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탈원전 적자, 전력수요 증가, 누진제 개편…

“전기료, 오를 일만 남았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9-05-27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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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55% “여름철 아니어도 전기료 부담스러워”

    • 정부의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에 한전 적자 악화

    •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력 수요 증가

    • 감사원 누진제 개선 요구, 전기료 인상 압력으로 작용 우려

    • 경제계, 산업용 경부하 전기요금 오를까 전전긍긍

    • 수천억 원대 산불피해 보상 진행되면 한전 재무 압박 커질 듯

    앞으로 한 달여 뒤면,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고 살아야 하는 ‘폭염 시즌’이 찾아온다. 더위도 더위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전기요금 고지서’. 올해 5월 초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와 대한전기협회가 전국 성인남녀 3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폭염 기간을 제외해도 전기요금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영세 자영업자들도 전기요금에 민감하긴 마찬가지다. 최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빚내서 전기요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한 자영업자의 호소 글이 올라왔다. 15년 된 낡은 여관급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청원자는 “전기요금이 지난 9월 66만 원, 10월 132만 원, 11월 210만 원, 12월 245만 원을 넘어 올해 1월에는 266만 원을 냈다. 무인텔에 치여 손님도 없는데 전기세 낼 돈이 없어 제2금융권에서 대출해 전기세를 납부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경우 산업용 전기가 아닌 일반용 전기요금을 낸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설비를 쓰면 전기 절약에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에겐 그마저도 부담이다. 

    가정용 전기보다 저렴한 산업용 전기를 쓰는 기업들도 전기요금 등락에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특히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철강·정유화학·케미칼 업계는 전기요금 인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요금이 5% 인상될 경우, 2017년 기준 영업이익이 포스코는 413억 원, 현대제철은 580억 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가동률 하락으로 한전 손해 막심

    지난해 여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는 모습. [뉴스1]

    지난해 여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는 모습. [뉴스1]

    전기요금은 일반 가정은 물론이고 재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정부와 한전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 TF를 구성해 요금제도 개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껏 정부는 “전기료 인상 계획은 없다”고 말해왔지만, 이런 공언이 무색하게도 전기료 인상에 대한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적자’를 꼽을 수 있다. 2017년 7조100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한전은 지난해 1조1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의 대표적인 원인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원전 이용률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6년 80%에 달하던 원전 이용률은 2017년 71%로 하락했다가 지난해 상반기에는 58.8%까지 떨어졌다. 2018년 원전 평균 이용률은 65.9%다. 



    원전 가동률이 떨어질수록 한전의 손해는 커진다. 원전에 비해 발전단가가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수요가 늘면 전체적인 전력 구입비는 증가한다. 원전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원 중 발전단가가 가장 저렴하다. 지난해 기준 1kWh당 에너지원별 발전단가는 △원자력 60.85원 △석탄 84.9원 △LNG 118.07원 △신재생 173.38원 순이다. 결국 전기를 파는 금액은 같은데 사오는 단가가 높아지니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한전의 2018년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민간 발전사로부터 구입한 전력비용이 전년 대비 4조430억 원(28.3%) 증가함에 따라 당기순손익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전은 이 보고서에서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비중을 20%까지 확대하는 과정에서 전력시장제도 개편에 대비해 대규모 설비투자 및 정책비용이 증가해 재무 여건이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에는 변화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19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안) 공청회’를 열어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현재 4%)을 30~35%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5년마다 설계하는 에너지기본계획은 향후 20년간의 중장기 에너지정책에 대한 비전과 목표, 추진 전략을 제시한 뒤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확정한다.

    현실성 없는 전기 수요 억제책

    4월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참석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뉴스1]

    4월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참석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밝힌 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 천연가스와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장려하는 반면 석탄은 신규 발전소 건설을 금지하고 노후 발전소를 추가로 폐쇄할 방침이다. 원자력 역시 발전 비중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노후 원전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은 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목표만 있을 뿐, 목표 달성에 따르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날 공청회에 참여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은 ‘절대선’이자 ‘불가침’이라는 생각이 문제다. 탈원전이라는 ‘꼬리’가 에너지 정책인 ‘몸통’을 흔드는 격으로 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30%가 넘으면 전력계통 교란과 전기요금 인상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에너지기본계획안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임과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감축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수요를 억제해 에너지 부족을 막겠다는 얘기인데, 이를 위해 정부는 “공급 중심에서 소비구조 혁신 중심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건물·수송 등 부문별로 수요관리를 강화하고, 에너지관리시스템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전력 규모를 늘리지 못하는 만큼 소비도 줄이라는 얘기인 셈인데, 이러다간 여름에 에어컨을 틀고, 겨울에 난방용 기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수요억제책이 국민의 동의 없이 정부 의지로만 추진되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전기차 도입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IT 산업을 중심으로 전력소비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세계 인구 증가세를 볼 때 2050년에는 지금보다 2.5배, 2100년에는 4배 많은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또한 지난 50년간 세계 경제성장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개인당 국내총생산(GDP)과 전력소비량은 정비례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원자력 석학 장윤일 박사는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에너지를 대체한다는 건 희망에 불과하다.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안할 때 우리는 발전 방법을 고르고 선택할 여유가 없다”며 “산업용 전력은 차치하더라도 날씨가 춥고 더울 때, 국민이 마음 놓고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를 위한 누진제 완화인가!

    최근 감사원이 산업통상자원부 측에 요구한 ‘전기료 누진제 개선’도 결국 전기료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4월 18일 감사원은 ‘전기요금제도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하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기준이 되는 가구별 전기 필수사용량에 에어컨이 빠져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에어컨은 이미 대중적으로 보급된 가전기기인 만큼 필수사용량에 이를 포함해 주택용 전기요금 부담을 지금보다 완화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주택용 전력소비 억제와 저소득층 보호 차원에서 1974년 처음 도입됐다. 즉 사용량이 많을수록 전기요금이 누진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인 것. 2016년 말 누진제가 3단계로 개편되면서 현재 주택용 전기료 단가는 1단계(처음 200kWh까지) 1kWh당 93.3원, 2단계(400kWh까지) 187.9원, 3단계(400kWh 초과) 280.6원으로 차등 적용된다. 

    1단계 전력 사용량이 200kWh로 설정된 이유는 2014년 기준 가구당 보유대수가 0.8대 이상인 가전기기(형광등·선풍기·TV·세탁기·냉장고 등)의 가구별 월평균 사용량이 197kWh였기 때문이다. 한 가구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전기량에 대해서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 그런데 당시 가구당 보유 대수가 0.76대였던 에어컨은 필수가전기기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최근 감사원 조사에 의하면 2017년 ‘가구 에너지 상설표본조사’와 ‘에너지 총조사’에서 2016년 기준 가구당 에어컨 보유 대수는 각각 0.81대, 0.93대로 누진제 개편 시점에 이미 0.8대를 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감사원은 산자부 측에 에어컨 전력사용량을 필수사용량에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풍기와 전기장판 등 계절성 가전기기의 사용량은 해당 계절에만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적용해 필수사용량을 다시 계산해보면 여름은 330.5kWh, 겨울은 170.1kWh로 나온다.

    전기료 정상화 주장하는 한전

    시민들이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 다세대주택에 전기계량기가 돌아가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이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 다세대주택에 전기계량기가 돌아가고 있다. [뉴스1]

    누진제 완화 및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난해 폭염 이후 더욱 거세졌다. 도시에 거주하는 4인 가구의 월평균 전력사용량은 350kWh로 전기요금은 5만5080원이다. 이 가구가 만약 실내에서 사용하는 스탠드형 에어컨(냉방소비전력 1.8kW 기준)을 한 달 내내 하루 평균 3시간30분씩 켜면 전기요금은 11만7860원, 10시간이면 23만2080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경우 재난 수준의 폭염이 이어지자 이 기간만큼은 누진제 구간별 전력사용량을 늘려주거나 구간별 요율을 인하하는 방식으로 요금 부담을 줄여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한 수준의 폭염이 예상되는 만큼 전기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정부가 감사원의 지적을 반영해 누진제를 개편할 경우 당장은 전기요금 부담이 줄어들지 몰라도 종국에는 전기요금이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진제 최저요금 구간 전력 사용량을 더 늘려 지금보다 더 많은 가구가 최저요금 구간을 적용받게 되면 한전의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전이 감사원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누진제를 완화하되 구간별 단위 전기료를 올리거나, 산업용 전기료를 올려 손실을 충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누진제를 완화함으로써 전기 사용량이 적은 가정의 부담은 줄여주는 대신 이를 전기 사용량이 많은 부자들, 그리고 산업용 전기를 쓰는 기업에 전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기업형 전기요금이 싸다는 건 옛날얘기”라며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는 누진제 완화라는 작은 사탕을 하나 쥐여주고 뒤로는 더 큰 걸 뺏어가는 꼴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정부가 하루빨리 한전의 경영 악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현실적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전 역시 ‘경영 정상화’를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과거 자신의 페이스북에 ‘콩(원료)이 두부(전기)보다 비싼 꼴’이라고 밝히며 전기료 정상화를 주장한 바 있다. 지난해 한전이 원가 이하로 판 전기는 4조7000억 원가량 된다. 여기에 2017년보다 1조2000억 원 늘어난 6조 원이 정책비용으로 투입됐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에 따른 보전액만 1조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전력 시장은 발전자회사의 총원가를 보전해주는 ‘원가 반영 시장’이기 때문이다. 판매단가는 전력거래소(KPX) 내 비용평가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비용평가위원회는 모회사인 한전그룹이 전체 영업이익 내에서 발전자회사(한수원 등)가 낸 적자를 보전할 수 있도록 판매단가를 조정한다. 

    한편 한전은 ‘전기요금 도매가격 연동제’ 추진을 고려하고 있다. 도매가격 연동제란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사들이는 가격을 전기료에 주기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연료비와 정책비용이 상승 혹은 하락할 경우 전기요금도 같이 오르고 내린다. 상황에 맞게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지금처럼 정부가 급속도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발전단가가 높은 친환경 연료 사용이 늘어 전기요금이 갑작스레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에 올 초 김종갑 한전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소비 왜곡을 막고 자원 배분을 합리적으로 하자는 문제이지, 한전의 재정 상태를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워달라는 요구는 아니다”라면서 “지금 한전이 검토하고 있는 산업용 심야전기 경부하 요금과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두 가지를 소비자 부담이 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은 과감하게 해보자고 정부에 건의를 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전기료 희생양 될까 떨고 있는 산업계

    4월 4일 강원도 고성·속초 일대에 일어난 대규모 산불도 한전에 대형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강원도가 집계한 산불 피해 규모는 3000억~4000억 원 정도다. 산불 원인이 한전의 관리 과실 때문인 것으로 최종 밝혀지면 한전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전문가는 한전이 산불 관련 보상이나 배상, 소송에 휘말릴 경우 결국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 교수는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만약 한전이 산불 피해에 대해 배상 혹은 보상을 해야 한다면 탈원전으로 적자 상태인 한전에 재무 압박이 더욱 커지는 셈이다. 이는 곧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상반기 내 전기요금 개편 방안이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용 요금제의 경우 누진제 완화 또는 폐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산업용은 평일 경부하 시간대(오후 11시~오전 9시) 요금은 높이고, 낮 시간대 요금은 낮출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부는 누차 “산업용 요금을 조정하더라도 한전이 추가 이익을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경제계는 어떤 식으로든 기업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탈원전정책 후 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한전이 수익을 내기 위해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력 사용 비중은 주택용이 13.9%, 산업용이 55.7%를 차지한다. 따라서 산업용 요금제 개편이 국내 전력 소비 동향에 훨씬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산자부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만한 방향성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주택용·산업용 요금제 개편 방안에 대해 어떤 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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