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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탁상행정에 중소 면세점 줄폐업 위기

中에 매달리다 골병, 이러다 고꾸라질라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文정부 탁상행정에 중소 면세점 줄폐업 위기

  • ● 포화상태에 또 면세점 늘리겠다는 정부
    ● 면세점, 매출 늘었지만 속 빈 강정
    ● 수수료 주고 중국 보따리상 유치 실정
    ● 점포 늘리면 개별 점포 매력도 떨어져
    ● 자금력 부족한 중소·중견면세점 직격탄
2018년 6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본점 입구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면세점 개점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뉴스1]

2018년 6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본점 입구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면세점 개점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뉴스1]

요즘 국내 면세점 업체들의 속내가 복잡하다. ‘따이공(代工·중국인 보따리상)’ 덕분에 지난해 사상 최고 매출 기록을 세웠지만 정작 남은 이익은 얼마 되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따이공에 의존하는 시장 구조가 고착화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중국인들의 쇼핑 수요를 따이공이 잠식할수록 국내 면세점 산업은 골병이 들 거라는 우려다.

이 와중에 문재인 정부가 관광 활성화의 일환으로 시내 면세점을 더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면세점업계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면세점을 몇 곳 늘린다고 해서 정부의 바람처럼 관광객이 더 늘어날 리 없을 뿐만 아니라, 과당경쟁으로 중소업체가 타격받는 등 산업이 되레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시장의 현실을 외면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 왜곡하는 정부 정책”

정부가 면세점을 추가 설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때는 지난해 7월이다. 당시 정부는 2018년 세법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면세점 특허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고 했다. 광역 지방자치단체별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직전 해보다 20만 명 이상 증가하거나 매출액이 직전 해 대비 2000억 원 이상 늘 경우, 이 중 한 개 조건만 충족해도 신규 특허를 내주겠다는 게 골자다. 기존에는 ‘전국 시내면세점 외국인 매출액·이용자 수 50% 이상’과 ‘지자체별 외국인 관광객 증가 수 30만 명 이상’ 두 요건을 동시 충족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면세점 업체들은 ‘설마’ 했다. 이미 서울에만 13곳의 시내면세점이 있다. 업계에서는 2015년 6곳에서 3년 만에 두 배로 늘어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데 정부가 급하게 또 면세점을 늘리지는 않을 거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늘리더라도 유커(游客·중국인 단체관광객)가 돌아온 뒤에야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7일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서울 등을 중심으로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내면세점 추가 설치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편의를 제고해 한국 방문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이 2017년보다 크게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면세점 추가 허용 가능성은 커 보인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은 2018년 11월까지 17조3617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2017년 연간 매출 14조4684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12월까지 계산하면 19조 원에 이르러 사상 최고액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4~5월 면세점 제도운영위원회를 통해 지역별 시내면세점의 신규 특허 수를 정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신규 시내면세점이 확정될 전망이다.

면세점 업체들이 ‘장사’를 잘했으니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고 신규 면세점이 들어서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면세점 업체들은 그렇지 않다며 손을 내젓는다.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국내 면세점 시장의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의 70~80%는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있기 전에는 유커들이 이 자리를 채웠고, 최근에는 따이공들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문제는 면세점 업체 입장에서 따이공은 매출을 책임져주기는 하지만 이익 창출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데 있다. 면세점 업체들이 따이공에게 구매액의 15~20%를 되돌려주는 식으로 이들을 유치하고 있는 탓이다.


“제 살 깎아먹기식 과당경쟁”

2018년 11월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면세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현대백화점면세점 오프닝 세리머니에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왼쪽에서 6번째)을 비롯한 내빈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11월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면세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현대백화점면세점 오프닝 세리머니에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왼쪽에서 6번째)을 비롯한 내빈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뉴스1]

따이공은 구매 대행 상인으로 한국에서 면세 물품을 구입해 중국에 판매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지난해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유커들이 한국을 찾지 못하면서 따이공이 중국의 쇼핑 수요를 채우고 있다. 과거에도 유커의 방한 목적은 주로 쇼핑이었는데, 따이공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발표된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쇼핑은 한국을 관광지로 선택하는 요인으로 67.8%를 차지했다.

면세점 업체들은 유커의 발길이 끊긴 뒤 어쩔 수 없이 따이공들에게 수수료를 주면서까지 ‘모셔 와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고 항변한다. 워낙 구매력이 크니 면세점 업체가 ‘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체들이 특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따이공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사드 보복 조처를 조금씩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른바 4불 정책(온라인 여행사 취급 금지·전세기 금지·크루즈선 금지·롯데그룹 산하 호텔, 면세점 등 이용 금지)을 사실상 고수하고 있다. 유커가 귀환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중국인 여행객들은 따이공들이 면세점에서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여행객들조차 제값 주고 면세품을 사지 않고 수수료를 챙기려 한다는 전언이다. 여행객들이 단체로 여행사를 끼고 국내 면세점과 직접 거래를 트는 식으로 말이다. 면세점업계는 중국인 사이에 ‘굳이 쇼핑을 위해 한국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까 우려한다. 중국인 입장에서는 직접 한국에 오기보다는 따이공이나 여행사를 통해 더 싸게 면세 물품을 사는 게 이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내 면세점은 물론 관광산업 전체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장이 왜곡된 상황에서 정부가 매출 증가를 이유로 면세점을 또 늘리려 한다는 점에 면세점 업체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물론 시장이 호황이었을 때도 기존 업체들은 신규 면세점 설치를 매번 반대해왔다. 밥그릇이 줄어드는데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는 걸 반길 기업은 없다. 다만 이번만큼은 그전과 상황이 다르다.

업체들은 우선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면세점을 추가로 늘릴 경우 국내 면세점 시장이 더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남 등에 신규 면세점이 문을 열면서 일부 업체가 따이공에게 더 높은 수수료율을 제시하는 등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가격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중견 면세점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중소·중견 면세점들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1조 원을 겨우 넘겼다. 직전 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대기업 면세점들이 사상 최고 매출을 찍은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실적이다. 또한 주요 중소면세점 대부분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SM면세점의 경우 지난 2017년 27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삼익면세점과 시티플러스도 각각 161억 원, 45억 원의 손실을 냈다.


“수수료율 30~40%까지 치솟아”

일각에서는 폐업하는 면세점이 속출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이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의 기를 살려주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할 경우 국내 면세점 시장이 점차 활력을 잃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서울 시내에 면세점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하자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입찰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할 정도로 면세점은 알짜 사업으로 통했다.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그룹은 애초 지난 2017년 강남에 면세점을 개장하려다 시기를 1년 정도 늦췄다. 그만큼 시장이 안 좋다는 방증이다.

점포가 늘면 관광객들의 쇼핑 편의는 향상될 수 있다. 이는 정부가 면세점을 추가로 설치하려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개별 점포의 매력도는 떨어질 수 있다. 신규 면세점의 경우 일부 인기 브랜드 입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유통업계에서는 샤넬과 루이뷔통, 에르메스를 ‘3대 명품’으로 일컫는데, 이 브랜드들은 ‘아무 데나’ 들어가지 않는다. 실제 최근 개장한 일부 면세점은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연하게도 관광객 입장에서는 브랜드가 많지 않은 점포는 쇼핑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면세점 점포 수를 늘린다고 해서 그 수만큼 쇼핑 편의가 개선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방안이 많지 않으니 꿰맞추기식으로 면세점 추가 설치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비난 섞인 시선도 있다. 그간 정부는 관광객이 늘어난 후에야 수요를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신규 면세점 설치 방안을 내놨었다. 지난 3년 새 서울시내 면세점이 두 배로 늘어난 것도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급격히 늘고, 이런 성황이 계속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면세점 허가를 추가로 내준 2016년에도 서울의 외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늘었느냐가 허가 여부의 최대 쟁점이었다.

정작 정부는 이번에는 관광객을 늘린다며 면세점을 설치한다고 한다. 앞뒤가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관광업계나 면세점 업체들이 바라는 것은 유커의 귀환이다. 정부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애써줬으면 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유커가 돌아올 수 있도록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는 게 정부가 해야 할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물론 면세점 업체들 역시 책임감을 느끼고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다. 이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따이공에게 높은 수수료를 줘가면서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면세점이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경절 등 대목에는 면세점들이 수수료율을 30~40% 높이는 식의 경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당장 매출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다. 면세점 산업을 망치고 있다며 정부 탓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비슷한 점포 나열로는 미래 없어”

중국인 단체관광객만 바라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무작정 면세점 시장에 뛰어든 것도 면세점 업체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점포 차별화 등을 통해 여러 국가의 쇼핑객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면세점 업체들도 사실 할말은 없다.

지난해 강남에 점포를 연 면세점 업체들이 강남 지역을 관광 명소로 끌어올리기 위해 볼거리나 쇼핑 정보 등을 담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거나 유명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손잡고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식의 노력은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런 노력 없이 어디를 가든 비슷한 점포를 만들어놓고 앉아서 중국인 큰손들이 돌아오기만을 바란다면 우리나라 관광산업과 면세점 시장에 미래는 없다.


신동아 2019년 2월 호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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