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유통 인사이드] ‘서민 주머니 턴다’ 욕먹어도 ‘술값’ 올린 속사정

카스가 끌고 참이슬이 미는 ‘소맥 만원 열차’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19-05-22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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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비맥주, 경쟁 구도와 모회사 상장 고려한 듯

    • 주류세 개편 앞서 선제적으로 움직인 흔적도

    • 하이트진로, 분위기 틈타 소주 가격 인상

    • 새 맥주 ‘테라’는 아직 입지 좁아 인상 못 해

    오비맥주가 4월 4일 부터 카스, 카프리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했다. 사진은 서울 한 대형마트의 주류 매대. [뉴스1]

    오비맥주가 4월 4일 부터 카스, 카프리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했다. 사진은 서울 한 대형마트의 주류 매대. [뉴스1]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주세요. 그런데 가격이 5000원씩이네요?” 

    “네. 최근에 소주랑 맥주값이 올랐잖아요.” 

    “왜 오른 거예요?” 

    “요즘 안 오르는 게 어딨어요. 임대료도 오르고 최저임금도 오르고. 주류업체가 출고가를 올려서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근래 식당가에서 주인과 손님 사이에 흔히 오가는 대화다. 대체로 병당 4000원씩 하던 맥주와 소주 가격이 순식간에 5000원이 됐으니 애주가들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다만 식당 주인 말처럼 요즘 안 오르는 게 없는 것도 맞다. 치킨과 커피, 우유, 아이스크림, 즉석밥, 조미료 등 생활 물가가 줄줄이 오르니 소주, 맥주 가격이 오르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출고가, 유통·물류비 다 오르니 식당 1000원↑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번에 1000원이나 오른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이제 ‘소맥’을 마시려면 술값으로 1만 원을 내야 하니 말이다. 손님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식당들이 맥주·소주 가격을 일제히 올릴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은 뭘까. 

    대부분의 식당이 국산 소주, 맥주 브랜드를 불문하고 가격을 1000원씩 올린 경우가 많지만, 사실 먼저 가격 인상을 단행한 건 오비맥주의 ‘카스’와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었다. 각 부문 1위 브랜드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자 많은 식당이 이 가격을 모든 제품에 일괄 적용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처지에선 못마땅할 수 있지만 2~3위 제품들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타이밍의 차이일 뿐 가격 인상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흐름인 것도 사실이다. 

    오비맥주는 올 3월 26일 카스와 프리미어OB, 카프리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한다고 밝혔다. 카스 병맥주의 경우 500ml 기준으로 출고가를 1147원에서 1203원가량으로 56원 정도 올렸다. 실제 인상 적용 시점은 4월 4일부터였다. 그러자 하이트진로는 한 달 뒤인 4월 24일 소주 제품 출고 가격을 6.45% 인상한다고 밝혔다.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 360ml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1015.70원에서 1081.2원으로 65.5원 올렸다. 인상 적용 시점은 5월 1일부터였다. 문제는 주류 제조업체들의 출고가는 겨우 50~60원가량 올랐는데 식당의 최종 소비자 가격이 1000원 올랐다는 점. 의문에 대한 답은 불합리한 유통 구조에 있다. 

    우선 제조공장에서 나올 때 매겨지는 출고가가 오르면 도매상과 같은 중간 유통업체는 통상적으로 출고가 인상 폭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매겨 식당에 주류를 공급한다. 중간 유통에 드는 비용인 유통·물류비를 올려버린다. 결국 출고가는 50~60원 정도 올랐어도 식당이 제품을 들여오는 가격은 수백 원 인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당은 수지 타산을 따져보고 각자 판단에 따라 가격을 새로 책정한다. 당장 수익이 줄더라도 당분간은 가격을 유지하는 점주도 있겠고, 남들이 올릴 때 같이 올리는 점주도 있다. 그러면 고객들도 불만은 있겠지만 굳이 점주를 탓하지 않고 인상된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는 수순이다. 점주 처지에서는 최저임금도 꾸준히 오르고 임차료도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수익을 보전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해당 업체들은 왜 가격을 올렸을까. 업체들은 “원자재 가격이나 제조 경비 등의 상승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카스의 경우 2년 5개월, 참이슬의 경우 3년 5개월 만의 인상이니만큼 시기적으로도 올릴 때가 됐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 국산 소주와 맥주의 경우 ‘서민의 술’로 여겨지는 탓에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이 워낙 크다. 이에 주류업체들은 짧게는 2~3년에 한 번, 길게는 4~5년에 한 번씩 눈치를 봐가며 가격을 올리는데, 통상 업계 1위가 인상하면 2~3위 업체들이 따라 올리는 패턴이 반복돼왔다.

    오비맥주, 일석이조 꾀하다

    결국 언젠가는 인상될 게 이번에 올랐다는 싱거운 결론이 나온다. 일부 시민단체가 이번 맥주가격 인상에 대해 비판하면서 지난번에는 4년 3개월 만에 올렸는데 왜 이번에는 2년 5개월 만이냐고 따지기도 했지만, 사실 인상 시기는 업체가 경영 환경에 따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남는다. 가격 인상 요인은 그간 꾸준히 있었을 터인데,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인가 하는 점이다. 해당 업체는 입을 꽉 다물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런저런 분석이 나온다. 

    먼저 오비맥주를 둘러싼 환경에는 크게 세 가지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경쟁사가 맥주 신제품을 내놨다. 또 오비맥주 모기업인 AB인베브가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홍콩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이르면 5월 중 주류세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 세 가지 변화를 근거로 가격 인상의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경쟁사 이야기부터 들여다보자. 얼마 전 하이트진로는 ‘테라’라는 맥주 신제품을 내놨다. 종종 신제품을 내놓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기존 주력 브랜드인 하이트를 대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맥주 시장 1위인 카스와 2위인 하이트의 격차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하이트진로가 테라로 ‘승부수’를 던졌다고 보고 있다. 그만큼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며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지금이야 카스가 탄탄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국내 맥주 시장에서 오비와 하이트진로는 선두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한 경험이 있는 관계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맥주 하면 으레 ‘OB맥주’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하이트가 ‘천연 암반수로 만든 맥주’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워 출시 3년 만인 1996년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 이후 오비맥주의 카스가 꾸준히 점유율을 높이더니 2012년 다시 1위 자리를 뺐었다. 오비맥주 입장에서 하이트진로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이트진로가 테라를 출시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건 3월 13일이다. 테라가 실제로 출고된 건 같은 달 21일이다. 오비맥주가 카스 가격을 올리겠다고 발표한 건 5일 뒤(26일)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겹친다. 업계에서는 오비맥주가 하이트진로의 테라를 견제하기 위해 가격을 올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쟁 상대가 신제품을 냈는데 스스로 가격경쟁력을 낮추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이런 분석이 나오는 데는 다른 요인이 있다. 

    오비맥주는 카스 가격을 올리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일주일 뒤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주류 도매상들은 사재기를 시작한다. 실제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두면 그만큼 더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스는 워낙 잘 팔리는 제품이기 때문에 재고에 대한 부담도 거의 없다. 

    도매상들이 카스를 사들이기 시작하면 창고에 다른 브랜드의 맥주를 넣을 자리가 없어진다.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출시 초기 공격적으로 제품 생산량을 늘려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데 도매상들이 ‘자리가 없다’며 이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창고에 쌓아뒀던 카스가 다 팔리면 자연스럽게 정상화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체로 맥주 브랜드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출시 초기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테라가 3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10%를 차지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후 더욱 위로 치고 올라갈 힘이 생긴다. 반대로 5%가량에 머물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분위기를 바꾸기가 힘들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오비 입장에서는 이번 가격 인상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더불어 경쟁사도 견제하는 일석이조의 한 수인 셈이다.

    수익성 극대화와 모회사 상장 추진

    5월 1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소주. 하이트진로는 이날부터 소주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360㎖)의 공장 출고가격을 병당 1015.7원에서 65.5원 오른 1081.2원으로 책정했다. [뉴스1]

    5월 1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소주. 하이트진로는 이날부터 소주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360㎖)의 공장 출고가격을 병당 1015.7원에서 65.5원 오른 1081.2원으로 책정했다. [뉴스1]

    오비맥주 모기업인 AB인베브의 상장 추진도 가격 인상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 등에 따르면 AB인베브는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아시아 지역 법인들의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아시아 지역 자회사인 오비맥주 입장에서는 상장 전 기업 가치를 키우기 위해 수익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즉 가격 인상으로 수익성을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오비맥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145억 원이다. 영업이익률은 30.3%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는 맥주 부문에서 200억 원 이상의 영업 손실을 냈다. 경쟁사보다 수익성이 꽤 좋은 상황에서 굳이 맥주 가격을 또 올려 수익률을 더욱 높이려 한 셈이다. 이러다 보니 모회사의 상장 추진과 관련 있을 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조만간 주류세 개편안을 발표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주류세 개편안의 핵심은 국산 맥주나 국내 수제 맥주로부터 걷던 세금은 줄여주고, 일부 수입 맥주의 세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간 국산 맥주 회사와 수제 맥주 업체들은 수입 맥주 업체들이 세금을 덜 내고 있어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기존의 세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경우 국내 맥주 업체 입장에서는 세금이 줄기 전 가격을 올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주류세 개편 후 맥주 가격을 인상하면 세금이 줄었는데 가격을 왜 올리느냐는 반대 여론이 더 클 수 있어서다. 

    하이트진로는 왜 뒤따라 소주 가격을 올렸을까? 일단 오비맥주의 카스 가격 인상으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식당가 일각에서 참이슬 가격 인상이 발표되기도 전에 소주 가격을 5000원으로 책정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맥주 가격 올린 김에 소주 가격도 올린 것. 일선에서 국산 주류 전반의 가격 인상 분위기가 형성됐으니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부담이 줄었다. 

    그렇다면 하이트진로는 왜 맥주는 그대로 두고 소주 가격만 인상했을까. 일단 출시한 지 얼마 안 된 테라의 출고가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다. 앞서 일렀듯 신제품은 출시 초반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도매상과 식당 점주들이 테라를 충분히 사줘야 한다. 출고가를 올리면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아직 입지가 좁은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사는 사람 주머니 사정

    가격 인상 이유야 어쨌든 소비자 입장에서는 주머니 사정만 더 팍팍해지게 생겼다. 그렇다 해서 2~3년 만에 출고가 50~60원을 올렸다는 주류 업체들을 무작정 비판할 수만도 없고, 때맞춰 가격을 올린 주류 도매상과 식당 점주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당한 선에서 물가가 꾸준히 오르는 게 나라 경제 사정에도 더 좋다고 하지 않던가. 

    다만 다음에 술값이 오를 시기가 조금 늦춰졌으면 하는 게 소박한 바람이다. 사는 사람의 주머니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데, 파는 사람 사정만 언제까지나 이해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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