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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PD 운동권 뿌리로 본 靑-민노총 갈등

급진파 PD에 휘둘리는 민노총, NL출신 靑주류를 비토하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NL-PD 운동권 뿌리로 본 靑-민노총 갈등

  • ● “이명박·박근혜와 다를 게 없다”
    ● 투쟁 일변도 ‘현장파’ 힘 얻어
    ● 청와대·민노총 NL출신의 어제와 오늘
2018년 11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총파업 대회. [뉴시스]

2018년 11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총파업 대회. [뉴시스]

“대화를 해서 뭐가 되는 곳이 아니다. 항상 폭력적 방식이고 자기들 생각을 100% 강요하려 한다.”(2018년 11월 12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어떤 집단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기 때문에 정부가 손을 못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11월 15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11월 16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문재인 정권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밀월이 끝났다. 탄력근로제 확대, 광주형 일자리 등 여야정 합의에 민노총이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정부와 민노총이 부딪친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군을 자처하던 민노총에서도 “민주당 원내대표라는 작자가 야당일 때는 노동계에 손을 벌리더니 정권을 잡은 후 (우리를) 테러리스트로 몰고 있다”(김정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장)는 등의 격한 언사가 나온다.




“어떻게 집권했는지 자각하라”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2018년 11월 14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어떻게 집권 여당이 됐는지 자각하라”고 했다. ‘촛불 세력’으로서 문재인 정권 출범에 지분을 가졌다는 뜻이 담긴 발언이다. 민노총 일부 조합원들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근혜 정권’ 3기나 다름없다”고 쏘아붙인다.

민노총은 조합원 84만 명(2018년 12월 현재)을 확보한 국내 최대 노동자 조직이다. 민족해방(NL) 계열로 분류되는 ‘국민파’가 민노총에서 50% 넘는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그간 평가돼왔다. 문재인 정부의 중추(中樞)에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필두로 한 NL 운동권 출신이 포진해 있다.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은 “19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한 절대 다수가 주사파, 친북반미 민족주의, NL 성향으로 가면서 민주화운동 주류가 됐으며 그들이 문재인 정권의 중추가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핵심 세력 중 일부와 민노총 주류의 이념적 기원이 겹치는 것이다.

청와대와 민노총의 갈등의 불거진 이유는 노동 정책과 관련한 이해관계가 달라서다. 여권 관계자는 “2기 경제팀이 경제를 살리려면 노동계 요구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고 전했다. NL, PD(민중민주 계열)가 뒤얽힌 민노총의 기득권화와 1980년대 기원한 이념 구도도 청와대와 민노총의 갈등을 추동하는 양상이다.

NL과 PD는 마르크스주의 ‘역사발전 5단계론’에서 한국이 어느 지점에 위치했느냐를 두고 분기했다. 민족해방(NL)을 이룬 후 민중민주주의(PD)를 거쳐 혁명(Revolution)을 완수하는 NLPDR 과정에서 위치를 놓고 논쟁한 것이다. PD는 NL 시기를 지났다고 봤고, NL은 “남조선은 미제 식민지”라는 북한의 주장을 따랐다. NL 가운데 주체사상까지 받아들인 그룹은 특히 ‘주사파’로 불렸다. ‘종북(從北·북한 추종)’이라는 단어는 PD 계열이 북의 지도노선을 따르는 듯한 NL계열을 비판하며 처음 사용한 것이다.

민노총에서 NL은 ‘국민파’로 불리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PD는 민노총 창립 멤버 주축의 ‘중앙파’와 현장 투쟁을 중요시하는 ‘현장파’로 나뉘어 성장했다. 민노총 세력 전체를 10으로 봤을 때 국민파 5, 중앙파 3, 현장파 1, 기타 1로 나뉘어 있다는 게 그간 노동계 안팎의 대체적 분석이었다.

정의당(심상정 의원 등 PD와 NL계열인 인천연합 등으로 구성)과 민중당(이석기 전 의원의 경기동부연합 등)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PD를 중심으로 창당된 정당이었으나 이석기 전 의원, 이정희 전 대표 등 NL이 다수파를 형성하면서 당권을 장악했다. 민주노동당에서 PD는 ‘평등파’, NL은 ‘자주파’로 칭해졌다.


전국 단위 비합법조직 구성한 NL

NL 성향의 민노총 국민파,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 등이 ‘자주파 대오’를 형성했다. PD 성향의 민노총 중앙파, 청년사회주의그룹으로 불린 화요파 등이 연대해 ‘평등파 대오’를 구성했다. PD가 ‘종북’이라고 공격한 NL은 민주노동당 당권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민노총에서도 가장 큰 세력이 됐다.

북한의 혁명론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83년 김상만 씨의 ‘예속과 함성’이 처음이다. 1980년대 중반 김영환 씨의 ‘강철서신’이 등장했다. 김영환 씨가 결성한 구학련은 산하에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를 두고 주체사상을 전파했다. 1986년 구학련 지도부가 검거돼 와해된 후 주사파 학생운동의 중심은 반미청년회로 넘어갔다.

반미청년회는 고려대 운동권 주도로 조직됐다. 조혁 씨,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태원 씨가 산파다. 조씨가 총책임자, 안 전 지사가 ‘조직’, 김씨가 ‘선전’을 맡았다. 조씨는 현재 라오스에서 사업을 한다. 김씨는 2017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안희정 캠프’에 합류했다.

반미청년회는 김영환 씨의 구학련보다 운동 방향이 세련됐으며 방식도 진화했다. 구학련의 활동이 이념 중심의 서클 수준이던 반면 반미청년회는 전국단위 비합법조직을 구성해냈다. 학생운동을 대중운동으로 전환했으며 지하서클을 학생회 조직으로 편입했다. 1987년 전대협을 조직한 것도 반미청년회다.

이인영 의원, 오영식 전 의원이 1987년, 1988년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1기, 2기 의장을 맡은 것은 반미청년회가 막후에서 결정한 것이다. 우상호 의원(연세대 총학생회장)이 전대협 1기 부의장,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한양대 총학생회장)이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은 것도 반미청년회 지도부의 의중을 따른 것이다.

‘전대협 의장’과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은 주사파 비합법 조직인 반미청년회가 공개 조직에 내세운 ‘얼굴마담’ 격이었다. 안희정 전 지사와 이인영 의원의 관계는 안 전 지사가 지도하고, 이 의원이 지도받는 관계였다.

현재 청와대에는 임종석 비서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등 전대협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선임행정관, 행정관 급에도 NL 출신이 다수 포진해 있다.


정치권으로 간 NL, 사상전 지속한 NL

1988년 조혁 씨와 안 전 지사 등이 검거된 후 주사파 학생운동의 주도권은 ‘자민통’으로 넘어갔다. 자민통은 1992년 상반기까지 전대협을 지도했다. 199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윤진호 씨, 자민통에 의해 전대협 의장이 된 송갑석(전 전남대 총학생회장) 의원 등이 자민통 지도 아래 활동했다. 김경수 경남지사, 정청래 전 의원, 양정철 씨 등이 범자민통 출신으로 분류된다. 1992년 자민통이 와해하면서 사상운동은 도태하고 합법적 대중운동 중심으로 NL이 개편된다.

임종석 비서실장, 이인영·우상호 의원, 오영식 전 의원 등은 재야에서 활동하다가 일찌감치 정치권에 합류했다. NL 학생운동 세력은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DJ)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야권 후보 단일화 중 전자를 선택했다. 2000년 총선에서 이인영 의원을 비롯한 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간 데는 DJ가 가진 부채의식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김일성을 직접 만난 후 민혁당을 창당한 구학련 총책 김영환 씨는 1990년대 후반 북한 민주화운동으로 노선을 전환했다. 반미청년회 총책이던 조혁 씨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초대 대표를 맡았다. 자민통 책임자이던 구해우 씨도 노선을 전환해 고(故) 박세일 전 의원과 함께 ‘한반도 선진화 운동’에 나섰다. 주사파 지하조직의 총책들은 예외 없이 노선을 전환한 셈이다.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지 않은 NL은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야와 노동계에서 사상전을 이어갔다. 이들은 전위당은 북한에 존재하므로(북한 노동당) 구축할 필요가 없으며 야권을 비판적으로 지지해 한국의 정치체제를 바꿔나가는 게 먼저라고 여겼다. NL이 1992년 대선 때 백기완 후보를 돕지 않았고, 1997년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은 까닭이다.

1990년대 NL 성향의 운동가들이 결집한 곳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다. 2001년 한 NL 운동가가 쓴 시(詩)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3년 안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민족민주정당 건설/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은/ 그리하여 농민은 이 땅의 주인이 되고/ 노동자는 공장의 주인이 되고/ 청년 학생 우리 모두 이 세상의 주인 되는 세상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아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버리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 진실로 목숨까지 포함하여’


군자산의 약속

앞에서 인용한 시는 전교조 소속 NL 인사가 엮은 ‘군자산의 약속’이라는 시집에 실려 있다. 2001년 9월 NL 운동가들이 군자산(충북 괴산군)에 집합했다. 이날 결의 내용을 ‘9월 테제’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전국연합이 결의한 이 테제의 슬로건은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 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해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다. 9월 테제가 바로 ‘군자산의 약속’이다.

‘군자산의 약속’ 이후 PD 주도로 창당된 민주노동당에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등 NL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2003년까지 전국연합의 모든 지역조직이 민주노동당에 합류함으로써 진보정당 내에서 자주파와 평등파가 경쟁한다. 당내 각종 선거 때마다 자주파가 승리함으로써 당권을 장악했다.

민노총은 1995년 출범했다. 민노총도 초기에는 PD계열이 주도했다.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로 2004년 이후 NL 성향의 ‘국민파’가 민노총의 주류가 됐다. 11대 한상균 위원장을 제외하면 현직인 김명환 12대 위원장까지 NL계열이 위원장의 대부분을 배출했다. 민노총은 11대 위원장 선거부터 조합원 직접 선거로 위원장을 뽑았다. 한 전 위원장은 민노총 3대 정파 중 가장 전투적인 ‘현장파’ 출신으로 ‘전면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김명환 위원장은 2017년 12월 29일 결선투표에서 66%의 특표율로 당선됐다. 김 위원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중전선체 구축 △민족통일운동 복원 △민주민족연대전선 확대 등 NL의 전통적 투쟁 전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2대 위원장 선거 때 국민파(NL)에서 김명환·윤해모 후보, 현장파(PD)에서 이호동 후보, 중앙파(PD)에서 조상수 후보가 출마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철도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이호동 후보는 발전노조·공공운수연맹 위원장, 윤해모 후보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 조상수 후보는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결선 투표에 오른 ‘현장파’ 이호동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 노사정 대화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결선 투표에 오르지 못한 국민파(NL) 윤해모 후보는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친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됐다. 윤 후보 선거본부를 구성한 ‘사회연대노동포럼’의 초대 대표가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다. 문 위원장도 NL 출신이다. 사회연대노동포럼은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지를 공식화한 곳이다. 윤 후보가 당선됐다면 문재인 정권과 민노총의 관계가 지금과는 달랐을 수 있다. 중앙파 조상수 후보는 ‘미조직 노동자에게 인정받는 민주노총’ 등의 슬로건을 내세웠다.


Wag the Dog

민노총 산하 산별노조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다. 금속노조에서는 현대차, 기아차 등 자동차 노조, 공공운수노조에는 철도노조 등 공공기관 노조가 가장 강한 세력이다. 전공노와 전교조가 두 노조의 뒤를 잇는다. 민노총 전체 조합원의 60% 이상이 이 4개 산별노조 소속이다.

현재 민노총 내부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Wag the Dog)이다. NL 국민파가 PD 소수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투쟁 지향의 PD 현장파가 NL 지도부를 흔들면서 힘을 얻고 있다는 게 노동계 인사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소수파가 조합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파업과 격렬 투쟁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국민파가 협상과 투쟁을 안배하면서 노동운동을 해왔다면 현장파는 투쟁 일변도 노선을 고수해왔다.

2018년 10월 17일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려던 민노총 임시정책대의원대회가 성원 미달로 무산된 것도 현장파 등의 비토 때문이었다. 김명환 위원장은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검토하려 했으나 회의 진행을 위한 정족수를 채우는 데도 실패했다. 이때부터 정권 인사들의 민노총 비판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NL-PD 운동권 계파로 보면 민노총 소수 급진파인 PD 현장파가 민노총의 다수파인 NL 국민파를 흔들고 청와대 주류인 NL에 비토를 놓고 있는 것이다. 민노총의 현재 모습에 비판적인 노동계 인사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더는 ‘민주민족연대’니 ‘민족민주전선’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밥그릇 지키는 투쟁에만 매몰돼 있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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