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특별기획 | 市場, 북한을 바꾸다

“남양유업 커피믹스 갖다주시라요”

北-中 접경지역 르포

  • 단둥=김유림 | 채널A 기자 rim@donga.com

    입력2016-01-05 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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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파견 北 노동자 월급 40만 원
    • “한국 밥솥 살 사람은 벌써 다 샀다”
    • 자녀 몫으로 중국 주택도 구입
    • “5·24조치 탓 중국인만 신났다”
    편안한 차림으로 식탁에 앉자 김치,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익숙한 음식이 우리를 반겼다. 식탁에 둘러앉은 한국인 투자 희망자와 조선족 기업가, 그리고 북·중 경계를 연구하는 연구자 등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다. 북한에서 태어난 화교 출신 아주머니가 식은 국을 데워줬고, 어제 막 북한에서 기차를 타고 친척을 만나러 왔다는 북한 촌로(村老)는 긴장한 채 묵묵히 수저질만 했다.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와 육로로 이어진 중국 동북지역의 단둥(丹東)은 북한에 큰 의미가 있다. 북·중 무역의 70~80%가 이 도시에서 이뤄진다. 북한 장마당에서 팔리는 중국산 생필품 대부분이 단둥 지역을 통해 전달된다.  북한 사람과 한국 사람, 조선족과 북한 출신 화교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 이익을 좇아 모여들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단둥에 머무는 북한 사람은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취재진은 7박8일간 단둥 등 북·중 국경 지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나온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김일성 배지 거의 안 달아

    하루 날을 잡아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여오는 물자의 뒤를 쫓아보았다. 출발점은 이른바 ‘압록강철교’다.
    11월 16일 월요일 오전, 구슬비가 쉴 새 없이 내리는 동안에도 ‘평북’ 번호판을 단 화물차들이 끊임없이 철교 위를 지났다.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철컹철컹 불안한 쇳소리가 강가에 울려 퍼졌다. 1943년 개통돼 낡을 대로 낡은 압록강철교는 도로 곳곳이 파여 있고 차가 한 차선으로밖에 다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사고도 잦다. 그럼에도 압록강철교는 북·중 간 물자와 사람, 돈이 오가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압록강철교에서 5분 남짓 떨어진 단둥 세관. 왕복 8차선 도로는 세관에 들어서는 차와 나가려는 차가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북한에서 단둥으로 들어온 차들은 모두 세관에 들러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세관 안에는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북한 여성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3~4개월 단위의 중국 거주 비자를 갱신하고자 잠시 북한에 다녀오려는 근로자들이었다.
    특기할 점은 세관을 가득 메운 북한 사람 중 ‘김일성 배지’를 단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탈북자 출신으로 북·중 국경 지역 교류를 연구하는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이전에 북한 사람들은 모두 배지를 착용하고 제한된 행동만 했다. 한국 사람과 대화하거나 교역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전했다.
    세관을 통과한 북한 화물차의 뒤를 쫓아 차로 20분쯤 가니  화물 하차장이 나타났다. 차마다 가득 실어온 물자를 내리는데, 까맣고 하얀 가루 무더기였다. 북한 운전기사는 “신의주에서 들여온 철광석”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4년 북한이 가장 많이 수출한 품목은 석탄, 철광석 등 광물성 생산품이다. 15억6800달러를 수출했는데 그중 97.4%가 중국으로 들어갔다.



    “한국 제품 사진 찍어 주문”

    멀지 않은 곳에서는 반대로 북한에 들어가는 물건을 싣고 있었다. 화물차마다 ‘태양열 발전기’가 가득히 쌓였다. 북·중 무역 사업을 하는 ‘북한 화교’ 정모 씨는 “전력난과 겨울철 난방 대란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 옆에는 중국 내륙 지방에서 재배한 귤, 사과 등 과일이 가득 실린 차가 출발을 기다렸다.
    화물차는 북한에 생필품도 전달한다. 특히 한국 제품이 인기가 많다. 세관 앞 한 상점에 들어가 “북한 친척에게 갖다줄 한국산 분유를 포장해달라”고 했더니 능숙한 손길로 분유 상표를 벗기고 검정 사인펜으로 브랜드를 지웠다. 북한 운전기사들이 검정 사인펜을 몇 개씩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브랜드를 지우기도 했다. “사실 한국 물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세관에서는 눈감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부유한 이들은 직접 한국산 물품 사진을 찍어 주문하기도 한다. 취재진이 만난 한 무역상은 “최근 남양유업의 커피믹스와 한국산 염색약을 주문받았다”며 “한국에서는 얼마에 파는 제품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최근까지 가장 인기 있던 한국 제품은 전기밥솥. 하지만 요즘은 전기밥솥을 들여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 상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한국 밥솥 살 여유가 있는 사람은 다 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환 체제를 맞이하려는 북측의 노력은 끊이지 않는다. 취재진은 국경 지역에서 북한 대외경제성이 2015년 2월 허가한 ‘개발사업권승인서’를 입수했다. ‘조선진한개발회사’라는 북·중 합작회사가 평안북도 신의주시 임도 개발을 하도록 승인한 내용이다. 이 개발회사에는 중국과 북한 기업이 각각 7대 3으로 투자했다고 돼 있지만,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인프라를 제공받는 대가로 개발권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의 지분이 절대적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개발회사의 자본금은 1억8000달러(2000억 원)에 달한다. 임도의 지역 개발과 관광, 농업, 금융, 물류, 부동산 개발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한다. 압록강 하류의 섬 위화도 바로 옆에 있는 임도는 면적이 6.2㎢로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다. 북한은 임도를 50년간 이용할 수 있는 토지이용증도 함께 발급했다.
    김형덕 소장은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투자 유치가 쉽지 않다 보니 50년을 기한으로 개발권을 주는 것”이라며 “이런 투자가 확산될수록 북한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돈에는 국경이 없다”

    취재진은 단둥에서 우연히 북한의 노동당 지도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인민복을 입고 배지까지 단 그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백발이 성성했고 손과 목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는 단둥과 지안(集安)에 있는 먼 친척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지안역에 내렸을 때 약속한 친척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할 건지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북한 분위기를 물었더니 “장군님 덕분에 잘 먹고 산다”며 뻣뻣하게 답했다.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강성대국으로 나아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에 피복공장을 세우고 싶은데 남한에는 그런 설비를 받을 데가 많지 않으냐”며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단둥 세관 앞 한 상점에서 취재진은 북한 보위부 요원을 만났다. 엄격한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탓에 북한 노동자들에게 악명이 높은 이다. 그런 그도 한국 유명 상표가 달린 내의를 한참 들여다보며 살지 말지 고민했다. 취재진이 다가가자 뒤로 물러서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국 물건들을 들여다봤다.
    북한 화교 출신 무역가 한모 씨는 술을 들이켜며 이렇게 답했다.
    “북한 사람들도 다 알아요. 돈에는 국경이 없고 돈은 무조건 좋다는 걸. 북한 사람들이 그걸 알아가는데 한국 사람들은 어차피 5·24 대북 제재 때문에 투자도 못하고…. 결국 중간에서 중국 사람들만 신났다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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