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로또 아니다 3인방이 직언하라

KFX가 사는 길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입력2015-11-19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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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사서 고생하나”
    • 첨단장비 개발은 나중에
    • 유로파이터와 F-16 이길 방안 생각해야
    • 합수단과 감사원의 방산 죽이기 중지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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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구 국방부 장관(아래)과 장명진 방사청장. 동아일보

    KFX 사업이 뭐기에, 대면보고를 잘 받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다 받았을까. 10월 27일 장명진 방사청장과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 등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앞으로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민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 안보 현실이 느긋한 게 아니지 않느냐. 제한된 예산을 갖고 하는 전력 증강사업에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안 된다. 더 치밀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원안대로 쌍발기로 추진하라고 재가한 셈이다.

    이에 인도네시아가 호응했다. 10월 30일 국회를 열어 KFX 사업비 1조700억 루피아(890억 원)를 통과시킨 것. 그리고 실제로 KFX 사업을 할 한국항공(KAI)과 AESA(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 등을 개발할 LIG 넥스원의 주가가 오른 것으로 확인되자, KFX 사업을 불안하게 보던 이들도 돌아서는 눈치다. 그러나 이들은 모른다. 이러한 현상 밑에 ‘공작’에 준할 수도 있는 정치적, 비정치적 활동이 있었음을….

    대면보고 때 박 대통령이 “왜 사서 고생을 하시나요?”라고 했다는 부분이 흥미롭다(중앙일보 10월 31일자). 박 대통령은 장 청장 등이 “미국이 기술 이전을 거부한 4개 기술 가운데 3가지는 국내에서 개발할 수 있다”고 보고한 다음에 이 말을 했다. 개발할 수 있는데 왜 미국에 달라고 해 스스로 곤란에 빠졌느냐고 따끔하게 지적한 것이다. ‘왜’ 방사청과 ADD는 사서 고생을 했을까.

    “왜 사서 고생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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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발로 제작하려는 한국형 전투기 KFX.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박 대통령은 방산비리를 집중 조사하게 한 정치인이란 점이다. 지난해 야당이 4대강 개발과 자원외교, 방산비리를 ‘사자방’으로 부르며 정치 쟁점화하자, 박 대통령은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역 강공’으로 나간 것. 이 때문에 감사원은 방산비리특별감사단을 만들고 검찰은 감사원과 국방부 요원 등을 지원받아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합수단)을 만들었다.



    이 수사가 박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박 대통령은 방산비리를 철저히 수사하게 함으로써 지지 기반을 강화한 것이다. 야당은 나가떨어졌다. 그렇건만 합수단이 밝혀낸 것은 시시하기 그지없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방산이라고 하면 국내에서 방위용 물자를 생산하는 산업을 말한다. 그런데 무기는 방산으로만 구비하지 않는다. 해외 구매를 통해서도 준비한다. F-35 전투기가 대표적이다.

    합수단이 밝혀낸 얼마 안 되는 비리가 대부분 무기 중개상 건이었다. 통영함에 탑재한 소나가 그런 경우다. 이 사건으로 합수단은 황기철 전 해군총장을 구속 기소했으나,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는 합수단이 무기 중개상 비리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것’을 만들려다 실패했다는 증거가 된다.

    지금 한국 방산업계는 몇몇 업체를 제외하곤 다 죽어간다. 주요 대기업은 방산에서 철수하려 한다. 삼성은 테크윈과 탈레스를 한화에 매각하며 방산과 영원히 작별했다. 두산은 장갑차 등을 만드는 DST를 매각하려고 오래전부터 애쓰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는 수사가 겹쳤으니 방산은 초토화됐다. 죄는 중개상이 졌는데 매는 그들이 맞으니 죽을 지경인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내 방산을 ‘복마전’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이는 종북세력만이 국방을 위협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부는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는 KFX 사업만은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한다. 대면보고 하나로 ‘만사 OK’ 하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는 박 대통령이 방산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증거다. 그는 일각만 보고 전체를 안다는 ‘우(愚)’에 빠진 게 아닐까.

    정치 쟁점화하지 마라


    KFX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방향이다. 과욕으로 시작된 잘못된 판단을 덮기 위해 이것저것 더 얹어 국민과 박 대통령을 속일 수 있는 허상을 만들어냈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당첨 후 겪을 마음고생은 거론하지 않고, 당첨됐을 때의 기쁨만 이야기하는 격이다.

    행운은 허풍이나 편 가르기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과 지독한 노력으로 얻어진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하지만 과거 사례를 분석해 당첨이 많이 된 숫자를 골라 반복해서 도전하면 그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한 길을, 박 대통령이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치투쟁적 방법을 구사하는데, 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하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2013년 국방부 장관 시절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방사청이 추천한 F-15SE를 F-35로 바꾼 것을 문제 삼는다. 이 비판에는 KFX 사업을 김 실장이나 그의 뒤에 있는 박 대통령이 개입한 비리로 보려는 ‘못된 의도’가 숨어 있다. F-15SE를 선택했으면 4개 기술을 받았을 수 있다는 기대도 깔린 듯하다.

    결론부터 밝히면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4개 기술은 F-15SE를 내놓은 보잉이나 F-35를 제작하는 록히드마틴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투기는 정부가 돈을 대서 개발한 것이기에, 기술 소유권은 정부가 갖는다. 미국 정부는 4개와 그 이상의 기술 유지는 국익으로 보기에, 한국이 F-15SE를 선택했어도 4개 기술 이전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F-15SE를 F-35로 바꾸면서 뇌물이나 정치자금이 오갔다는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변경은 판단의 문제였지, 비리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일부 전문가의 시각은 이렇게 시작부터 틀려 있으니, 관련 기관으로부터 사실을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도 미운’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외면하게 된다.

    국방부와 방사청, 박 대통령과 장명진 방사청장 관계도 의식하며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KFX 사업과 관련해서는 국방부나 청와대 안보실, 기무사와 국정원까지 입을 닫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방산비리 수사가 한창일 때 박 대통령이 ADD에 있던 대학 과(科) 동기인 장명진 씨를 방사청장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들이 중개상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확인된 정홍용 ADD 소장처럼 명백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는 한 이들은 KFX 사업에 대해 의견을 밝히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의견을 물으면, 이들은 “방사청과 ADD가 전문가 집단이니 그들이 내린 판단이 옳지 않겠습니까” 하는, 자기가 아닌 3자의 판단을 제공하는 화법으로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은 두 기관이 하는 KFX 사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적(敵)’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잠재적인 우군으로 봐야 KFX 사업을 바로잡을 수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희망은 박 대통령이 장 청장에게 “왜 사서 고생을 하시나요?”라고 물은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박 대통령이 KFX 사업을 유의해서 살펴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준다면 박 대통령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합수단이 1년 이상 가동됐음에도 찾아내지 못한 한국 방산의 큰 맹점이 하나 있다. 한국 방산계는 ‘돈’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KFX 사업에도 돈에 대한 탐구가 결여됐는데,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군의 무기 개발은 ADD가 주관한다. 그리고 설계가 나와 업체에서 시제(試製)를 만들면, 국방기술품질원은 설계가 요구한 성능을 갖췄는지 살펴보고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합격하면 군이 구매하는데, 그제야 ‘가격’이 문제가 된다. 예산 압박을 받는 군이 ‘싼 가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군도 개발을 요청할 때는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최고 성능을 요구했으니 문제가 생긴다. ‘비싸다’는 이유로 덜 구입하면, 군은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무기가 없거나 구식 무기를 쓰는 부대를 존치해야 하는 것이다. 무기의 성능이 다르면 작전도 달라져야 하니, 군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한 면만 보는 감사원


    그때 ‘해결사’로 뛰어든 것이 감사원이다. 방산품은 시장이 한정돼 있으니, 업체는 수익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지스함은 3척만 건조했는데, 이 함정에만 탑재할 무기를 제작하게 하면 업체는 3개만 만들고 생산라인을 닫아야 한다. 그러니 가격이 낮으면 제작하지 않으려 해, 업체에 적정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방산 원가’ 개념이다. 무엇 무엇을 원가로 넣는다는 규정을 만들고, 그 원가에 정부가 인정한 수익률을 보태 ‘가격’을 정하기로 한 것. 그런데 이 규정이 비현실적이란 사실이 T-50 개발 과정에서 밝혀졌다. T-50은 5세대 전투기를 위한 훈련기로 개발됐기에, 기존 훈련기에 비해 값이 비쌌다. 수출을 해야 하니 가격 인하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KAI는 록히드마틴이 담당하기로 한 주익(主翼) 생산권에 주목했다. 록히드마틴은 T-50 개발비의 13%를 댔기에 KAI로부터 3억4000만 달러를 받고 94대분의 주익을 제작해 납품하기로 했다. 한국은 미국보다 생산비가 낮다. 한국에서 주익을 만들면 1억2000만 달러가 적은 2억2000만 달러면 가능하다고 본 KAI는, “T-50의 가격을 낮추자”며 록히드마틴을 두들겼다. 록히드마틴은 “주익 생산권을 넘기면 근로자를 놀려야 하고 수익도 얻지 못한다”며 난색을 표해, 협상이 시작됐다.

    그 결과 8000만 달러를 보상금으로 주고 KAI는 주익 생산권을 가져오게 되었다. 덕분에 전체 가격을 4000만 달러 정도 낮출 수 있게 됐는데, 감사원이 ‘요상한’ 논리를 내걸며 시비를 걸어왔다. “방산 규정에는 원가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나열돼 있는데 거기에는 보상금이 들어 있지 않다”며 록히드마틴에 보상금으로 준 8000만 달러는 T-50 원가에서 빼라고 한 것. 그리고 이 결정을 한 KAI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애국적인 행동을 했다고 자임하던 KAI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았다.

    이 송사는 검찰이 그 임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림으로써 KAI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결론 났다. 그리고 방산업계에서는, “감사원 직원들은 자기 진급을 위해서인지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그런 식으로 조사하면 누가 애국적인 행동을 하겠느냐”는 비난이 퍼져나갔다.

    지금 합수단 조사를 주도하는 것이 이러한 인식을 가진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규정의 한 면만 보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고발해, 검찰로 하여금 수사하게 한다. 그런데 무죄판결이 나오고 영장이 기각되는 사례가 속출하자, 검찰은 주춤한 상태다.

    그렇건만 감사원은 그들이 찾아낸 것이 있으면 일단 발표부터 해 방산업계를 복마전으로 만들고, 박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감사원이 설치게 된 것은 정치 개입 시비를 받아온 국정원이 국내 문제에 발을 빼면서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다. 국정원은 그래도 ‘종합적’으로 판단했으나, 감사원은 일면만 보니 ‘한국 방산은 엉터리’라는 인식이 퍼져나간다.

    MB보다 못하고, YS 때로 회귀?


    방산 가격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이명박(MB) 대통령이었다. MB 정부는 방산품 가격을 낮추려면 수출을 해야 한다고 보고 수출을 독려했다. 그러자 국내시장만 바라보며 40여 년을 달려온 방산업계가 당황했다. 해외시장은 선진국 업체들이 독점했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갖고자 하는 무기를 먼저 개발한 나라들은 대개 ‘후리다매(厚利多賣)’ 전략을 구사한다. 높은 이익률[厚利]을 붙여 돈을 쓸어담는 것이다. 그러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그를 죽이기 위해, ‘박리다매(薄利多賣)’ 전술로 돌아선다. 이러한 전술로 장기간 세계를 독점해온 전투기가 미국의 F-16이다.

    한국은 후발주자이니 중저가 시장에 도전해야 하는데 그곳에는 박리다매 전술을 구사하는 절대 강자들이 있다. 이 난감함을 ‘장사를 해본’ MB가 뚫어주었다. 다매(多賣)를 기대하고 당장에는 큰 손실을 보는 ‘적자 수출’을 강행한 것. 그리고 수치를 지정해주며 그 이하로 원가를 낮추라고 몰아쳤다.

    정부가 정해준 원가 안에서 사업을 해온 방산업체들은 홍역을 치렀지만, 수출에는 성공했다. KT-1에 이어 T-50과 잠수함 등을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군도 좀 더 싸게 무기를 살 수 있다.

    MB는 성공을 강화하기 위해 ‘주식회사 한국’ 전략도 구사했다. 한국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에는 전자와 조선, 자동차 등 한국이 가진 다양한 제조기술을 패키지로 제공하기로 한 것. MB의 독려 덕분에 한국 방산업계는 가격의 중요성에 눈뜨게 됐다.

    그러나 KFX만은 벗어나 있었다. KFX 사업은 2001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이 “2015년까지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윤곽을 드러냈다. 그런데 2015년이 끝나가는 지금도 ‘이륙’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가격을 낮추는 문제는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쌍발기가 더 안전하다는 ‘쌍팔년도’ 논리에 젖은 ‘이무기’가 돼버렸다.

    이 이무기 개념을 박 대통령이 걸러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야당이 ‘사자방’을 거론하자, 박 대통령은 율곡비리 수사를 한 YS 시절로 ‘회귀’해버린 것. 그런 시각에 감사원과 합수단이 장단을 맞춰주니, KFX를 바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틀을 깨야 한다. 단발화는 가격에 주목하자는 주장이다. 단발화를 통해 KFX의 원가를 줄여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첩첩산중 레이더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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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과학연구소(ADD)가 80% 기술을 확보했다고 한 AESA 레이더. 그러나 항공기 탑재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박 대통령에게 3개 부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한 ADD는 그 후 설명회에서 “AESA 레이더는 미국에 대비했을 때 80%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다”며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듣는 순간 수많은 전문가는 바로 “그렇게 하면 KFX 개발비는 더 올라가는데…”라고 했다. 일부는 “제대로 된 공군이라면 ADD가 그러한 개발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개발비가 올라가면 공군이 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까지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은 현실이 됐다. ADD가 40~50여 명의 요원 충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ESA 레이더는 이지스 레이더에서 파생됐다. 초기의 이지스 레이더는 매우 커서 1만t이 넘는 순양함(타이콘데로가급)에 탑재되다, 기술 발전으로 작아져 지금은 9000t(알레이버크급이 한국의 세종대왕급) 구축함에 싣게 되었다. 성능이 제한된 소형은 5000t급 호위함에도 탑재된다. 이러한 이지스 레이더를 한정된 각도와 거리까지만 보도록 전투기용으로 ‘크게’ 축소한 것이 AESA 레이더다. 이렇게 ‘확’ 줄인 것이 기술력이다.

    레이더를 만들려면 인력뿐 아니라 장비도 필요하다. 지상용 레이더를 개발하는 LIG 넥스원에 가보면 수많은 장비가 늘어서 있다. 이러한 장비를 이용해 AESA 레이더를 만들었다면, 반드시 항공기에 싣고 다니며 ‘조정(調整)’을 해야 한다.

    여객기를 타면 이·착륙 시 휴대전화를 꺼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는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파가 여객기에 실린 전자장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행 중인 항공기에서는 엔진이 돌아가는데, 이 엔진에서 자기장과 전자파가 나온다. 이것이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새로 레이더를 개발하면 항공기에 싣고 올라가 간섭으로 인한 오작동을 없애는 조정 작업을 해야 한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CATB(Cooperative Avionics Test Bed)로 약칭되는 실증검사기다. AESA 레이더를 개발한다면 이를 싣고 비행할 항공기를 준비해야 한다. ADD는 이 비행기 비용까지 생각하고 AESA 레이더 개발을 주장한 것일까.
    ADD는 이 주장을 하기 전에 박 대통령이 “이 사업은 제한된 예산을 갖고 하는 전력 증강사업이다” 라고 한 것에 주목했어야 한다. ADD만 제한된 예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항공기 제작은 탑재할 부품을 선택한 후 ‘이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설계하고 시제기를 만들어 4~5년간 시험비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설계 전에 부품이 나와 있어야 한다. ADD의 AESA 레이더는 ‘서둘러도’ 2025년쯤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제기 제작과 시험비행을 고려하면 2025년부터 생산해야 하는 KFX에는 미국제 AESA를 넣고, 그다음의 KFX에 국산 AESA를 넣는 것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두 번 설계하면 그만큼 비용이 올라간다.

    미국은 한국에 4개 기술은 주지 못하겠다고 했으나 21개 기술은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KFX에 투자할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용 KFX에는 21개 기술이나 그 기술이 들어간 부품 제공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다시 협상해, KFX와는 성능이 다른 전투기를 설계해야 한다. 3중 설계를 해야 하는 것이다.



    F-16 이길 가격경쟁력 필요


    KFX의 ‘돈’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은 전체 개발비의 20%는 인도네시아, 다른 20%는 개발을 담당할 KAI와 록히드마틴에 부담시키려 한다. 인도네시아는 이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시제기 한 대 양여를 요청할 낌새다.

    항공기는 설계가 끝나면 설계한 대로 부품을 넣어 시제기를 제작한다. 비행 중인 항공기에서는 엔진이 돌아가고 여러 전자장비가 동시에 가동되니, 서로 간섭이 일어난다. 이 간섭의 정도는 설계할 때는 예측하기 힘드니, 시제기를 만들어 비행시킨 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간섭을 제로화[零點化]하는 작업을 오랫동안(4~5년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장비를 설치한다. 시제기에는 시제기에서 일어난 사실을 송출하는 ‘텔레메트리’라는 장비를 싣고, 지상에는 그 정보를 받아 분석하는 장비를 설치한다. 그 비용이 또 만만치 않다. 인도네시아가 자국에서 시제기를 띄우겠다고 하면, 이 장비를 따로 설치해줘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개발비의 20%를 대니 그것으로 장비 설치 비용을 ‘퉁’ 치자고 할 수 있다.

    록히드마틴이 KFX 사업에 얼마나 투자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T-50 때처럼 높은 비율(13%대)로 투자할 것이고, 아니면 낮은 투자를 고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록히드마틴은 KFX가 성공하려면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며 단발화를 계속 주장해왔다. 따라서 쌍발로 가면 투자 비율을 확 낮출 수 있다. 록히드마틴이 낮은 비율로 투자하면 KFX 사업은 흥이 깨져 불안한 출범을 하게 된다.

    KFX의 가격을 낮추라고 하면 공군에서는 “왜 성능이 떨어지는 전투기를 가지라고 하느냐”고 반대할 것이다. 공군은 북한은 물론이고 주변국 위협에도 대비해야 하니, 주변국 수준의 전투기를 보유해야 한다. KFX는 미국 기준으로는 저급(low), 한국 기준으로는 중급(medium)이니, 주변국의 고급(high) 전투기에는 필적하기 어렵다.

    주변 공군력 위협은 고급 전투기로 대처해야 하는데, 그러한 전투기는 수입해야 한다. 그 대표가 F-15K와 F-35다. 고급 전투기를 갖추려면 공군은 KFX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KFX는 개발 과정에서 계속 가격이 올라갈 것이니, 초기 예산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F-35는 양산이 이뤄지는 2025년쯤엔 대당 가격이 1억 달러 선일 가능성이 높다. 유로파이터 역시 양산으로 8000만~9000만 달러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파이터는 F-35보다는 싸야 시장을 만들 수 있으니, 무조건 F-35보다 쌀 것으로 보인다. KFX의 파워와 성능은 유로파이터와 비슷하다. 그러나 ‘브랜드 네임’이 약하니 시장을 개척하려면, 대당 가격을 7000만~8000만 달러 이하로 낮춰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본전을 뽑아 가장 낮은 가격을 형성했다고 하는 F-16 최신형의 지금 가격이 6000만 달러 선이다. KFX와의 이러한 가격 차이를 록히드마틴이 헤집고 들어올 수 있다. F-16 공장을 인건비가 아주 싼 제3국으로 이전해 낮은 가격으로 계속 생산하는 것.

    록히드마틴은 그 대상 국가로 테자스 전투기 개발 실패로 고통을 겪는 인도를 주목한다. F-16이 저가로 인도에서 생산된다면, KFX는 시장 창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KFX의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낮은 가격은 한국 공군도 반기는 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전투기 개발에만 집중하고, 전투기 본연의 임무에는 덜 집중한다. 전투기는 여객기가 아니니, 무장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미사일 가운데 가장 정교한 것이 공대공 미사일이다. 한국은 지대지, 지대공까지는 개발했으나 공대공 미사일 개발은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공대공 무기 개발은 언제?


    KFX를 개발하면 미국제 무기를 붙이는 시스템을 탑재해야 한다. 그때 미국 정부가 ‘갑질’을 할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전투기를 개발한 일본과 대만이 이 문제에 부딪혔다. 그 때문에 F-2를 개발한 일본은 이를 악물고 국산 공대공 미사일인 AAM-3, 4를 만들었다. 대만은 경국호(IDF)를 위해 천검(天劍)-1, 2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했다. 유로파이터를 만든 유럽 국가들은 ‘미티어’를 비롯한 다양한 공대공 미사일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공대공 미사일 개발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KFX 개발비를 줄여서라도 무장 시스템을 개발할 준비도 해야 한다.

    이처럼 KFX 사업에는 가격 상승 요인이 많다. 그러니 단발화로 ‘시작 가격’을 낮추자는 것이다. 숨이 덜 찬 길로 가는 것이 위험을 줄이고 ‘로또 당첨’을 향해 가는 길이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KFX 사업이 성공해 자본이 쌓이면 그때 AESA 등 첨단장비를 개발해 추가한다. 일을 성공시키려면 의지 이상으로 ‘수순’이 중요하다.

    KFX 사업에 대해서는 진보당이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진보당은 해산된 통진당 다음으로 좌경화한 정치세력이다. 따라서 옳은 지적일지라도 박 대통령은 귀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두언이나 유승민 의원처럼 새누리당 내의 ‘반박(反朴)’들이 문제를 제기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박 대통령은 싫은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유 의원 부친상에 조화도 보내지 않았다.

    KFX는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박 대통령과 통할 수 있는 ‘친박’들이 살펴봐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최측근으로 불리는 3인방이 나서는 것이다. 3인방 등이 다양한 의견을 듣고 국익을 고려해 박 대통령에게 직언한다면, 이 사업은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최근 ADD는 레이더 개발인력이 10명뿐이라고 고백했다. 이는 AESA 개발 중추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10명으로 AESA 레이더를 미국의 80% 수준까지 개발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주장이다.


    사업 능력이 부족한 ADD와 방사청이 내놓은 ‘현란한 계획’에 속는다면 그는 바른 지도자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할 것은 방산비리가 아니라 방산이 부실해지는 것이다. KFX 사업에 관여한 이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시나요?”라는 박 대통령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 사서 고생하면서까지 비싸게 KFX를 개발해야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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