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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노량진 고시촌, 청년들이 무료급식 먹는 바로 그곳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르포] 노량진 고시촌, 청년들이 무료급식 먹는 바로 그곳

  • ● 인근 교회 제공 아침식사에 수백 명 청년 몰려
    ● 점심 한끼는 컵밥 혹은 컵라면
    ● 치솟은 월세…70만 원짜리 고시텔도
    ● ‘1타 강사’ 독점 일부 학원, 수강료 250만 원까지
    ● 노량진 뜨거나 인강으로 독학하기도
    ● “공시에 목매달게 한 건 사회와 정부 아닌가”
    ● “생존 위해 택한 길, 손가락질 말라”
3월 27일 오전 6시 30분경 노량진 강남교회를 찾은 수험생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김우정 기자]

3월 27일 오전 6시 30분경 노량진 강남교회를 찾은 수험생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김우정 기자]

3월 26일 오전 11시 30분 노량진역. 서울지하철 1호선과 9호선이 만나 2017년 기준 하루 평균 11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역이다. 이날도 9개 출입구로 많은 사람이 드나든다. 노량진로 북쪽의 1,2,7,8번 출입구는 노량진수산시장으로, 남쪽 3,3-1,4,5,6번 출입구는 노량진 고시촌으로 이어진다. 1번 출입구로 나오자 횡단보도 맞은편에 동작경찰서가 보인다. 빌딩 사이 좁다랗게 난 경찰서 정문을 가운데 두고 ‘소방·경찰공무원 준비’나 ‘재수종합’이라고 적힌 간판이 즐비하다. 

노량진 고시촌은 행정구역상 서울 동작구 노량진 1동에 속한다. 횡으로 동쪽의 사육신역사공원에서 서쪽 끝 유한양행 빌딩까지 1.3km가량이다. 종으로는 북쪽 노량진로와 남쪽 상도로까지 1.2km 정도. 하지만 노량진 수험생들은 “보통 노량진 고시촌 하면 만양로 근처 학원가 반경 50m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이 지역에 유명 학원과 독서실이 집중돼 있다. 만양로 외곽 골목길 사이사이로 옛 주택을 개조한 고시원, 고시텔, 원룸이 점선처럼 이어진다. 

만양로 일대에는 1970~80년대부터 유명 대학입시학원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내 자취생을 상대로 한 하숙집과 식당도 문을 열어 오늘날 고시촌의 원형을 이뤘다. 이후 대학입시학원 상당수가 강남, 목동 등지로 이전했다. 2000년대 이후 공무원시험(공시) 응시자가 늘면서 공시 전문학원이 대거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급수나 직렬을 막론하고 경쟁률이 높아 공시라 하면 으레 ‘고시(高試)’로 불리는 시대다. 이 시대의 총아인 노량진 고시촌은 이렇게 서울 동작구 한복판에 둥지를 틀었다.


컵밥거리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노량진 고시촌의 상징 중 하나인 ‘컵밥거리’가 북적이기 시작한다. 식사를 위해 쏟아져 나오는 수험생들을 상대로 노년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적힌 문구와 유럽여행을 미끼로 한 학원 광고를 들고 섰다. 시대의 취약계층인 청년과 노년은 노량진에서 이렇게 조우한다. 

노량진 컵밥거리에는 총 19개의 가판대가 있다. 컵밥으로 통칭하지만 메뉴는 덮밥에서 쌀국수, 샌드위치 등 다양하다. 매스컴 덕에 컵밥이 유명세를 타자 동작구청이 표준화된 설비를 마련해 1~19호까지 점포 관리번호를 부여했다. 



끼니도 해결할 겸 그중 한 점포에 발걸음을 멈췄다.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를 묻자 “모짜렐라삼겹 컵밥”이란 답이 돌아온다. 가격은 3500원. 가격대는 보통 3000~4000원 선에서 형성돼 있고 곱빼기와 토핑 추가는 500원을 더 내야 한다.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니지 않는 세태에 맞춘 듯 ‘은행계좌로도 받습니다’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신용카드는 받지 않는단다. 

이곳에서 주먹밥을 시작으로 10년째 컵밥 장사를 하고 있는 60대 여성 김모 씨는 “주머니 가벼운 학생이 많다 보니 저렴하되 양은 많이 주려 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식사 중인 20대 중반 남성에게 말을 걸어보니 공시생이다. “많이 안 먹어두면 공부하다 힘에 부쳐요. 값싸고 양도 많아 자주 찾는 편이에요.” 

“컵밥도 부담스러운 학생들은 여기서 컵라면 1개로 때우기도 하더라고요. 안타깝죠.” 

컵밥거리 인근서 10년 이상 편의점을 운영한 50대 후반 점주가 길거리를 보며 말했다. 이 편의점 이용객의 거의 100%가 수험생이라고 한다. 매출을 묻자 편의점주는 “당장 지난해보다 매출이 30%가량 줄었다. 3년 전 즈음이 제일 장사가 잘됐는데 그때하곤 비교도 안 되고. 사실 요새 여기 고시촌 자체가 침체다. 학생이 줄었으니 원…”이라고 답했다.


“돈 문제가 제일 크죠, 뭐”

노량진역과 노량진로 건너 고시촌의 모습. [김우정 기자]

노량진역과 노량진로 건너 고시촌의 모습. [김우정 기자]

점심시간이 끝나가자 거리도 다시 한산해졌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A씨는 2016년 말부터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에 제법 여유가 묻어난다. 4월 6일로 예정된 9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국가직 9급) 필기시험이 열흘가량 남아 긴장감이 감도는 고시촌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9급 공무원 임용시험(서울시 9급)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7급 시험을 2년 정도 준비하다 불안한 마음에 9급 시험에 도전했는데 합격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하지만 총 3년의 수험 기간 중 단 6개월 정도의 준비로 서울시 9급 공무원에 합격했다. ‘공시판’에서는 잔뼈가 굵은 축. 그래서 그는 당장의 9급 임용을 유예하고 8월 17일 국가직 7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재작년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골목길이 붐볐다. 지금 이 정도면 사람이 없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A씨가 말을 이었다. 

“공시생들은 이미 시험에 붙은 사람들의 합격수기에 많이 의존합니다. 제가 쓴 수기도 그렇고 요새 합격수기에는 굳이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많이 나와요.” 

A씨는 “사실 돈 문제가 제일 크죠, 뭐”라고 덧붙인다. 그는 “지난해까지 살던 집은 정말 좁았다. 정확한 평수는 기억 안 나지만 침대에 책상 하나 두면 끝”이라면서 “원래 월세 35만 원 주고 살았는데 올해 갑자기 10만 원을 올려달라더라. 결국 6000만 원짜리 전세로 옮겼다”고 말했다. 

일대 부동산 임대료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완만한 상승세다. 인근에서 9년째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해온 50대 여성은 “고시텔 월세는 시설이나 위치에 따라 45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제각각이다. 원룸의 경우 50만 원 정도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면서 “방을 찾는 수험생이 줄었지만 아직 시세에 반영되진 않았다”고 밝혔다. 

수험생들은 특정 학원들이 시장을 독점해가며 수강료를 대폭 인상했다고 성토한다. A씨는 “2014년 즈음 노량진에 입성한 후발주자 학원이 있다. 개원 초반부터 다른 학원의 ‘1타 강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러더니 지난해 들어서는 거의 모든 1타 강사가 그 학원에 모였다. 이때부터 한두 달 간격으로 10만 원씩 수강료를 올리더니 지금은 250만 원 정도는 내야 프리패스를 수강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시작할 때의 2배 정도”라고 귀띔했다. 

‘1타 강사’란 노량진 학원가에서 수험생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강사를 뜻한다. 대체로 합격수기에 많이 언급되거나 수강 신청이 특히 몰리는 강사들을 일컫는다. 이들을 특정 학원이 독점한 후 수강료를 인상하면 수험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노량진 학원가의 강의 일정과 수강료는 대개 응시자가 가장 많은 국가직 9급을 기준으로 한다. 이 경우 국어, 영어, 한국사 3개 과목은 필수다. 이에 더해 각종 법 과목이나 사회, 과학, 수학 등을 직렬에 따라 2개 선택해 총 5개다. 과목별로 기초 이론과 기출문제 풀이, 족집게 강의 등 여러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개별 신청하면 한 수업당 비용이 50만 원에 달한다. 그러니 수험생들은 한꺼번에 큰 비용을 내고 다양한 수업을 자유롭게 듣는 ‘프리패스’를 신청하는데 이 금액 자체가 크게 올랐다는 것. 이러니 누군가는 떠난다.


공시는 모 아니면 도

노량진 고시촌에 살던 34세 경찰공무원시험(경시) 수험생 박모 씨는 지난해 신림동 고시촌으로 옮겨갔다. 그는 “신림동 고시원 월세가 18만 원 수준이다. 노량진보다 훨씬 저렴하다”면서 “신림동에서 공부부터 생활관리까지 책임져주는 ‘스파르타 학원’에 다니는데 노량진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자가에서 인터넷 강의(인강)로 공시를 준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9급 지방직을 준비 중인 29세 남성 최모 씨는 경기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며 집과 도서관을 오간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2년가량 다녔다. 봉급은 적게 주고 야근과 잔업을 강요하는 회사에 염증을 느껴 퇴사했다. 노량진 고시촌 생활에 드는 비용이 부담돼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독학하기로 결심했다. 최씨는 “시험 준비 시작한 지 5개월 됐는데 지금까지 인강 수강료와 도서비 등 120만 원 정도 썼다”며 “노량진 고시촌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밝혔다. 

공시를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택한 이도 있다. 노량진 고시촌 가이드를 자처한 B씨가 그렇다. 그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 동안 경시를 준비했다. 두 차례 최종면접까지 갔으나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크게 좌절했다. 방황 끝에 2018년 3월 항공정비사자격증명시험을 목표로 전문학교에 입학해 다니고 있다. 항공정비사자격증명시험은 공군 군용기나 각 민간항공사 여객기를 수리하기 위한 실무 정비능력을 가리는 국가자격증 시험이다. 자격증, 수험생들이 속칭하듯 ‘면장’을 부여받으면 관련 업계 취업도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B씨가 운을 뗐다. 

“공시는 모 아니면 도예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떨어지면 과정은 중요치 않잖아요. 반면 자격증은 따놓으면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니까. 공시처럼 암기식 공부가 아니라 실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그는 노량진 시절을 회고하면서 현재 노량진 학원가의 문제도 짚는다. 

“학원 사이 경쟁이 심해지면서 강사 이직이 잦은데 이 과정에서 수업이 ‘빵꾸’나기도 합니다. 그럼 실제 수업을 들으려고 비싼 돈을 낸 학생들에게 인강을 틀어주기도 해요. 이게 다 뭔가 싶었죠.”


인근 상권도 비상경보

노량진 고시촌 한 고시 뷔페의 저녁 식단. [김우정 기자]

노량진 고시촌 한 고시 뷔페의 저녁 식단. [김우정 기자]

오후 5시 30분 즈음 B씨와 향한 곳은 한 식당. ‘고시 뷔페’라고 불리는 곳 중 하나다. 현금 5000원(카드결제 시 5500원)을 내면 다양한 메뉴를 원하는 대로 골라 담을 수 있다. 수험생 사이에서는 컵밥거리보다 더 이용 빈도가 높다. 아예 1개월 단위로 식권을 끊는 경우도 많다. 6시를 코앞에 둔 시간이지만 식당은 비교적 한산하다. B씨는 “이곳도 예전에는 이 시간만 돼도 줄을 한참 서야 들어올 수 있었는데. 격세지감”이 든다고 말했다. 

노량진서 고시 뷔페를 8년째 운영 중인 50대 초반 사장은 “원래 저녁보다는 점심이 더 대목이긴 하다”면서도 “경제 부담이나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저녁을 굶는 학생이 많다. 손님은 줄었는데 임대료는 그대로라 운영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식당에서 5년째 일하는 한 직원도 “학생과 이 일대 원룸 등 공사 현장에서 오는 손님이 7대 3 정도다. 비율은 비슷한데 양쪽 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귀띔했다. 공부에 필요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수험생들이 찾는 헬스장도 마찬가지. 인근 헬스장 관계자는 “노량진 헬스장서 일한 지 5년 정도 됐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40% 정도 줄어든 것 같다”고 전했다. 형편이 어려워진 수험생들이 가장 먼저 끊는 것 중 하나가 헬스장이란다. 

해가 져도 노량진 고시촌은 여전히 바쁘다. 가로등 사이 동작경찰서 뒤편 노량진1동 주민센터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오르막길. 좁지만 노량진 고시촌 한가운데를 지나는 길목 중 하나다. 낮에 수업을 들은 후 자습을 위해 귀가하거나 독서실로 향하는 이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길이다. 길을 따라 찾은 주민센터 인근에 새로 지은 고층 오피스텔이 많다. 모 유명 학원이 지은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 대표적이다. 다른 주거시설에 비해 면적이 넓고 쾌적한 편이지만 그만큼 월세도 비싸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다른 곳보다 20% 이상 비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 근처서 만난 한 수험생은 “이쪽은 너무 비싸 생각도 못한다. 저는 그냥 제일 싼 고시원 산다”며 건물을 올려다본다. 

밤이 깊어갈수록 운동복 차림에 비교적 체격이 건장한 수험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말을 붙여보면 대개 경찰이나 소방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들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한 후 자기 전 시간을 내 운동을 한다. 공부에 운동까지 힘들지는 않을까. 

“힘들어도 어쩌겠어요. 차라리 운동하고 땀 쭉 빼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잠도 잘 와서 좋아요.” 

경시 준비 2년차인 30대 초반 수험생 2명이 웃으며 답했다.


“꼭 올해 안에 합격하고 싶다”

밤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학원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여러 건물에서 노량진 고시촌의 하루 막바지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20대 중반의 두 여성 수험생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와 길가에서 한창 수다를 떤다. 노량진에서 만나 지방직 9급을 목표로 함께 공부하는 친구 사이다. “뭐 이런 걸 다 준비했어?” 친구가 구내염 연고를 건네자 상대편이 웃으며 말한다. 노량진 생활의 고충을 묻자 “좁디좁은 방이 월세 60만 원 정도로 비싸다”거나 “합격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답한다. 그러면서도 “꼭 올해 안에 합격하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보인다. 

기자가 숙소로 잡은 노량진역 근처 모텔은 고시원, 독서실과 이웃해 있다. 피곤한 기색의 수험생들이 한두 명씩 귀가를 서두른다. 수험서로 ‘커플룩’을 맞춘 수험생 연인도 가로등 밑에서 손을 맞잡고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다 이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식당과 카페도 속속 문을 닫는다. 자정 넘어 날이 바뀌고서야 인적 드문 골목길로 정적이 찾아왔다. 

다음 날인 27일 오전 6시 서울 동작구 만양로 일대. 노량진수산시장 앞 노량진로부터 상도동 우체국 근처 상도로까지 이어지는 길 따라 아침 풍경이 기지개를 켠다. 만양로 먹자골목은 수험생과 인근 주민은 물론, 상도터널 넘어 중앙대 학생들에게도 인기다. 드문드문 보이는 갈지자걸음 취객과 쓰레기 수거 차량 사이로 수험생들이 재빨리 발걸음을 옮긴다. 품에는 ‘형법’ 책이며 각종 ‘기출문제집’이 들려 있다. 곧 봄이지만 아직 새벽 공기가 차다. 두꺼운 무채색 점퍼와 추리닝 바지, 후드티와 푹 눌러쓴 모자가 유니폼처럼 자주 보인다. 

버스 중앙차로 맞은편 만양로 초입에 모여 있는 유명 공시학원에도 일찌감치 불이 켜져 있다. 강의실 안 ‘명당’에 앉고자 동트기 전부터 수강생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날은 이따금 학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만 보일 뿐 줄이 없다. 하루 24시간 운영하는 인근 편의점 직원들이 귀띔한다. 

“요새 평일에는 줄 안 서요. 학생이 줄어 그런 거 같은데.”


“그저 따뜻한 밥 한 끼와 기도로…”

왕복 2차선 좁은 길 따라 5분가량 걷자 나지막한 언덕 위 교회로 수험생들이 들어간다. 노량진 강남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다. 이 교회에서는 매일 오전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인근 고시촌 수험생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무료다. 실제 수험생인지 여부도 따로 묻지 않는다. 비슷한 차림새와 큰 배낭, 손에 쥔 수험서가 통행증 구실을 한다. 청년부 담당인 김상순(43) 목사가 지하 식당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는다. 

“전도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봉사입니다. 혹시나 수험생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김 목사에게 말없이 웃으며 인사만 하는 이유를 묻자 되돌아온 대답이다. 2000년 9월, 김 목사에 앞서 이곳에서 사목하던 목사가 수험생들을 돕고자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지금도 교회는 매일 오전 250인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음식량은 조금 남을 정도로 넉넉히 챙긴다. 그 많은 음식을 마련하는데 부담은 없을까. 김 목사는 “여기서 식사하던 수험생들이 취업 후 후원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신도들의 호응도 높아 무료 급식 후원을 위한 헌금이 목표치를 훌쩍 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전 6시 새벽 예배에도 인근 수험생 40~50여 명이 참석한다. 김 목사가 안쓰러운 표정을 담아 덧붙인다. 

“청년들과 대화해보면 취업은 더 어려워지고 공무원시험 경쟁률도 높아졌다고 해요. 그저 따뜻한 밥 한 끼와 기도로 도울 뿐입니다.” 

이날 메뉴는 치킨텐더와 김치, 시금치, 그리고 미역국. 식당에는 봉사자 8명이 음식 장만과 배식에 한창이다. 조미숙(65) 권사가 무료급식 봉사 책임자다. 조 권사는 10년째 아침 급식 봉사를 해오다 올 한 해 동안 책임자를 맡았다. 6시 30분 배식보다 1시간 이상 일찍 나와야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메뉴에 따라 4시에 나올 때도 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수험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고마워 힘든 줄 모른다”고 답한다. 조 권사는 어려운 형편에 배고픔을 이겨내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안쓰럽다고 했다. 

“밥과 반찬 모두 유난히 많이 퍼가는 학생이 있었어요. 혹 체할까 걱정돼 말을 거니까 여기서 먹는 아침이 하루 유일한 끼니라고 하더라고요. 여전히 가난한 수험생이 많아요.” 

수험생들은 한 끼 식사가 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시를 준비하는 27세 여성 수험생은 “2017년 겨울 노량진에 온 후 지금까지 거의 매일 아침 식사로 신세를 진다”며 “새벽 예배에도 착석해 기도로 마음을 가다듬곤 한다”고 전했다. 국가직 9급에 응시하는 24세 남성도 “지방에서 올라와 월세와 식비 등 부담이 큰데 무료로 식사할 수 있어 감사히 먹고 있다”고 밝혔다. 속을 채운 수험생들이 학원이며 독서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노량진 고시촌에 다시 날이 밝았다.


“게을러서 공무원이나 한다고?”

수험생들에게 노량진고시촌 생활을 한 단어로 요약해달라 하니 ‘늪’이나 ‘덫’과 같은 단어가 자주 돌아온다. 높은 경쟁률에 합격이 쉽지 않을뿐더러 일단 시작하면 오기 때문에라도 중도 포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원래 꿈이 공무원이라고 답한 이는 드물다. 청년들은 최악의 일자리 가뭄 탓에 현실적 대안으로 공시를 택한다. 공시 경쟁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수험생들이 4월 6일 필기시험을 앞두고 “그래도 올해는 낮은 편”이라며 쓴웃음 짓는 국가직 9급 평균경쟁률이 39.2대 1(지난해 41대 1). 2002년 이후 최저치지만 취업난이 개선됐다는 증거는 아니다. 올해 국가직 9급 시험이 소방공무원 시험과 같은 날 치러지며 지원자가 분산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반응도 회의적이다. 수험생들은 공무원 증원 자체에는 찬성하면서도 실제 체감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정부와 지자체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 같은 정책이나 사회적 편견에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교원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20대 중반의 남성은 “공시 준비하는 사람은 지원금 받기가 까다롭다. 현금 지급하려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시에 목매달게 된 책임은 사회와 정부에 있지 않나”라고 쏘아붙였다. 노량진 거리에서 만난 한 수험생의 말이다. 

“공시 준비한다 말하면 ‘갈 회사도 많은데 게을러서 공무원이나 한다’고 손가락질하고 막상 공무원이 되면 ‘세금 도둑’이라고 욕하더라고요. 취업난 속 생존을 위해 선택한 길인데 적어도 욕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신동아 2019년 5월호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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