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윤곽 나온 CJ ‘포스트 이재현’ 프로젝트

‘올리브영’ 합병·분할로 ‘승계 종잣돈’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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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5-27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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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CJ시스템즈+올리브영=CJ올리브네트웍스

    • 2019년, CJ올리브네트웍스를 둘로 다시 떼어내

    • 나뉜 옛 CJ시스템즈, CJ㈜ 자회사 편입

    • 덕분에 CJ 장남 이선호는 지주사 지분 확보

    • CJ 관계자 “5년 전과 경영환경 급변해 분할한 것”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1. 2016년 8월 12일 정부서울청사. 김현웅 당시 법무부 장관이 8·15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했다. 이날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형집행면제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됐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맡았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로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된 바로 그 안씨다. 안 당시 국장은 “검찰로부터 (이 회장이) 수감생활을 하면 생명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병 ‘샤르코 마리 투스(CMT)’로 투병하고 있다. 

    #2. 올리브영은 편의점만큼 익숙한 H&B(Health & Beauty) 스토어다. 회사 표현을 빌리면 “뷰티·헤어·보디·헬스케어 등 다양한 제품을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가게다. 전국 매장 수는 1100여 개에 달해 업계에서 독보적 선두다.

    17.97%와 6.91%

    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회장의 유전병과 올리브영의 성장세는 한 가지 열쇳말을 공유한다. 경영권 승계다. 이 회장은 사면복권 이듬해인 2017년 5월 17일 사내 행사에 참석하며 회사에 복귀했다. 이후 건강이 호전돼 지난 4월에는 미국 출장길에도 올랐다. 하지만 이 회장의 건강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자연히 후계 구도에 대한 재계 안팎의 관심도 컸다. 

    CJ는 이 회장의 자녀인 이선호(29) CJ제일제당 부장과 이경후(34) CJ ENM 상무에게 지분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승계 프로젝트를 사실상 진행해왔다. 2014년 12월 1일 이 회장은 이 부장에게 당시 CJ시스템즈 지분 33.18% 중 15.91%를 증여했다. CJ시스템즈는 그룹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SI(System Integration) 계열사로 한때 내부거래 비율이 85%를 웃돌았다. 이튿날 CJ시스템즈는 CJ올리브영과 합병해 CJ올리브네트웍스가 됐다. 

    당시 CJ그룹은 “CJ시스템즈는 유통·물류 분야의 IT 역량을 강화하고 CJ올리브영은 국내외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 및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유통회사로의 성장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유통 혁신’을 명분으로 제시한 셈이다. 



    덕분에 이 부장은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1.30%를 쥐게 됐다. 이 부장은 이듬해 12월 이 상무와 함께 이 회장의 나머지 지분 11.36%도 증여받았다. CJ그룹은 2016년 11월 그룹 광고계열사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흡수 합병한 CJ파워캐스트 주식과 CJ올리브네트웍스 신주 교환도 완료했다. 이런 여러 단계를 거쳐 두 ‘오너 2세’는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을 각각 17.97%(이선호), 6.91%(이경후) 보유해왔다. 

    두 사람이 지분을 확보하게 된 시점과 맞물려 올리브영은 고속성장세를 나타냈다. H&B가 각광받은 덕이다. 이는 편법 승계라는 비판을 일정 부분 희석해준 고리가 됐다. 증권사 임원 출신의 한 금융전문가는 “2세에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SI 계열사 지분을 증여한 후 회사가 합병을 반복해왔다. 재벌가 승계 전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올리브영은 업계에서 스스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CJ 입장에서도 변호할 지점은 있다”고 말했다.

    지분과 실탄

    그런데 CJ그룹은 ‘붙였던’ 회사를 다시 ‘떼기’로 했다. 4월 29일 CJ그룹은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 부문과 IT부문 법인을 인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인적분할 비율은 55대 45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과거 두 부문 합병 때는 올리브영이 본격 성장을 앞둔 때였다. IT 기반 강화와 재무적인 시너지 효과가 필요했다”면서 “현재 유통업과 IT 환경은 5년 전과 비교해 급변했다.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법인 분할로 각 사업 영역에 집중토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인적분할이 호재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H&B 사업 성장 둔화와 수익성 개선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분할된 두 법인의 실적 모멘텀이 강화될지는 (추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CJ의 ‘붙였다 뗐다’ 행보의 행간에도 승계라는 낱말이 숨어 있다. 그룹 지주사인 CJ㈜는 인적분할된 IT사업부를 포괄적 주식 교환 방식을 통해 100% 자회사로 편입키로 했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상법에서 허가된 제도다. 먼저 자회사가 되는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를 지주회사가 되는 회사로 이전한다. 그러면 자회사 주주들은 지주회사가 발행하는 신주를 배정받아 지주회사 지분으로 바꿀 수 있다. 

    이로써 CJ올리브네트웍스 주식을 소유하고 있던 이선호·이경후 남매는 CJ 지주사 지분을 각각 2.8%, 1.2% 확보하게 됐다. CJ시스템즈 지분이 5년 만에 CJ 지주사 지분으로 탈바꿈한 것. CJ그룹 관계자는 “(인적분할은) 승계와 무관하다. (이선호 부장이) 확보한 지분율도 미미하다”면서 “CJ에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세금 납부 등을 통해 증여가 이루어져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승계 프로젝트의 윤곽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2.8%가 가진 의미는 작지 않다. 향후 올리브영이 IPO(기업공개)에 나서면 승계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CJ그룹 관계자는 “현재 올리브영은 외자 유치나 IPO 등의 사업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그룹에서는) 올리브영을 더 성장시키려는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올리브영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65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는 CJ CGV(1조7694억 원)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CGV의 시가총액(8230억 원)이 저평가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리브영의 상장 후 기업 가치는 1조 원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 실제 CJ그룹은 2017년 11월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는데, 첫날 시가총액이 2조 원대에 안착한 바 있다. 올리브영의 기업 가치가 높아질 수록 이 부장이 가진 지분 가치도 커진다. 그렇게 되면 이 부장이 향후 지주사 지분을 늘릴 ‘실탄’을 두둑하게 확보할 수 있다. 일종의 승계 종잣돈이다.

    그룹의 모태

    모양새만 놓고 보면 이선호 부장은 올리브영에 업힌 채 야금야금 그룹 내 영향력을 확보해왔다. 부친인 이 회장 건강 때문에라도 이 부장은 꾸준히 승계 프로젝트를 밟아갈 전망이다. 이 부장의 누나인 이경후 상무는 만 32세 때인 2017년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 부장 역시 2~3년 내 임원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CJ그룹 안팎에서는 ‘자기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부장은 지난 4월부터 CJ제일제당 식품전략기획1담당을 이끌고 있다. CJ그룹에 따르면 식품전략기획1담당은 CJ제일제당의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미래 사업을 설계하는 조직이다. 

    CJ그룹 사정에 밝은 재계 소식통은 “이 부장이 매일 CJ제일제당 사무실로 출근한다고 알고 있다. CJ의 핵심은 모태인 제일제당이다. 지주사가 없을 때는 제일제당이 지주사 역할을 했다”면서 “이 부장은 제일제당에서 능력을 보여줘야 그룹 안에서 신임을 얻을 수 있다. 그래야 자신도 부담을 덜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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