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안보秘史

‘8·4 지뢰도발’은 ‘김정은 통일대전’ DMZ 강습돌파 최종연습

  •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

    입력2019-05-28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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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對 김일성 지략 싸움 : 개전 3일

    • 포격전 통해 박근혜 중국 전승절 참석 저지 노려

    • 한민구의 ‘심리전 재개’ 북한군 수뇌부 전전긍긍

    • 9·19군사합의로 북한 군부 활로 열어줘

    • 文정부 2년 만에 한미연합방위태세 토대 붕괴

    2018년 12월 12일 남북 군사 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시범철수한 비무장지대 내 GP에 대해 상호 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12월 12일 남북 군사 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시범철수한 비무장지대 내 GP에 대해 상호 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군 보병·기계화부대의 비무장지대(DMZ) 돌파를 위해 고안된 김일성의 ‘땅굴작전’은 1990년 3월 제4땅굴 발굴로 최종 좌절됐다. 김정일은 기계화부대를 이용해 DMZ를 ‘강습돌파’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김정은은 DMZ 돌파 전술을 시험하는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2015년 9월 3일) 참석을 막고자 2015년 8월 4일 목함지뢰 도발을 감행했다. 

    김정은의 ‘8·4 지뢰도발’은 과거 북한군의 DMZ 도발 양상과는 전혀 달랐다.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①왜 GP에 대한 총격·포격이나 특수전 요원 침투 등 다양한 도발 수단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DMZ의 국군 수색대 이동로에 지뢰를 설치했는가. ②왜 문산 축선(국군 1사단)에서 지뢰 도발을 감행한 후 국군이 대응 조치로 심리전을 재개하자 시변리 축선(국군 28사단)에서 응징 포격을 감행했는가. ③왜 GP·민경대대의 장비나 전방 군단의 다양한 포격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최전방 사단의 화기인 14.5㎜견인고사포와 76.2㎜직사견인포를 DMZ로 이동시켜 도발했는가. ④왜 국군이 심리전을 재개한 8월 10일부터 열흘이 지난 8월 20일 연천 일대를 포격했을까. ⑤왜 연천 일대에 포격 도발을 감행한 후 “48시간 이내(22일 오후 5시까지)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전면전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고는 실제로 전면전을 가정한 군사력을 동원했는가.

    전승절 참석을 저지하라

    2015년 8월 4일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에서 9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까지의 일련의 사건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8월 10일 국방부는 북한군 지뢰 도발 사실을 발표한 후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심리전 재개를 선언했다. 10일 후 북한은 심리전 재개에 대한 보복으로 DMZ 및 전방지역에 포격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면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 명의로 대화를 제의했으며, 48시간 내 확성기 철거 불응 시 군사 행동에 나서겠다고 최후통첩도 날렸다. 

    국군은 DMZ 북측을 향해 대응 포격에 나섰다.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으며 한미 안보 당국은 워치콘(정보감시태세)을 상향 조정했다. 8월 26일 남북 고위급 협상을 통해 사태가 수습됐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한국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과 관련해 ‘중국에 치우친다’는 뜻의 중국경사론(傾斜論)을 제기하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주요 외신의 평가는 달랐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대한민국의 외교적 승리라고 보도했다. 일본의 북한 전문가인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 와세다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정통성이 타격을 받는다”면서 “지뢰 도발은 전승절 참석을 막기 위한 포석”이라고 봤다. 워싱턴포스트는 “시진핑 옆에 김정은이 아닌 박근혜가 섰다”면서 “북·중 관계가 얼마나 냉랭한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8월 20일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마자 북한군은 기다렸다는 듯 오후 3시 53분과 4시 12분 두 차례에 걸쳐 화력 도발을 감행했다. 연천 일대에 대한 포격은 전승절 참석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군 개입 이전 전쟁 종결 : 속도전 전략

    8·4 지뢰 도발의 저의를 밝히려면 ‘김일성의 6·25전쟁’부터 ‘김정은의 통일대전’까지 북한군의 남침 전략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6·25전쟁 향배는 북한군 최정예 1·4·3·105땅크사단이 집중된 경부본로(의정부-서울-수원-평택-대전-대구-부산)에서 결판났다. 국군은 개전 초기 북한군 공세를 막지 못했으며 주요 장비를 포기하고 병력만 간신히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다.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운 개전 초기의 공격 기세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미군 증원과 인천상륙작전을 허용한 탓에 경부본로를 차단당해 궤멸했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개전 초기 전략을 살폈으며 미군 증원에 대한 대책 수립에 몰입했다. 김일성은 6·25전쟁에서 성공하지 못한 까닭을 △미군 참전 대책 부재 △전쟁 초기 포위 격멸 실패 △한국 내 민중봉기 무산 △부산 조기 점령 실패로 나눠 분석했다. 그러곤 정규전-비정규전 배합, 선제기습, 속전속결을 통해 미군의 개입 이전 전쟁을 종결하는 속도전 전략을 수립했다. 

    북한은 미군과 일본 자위대 증원 및 지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자 미사일과 핵 개발을 시작했다. 부산 조기 점령을 위해 서부·동부전선에서 기계화부대로 동시에 공격해 개전 3일 이내 서울 방어선을 돌파하고 7일 이내 부산을 점령할 수 있는 군사력 건설에 매진했다. 김일성은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을 국방비에 투입했으며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병력 120만, 전차 4000여 대, 야포 1만4000여 문 등의 대규모 군사력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원조로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주한미군에 안보를 의존한 한국에 1969년 닉슨 독트린(‘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끼리’라는 주장이 담겼다) 발표와 1970년대 불거진 ‘주한미군 철수’ 논의는 6·25전쟁 이후 최대 안보위기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의 침공을 저지하고 미군의 증원을 보장하고자 전력 증강, 전방지역 요새화 등을 밑거름으로 한국 지형에 맞는 방어작전체계를 구축했으며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를 창설해 한반도 전구작전(operation of theater) 토대를 구축했다.

    속도전 : 땅굴로 DMZ 돌파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항일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항일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박정희 대통령은 개전 초기 3일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일대를 연하는 선에서 북한군의 초기 공세를 막아내야 한다고 봤다. 그래야만 후방의 국군과 부산을 통해 증원된 미군이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북상해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국군에 미아동 북방을 연하는 선에서 북한군의 초기 공세를 3일간 저지할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는 특명을 하달했다. 

    국군은 서울 북방의 방어종심(최전선에서부터 다른 부대나 예비대가 배치된 곳까지의 길이)이 짧은 탓에 전쟁 개시 때부터 ‘전선을 고수한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전쟁 발발 시 철수하는 일반전초(General Observation Post)를 전방방어진지(Foward Defense Position)로 전환했다. 또한 북한군 전차와 병력의 전진을 막는 방벽과 고수방어(결전의 의지로 방어지역 상실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진지를 구축했다. AN-2기를 타고 침투하는 특수전부대를 타격하기 위한 대공관측소 및 화기진지도 설치했다. 미군이 증원되는 도로인 경부고속도로를 방호하고자 병참선 방호계획과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김일성은 박정희의 전쟁 대비 전략에 대응하고자 DMZ 지하에 땅굴을 뚫어 특수전부대를 국군 후방에 침투시키는 기상천외한 방법인 ‘땅굴침투전술’을 구상했다. 제1공격제대인 보병·기계화부대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기습을 달성해 국군의 전방방어 체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는 비책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1971년 9월 25일 ‘땅굴작전’을 개시했다. 이른바 ‘9·25교시’가 그것이다. 북한군은 군단별로 땅굴작전을 수행했는데 지금껏 20여 개의 땅굴을 굴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고랑포(경기 연천군)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후 1975년 3월 19일 철원, 1978년 10월 17일 판문점 부근에서 차례로 발견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땅굴은 서부와 중서부전선에 집중된 것으로 판단됐으나 1990년 3월 3일 강원 양구군 북방에서 4번째 땅굴이 발견됨에 따라 동부전선에도 땅굴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북한이 굴착한 땅굴은 발견 순서에 따라 제1, 제2, 제3, 제4땅굴로 명명됐다.

    통일대전 : 기계화부대로 DMZ 강습돌파

    김정일은 한미연합 전력에 대한 구조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기존의 재래전 중심의 군사·전력구조를 핵 및 대량살상무기(WMD)·장사정포·기계화부대 및 특수전 중심으로 개편했다. 이를 위해 김정일은 강성대국 건설기간(1991~2011)에 군단급 부대를 대폭 줄이고, 지상군 사단 60여 개를 80여 개로 증편했다. 

    북한은 포병군단을 해체해 최전방 사단에 배치함으로써 포병화력을 강화했다. 제2제대의 기갑·기계화 군단도 사단으로 개편해 제1제대 전방군단으로 추진배치했다. 특수전 부대를 3만 명(1970년대)→10만 명(1990년대)→20만 명(2000년대)으로 증편했다. 특히 전방군단 내 경보병 사단과 연대를 10여만 명 수준으로 증강했다. 사단급 규모이던 미사일 전력은 군단급으로 확대했다. 

    국군의 땅굴 발견 덕분에 북한군의 땅굴침투작전은 재검토될 수밖에 없었다. 땅굴침투는 전투력을 보존해 국군 후방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게 장점인데, 국군이 땅굴의 존재가 예상되는 지역에서 역(逆)매복작전에 나설 경우 땅굴로 침투한 북한군이 몰살될 수 있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또한 대규모로 병력·장비를 이동시키는 데 한계가 있어 속도전을 추구하는 작전 체계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기존의 땅굴침투작전을 대체한 북한군의 DMZ 강습돌파 작전은 ‘민경대대가 기계화부대가 이동할 DMZ 통로를 개척’ ‘기계화부대가 강력한 포병화력의 엄호를 받으면서 강습으로 DMZ 돌파’로 이뤄져 있다. 3일 이내 전방 방어종심을 돌파해 부산을 조기에 점령하고, 서부전선 방어체계를 붕괴시켜 경기도 이북에서 한미연합군의 주력을 격멸하는 게 ‘김정은 통일대전’의 골자다. 

    북한은 통일대전 전략을 2015년까지 완성하고자 2010년 천안함·연평도 공격에 나섰다. 이를 통해 특수전 병력 5000여 명의 인천·평택지역 상륙을 보장하는 화력 및 해상작전 체계를 완성했다. 이어 2014년 3월~2017년 5월 11회에 걸쳐 무인기를 침투시켜 요새화된 서부전선 방어체계를 우회해 부산을 조기 점령할 수 있는 통일대전의 신(新)남침로를 정찰했다. 8·4 지뢰 및 포격 도발은 기계화부대의 DMZ 강습돌파 작전을 최종적으로 시험한 것이다.

    8·4도발, 전시 DMZ 작전체계 시험

    1975년 2월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땅굴공사 착암기 기술자 김부성 씨가 판문점 서남방 4㎞ 지점의 제3땅굴 공사내용의 도면을 가리키고 있다. [동아DB]

    1975년 2월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땅굴공사 착암기 기술자 김부성 씨가 판문점 서남방 4㎞ 지점의 제3땅굴 공사내용의 도면을 가리키고 있다. [동아DB]

    북한군 최전방 보병사단은 제1공격제대로서 GP(전투전초)·GOP(일반전초)·전방방어지대를 공격해 제2제대인 기계화부대의 공격을 보장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그중 민경대대는 보병부대의 통로 개척 임무를 맡는 것으로 분석돼왔으나 이 같은 전략에 변화가 있었다. 통일대전에 따르면 민경대대가 기계화부대의 공격로를 개척하며 보병사단은 민경대대의 국군 GP·GOP 공격을 화력으로 지원한다. 

    북한군은 8·4 지뢰 및 포격 도발을 통해 1차적으로 민경대대와 전방사단의 DMZ에서의 작전 능력을 시험했다. 북한군 민경대대가 국군 수색부대의 정찰로를 예측해 지뢰를 설치한 것은 북한의 DMZ 작전 능력이 상당한 수준임을 방증한다. 또한 북한군이 국군의 심리전 재개에 대응해 최전방 사단의 14.5㎜고사포와 76.2㎜직사포로 남측 지역을 타격한 것은 화력 지원 능력을 시험한 것이다. 

    2015년 8월 10일 국군의 심리전 재개에 대한 대응 포격이 8월 20일 이뤄진 것은 그날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최전방 사단의 전시 화력 지원 능력을 시험하고 전승절 참석도 저지하는 일석이조의 작전이었다. 

    북한군의 지뢰 도발에 대해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이 도발 원점인 민경부대를 타격하지 않고 심리전 재개로 대응함으로써 도발의 원흉인 김정은을 겨냥한 것은 북한군의 대응 포격을 위축시키고 확전 의도를 좌절시킨 결정적 요인이었다. 

    북한은 8월 21일 오후 5시 ‘48시간 내 대북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는 전통문을 보냈다. 그 직전인 오후 4시 50분에는 김양건 노동당 비서 명의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전통문을 보냈다. 이 같은 강온 양면술은 김정은을 겨냥한 국군의 심리전 재개에 북한 군부와 관료가 노심초사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미국 조야의 한반도 전쟁 위협 평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사수 쌍방기동훈련’에 참관해 훈련을 지휘했다고 노동신문이 2016년 2월 21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사수 쌍방기동훈련’에 참관해 훈련을 지휘했다고 노동신문이 2016년 2월 21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미국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면전 도발 가능성을 낮게 봐왔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 청문회(2013년 3월 12일)에서 “북한 정권은 생존의 위협을 감지할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그런 위협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 상원 청문회(2017년 5월 11일)에 출석해 “(한반도는) 화약고와 같은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재래식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의 통일대전에 대한 워싱턴의 평가가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다. 

    2017년 5월 22일 미국 군사 전문 매체 ‘밀리터리 타임스’는 ‘완전히 개편된 김정은의 통일대전 남침공격 시나리오’와 ‘한미연합군의 대응책’을 엮은 ‘2차 한국전쟁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이 매체는 북한 관련 정보와 전문가 견해를 종합해 “미국이 중국의 도움을 받아 북한의 핵 도발을 멈추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지만 이런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다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서 “이럴 경우 미국과 한국 병력이 대규모로 동원되고 전쟁이 수개월 또는 그보다 긴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체는 이어 “북한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침공 첫날 한미 공군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낫질 작전(Sichelschnitt)을 모방해 통일대전을 구상했다. 독일군은 프랑스 국경의 ‘슐리펜 요새지역’을 우회한 후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선상의 아르덴(Ardennes) 구릉지대에 기계화 및 공군부대를 투입해 파리와 대서양 연안을 조기 점령하면서 초기 전쟁을 승리로 장식했다. 

    북한군은 통일대전에서 이를 모방해 6·25전쟁 때 1·4·3·105땅크사단을 투입한 문산·연천·포천에는 전방사단의 보병·전차부대를 제2제대로 투입한다. 이 축선에는 아르덴 지역처럼 한미연합전력의 방어태세가 공고하게 구축돼 있다.

    북한판 아르덴 지역 : 김포·시변리·광덕산·화천·양구·서화축선

    통일대전은 산악이거나 상대적으로 방어밀도가 낮은 김포·시변리(국군 28사단)·광덕산·화천·양구·서화축선(요도1 참조)에 815·425기계화부대를 제1제대로 투입한다. 김포축선은 평택을 점령할 수 있는 최단거리 남침로이며, 광덕산 축선은 기계화부대가 서부전선을 우회해 서울을 포위하고 부산을 조기에 점령할 수 있는 전략적 남침로이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문산축선(국군 1사단)에서 지뢰로 도발하고 시변리축선(국군 28사단)에서 심리전 재개에 대한 응징포격을 가한 것은 핵심 공격 방향을 속이기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였다. 통일대전에 대한 김정은의 집요한 의지는 광덕산 축선에 이어 김포반도 지역 도하작전의 핵심 부대인 815땅크사단을 수시로 방문해 작전 수행 태세를 확인한 데서도 드러난다. 

    2015년 8월 21일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해 “21일 오후 5시를 기해 휴전선에 인접한 전선(戰線) 부대들은 완전무장한 전시 상태로 이전하며, 전선 지대에 준(準)전시 상태를 선포한다”고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고는 오후 11시를 기준으로 전선 부대들의 ‘작전 진입 준비 실태’를 점검했으며, 전선사령부의 공격 작전 계획을 직접 비준했다. 

    2015년 8월 22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기 전까지 북한군은 국군 28사단 방어지역 DMZ에만 23문의 고사포를 전진배치하는 등 전체 전선의 포병화력을 2배 넘게 증강했다. 북한 잠수함 50척이 감시망을 벗어나 잠행했으며 평안북도 철산군 기지에 있던 공기부양정 20여 척을 서해 남포 해상까지 전진배치했다. 경보병부대도 DMZ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대전의 3대 핵심 침투전력인 특수전부대, 잠수함정, 공기부양정을 대규모로 동원한 것은 8·4지뢰 및 포격 도발이 단순한 국지 도발이 아니라 통일대전의 남침계획 점검 차원에서 시행됐음을 방증한다.

    한민구의 심리전·GP지역 포격

    [뉴시스]

    [뉴시스]

    유승민 의원(당시 새누리당)은 2015년 8월 12일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뢰 도발 다음 날인 8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에 참석해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용기 있게 남북 화합의 길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한 것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을 비판했다. 정치권은 물론 일부 언론에서도 지뢰 도발에 대한 응징으로 원점타격이 아닌 심리전을 재개한 것은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의 주장처럼 한민구 장관의 국방부가 지뢰 도발에 대응해 북한군 민경대대를 직접 포격하거나 8월 20일 포격 도발에 대해 도발원점인 14.5㎜고사포 진지와 76.2㎜평사포 진지를 직접 타격했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까. DMZ가 남북 간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며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도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한민구 장관은 취임 후 전방전투태세를 집중 점검하고, 공세적 DMZ 수색작전과 사·군단급 포병의 집중 운용을 통해 화력 대응태세를 강화해왔다. 공세적 DMZ 수색작전을 통해 북한군 최전방 사단이 14.5㎜고사포와 76.2㎜평사포를 DMZ로 전진 배치해 국군 GP·GOP공격을 준비하는 것을 사전에 파악해냈다. 

    한민구 장관은 북한군 진지를 직접 타격해 상황을 확대시키기보다는 155㎜K55A1을 북측 GP들 사이에 사격함으로써 북한군이 상황을 조기 종결하도록 유도했다. 북한군은 왜 GP를 직접 타격당하지 않고도 상황을 종료했을까. 

    북한군은 국군의 포병사격으로 대규모 인원이 살상된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국군 3사단의 북한군 GP포격 사건이 그것이다. 1973년 3월 7일 북한군이 DMZ 표지 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3사단 병력에 총격을 가해 2명의 장교와 부사관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박정인 3사단장은 155·105㎜곡사포로 북한군 599GP와 사격을 가한 진지를 초토화하고 80여 명을 사살했다. 2010년 10월 연평도 포격 때도 해병대의 K-9 사격으로 북한군이 상당한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한민구 장관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협박에 대응해 3축 체계의 하나로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를 구상해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정밀타격하거나 일정 지역을 불바다로 만드는 화력대응체계를 발전시켰다. 3축 체계는 KMPR과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로 구성돼 있다.

    나사 풀린 국군, 긴장하는 미군

    2015년 8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은 경기 용인시 제3야전군사령부를 방문해 “우리 장병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하는 북한의 그 어떤 도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군은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해 가차 없이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선(先)조치, 후(後)보고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 대응 지시 직후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판문점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8월 22일 2+2 남북 고위급 접촉 개시, 김관진 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 간 판문점 회담에 이어 8월 25일 남북 고위급 협상이 타결됐다. 박 대통령은 남북 고위급 협상 타결과 9월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전후한 시기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미 군 당국은 2016·2017년 열린 제48·49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에 기반을 둔 양자·지역·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 전략동맹을 확고히 했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침략 또는 군사적 도발, 서북 도서 및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도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진화하는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특히 미국은 ‘새로운 핵 정책’(2017년 3월)에서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지 않으면 저강도 핵무기를 사용해 김정은의 은신처를 정밀 타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B61 전술 핵폭탄 중 최신형인 B61-12는 정확도가 30m 이내여서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종전 B61 계열 핵폭탄의 정확도는 100m였다. B61-12는 땅속으로 뚫고 들어가 깊이 100m 이상의 지하 벙커를 파괴할 수 있으며 낙진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핵 벙커버스터’로 불리는 이유다. 

    이렇듯 미국이 선제타격을 고려했을 만큼 북한에 대한 미국 조야 및 군부의 위협 인식은 긴박했다. 미국과 중국은 2008년부터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해마다 1회씩 열고 있다. 특히 2017년 8월에는 조지프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이 중국 북부전구 79집단군 야외기동훈련을 직접 참관한 후 그곳에서 급변사태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2017년 11월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의 군사태세를 점검한 후 집속탄(한 개의 폭탄 안에 또 다른 소형 폭탄들이 들어 있는 무기로 폭발력이 강하다) 전량 폐기 조치를 취소했다. 집속탄이 북한의 기계화부대를 타격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9년 말 저위력 핵탄두(5kt) W76-2를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에 장착한다. 이 핵탄두는 사거리 1만2000㎞인 트라이던트 미사일에 8~12개가 탑재되는데 피해 범위는 1.3㎞, 명중오차는 10m다. 핵잠수함에 저위력 핵탄두를 장착하는 것은 북한을 겨냥한 조치이기도 하다.

    안보 내팽개친 9·19군사합의

    주한미군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나 국군은 군통수권자에 의해 국방 태세가 무너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9·19 군사합의다. 북한군 전방 사단의 민경대대는 전시에 공격부대의 전진을 보장하기 위해 DMZ의 지뢰를 제거하고 GP와 GOP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현재 휴전선 100㎞ 이내에 전진 배치된 북한군 70여만 명 중 경보병부대가 10여만 명에 달한다. 공격 개시 직전 경보병부대는 국군 최전방 지역에 침투한다. 경보병부대가 지휘 및 통신시설, 포병부대 등을 습격해 전방 방어태세를 무능화한 후 기계화부대가 강력한 포병화력의 지원하에 DMZ를 강습돌파하는 게 북한군의 전략이다. 

    휴전선 155마일(250㎞)에 국군 GP는 60개다. 1개 GP가 대략 4㎞ 구간을 경계한다. 전시에는 북한군 민경대대 1개 중대가 국군 1개 GP를 공격한다. 9·19군사합의에 따라 10개의 국군 GP가 제거됨으로써 10개 민경중대로 GP 대신 GOP를 공격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북한군 기계화부대는 국군의 GP 파괴 및 철수로 인해 생긴 경계사각 공간을 따라 고속으로 GOP까지 진출할 수 있다. 

    DMZ 내 GP 철수는 공격 개시 전 은밀하게 침투하는 북한군 경보병부대와 공격 개시 후 DMZ를 강습돌파하는 기계화부대에 대한 GP의 조기경보 및 화력유도 기능을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국군이 스스로 제거한 지뢰 지대와 넓어진 GP 사이 공간은 북한 특수전·기계화부대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9·19군사합의를 통해 남북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 안에서 포병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군사분계선에서 5㎞ 내에 배치된 국군 병력은 북한군 공격 시 제1방어력을 제공하는 부대다. 한국은 수도 서울과 DMZ를 잇는 종심이 짧은 터라 GOP부대가 페바지역(FEBA·전투지역전단) 부대와 함께 북한군의 제1공격제대인 특수전·기계화부대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통일대전’에 날개 달아준 文정부

    2013년 11월 5일 조보근 당시 국방부 정보본부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통일대전을 위한 북한군의 군사력 배치를 공개하면서 “북한군이 휴전선에서 100㎞ 이내(황해도 사리원~강원도 통천 라인 이남)에 병력의 70%(70만 명), 화력의 80%를 전진배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과거 북한군은 휴전선에서 150㎞ 이내(평양~원산 라인 이남)에 병력의 70%가 배치돼 있었다.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9·19군사합의에서 공중적대행위 중단은 통일대전의 남침계획에 의해 전진배치된 북한군 최전방 공격부대의 평시 활동에 대한 감시를 불가능하게 한다. 문재인 정부는 또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에서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에서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 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와 포신에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북측과 합의했다. 

    또한 한강 하구를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를 북측에 넘겨줬는데 이는 도하 작전의 하상 정보를 북한군에 넘겨줘 김포반도 침공을 용이하게 한 행위다. 김포·강화지역은 도하 능력을 보유한 북한 기계화부대의 핵심 침공로인데, 이 일대를 방어하는 해병대의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는 합의를 했다. 

    요컨대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김정은 회담의 결과물인 9·19군사합의가 김정일·김정은이 대를 이어 추진해온 통일대전 전략을 돕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대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그런 식으로 합의한 게 아니냐는 오해마저 불러일으킬 만큼 9·19군사합의는 정교한 방식으로 전방방어체계를 무력화했다.

    홍성민
    ● 1961년 서울 출생
    ● 육사 41기
    ● 국방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 前 국군정보사령부 대북분석관
    ● 조성태(前 국방장관) 의원 보좌관, 디앤디 포커스 발행인
    ● 現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
    ● 저서 : ‘북한의 통일대전과 대응책’ 등 비공개 안보정책서,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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