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20대 리포트

대학생 ‘족보 거래’ 실태

“5만 원에 중간·기말고사 만점 산다”

  • 김종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kjw4139@naver.com

    입력2019-01-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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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족보전용게시판 등장

    • 한 대학서만 600여 건 등록

    • “학점에 대한 신뢰 추락”

    서울 한 대학의 족보 거래 게시판.

    서울 한 대학의 족보 거래 게시판.

    “영화제 ◯◯◯교수님의 ◯◯과목 족보 삽니다. 쪽지 주세요”

    “◯◯◯과목 시험은 족보대로 나오나요?”

    대학교 중간고사가 한창이던 2018년 10월 서울시내 A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록된 글들이다. 요즘 시험기간이 되면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른바 ‘족보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 족보란 수업 내용의 요약본과 과거 기출문제를 이르는 말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족보를 구하는 과정에서 ‘돈’이 오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족보는 수천~수만 원에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A대학 한 재학생은 “시험 적중률이 높은 족보는 인기가 치솟는다. 족보 하나를 구해 여러 명에게 되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족보 사재기’를 일삼는 대학생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는 족보 거래 전용 게시판이 개설되기도 했다. 서울 S대학 족보 게시판에는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무려 656건의 족보 거래 게시물이 등록됐다.



    족보 거래가 활발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A대학의 다른 한 재학생은 “상당수 수업에서 과거 기출문제가 그대로 출제되거나 매년 같은 패턴의 시험문제가 나온다. 5만 원에 중간·기말고사 만점을 사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적은 노력으로 좋은 학점을 얻는 수업은 ‘꿀강의’로 불린다. 대학 커뮤니티 내 강의평가 게시판을 보면 족보대로 시험이 출제되는 수업이 높은 평점을 받는다.

    몇몇 학생은 족보 거래를 반대한다. “시험과 학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재학생 이모(23) 씨는 “누구는 족보를 구매해 힘들이지 않고 좋은 학점을 따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족보 구매가 필수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중앙대 재학생 김모(24) 씨는 “매년 매 학기 똑같은 시험문제를 내기 때문에 족보 거래 현상이 생겨난 것”이라며 “족보를 외워 시험을 보는 것이 진정한 대학교 공부라고 할 수 있나. 등록금이 아깝다”고 했다.

    족보 거래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학생도 많다. 부산대 재학생 김모(24) 씨는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기가 벅차다. 취업을 위해 학점을 따야 하는데 족보를 이용하면 편하다”고 말했다. 경인교대 재학생 김모(20) 씨는 “족보를 보면 시험문제의 틀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학문이 헐값에 사고팔리는 아이러니

    족보 거래를 해결하려면 강의평가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최모(22) 씨는 “매년 똑같은 시험문제를 내는 강의가 사라지도록 학교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족보가 ‘만능 키’로 활용되지 않도록 애초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외대 재학생 이모(24) 씨는 “학교 측이 아예 기출문제를 공개하면 좋겠다. 이게 더 공정한 경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한 대학의 학사지원팀 관계자는 “족보 논란을 잘 알고 있다. 출제는 교수·강사 권한이라 강제할 수 없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는 있다”고 했다.

    학문이 헐값에 사고팔린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임에 틀림없다.


    ※ 이 기사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언론보도분석’ 과목 수강생이 신성호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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