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특집 | 김정은의 핵 군축 도박

北, 내년 핵무기 100개 실전배치 가능

‘세계 비핵화까지 핵 보유’ 명시

  •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 대응센터장

    naval@nate.com

    입력2019-01-30 17: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북한이 2020년까지 핵무기 100개를 양산해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등 비핵화 협상을 하는 와중에 국제사회의 눈을 피해 핵무기를 대량으로 실전배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알아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6년 3월 15일 대기권 재진입 고열 실험을 견뎌낸 미사일 탄두 부분을 살펴보며 웃고 있다. [동아DB]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6년 3월 15일 대기권 재진입 고열 실험을 견뎌낸 미사일 탄두 부분을 살펴보며 웃고 있다. [동아DB]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는 등 북한 비핵화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 북한은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를 폭파하면서 비핵화 선행조치를 시작했다.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동창리 로켓발사장과 엔진실험장, 영변 핵 단지의 폐쇄까지 제안했다. 대화를 주도하던 이들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시작했다며 반겼다.

    그러나 북한 핵개발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금 북한 비핵화가 진척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북한은 세계 119개국 가운데 28번째로 기아지수가 높은 극빈국이다. ‘고깃국에 이밥을 먹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고난의 행군으로 100만 명 이상이 아사했다. 핵을 갖기 위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차 북핵 위기를 일으킨 결과다. 애초 북한이란 ‘왕정국가’는 주민의 목숨보다 왕조의 영속을 더 중시했고 그 영속의 핵심수단을 핵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인식은 김일성 주석 시절 시작됐다. 6·25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소련이 직접적 참전을 피하고 중국이 본격적 공세 대신 전선 유지에 머무른 이유를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 때문으로 파악했다. 정전협정 후 전후 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된 1955년 김일성은 핵연구소 설치를 결정했다. 이듬해 소련 두브나 연구소로 과학자를 파견했고 조·소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다. 인력이 어느 정도 준비된 1962년부터 영변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해 소련으로부터 2MWe급 IRT-2000 원자로를 도입했다.


    중국이 북핵 개발에 결정적 기여

    그러나 소련으로부터 핵탄두 기술 도입이 여의치 않자 김일성은 중국에 기댔다. 마침 중국은 1964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핵 개발 지원을 요청했다. 6·25전쟁 당시 40만 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김일성을 도운 마오쩌둥이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북한은 이후 스스로 핵 개발에 나섰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은 1980년대 고농축 우라늄을 제공하면서 파키스탄의 핵기술 개발을 지원했다. 이어 파키스탄과 북한이 서로 핵 개발에 협력했다. 중국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이렇게 북핵 개발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은 1980년대에 이르러 기초연구 개발에서 벗어나 응용연구 및 무기 개발 단계로 접어들었다. 북한은 1980년 영변에 5MWe 원자로를, 1985년 50MWe 원자로를 지었고. 심지어 소련으로부터 400MWe 이상 경수로를 도입하려 했다.

    1985년 북한이 원자력발전을 넘어 핵무기 개발에 나섰음을 파악한 소련은 북한에 파견한 핵전문가들을 자국으로 송환했다. 북한은 1980년대 말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해 과학원 산하가 아니라 군수공업부 산하로 주관을 옮겼다. 1983년부터 핵탄두의 고폭실험을 70여 차례나 실시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 기폭장치 완제품이 나왔고 1993년부터 98년까지 이 기폭장치로 폭파실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해 완성했다. 강명도, 조명철 등의 탈북자는 1994년 귀순해 “북한이 핵탄두를 5개 보유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북한이 기폭장치를 완성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기폭장치만으로 핵무기가 완성되진 않는다.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지만 핵폭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6년 10월 1차 북핵 실험은 1kt 이하의 핵폭발이었으나, ‘임계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북한은 핵탄두를 만들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2009년 4월 2차 핵실험은 3~4kt의 파괴력을 과시하며 핵분열을 일으키는 원자탄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은 플루토늄을 사용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탄두에 탑재하기 위한 소형화, 경량화를 실험한 것으로 보였다.

    고농축 우라늄의 사용은 핵탄두를 추가적으로 독자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즉, 탄두수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은 파괴력이 TNT 환산 6kt 정도로 추정돼 3차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핵분열이 아니라 핵융합을 추구한 실험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북한 스스로는 수소탄 실험이라고 일컬었다.

    5차 핵실험부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2016년 9월 9일 5차 핵실험은 북한이 개발한 양산형 핵탄두를 터뜨린 것으로 추정됐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탄두는 원자탄의 전형적 파괴력에 해당하는 10~20kt의 파괴력을 보였다.

    북한은 2017년 9월 3일 노동신문에 새로운 형태의 핵탄두를 공개했다. 땅콩 형태의 탄두는 원자탄이 아니라 텔러울람(다단계 핵폭탄) 설계 방식의 수소탄이었다. 그리고 북한은 이날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는 공식적으로 진도 6.1의 충격이 관측됐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250kt의 파괴력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한마디로 북한은 수소탄을 보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수소탄, ICBM, SLBM에 접근

    북한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동아DB]

    북한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동아DB]

    핵탄두만 있다고 핵무기가 실전 배치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핵무기의 이동수단으로는 전략핵폭격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그리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꼽힌다. 현재 전략핵폭격기를 운용하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 3개국뿐이다. 이외 핵보유국은 ICBM과 SLBM에 핵탄두를 실어서 발사한다.

    북한은 ICBM을 보유하고 있을까? 북한은 ICBM 확보를 위해 핵 개발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국가총력전을 펼쳐왔다. 1950년대 후반 스커드미사일이 최초로 실전 배치될 때부터 소련에 스커드미사일 개발 기술의 이전을 요구했다. 천신만고 끝에 1984년 그 복제형 미사일을 확보했다. 이후 사거리 1000km인 스커드ER, 정밀타격이 가능한 스커드D를 개발했다.

    그러나 스커드미사일에 기반을 둔 노동미사일은 단거리 미사일에 불과했다. 북한은 2017년 5월 화성12형을, 같은 해 7월 화성14형을 발사함으로써 ICBM 능력에 한발 다가갔다. 진정한 ICBM 능력을 보여준 것은 2017년 11월 말에 쏘아 올린 화성15형이었다.

    북한의 진지한 핵전력 의지를 보여주는 무기는 바로 SLBM이다. SLBM은 지상에서 발사되는 ICBM과는 달리 물속 잠수함에서 발사되므로 발사 장소와 발사 시기를 알 수 없는 치명적인 무기다. SLBM은 냉전 시절 ICBM 경쟁에서 뒤처진 미국이 게임 체인저로 먼저 실전배치한 이후에 미국과 소련의 핵 억지력 핵심으로 기능했다. 마오쩌둥이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SLBM만큼은 확보해야 한다며 개발을 독촉해 중국은 1980년대 개발을 완료했다.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도 SLBM을 쏠 수 있다. 그만큼 SLBM은 은밀하고 파괴적이다. 북한은 2016년 북극성1호 SLBM의 시험발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이후 북극성3호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 영변의 주요 핵시설. [동아DB]

    북한 영변의 주요 핵시설. [동아DB]

    북한은 ICBM과 SLBM을 운용할 부대는 미리 준비했다. 1999년부터 핵미사일을 운용하는 부대를 별도 군종으로 독립시켜 ‘전략군’이라 명명했다. 심지어 ‘전략군절’이라는 기념일까지 정했다. 미사일 생산 공장과 운용 기지도 전국에 배치했다. 3대 미사일벨트에서 사거리에 따라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발사장, 영변 핵 단지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을 비핵화 조치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미 개발이 완료됐기 때문에 필요 없는 시설을 닫는 조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지난해 7월 북한이 평양 인근 산음동 시설에서 신형 ICBM을 제조하고 있는 정황이 관측됐다.

    남은 것은 핵무기 양산능력

    이렇듯 핵무기와 운용부대까지 준비된 북한에 이제 남은 것은 핵무기 양산능력이다.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핵전략은 형태가 바뀐다. 핵무기가 충분한 미국이나 러시아는 적국의 모든 대상을 타격하는 ‘최대억제’를 지향하지만, 핵무기 숫자가 100개 미만인 국가는 핵심표적만 노리는 ‘최소억제’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군사적으로 의미가 미미한 숫자를 보유하는 경우, 핵 보유 자체만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실존억제’를 취하게 된다.

    북한은 핵 생산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면 2020년까지 플루토늄을 60kg까지, 고농축 우라늄을 600kg까지 보유할 수 있다. 고농축 우라늄 10kg과 플루토늄 1.25kg을 가지고도 각각 핵폭탄 1개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단순계산으로, 북한이 2020년까지 100개의 핵탄두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탄두 수 자체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갖는지다.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핵무기는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핵심적인 북한의 안보수단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일부 전문가는 김정일의 유훈이 ‘비핵화’라고 주장하지만, 김씨 왕조를 연 김일성의 유훈은 ‘핵 보유를 통한 미제의 한반도 축출’이었다. 게다가 비핵화의 의미도 문제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과 한국에 핵이 없는 상태’로 생각하지만,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미국의 핵조차 없는 상태’라고 여긴다. 그래서 비핵화의 협상 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핵이 없는 한국은 핵협상 대상조차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은 2010년 4월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명문화했다. 이와 함께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법’을 발표해 핵 보유의 근거를 공고히 했다. 이 법 2조는 “핵 무력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격퇴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데 복무한다”고 돼 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 비핵화도 포함”

    이렇게 북한은 “세계가 비핵화될 때까지” 핵 무력을 가지고 있겠다고 스스로 법에 정해놓은 것이다. 미국이 핵을 내려놓을 때까지 자신도 핵을 갖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논리는 중국이 소련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 보유를 하면서 내세운 논리이기도 했다. 이러한 기본적 논리 구조조차 모르고 북핵 문제에 접근한다면 결국 북한에 핵을 쥐여줄 것이다. 무작정 전쟁을 외치는 이들만큼이나 맹목적 평화를 외치는 이들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