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특집 | 로스쿨 10년의 자화상

법조인 ‘꽃길’ 끝났다

“월수 200만 미만 변호사 속출, 이제 각자도생”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5-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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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변호사 3만 명 시대

    • 변호사 울리는 ‘무료 상담’ 피싱

    • 연봉 5억 vs 15분 2만 원

    • “젊은 변호사, 송무 말고도 길이 있다”

    “억울한 사정이 있는데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한 변호사는 지난 달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받았다. 발신인은 교도소 수감자. 방문해 법률 조언을 해주면 사건을 수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피싱’이었다. 최근 변호사업계에서는 수감자가 변호사 선임을 빌미로 구치소 접견을 유도한 뒤 ‘무료 상담’만 받고 돌려보내는 행위가 빈발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런 사건을 전화 사기 ‘보이스피싱’에 빗대 ‘피싱’이라고 한다. 

    변호인 접견은 수감자에게 보장된 권리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는 수사 대응이나 재판 준비를 위해 수시로 변호사를 만날 수 있다. 횟수 및 시간 제한이 없고 접견 장소도 일반 면회실보다 안락하다. 과거에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피의자만 이런 ‘호사’를 누렸다. 그런데 최근 변호사 수가 늘고 사건 수임이 어려운 변호사가 생기자, 이를 악용하는 수감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여러 변호사에게 ‘수임 미끼’를 던지고, 찾아오면 법률 정보를 얻는 척하며 시간을 끄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회원을 대상으로 ‘구치소 접견 피싱 주의 안내’ 공문을 보냈다. “무료 상담은 자칫 접견 피싱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유료 상담을 권한다”는 내용이다. 관련 피해 신고도 받고 있다. 변협에는 △수감자끼리 공유한 변호사 연락처를 통해 접견을 순차적으로 권유한 사례 △의뢰인 접견 시 같은 구치소 내 다른 수감자를 함께 접견해줄 것을 요구한 사례 등이 접수된 상태다.

    저임금 수습변호사

    변호사 사무실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구 법조타운 풍경. [뉴스1]

    변호사 사무실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구 법조타운 풍경. [뉴스1]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범 당시 정부는 로스쿨이 △특정 대학, 전공에 쏠린 사법부 획일주의 탈피 △‘고시 낭인’ 양산에 따른 부작용 완화 △변호사 수 증가를 통한 법률 서비스 비용 저감 등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 10년이 흐른 지금, 앞의 두 목표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하지만 변호사 수 증가만큼은 수치로 확인된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8회 치러진 변호사시험(변시)을 통해 배출된 법조인은 모두 1만2575명. 우리나라 변호사 수는 2015년 2만 명을 넘은 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연말 2만6000명에 육박했다. 변협은 2022년 3만 명 돌파를 예상한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1971년 문을 연 사법연수원 1~12기 수료인원은 연평균 75명에 불과했다. 당시엔 수료생 중 92.2%가 판·검사로 임용됐다.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하는 법률가는 매우 드물던 시절이다. 사법연수원 13~27기의 경우도 평균 수료인원이 297명이었지만, 3분의 2(67.9%)가 판·검사로 법조계에 진출했다. 국내 변호사 수가 크게 늘기 시작한 건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 1000명으로 늘어난 2001년 이후부터다. 변시가 처음 치러진 2012년에는 로스쿨(1451명)과 사법연수원(1030명)을 합쳐 한 해 2481명이 법조계로 진출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처럼 쏟아져 나온 변호사들은 우리나라 법률 환경을 큰 폭으로 바꿔놓았다. 

    로스쿨 졸업생은 보통 ‘검(검사)·클(로클럭)·빅(대로펌)’ 진출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은 매우 좁다. 검찰은 올해 로스쿨 졸업생 중 55명을 검사로 신규 임용했다. 대법원이 선발하는 로클럭(재판연구원) 인원은 매년 약 100명이다. 국내 10대 로펌의 선발 인원도 모두 합해 200명 안팎. 올해 변시 합격자 수 1691명을 기준으로 보면 1300여 명은 다른 길을 찾는다. 

    올해 변시를 통과한 A씨는 “선배들한테 6개월 수습 기간을 잘 버텨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변시 합격자는 개업하려면 반드시 6개월간 수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시기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을 감수하거나 아예 자비를 내고 실무를 배우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변협 취업정보센터’ 홈페이지에 등록된 인턴 채용 공고를 살펴봤다. 8회 변시 합격자에게 ‘세전 100만~150만 원’ 수준의 급여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으로 주 40시간 근로 기준 월 환산액은 174만5150원이다. 이에 못 미치는 셈이다. A씨는 “변호사가 늘어나 법률 시장이 엉망이 됐다고 하는데, 정작 변호사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선배 법조인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쟁이 가져온 수임료 하락

    4월 22일 서울 서초구에서 대한변호사협회(왼쪽)와 로스쿨 원우협의회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변협은 변호사 배출 인원 축소를, 로스쿨 측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4월 22일 서울 서초구에서 대한변호사협회(왼쪽)와 로스쿨 원우협의회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변협은 변호사 배출 인원 축소를, 로스쿨 측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법무부 산하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수습변호사를 모집하면서 활동비 명목으로 매달 35만 원씩 지급한다고 했다. 로스쿨 다니던 시절 그 얘기를 듣고 다 같이 흥분했다. 헐값으로 수습변호사를 뽑아 서면 작성 등 과거 사무장이 하던 일을 맡기면서 인건비를 아끼는 변호사 사무실도 있다고 들었다.” 

    이 때문에 새내기 변호사들 사이에는 근무조건이 열악하고 대우가 좋지 않은 법률사무소를 일컫는 이른바 ‘블랙’ 명단이 돈다고 한다. 이 시기를 거치고 정식 변호사가 돼도 고액 연봉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중소형 로펌 변호사 급여는 월 350만~4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비슷한 급여를 받고 일선 기업의 대리급 사내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변호사도 적잖다. 

    개업 시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소속 변호사 1명당 한 달 평균 사건 수임 수는 2011년 2.83건에서 지난해 1.2건으로 줄었다.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수임료도 전반적으로 하락한 상태다. 변협은 자체 설문 조사를 통해 “2007년에는 변호사 수임료가 ‘500만 원 이상~1000만 원 미만’ 범위에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2017년에는 수임료로 ‘300만 원 이상~500만 원 미만’을 받는다는 응답이 다수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각자 역량에 달려 있다. 2017년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세청 자료를 인용해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변호사 4819명 중 18.44%(889명)가 월 매출 200만 원 미만”이라고 밝혔다. 변호사 5명 중 1명이 월 200만 원을 못 번다는 얘기다. 

    반면 대형 로펌 변호사는 여전히 고액 연봉을 받는다. 4월 초 이미선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당시 남편 오충진 변호사가 연봉으로 ‘세전 5억3000만 원’을 받는다는 게 공개되기도 했다. 오 변호사는 “주식거래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걸 해명하느라 직접 소득을 밝혔다. 그는 판사 출신으로 법무법인 광장 소속이다. 

    김앤장 등 국내 대형 로펌은 초임 변호사에게도 월 800만~900만 원 안팎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연수원 출신 B 변호사는 “변호사 수입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날로 심화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과거에는 대형 로펌 변호사는 ‘아주’ 잘 벌고, 중소 로펌 변호사는 ‘제법’ 잘 벌고, 그 외 변호사는 ‘소소하게’ 잘 벌었다. 이제는 그 아래 ‘못 버는’ 변호사와 ‘정말 못 버는’ 변호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온라인 홈페이지에 사진과 경력 등을 올려놓고 ‘15분 전화상담 2만 원/ 30분 방문상담 5만 원’ 하는 식으로 마케팅하는 변호사도 봤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젊은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고안한다고 들었다.” 

    B변호사 얘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규 변호사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변협은 4월 1일 법무부에 “8회 변시 합격자 수를 1000명 이하로 정해 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 “변호사 수 급증으로 변호사 생존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변협은 “당초 로스쿨은 법무사, 변리사 등 변호사 유사직역 통폐합을 전제로 추진됐다”는 의견이다. 변협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법무사 6869명, 변리사 3271명, 세무사 1만3194명, 공인노무사 4419명, 행정사 32만7227명 등이 있다. 변협 관계자는 “이 상태에서 변호사 급증 추세가 이어지면 공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승준 충북대 로스쿨 교수는 “변호사를 제외한 어느 직역도 소득보전을 이유로 신규 진입 규제책을 쓰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 교수는 “변호사가 늘면 국민은 낮은 수임료로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이익을 희생하면서 변호사의 적정 수익을 보장해야 할 이유가 있나”라고 했다. 변시 합격자 수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휘원 경실련 간사는 “변호사가 많이 늘었다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법률 서비스 문턱은 여전히 높다”고도 주장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우리나라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2014년 기준 3160명으로 독일(494명), 영국(436명), 미국(248명)보다 많다. 소액심판사건의 변호사 선임(원고) 건수는 2013년 15.4%에서 2017년에 11.6%로 오히려 줄었다.

    변호사 감축 vs 증원

    로스쿨 교육 정상화를 위해 변시 합격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변협이 “변호사 수 감축” 주장 집회를 연 날, 같은 장소에서 로스쿨 재학생·졸업생은 “변시 자격시험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매년 2000명이 로스쿨에 입학하는 상황에서 변시가 자격시험이 되면, 변호사 인원은 지금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로스쿨 재학생 C씨는 “변호사가 송무만 담당하는 게 아니다. 공공 분야, 기업 등 각계각층에 두루 진출할 수 있다. 이 경우 사회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최근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한일 무역분쟁에서 우리나라가 최종 승리했다. 당시 세계무역기구(WTO)가 우리나라 손을 들어주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사람이 정하늘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 고성민 사무관이라는 보도를 봤다. 두 공무원은 모두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로 공직을 선택했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더 많아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변협과 로스쿨 측은 로스쿨 도입 때부터 변시 합격률을 놓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변협은 ‘정원 대비 50%’, 로스쿨은 ‘응시자 대비 80%’를 각각 주장했다. 이 다툼은 2010년 12월 ‘정원 대비 75%’로 절충됐으나, 최근 양측이 다시 맞붙은 상태다. 법무부는 조만간 합격자 결정기준 변경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방침이다. 이로 인해 또 한 번 법률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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