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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아빠’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의 생생 육아 일기

아이를 낳았다. 행복해졌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늦둥이 아빠’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의 생생 육아 일기

  •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1963년생이다. 1992년 큰딸, 2015년 작은 아들을 각각 얻었다. 첫째와 스무 살 넘게 터울이 지는 둘째를 키우며 비로소 ‘아빠 됨’의 기쁨을 알았다는 그를 만났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1월 17일 새해 벽두부터 ‘이러다 나라 망하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로 0명대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다. 1970년만 해도 가구당 아이 수가 다섯 명 안팎인 게 보통이었다(합계출산율 4.53). 이제는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가 한 명 미만으로 줄었다. 이런 세태에 비춰 보면 정 교수는 다소 특이한 사람이다. 아이가 하나 있는 상황에서, 쉰이 넘은 나이에 둘째를 또 가졌으니 말이다. 1992년 태어난 정 교수 큰딸이 20대에 접어든 2015년, 그의 작은 아들이 첫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막 뜀박질하며 세상을 배워가는 둘째는 정 교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삶의 중심은 육아”

정재훈 교수(오른쪽)가 배우자와 함께 아들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정재훈 교수(오른쪽)가 배우자와 함께 아들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 동년배 분들과 생활 패턴이 많이 다르겠네요.

“물론이죠(웃음). 아이가 태어난 후 저녁 6시 이후 집에 들어간 날이 손에 꼽혀요. 2017년까지는 1년에 대여섯 번이었습니다.”

- 작년부터 좀 달라졌나요?

“저녁 약속을 1년에 열 번쯤 잡을 수 있게 됐죠(웃음). 장인어른·장모님과 함께 살아서 낮에는 두 분이 아이를 돌봐주세요. 출근 전, 퇴근 후에는 우리 부부가 육아를 책임지는 게 원칙이고요. 직장인들이 들으면 위화감을 느낄지 모르겠는데, 일찍 퇴근한다고 일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웃음).”

-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배우자와 함께 아이 먹이고, 씻기고, 같이 놀기도 해요. 오후 9시쯤 모두 잠자리에 들고요. 일어나는 시간은 다음 날 오전 3시 무렵입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늘 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해요. 우리 부부 둘 다 그렇습니다.



둘째 출산 당시 배우자가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었어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새벽부터 책 읽고 논문을 썼죠. 아침에 저와 같이 출근해 각자 연구실로 갔고요. 박사 학위를 받은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이 생활합니다. 아침에 같이 나오고, 같은 시간에 귀가하고, 새벽부터 일하고…. 육아도 당연히 둘이 같이 해요.”

- 매일 저녁 6시 전 집에 들어가는 직장인은 우리나라에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게 ‘칼퇴근’ 해도 괜찮은가요?

“다행히 아직 잘리거나 월급이 깎이지는 않았어요(웃음).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어서인지 제 앞에서 드러내놓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요(웃음).”

정 교수는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꽤 많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데서 모두 떨어져 나온 듯한 느낌을 받긴 한다”며 웃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이제 곧 만 4년이 됩니다. 그동안 거의 매일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는 건, 달리 말하면 제가 정말 많은 제안을 꾸준히 거절해왔다는 뜻이 되거든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사회적으로 만나는 어느 누구도 저를 자기편으로 생각지 않는 것 같아요. 그걸 아니까 예전보다 좀 더 긴장하며 살게 되고요.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내가 쓰는 글이 ‘그저 그렇다’는 평가를 받으면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 그런데도 매일 오후 6시까지 집에 들어가는 이유가 있나요?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요(웃음). 어린 자녀에게는 양육자가 필요해요. 그게 아버지로서 제 할 일이니, 거절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최대한 거절하는 게 당연한 거죠.”


“큰딸아, 미안하다”

정 교수가 처음부터 이 상황을 ‘당연하게’ 여긴 건 아니다. 1992년 큰딸이 태어났을 때 그는 독일 유학생이었다. 박사과정 재학 중이던 ‘아빠’와 석사과정을 밟던 ‘엄마’는 둘 다 갓난아이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미처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나이가 찼으니 ‘남들 하는 대로’ 아이를 낳았을 뿐이다.

정 교수는 “딸이 태어나고 한동안은 아이 엄마와 배턴 터치하듯 교대로 학교 집을 오갔다. 공부, 육아 어느 쪽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서너 달쯤 이어지자 ‘이러다가는 학위를 못 받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커졌다”고 했다.

-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께 연락 드렸습니다. 아이를 데려가 키워달라고요.”

정 교수는 1999년 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 그때까지 큰딸의 주 양육자는 정 교수 부모였다고 한다. 아이는 독일 대학 방학 기간에 맞춰 1년에 3개월쯤 독일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가곤 했다.

-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 원인으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점’을 꼽는 사람이 많은데, 당시 교수님 상황이 꼭 그랬군요.

“돌아보면 아이 키우며 공부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그때는 마음이 조급해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정 교수는 그 선택이 부부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첫 결혼의 배우자와 헤어졌다. 2000년 귀국 후 딸 양육은 사실상 정 교수가 도맡았다고 한다.

- 아빠 혼자 딸을 키우는 게 쉽지 않으셨겠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제법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딸한테 ‘내가 너 키우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큰소리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죠(웃음). 둘째를 낳고서야 그게 아닌 걸 알았습니다. 재혼한 뒤 장모님 댁에서 같이 살게 돼 지금은 딸과 따로 지내요. 아이를 볼 때마다 ‘옛날에 미안했어’라고 말합니다.”

- 뭐가 그렇게 미안하신데요.

“시간적·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것, 조급했던 것, 바깥일과 집안일을 분리해 생각한 것…. 너무 많죠. 큰애가 어릴 때 같이 독일 장난감 가게에 간 일이 있어요. 얘가 애들 타는 자동차 앞에서 한동안 꼼짝을 않고 서 있더라고요. 갖고 싶어서 그러는 걸 알겠는데, 당시엔 형편이 안 됐죠. 얼마 뒤 동료 유학생 집에 갔더니 거짓말처럼 그 자동차가 있었어요. 우리 애는 한번 타보고 싶어 하고, 그 집 애는 못 타게 하던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아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눈짓만 한 번 해도 냉큼 사줄 수 있게 됐거든요(웃음).

돈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충분히 지켜볼 수 있게 됐어요. 사회적 네트워크가 다 끊어져도 ‘아이 키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죠.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첫째 때는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반성합니다. 왜 그렇게 학위 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가 앞서 이끌려고만 했을까….”


‘아빠 됨’의 행복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정 교수는 “그때는 일하고 아이 키우는 게 모두 나를 완성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몰랐다. 일과 육아를 분리한 채 둘 다 잘하려고 했을 뿐, 그것과 내 삶을 연결짓지는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둘째가 태어난 뒤 느낀 건, 자녀 양육이 한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이에요. 내 뜻대로 이끌려 하지 않고 아이를 충분히 살피며 소통하다 보면 아이가 자라듯 저도 성장하게 된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을 이해하는 건 사회생활할 때도 꼭 필요한 일이잖아요. 둘째를 키우며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 좀 더 좋은 사람이 된 건가요?

“최소한 말이 줄어든 건 확실합니다(웃음). 현저하게 말수가 줄었고, 사람들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도 줄었죠. 여전히 저를 내세울 때가 있긴 하겠지만,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느껴요.”

정 교수는 이후 삶이 훨씬 편안해졌다며 영화 ‘과속스캔들’ 얘기를 꺼냈다. 남자가 아빠가 됐을 때 나타나는 변화를 잘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이 영화 주인공은 30대 중반 잘나가는 연예인 남현수(차태현 분)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앞에 ‘내가 당신 딸’이라고 주장하는 황정남(박보영 분)이 나타나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스무 살 갓 넘은 황정남에게는 여섯 살배기 아들까지 딸려 있다.

“영화 초반 카메라가 남현수 집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깔끔하고 정갈할 수가 없어요. 아이가 들어온 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지만요. 아이는 그런 존재죠. 보통 남자들은 그걸 모르고요. 독일에서 큰딸을 낳았을 때 저도 그랬어요. 황정남처럼 어느 날 불쑥 찾아온 것도 아니고 10개월 기다려 얻은 딸인데도, 그 아이가 태어나면 더는 전처럼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아예 몰랐습니다.”

- 그래서 딸을 한국에 보내셨고요.

“나름대로 상황을 수습했던 건데…(웃음). 남현수도 처음엔 황정남을 자기 삶에 받아들이지 못하죠. 그러다 점점 아이와의 관계에 적응해가고요.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보면서 많이 공감했습니다.

‘이 아이가 내 딸이구나’라고 인식한 뒤 뭐든 막 해주려고 하거든요. 정작 아이는 싫어하는 것들을요. 두 사람 관계는 아빠가 딸의 욕구를 받아들이고 아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비로소 달라지기 시작해요. 제가 ‘과속스캔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남현수가 황정남에게 전화해 ‘최소한 노래는 하러 와라’ 라고 말하던 부분입니다. 아이를 이해하는 아빠로서의 삶이 시작되던 대목이죠. 상당수 우리나라 남자가 하지 못하는 걸 남현수는 해내요.

‘과속스캔들’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건 그렇게 ‘아빠 됨’을 선택한 뒤 남현수의 삶이 매우 풍요로워진다는 점입니다. CF 제안이 쏟아지고, 일도 마음먹은 대로 술술 풀리고(웃음). 저는 그 영화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아빠가 되면 삶이 행복해진다.’ 그건 제가 요즘 매일 느끼는 점이기도 하고요.”

정 교수는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출산과 육아를 권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삶의 계획표에 따라 스스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해서다. ‘저출산=사회문제’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회복지전문가인 그는 “아이가 적게 태어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다”라며 “진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건 구성원들이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한 새로운 상상

손을 맞잡은 정재훈 교수 가족 사진.

손을 맞잡은 정재훈 교수 가족 사진.

“자기 생각에 별로인 직장, 학교에 누가 들어오려고 하면 ‘그러지 마’ 하고 말리잖아요. 저는 우리 사회 현재 출산율이 바로 그 현상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해요. 사회 구성원 사이에 암묵적으로 ‘여기는 살 만한 곳이 아니야’라며 새로운 사람 진입을 막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겁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아이가 더 많이 태어나게 하려면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7일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에 비로소 성평등 구현에 대한 내용이 들어갔어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아이를 낳아볼까’ 생각하는 사람도 자연스레 늘어날 거예요.”

정 교수는 그러면서 영화 ‘맘마미아’ 얘기를 꺼냈다. 2008년 국내 개봉해 극장에서만 관객을 400만 명 이상 동원한 작품이다. 1970년대 큰 인기를 끈 팝그룹 ‘아바’ 노래를 기초로 만든 영화라 그 시절 청년기를 보낸 중장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 주인공 도나(메릴 스트립 분)는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를 낳아 혼자 길렀다. 장성한 소피가 엄마 일기장을 뒤져 ‘아빠 후보’ 세 명을 찾아낸 뒤 이들을 모두 자기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우리나라에서라면 젊은 여성이 자기 결혼식에 ‘아빠 후보’ 세 명을 초대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겠죠?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소피는 사람들이 뒤에서 ‘근본 없는 아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컸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맘마미아’에는 그 외에도 우리나라 기성세대가 불편하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요. 도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결혼을 세 번 했죠. 소피는 결혼식이 열리기 직전 이를 취소하고 남자친구와 긴 여행을 떠나고요. 영화 ‘맘마미아’를 재밌게 본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이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저는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자녀한테 동거를 먼저 권하지는 못해도 ‘결혼 안 하고 그냥 한번 살아보면 안 돼?’라고 물을 때 말리거나 방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비혼가족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다양한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모두 존중하면 출산율은 자연히 올라갈 겁니다.”

정 교수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 다양성이 인정되고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딸 아들이 자라는 것이다. 그는 “아이를 키우면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언젠가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아이가 살아가게 될 것 아닌가. 그 세상이 지금보다 나은 곳이면 좋겠다. 사회복지학자로서 오랫동안 국가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를 푸는 데 집중했는데, 아빠를 주요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작고 현실적인 부분에도 눈길이 간다”고 했다.

“정부가 미세먼지를 없애고자 인공강우를 뿌려도, 바로 내 아이 앞에서 누군가 엔진공회전을 하고 있으면 소용없는 일이 되잖아요. 아이 미래가 걱정되면 자녀를 둔 부모부터 엔진공회전을 멈춰야죠.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 모든 사람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죠. 이제는 삶의 많은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웃음).”

어쩌면 아이 때문에 사는 게 다소 피곤해진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빠가 됨으로써 얻은 기쁨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셋째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크게 웃더니 “둘째 초등학교 졸업할 때 나는 퇴직할 나이가 된다. 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동아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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