기 들어 안암캠퍼스로의 소속 변경·이중 전공에 대한 세종캠퍼스 학생들의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강원대도 하위 등급을 받은 이후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지역거점 국립대로서 유일하게 하위 그룹에 속해 학교 명예가 크게 실추됐기 때문이다. 신승호 강원대 총장은 평가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대학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수와 동문회를 중심으로 모금 운동에 나서는 등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대학 지리교육과 재학생 박모(23) 씨는 “평가에서 지역 특색이나 대학 사정이 무시됐다. 학교마다 학생 수나 재정 규모에 차이가 있는데, 일률적으로 평가됐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박씨는 “취업이 가장 큰 문제다. 재학생 중엔 ‘인 서울’ 실력을 갖추고도 국립대를 선택한 이가 많은데 이번 발표로 대학 이미지가 하락했다. 모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이 나온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몇몇 기업은 “하위 등급을 받은 대학에서 채용설명회를 열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부실 대학’ 이미지 때문이다. 한 식품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모교인 한성대가 하위 등급을 받자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한성대에선 채용설명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학교 당국을 성토했다.

    “아무리 내 모교지만 대학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은 이상 회사에 채용설명회를 열자고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르겠다. D등급을 받게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했는지…. 과거에 한성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되던 모 대학은 이번에 A등급을 받은 것으로 안다.”

    서울 소재 서경대도 이번 평가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위 등급을 받아 정원을 줄여야 하고, 신규 재정지원 사업과 국가장학금 지원에 제한을 받게 됐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집회를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후 대학 측은 신·편입생 대상 국가장학금을 학교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불만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학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신모(27) 씨는 “금융경제학과로 입학해 경영학부로 졸업하게 됐다.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앞두고 대학 측이 학과를 통폐합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허탈해했다. 서경대는 지난해부터 평가에 대비해 대학을 학부 위주로 재편했다. 경제학과는 경영학부로 편입됐고, 일어일문학과 같은 어문학과는 국제비즈니스어학부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신씨는 “학과 통폐합의 부작용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쉰다.

    “신입생들이 경영학부로 계속 들어오겠지만, 통폐합 후 직속 후배들이 사라져 소속감을 갖기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실용학문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많은 학생이 회계학 쪽으로 몰린다. 학부로 통폐합되면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교수 몇 명도 학교를 그만뒀다.”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앞둔 대학들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흔히 선택하는 방법이 학과 통폐합이다. 이를 통해 취업률을 높이면 감점 요인을 줄일 수 있다. 학과당 전임교수도 늘어나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과 혼란은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수원대는 이번 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이 대학에서 통계정보학을 전공하는 H(22) 씨는 학교 평판이 깎인 데다 자신의 학과마저 통폐합 대상이 돼 걱정이 크다. 내년부터 통계정보학과는 자연과학대학에서 경상대학으로 소속 단과대학이 바뀐다고 한다.

    이런 일은 학생들의 전공에 대한 정체성이나 진로 계획에 혼란을 가져온다. H씨는 “취업이 힘든 현실에서도 과 선배들은 이공계의 전문성을 살려 취업을 잘해왔다. 하지만 경상대 소속으로 바뀌면 이마저 힘든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H씨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영어나 대외활동 같은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평가 결과 납득 못해”


    수원대는 이번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정원 감축, 학과 통폐합 등 여러 수단을 동원했다. 그럼에도 하위 등급을 받자 교육부에 거세게 항의했다. 수원대 측은 “이번 평가는 이미 평가를 받은 2012년과 2013년의 지표를 거듭 반영해 이중 제재를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짧은 기간 내 266억 원을 투자해 대대적 혁신을 단행한 결과물인 2015년의 성과를 반영하지 않아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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