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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생 신입사원 관찰기

안하무인 같지만 자기 자신에 충성파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1990년대생 신입사원 관찰기

  • 다들 20대 시절을 보냈으니 본인들이 오늘날 20대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인 1990년생은 당신의 20대와 많이 다르다. 1990년생들의 웃픈 이야기.
개벽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다른 팀 기웃거리는 시간이 더 많은 염탐꾼이란 뜻에서 붙을 거란 짐작은 가지만 하필이면 개벽일까. 윤기는 개벽이란 별명이 노상 달갑지가 않았다. 지난해 연말, 미래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자신이 근무하는 미래전자의 인사 정보를 발 빠르게 입수해 ‘연말에 큰 전쟁이 있을 것’이란 말을 동기들에게 흘렸다. 역시나. 차세대 사업으로 꼽히는 네트워크사업부를 시작으로 바이오, 인공지능(AI), 전장부품 사업부 수장이 죄다 바뀌었다. 5년차 인사팀 짬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는 동기들로부터 ‘과연 개벽이’란 찬사를 받으며 우쭐했다. 그날 저녁 입사 동기 서찬우와 저녁 먹으러 들어간 회사 근처 호프에서 맥주 두 병을 따며 한껏 기분을 냈다. 네트워크사업부에 근무하는 서찬우는 불쑥 엄지손가락을 뽑아 보였다.

“김 대리야. 이제야 고백하건대 난 네가 재수 없었다. 네가 아무리 인사팀원이라도 동기들한테 회사 소식으로 썰 풀 때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어. 너를 잘난 척하는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녀석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번에 네가 우리 사수도 모르는 인사 정보를 귀띔해준 덕분에 미리 우산 쓰고 대피할 수 있었다니까.”

“날 그렇게 봤단 말이야? 서운하군.”

“이번에 너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했어. 정보력만 막강한 줄 알았더니 의리까지 갖춘 녀석이란 걸. 김 대리, 너야말로 진정한 ‘확성기’다.”



“흐흐. 내가 괜히 개벽이겠어? 넘치는 자신감과 재치를 겸비한 미래전자의 인재라고.”

“크으, 너 잘났다. 이리도 처세술에 능하니 동기 중에 제일 먼저 승진할 거야. 이참에 임원도 하고 사장까지 해라.”

“당연. 이왕 힘들게 들어온 거 뭐라도 해야지. 안 그래?”


# Episode1 미션! 90년대생 신입을 분석하라

1990년대생 신입사원 관찰기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중순 일찌감치 인사를 단행한 후 사업 분야별로 신년 사업 기획안을 독촉한 터라 더더욱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하루 종일 일에 치여 고생하다가도 짬이 나면 안테나를 세워 사내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확성기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딱히 건수가 없어 여기저기 기웃대던 차에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마침 인사팀 최인용 부장이 부른다.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김 대리. 자네가 몇 년생이지?”

“87년생입니다.”

“올해 서른셋이구먼. 김 대리도 알다시피 미래그룹이 인재개발센터를 운영하고 있잖아?”

“운영하고 있지요.”

“미래그룹이 인재 개발을 선포한 지 10년이 됐으니까 이제는 젊은 층 사원이라 할 수 있는 1970, 80년대생에 대한 분석은 모조리 끝낸 셈이야.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회사에선 90년대생 사원의 성향을 예측하고자 했는데, 이상하게도 5년 전부터 회사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들이 완전히 다른 성향을 보이더란 말이야.”

“그래요?”

“내가 며칠 전에 회사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침 집 방향이 같은 영업팀 최재우 사원과 함께 택시를 탔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가 90년생이더군. 내가 그 친구에게 앞으로 꿈을 물어봤어. 이런 질문을 사원들에게 자주 건네는 편이라 나는 ‘몇 년 뒤에 직무를 바꾸고 싶다’ ‘영업 전문가가 돼 10년 후엔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싶다’ 같은 답변을 예상했지.”

“그런데요?”

“웬걸. 이 친구가 눈빛이 달라지면서 이러는 거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겁니다’라고 말이야. 허참.”

“인사팀장인 부장님 앞에서 본인의 꿈을 솔직하게 이야기했군요.”

“그렇다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걸 말해보라고 하니까 ‘회사 안에서의 꿈이 없습니다만…’ 하더군.”

“의외인데요. 한창 패기 넘칠 나이에 회사에서 이루고픈 게 없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자네도 그리 생각하지? 나는 그날 정해진 대답을 예상했던 내가 꼰대가 아닌지 생각했다니까.”

“부장님.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최 부장은 윤기가 관심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90년대생 신입사원 보고서’. 이거 김 대리가 전에 기획한 거지?”

‘90년대생 신입사원 보고서’는 윤기가 지난해 하반기 기획안으로 올린 아이템이다. 1990년생부터 1999년생까지 대한민국 20대를 구성하는 90년대생 사원의 특징과 성향을 들여다보고, 이를 토대로 한 기업의 인재개발 전략을 세우자는 기획인데, 당시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얘기가 안 되는 아이템일 것 같아 윤기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오늘 하루 시간 줄 테니까 미래전자 90년대생 사원들을 만나봐. 도대체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자네 같은 개벽이한테는 재미있을 수 있잖아? 어때? 내가 보기엔 벌써 눈빛이 달라진 것 같은데?”

“90년대생 사원들과 친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해 만나보겠습니다.”

“참. 이거 상무한테 보고서 올릴 거야. 열심히 해봐.”

헉, 상무님한테 보고한다고? 윤기는 애써 표정관리하며 뒤로 돌아섰다. 잘하면 윗선에 제대로 눈도장 찍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흐흐. 새해부터 징조가 좋다. 그나저나 부장님이 내가 개벽이라 불리는 걸 어찌 아시고…. 흠, 이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 Episode2 91년생 사원의 워크숍 필수품은?

발등에 숙제가 떨어진 상황. 이럴 때 만만한 건 역시 대학 후배다. 경제경영 동아리 후배이자 회사 후배인 사원 박성재. 2년 전 입사한 박성재는 현재 네트워크사업부에 근무한다. 윤기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박성재의 인사 파일을 떠올려보았다. 1991년생으로 올해로 스물아홉. 참고 사항은 10대 시절 역도선수로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였다는 점. 역도 유망주였던 그가 운동선수에서 공학도로 전향하게 된 것은 왼쪽 팔꿈치가 빠지는 부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나름대로 스토리 있는 녀석이다. 사옥 9층 카페테리아에서 오랜만에 만난 박성재는 허우대에 비해 목소리는 날이 서서 카랑카랑했다.

“선배, 요즘 무슨 큰일이라도 하는 것 같아요.”

“일은 무슨. 그냥 왔다 갔다만 하고 있어.”

“재밌는 소식 있으면 제게도 귀띔해주세요.”

“너야말로 소스 좀 줘. 이젠 사내에서 개벽이라고 소문나서 돌아다니지도 못하겠고 부장은 매일 참신한 기획안 좀 내라고 닦달하니 정말이지 답답해 못 살겠다.”

“선배는 미래전자의 핵인싸이니 그렇죠.”

“핵인싸? 그게 뭐야?”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란 뜻이에요. 설마 아싸도 모르는 건 아니죠?”

“그건 알지. 우리 때도 외톨이를 뜻하는 말로 아웃사이더를 아싸라고 줄여 불렀으니까.”

“그럼 취존, 할많하않, 이런 말도 아세요?

“뭐? 취존? 할많하? 한국어 맞아?”

“크크. ‘취향 존중’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이에요.”

“나도 나이 먹었나 보다. 이제 너희 세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니 말이야.”

“선배, 요즘 저희 세대는 초성만으로 카톡 대화를 하기도 해요.”

“어떻게?”

박성재는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윤기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ㅇㄱ ㄹㅇ ㅂㅂㅂㄱ’ ‘ㅁㅊㄷ ㅁㅊㅇ’. 엥? 이게 무슨 뜻이람? 글자 쓰다 만 거 아냐?

“첫 번째는 ‘이거 리얼 반박불가’란 뜻이에요. 두 번째는 ‘미쳤다 미쳤어’란 의미이고요.”

“이건 좀 심하지 않아? 도대체 너희 세대는 왜 이러는 거야?”

“글쎄요. 스마트폰의 영향 아닐까요.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된 게 2010년 이후잖아요. 당시 90년대생은 10대 청소년 시기와 막 성인의 삶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모바일이라는 큰 파도를 만났어요. 우리 세대에게 줄임말이 무한대로 확장된 사회적 배경이죠. 기존 세대들이 문자를 입력해 본인의 기분을 설명했다면 우리 세대는 한두 번의 스크린 터치로 간단한 단어와 이모티콘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요.”

“넌 90년대생이 80년대생과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해?”

“더 이상 정보를 책에서 찾지 않는다는 점 아닐까요. 보통 90년대생들은 웹 검색을 하긴 하지만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정보를 빠르게 효과적으로 찾아내죠,”

“그건 90년대생만의 특징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80년대생들도 유튜브,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잖아.”

“저는 80년대생이 웹 네이티브라면 90년대생은 앱 네이티브가 아닐까 해요. 그런 점에서 두 세대는 사고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하고요.”

“사고방식의 차이?”

“요즘 대학생들이 노트가 아니라 태블릿PC에 수업 내용을 필기한다는 얘기 들어보셨죠? 90년대생은 여가시간뿐 아니라 학교 수업시간에 태블릿 PC 등을 활용한 첫 번째 세대예요. 종이에서 스크린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글이 담긴 문서를 살펴보는 방식만이 아니라 문서에 집중하는 정도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온라인상으로 제공되는 축약된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고 필요할 때 바로 찾는 비선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게 된 거죠.”

어떤 문화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는 언어에 있게 마련이다.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니까. 90년대생들의 언어 습관에는 축약형 은어인 줄임말이 자주 나타난다. 이들의 언어 습관이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라면…? 윤기는 어쩌면 이것이 90년대생 사원을 이해하는 답이 될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윤기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직전 박성재가 윤기를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얼마 전 저희 팀이 경기 양평 연수원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는데, 그때 85년생 선임의 워크숍 필수 품목은 술이나 음식인 반면 저의 워크숍 필수 품목은 뭔 줄 아세요?”

“뭔데?”

“흐흐. 멀티탭이요.”

멀티탭? 저벅저벅 걸어가는 박성재의 뒷모습 위로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전기 콘센트에 스마트폰을 꽂아놓고 쭈그려 앉아서 모바일 라이프를 즐기는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 Episode3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1990년대생 신입사원 관찰기
윤기가 무언가 골몰하게 생각하는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지나가던 홍보팀 사원 윤세아가 반색하며 맞았다. 사보 담당인 윤세아는 94년생이다. 미래전자에 들어온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은 신참이지만, 조금도 눈치를 보거나 우물쭈물하는 법이 없었다.

“김 대리님. 이번 호 사보에 쓴 글 ‘취준생이 모르는 회사의 비밀’ 재밌게 읽었어요. 다들 반응이 좋아요.”

“그래요? 세아 씨가 엉성한 제 글을 멋지게 다듬어준 덕분이죠.”

“저는 ‘경험이 없어도 대환영’이란 ‘경력자는 전부 그만뒀다’란 뜻이고, ‘내 집 같은 회사’란 ‘바빠서 퇴근하지 못하니 회사가 집이 된다’란 뜻이라는 대목이 가장 재밌었어요. 이걸 제가 입사 전에 알았어야 했는데, 그저 아쉬울 뿐예요.”

“그래요? 세아 씨는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전혀요. 만약 제가 ‘취준생이 모르는 회사의 비밀 2’를 쓴다면 이 내용을 꼭 집어넣을 거예요.”

“뭔데요?”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우리, 전생에 쥐였을까. 찍찍.”

“푸하하. 세아 씨가 사보를 담당하는 이유를 알겠군요.”

“김 대리님 반응이 좋으니 부록도 마저 내야겠어요. 일명 ‘미래전자 ‘사축(社畜)’에서 벗어나기 위한 5가지 가이드’.”

“벌써부터 기대되는데요, 내용은요?”

“하나, 회사가 던져주는 ‘보람’이라는 먹이를 무작정 받아먹지 말자. 둘, 경영자 마인드로 해봤자 좋은 건 사장뿐이다. 셋, 직장 내 인간관계는 잘 풀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 넷, 빚은 최대한 지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은….”

“마지막은?”

“남들과 똑같이 대신 ‘내게 가장 어울리게’ 살자!”

“오호. 마지막이 의미심장한 걸요?”

“이건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에요. 내 일 다 끝났지만 팀원들과 맞추느라 ‘의리 야근’을 하는 직장인, 모두와 맞추느라 유급휴가 마음대로 못 쓰는 직장인, 회식하기 싫지만 모두가 가서 참석하는 직장인…. 기업에는 모두와 맞춰서 똑같이 하라는 동조 압박이 존재하잖아요.”

“당찬 성격이 매력인 세아 씨가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게 조금 의외인데요. 요즘 젊은 사원들은 윗분들 눈치 보지 않잖아요.”

“일면 그렇기도 하죠. 하지만 저희가 안하무인 멋대로 행동하는 건 아녜요. 그저 꼰대 집단에서 탈출하고 싶을 뿐이죠.”

“꼰대 집단이요?”

“다른 대기업에 다녔던 제 친구는 그룹 입문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회사가 좋아 보였는데, 현업 부서에 배치받자마자 바로 지옥으로 바뀌더래요. 바로 위에 사수라는 사람이 오전 9시 출근시각보다 30분 이른 8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다나 봐요. 본인이 8시 30분에 오기 때문에 본인보다 늦지 말라는 거죠. 이거 강요 아닌가요?”

불쾌한 빛이 역력한 윤세아가 얼굴을 붉힌 채 목소리를 높인다.

“흠, 그래 보이네요.”

“사수가 친구에게 일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조금만 실수하면 대놓고 무시했어요. 자신은 윗사람의 한 마디에 껌뻑 죽는 시늉하면서요. 친구는 이런 꼰대 기업에서 함께하면 자신도 언젠가 꼰대가 돼버리겠다는 생각에 입사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이런.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나요?”

“9급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대기업 나와서 9급 공무원을 한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세아 씨 세대에겐 메리트가 큰가 보죠?”

“공무원을 원하는 건 단지 철밥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최소한 인간답게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예요. 법이 정한 테두리, 법정근로시간에 따라 일하고 쉴 때는 쉬는 삶을 영위하고 싶은 거죠. 회사 선택 기준은 매우 다양하지만 저희는 무엇보다 일과 삶의 양립이 가능한지를 으뜸으로 둬요.”

70년대생과 그 이전 세대에게 충성심이라는 게 단연 회사에 대한 것이라면 80년대생은 자신이 속한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몸값과 승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윤기, 그 자신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반면 90년대생에게 충성심은 단연 자기 자신과 본인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고 생각한다. 세대별로 충성의 대상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다르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90년대생을 위한 조직 문화 개선 방안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충성도에 회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 Episode4 에스컬레이터 대신 놓인 유리계단

비로소 퇴근시간. 지하철역 플랫폼에 선 윤기의 시야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영업팀 최재우 사원이다.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최재우의 모습은 스마트한 인상을 준다. 최재우는 지난해 하반기에 입사한 신입이지만 업계 경력이 3년인 ‘중고신입’이다.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경력 사항을 요구함에 따라 기존 회사에서 쌓은 경력을 포기하고 다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는 소위 ‘경력의 하향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재우 씨. 반가워요. 지금 퇴근?”

“김 대리님. 오랜만에 뵙네요.”

“회사생활은 할 만해요?”

“많이 부족합니다. 열심히 해야죠.”

“재우 씨는 경력이 꽤 있던데 왜 다시 신입으로 지원한 거예요? 혹시 근무 조건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미래전자 입사를 희망한 이유는 근무기간 후에 안식휴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미래전자는 2년 전 10년 단위로 지급하던 근속 휴가를 5년 단위로 바꾸었다. 국내 기업으로는 첫 사례다. 그렇다면 최재우의 회사 선택 기준은 근속 휴가였던 걸까?

“특별히 안식휴가를 바라는 이유가 있나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해도 신입사원의 평균 근속연수가 5년이래요. 그런데 근속연수 10년이 넘어야 근속휴가를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억울한 면이 있긴 하죠.”

윤기는 불현듯 최인용 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고 했다는 이 신입사원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재우 씨는 입사한 지 10년, 20년이 지나도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아요.”

“글쎄요. 그런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왜요?”

“회사를 10년씩이나 다닐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니 회사 안에서 10년 후의 계획이나 꿈도 없는 거고요. 동기들도 입사 때부터 ‘이 회사에선 적어도 임원 자리까지 올라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 친구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전혀 생각지 못한 답변이네요.”

“저희 세대는 대학을 나와서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어야 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취업 후에도 낮은 직급에 머물거나 불완전한 고용 상태에 놓였죠. 심지어 60세가 되기도 전에 퇴직해요. 설령 회사에 남아 있더라도 여전히 승진은 어렵고 고용은 불안정해요. 이렇게 기존 진로 체계가 무너지면서 이전 세대들이 기업에서 누리던 직원 육성 과정도 축소되거나 사라졌어요. 이제 더 이상 회사는 신입사원에게 의사소통 기술을 향상시키거나 기술과 지식을 쌓기 위한 교육 훈련 과정을 제공하기가 어려워요.”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없나요?”

“면접관들은 입사 후 10년 혹은 20년 후에 목표가 어떻게 되느냐란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회사 임원인 자신을 본보기로 삼고 싶을 것으로 생각하나 봐요. ‘나는 너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본인의 지위와 경험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거죠. 그 길을 따르기 위한 노하우에 로열티를 받고자 하고, 이를 기준으로 저희들의 행동과 생각에 못마땅한 점을 비판해요.”

“그렇긴 하죠.”

최재우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신사역에서 내렸다. 윤기는 ‘꿈이 꼭 없어도 되는데 너무 꿈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싶다’며 되묻는 최재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업 현실에서 더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러한 시대에 90년생 최재우의 고백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분명한 건 새로운 세대에게 꿈을 좇으라는 기성세대의 충고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Episode5 크리에이터 꿈꾸는 젊은 직장인들

오늘은 90년대생 보고서 내는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윤기가 탕비실로 들어서자 마침 마케팅팀 사원 이정혜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93년생인 이정혜는 올해 입사 3년차 마케터다. 붙임성도 좋아 사내 평판이 좋은 편인 이정혜는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20만여 명이라고 하니, 이 정도면 유명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얼마 전에는 이정혜가 만든 ‘미래전자 사원의 일상’이란 제목의 브이로그(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로 블로그에 일기 쓰듯 일반인의 소소한 생활상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 타인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채널)가 큰 화제를 모았는데, 해당 영상의 조회 수가 무려 50만 뷰를 넘었다고 한다.

“정혜 씨. 브이로그 잘 보고 있어요. 나날이 영상 퀄리티가 좋아지던데요?”

“감사해요. 취미생활로 시작한 게 이젠 제2의 직업이 돼버렸어요.”

“회사 다니면서 유튜버 활동 병행하려면 힘들지 않아요?”

“영상 편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빼곤 괜찮아요. 구독자가 계속 늘고 있는 데다 피드백이 즉각 이뤄지니까 재밌고 신나요. 요즘엔 어떤 콘텐츠를 만들까 연구 중이에요.”

“오호. 크리에이터다운 고민이군요. 유명 인사가 아닌 일반인의 일상을 담은 영상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한다는 게 참 신기해요.”

“나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기에 많은 분이 공감하는 듯해요. 구독자들이 영상을 보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들이 이렇게 예뻤던 걸까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정혜 씨의 영상을 통해 깨닫는 거군요.”

“맞아요. 우리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활동을 적극 장려하지만 국내 기업 대부분은 영리활동 겸업을 금지한다는 내규를 채택하고 있어서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젊은 직장인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더라고요. 기업이 사원의 크리에이터 활동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주면 좋겠어요.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원들을 제대로만 이용한다면 인력 확보와 유지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떤 점에서요?”

“직원들이 본인의 직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스트리밍 방송을 한다면 회사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직원의 직무 전문성 개발을 기대할 수 있어요. 기업 비밀이 새나가지 않는 수준의 가이드를 제시한다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소비자에게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요.”

“홍보 채널로서의 효과가 있단 얘기군요.”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 모임에 가보면 젊은 세대들은 이미 자신이 가진 재능을 콘텐츠로 만들어 수입이 창출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친구들이 회사 입사가 목적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기를 꿈꾼다면 수많은 기업이 인재를 잃게 될 거예요. 창의성과 효율성을 종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기업이 새로운 세대의 니즈를 제대로 디자인해 인사 제도에 반영할 수만 있다면 하나의 새로운 인재 채용 모델은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윤기는 이정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기업들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업은 규모를 계속 키워가야 하는 것은 물론 상품이든 서비스든 창조성과 효율성을 잘 종합해야 한다. 번영을 이루면서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돼야 한다. 이정혜 말처럼 이러한 중대한 도전 앞에서 젊은 세대가 유튜버와 같은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현상은 하나의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흠. 이 내용도 보고서에 추가해야겠는 걸.


# Episode6 상무님은 답정너입니다!

1990년대생 신입사원 관찰기
“부장님. 지시하신 90년대생 분석 보고서입니다.”

“벌써 다 됐어? ‘미래전자는 90년대생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부제가 거창하군. 그럼 바로 상무님 방으로 올라가지.”

앗. 이렇게 바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똑똑.

“상무님. 최인용 부장입니다.”

“들어오세요.”

“김윤기 대리가 90년대생 신입사원 성향에 대해 보고드릴 겁니다.”

“말해봐요.”

“흠흠. 우선 정보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고용관계가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기업이 창업가형 직원을 고용하는 겁니다. 이것이 어렵다면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을 신규로 채용한 뒤 프로젝트에 따라 배치와 이동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잠깐. 회사와 개인 간의 단기고용 계약을 하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다만 직원 스스로 스타트업을 운영하듯 많은 결정권을 갖고….”

“이 친구 큰일 날 사람이구먼. 회사 망하게 할 일 있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당황한 나머지 윤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옆에 있던 최인용은 윤기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상무 눈치 보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상무님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회사와 직원은….”

윤기는 목청이 터져라 외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윤기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답답한 사람들! 본인의 의견만 말하고 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답정너들!”

“뭣이? 당장 끌어내!”

밖에서 대기하던 경비원이 윤기를 끌고 나갔다. 윤기는 모래성처럼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문득 어제 만나 대화하던 90년대생 사원들의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바로 그때였다. 탁탁. 누군가 윤기의 등을 세게 내려쳤다. 아니, 이젠 폭력까지?

“김 대리! 일어나. 여기가 자네 안방이야? 90년대생 신입사원 관련 기발한 거 내놓겠다고 어제 큰소리 치더니 회의시간에 졸고 있어? 쯧쯧.”

정신을 차리니 윤기에게로 인사팀원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신동아 2019년 1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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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생 신입사원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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