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아직도 ‘분쟁의 화약고’ 한국GM

노사 동상이몽에 일자리 날아갈라

  •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soonwoo@mtn.co.kr

    입력2019-05-2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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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 선제적 비용 절감 후 미래車에 투자

    • 한국서는 생산·판매와 연구개발 부문 분리

    • 연구개발 법인 강화, 韓경제에 이로우나 노조는 반대

    • GM 본사는 생산직과 연구개발직 노조 분리 속내

    • GM 노조, 찬반 투표로 합법적 파업카드 손에 쥐어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조합원들이 4월 30일 단체교섭을 하기 위해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본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조합원들이 4월 30일 단체교섭을 하기 위해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본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또다시 파업인가. 1년 중 한국GM 노사관계가 평화로운 날과 갈등 빚은 날을 수적으로 비교해보면, 아마 갈등 빚은 날이 더 많을 것 같다. 지난해에는 사측이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1년 내내 갈등을 빚더니 연구개발 법인 신설을 두고 또 갈등이 불거졌다. 법원 송사까지 치르며 연구개발 법인을 설립했는데 이번에는 단체계약 승계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GM 내부의 노사갈등은 흡사 치킨게임을 연상케 한다. 유럽, 러시아, 호주 등 전 세계 공장을 폐쇄하고 심지어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도 5개 공장을 폐쇄한 GM이다. GM 구조조정의 칼날이 언제 한국을 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한국 정부는 GM 본사로부터 10년간 떠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다. 7조 7000억 원을 투입하고 새로운 생산·개발 신차도 배정했다. 이 정도 투자를 해놓은 걸 보면 어지간해서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10년 후에는 떠날 것인가? 

    이에 대해 배리 엥글 GM아메리카 사장은 “노조의 기대치와 경영진이 일하는 방향이 글로벌 환경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이것은 한국GM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제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공장을 폐쇄하고서 한국에는 유독 7조 원 넘는 투자를 단행한 GM이 바라보는 ‘민감한 글로벌 환경’은 무엇일까?

    “비용 낮추고 수익성 높인다”

    2017년 메리 바라 GM 회장은 기업설명회 현장에서 향후 경영 방침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GM의 경영 방침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차가 잘 안 팔리는 시장에서 철수하고 안 팔리는 차종을 축소하며 비용을 절감해 미래 자동차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어쩌면 어느 회사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구조조정 방침은 GM이 진출한 전 세계 국가들에 파란을 일으켰다.
     
    차가 잘 안 팔리는 시장으로 지목된 유럽, 러시아, 호주, 태국, 인도 등에서 GM은 철수했다. 해당 지역에서는 직접 고용 수천 명, 간접 고용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각국 정부는 어떻게든 GM의 철수를 막아보려 보조금을 지원해 회유하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했지만 GM은 냉혹했다. GM 관계자는 “GM은 파산을 경험해본 기업”이라며 “구조조정을 온정적으로 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한국이 철수 대상 지역이 아니었다는 점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유럽 법인은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구축된 한국GM의 자회사이자 주요 수출처다. 수출 시장을 잃어버린 한국GM은 차를 만들어봐야 팔 곳이 없었다. 한국GM은 3년간 2조 원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자회사에 대한 청산 비용은 떠안았고 차를 팔 시장을 잃었기 때문이다. 차를 팔 곳이 없다면 생산을 줄여야 한다. 군산공장이 폐쇄된 것은 이 때문이다. 

    잘 안 팔리는 차로 지목된 차종은 세단이다. 2016년 이전까지 세단과 SUV(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의 판매 비중은 7:3 정도로 세단이 더 높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SUV 열풍으로 2017년에는 4:6으로 역전됐고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GM이 세단 대신 SUV에 집중하기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의사결정이다. 문제는 한국GM의 주력 생산 차종이 스파크, 아베오, 크루즈 등 중소형 세단이라는 점이다. GM은 한국GM의 생산 차종을 콤팩트 SUV와 크로스오버 차량(CUV)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수조 원의 투자가 단행됐다. 부평공장에서는 콤팩트 SUV를, 창원공장에서는 크로스오버 차량을 생산할 계획이다. 여기서 생산된 차량의 상당수는 유럽 대신 미국으로 수출할 예정이다. 

    공장 1곳이 폐쇄되고 2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한국GM은 그나마 다행이다. GM은 본사가 위치한 미국에서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북미 지역 공장 5곳과 해외 2곳을 폐쇄했고 인력 1만470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연구개발 인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자율주행차, 전기차 연구 인력은 늘었지만 내연기관 연구진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메리 바라 GM 회장은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경기 하강을 우려한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힘들어서 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민감한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GM이 왜 한국을 떠난단 말인가”

    카허 카젬 한국지엠(GM) 사장(오른쪽에서 5번째), 베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분 사장(오른쪽에서 8번째),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에서 9번째) 등이 3월 28일 인천 부평구 GM공장에서 GM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개소식 행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카허 카젬 한국지엠(GM) 사장(오른쪽에서 5번째), 베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분 사장(오른쪽에서 8번째),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에서 9번째) 등이 3월 28일 인천 부평구 GM공장에서 GM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개소식 행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폐쇄가 결정된 지역의 시민, 정치인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즉각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메리 바라 회장과 통화를 하며 “공장을 폐쇄하기로 한 것에 매우 실망했다”며 “전기차를 포함해 GM의 모든 보조금 삭감을 고려하고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GM은 공장 폐쇄 계획을 바꾸지 않았다. 

    한국GM 노조는 자신들이 가까스로 살아남게 됐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투쟁에 나섰다. 명분은 연구개발 법인 분리다. GM은 한국GM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며 한국GM의 생산·판매 부문과 연구개발 부문을 분리하기로 했다. 노조는 “생산 공장과 연구개발 기능을 2개 법인으로 분리하겠다는 조치에는 법인 쪼개기를 통한 제2의 공장 폐쇄 또는 매각 등 GM자본의 꼼수가 숨어있다”고 강조했다. 

    GM이 취한 조치는 GM의 글로벌 공급 사슬에 한국GM을 포함하는 조치였다. 한국GM은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연구개발, 생산, 판매를 모두 갖춘 기업이었다. 글로벌 기업이 본사가 아닌 곳에서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한국GM의 연구개발 부문을 지휘했던 것은 한국GM 사장이 아니라 GM 본사의 마크 로이스 사장이 이끄는 글로벌 연구개발 부문이었다. 글로벌 GM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연구개발 법인에 가장 적합한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도록 배정하고 있다. 한국GM 연구개발 부문만 생산·판매와 함께 있었는데 이를 분리토록 한 것이다. 

    GM은 한국GM 연구개발 법인을 신설하면서 콤팩트 SUV의 개발 거점으로 지정했다. 한국이 GM의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된 것은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매우 유익한 일이다. 자동차 회사는 협력업체와 함께 신차를 개발한다. 차가 만들어지고 생산에 들어가면 함께 개발한 협력업체가 주로 부품을 납품하게 된다. 한국에서 개발을 주도하면 그만큼 여러 한국 부품사에 일감이 생기는 셈이다. 한국GM 연구개발 신설 법인의 위상 강화는 한국 경제에 이롭다.
     
    한국GM 노조는 연구개발 법인 신설을 반대하며 “한국 철수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10년 동안 한국을 떠나지 않기로 약속하고 8조 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단행한 GM이 왜 한국을 떠난단 말인가. 한국GM 관계자는 “연구개발 부문이 분리되면 3000여 명의 연구개발직 노조원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노조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GM 역시 노조의 파업 여파를 줄이기 위해 생산직 노조와 연구개발직 노조를 분리하고자 하는 속내가 있다. 한국GM이 독자적으로 개발, 생산, 판매를 할 때는 어느 한 곳에서 차질이 생겨도 자체적으로 수습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과 생산, 판매가 분리되면 한 곳에서 차질이 생겼을 때 다른 쪽이 큰 영향을 받는다.

    GM이 피하고 싶었던 것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개발한 차종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할 경우를 보자. 한국GM 공장 직원들이 파업을 하고, 같은 노조하에서 연구개발 직원들도 파업을 해서 개발 일정이 늦어지면 멕시코 공장이 타격을 입게 되는 셈. 한국GM 연구개발 법인 위상이 높아질수록 글로벌 GM이 한국GM의 파업으로 인해 받는 영향이 더 커진다. 그것을 피하고 싶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연구개발 법인 신설 이후에도 한국GM 노사의 갈등은 멈출 날이 없다. 이번에는 연구개발 법인 직원들의 단체협약 문제다. 한국GM 연구개발 부문은 올해 1월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설립됐다. 여기 소속된 직원들은 더는 한국GM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노조를 설립해야 한다. 아직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와 직원 대표는 노조를 만들면서 기존 단체협약을 승계할지를 두고 논의를 벌였다. 직원 대표로는 한국GM 사무직 지회와 한국GM 노조, 금속노조 등이 나섰다. 

    사측은 “한국GM 기존 단체협약이 생산직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무직 중심인 연구개발 직원들에게 맞게 바꾸자”고 제안했다. 사측이 제시한 안에는 노조에 대해 법적 가이드라인 이상으로 지원하는 부분을 축소하고, 사무직의 성격에 맞게 차등 성과급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GM 관계자는 “GM테크니컬코리아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는 한국을 연구개발 거점으로 삼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우리의 주장은 이 같은 전제하에 단체협약을 개정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는 기존 단체협약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노조는 “집행부 활동을 간접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실질적으로 노동조합 활동 방해를 목적에 두고 있다고 볼수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파업권을 확보하기 위해 절차를 거쳤고 찬반 투표 결과 80% 이상 직원이 파업에 찬성했다. 이에 언제든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 노조 측 주장대로 단체협약을 그대로 승계하면 그들의 갈등은 끝날까? 이제 곧 또 다른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될 2019년 단체협약 개정 협상이 시작된다. 이듬해에는 2020년 임금협상이 진행된다. 노조원 투표로 선출된 노조위원장은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영진을 적으로 규정하고 더 강한 투쟁을 외친다.

    파업 전야

    전 세계가 일자리 전쟁이다. 프랑스 정부는 닛산 자동차가 창출할 일자리를 뺏어오기 위해 르노 자동차와 닛산 자동차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맞서 닛산 자동차를 르노 자동차의 손아귀에서 빼내오기 위해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무역 관행을 깨부수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일본 도요타(8390만 원), 독일 폴크스바겐(8303만 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국내 완성차 업계(9072만 원) 직원들은 연일 갈등과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GM뿐 아니라 그나마 노사관계가 안정적이라는 르노삼성도 노조위원장이 바뀐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동안 62차례, 250시간의 파업을 진행했다. 현대차 노조는 5월 중순경 시작될 2019 임금협상을 준비하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아직 노조의 구체적 요구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2심까지 패소한 통상임금을 달라고 요구하겠다”고 선언한 터라 순조로운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403만 대로 전년보다 2.1% 줄어 6위 자동차 생산국 자리를 멕시코에 내줬다. 인도에 5위 자리를 내준 지 2년 만이다. 민감한 글로벌 환경은 한국 자동차산업을 점점 더 압박해오는데, 한국 완성차 업체들의 노사 문화는 스스로의 입지를 더 좁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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