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문 앞 배송 ‘생수 전쟁’

경제성·편리함으로 정수기 위협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9-06-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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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수냐 정수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 1~2인 가구 생수가 훨씬 경제적

    • 배달 곤란은 옛말, 생수 업계 진짜 문 앞 배송

    • 생수 시장 2조 원, 수입 생수도 ‘불티’

    • ‘업소용’에서 ‘프리미엄’으로, 생수 변천사

    우리 몸의 70%는 물로 이뤄져 있다. 어떤 물을 마시느냐에 따라 건강은 물론 삶의 질도 달라진다.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물은 몸 안의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밤새 손실된 수분을 보충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 아토피 등 외부 유해요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청결’의 상징인 ‘물’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수돗물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낮아지는 반면 생수(먹는 샘물)와 정수기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더욱 깐깐해지고 있다. 둘 중 어떤 물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생수’ 혹은 ‘정수기’란 단어를 검색하면, 그 나름의 논리로 생수 혹은 정수기를 옹호하는 글이 수십 편씩 뜬다. 

    흔히 생수는 정수기에 비해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1~2인 가구의 경우 낮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정수기를 렌털하는 것보다 그때그때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과연 생수와 정수기의 가격차는 얼마나 될까. 국내 생수 시장 점유율 1위인 ‘삼다수’와 냉·온수 기능 없이 정수만 가능한, 최저 가격대의 ‘쿠쿠직수정수기’를 임의대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1~2인 소형 가구의 경우 한 달 생수 소비량은 2ℓ 기준( 1000원) 12개 정도 된다(생수업체 홈서비스 가이드 참조). 따라서 3~4인 가구 평균 소비량은 2ℓ 24개 정도다. 이를 돈으로 계산하면 1~2인 가구의 한 달 생수비는 1만2000원이고 3~4인 가구는 2만4000원 정도 된다. 반면 쿠쿠직수정수기 렌털비는 1만5900원이다. 따라서 1~2인 가구는 생수가 경제적이고 3~4인 가구는 정수기 렌털이 훨씬 경제적임을 알 수 있다.

    삼다수·아이시스·백산수…가정용 정기배송 출시

    가정용 생수 정기배송을 시작한 제주삼다수와 아이시스8.0, 백
산수 모바일 앱 메인 화면.

    가정용 생수 정기배송을 시작한 제주삼다수와 아이시스8.0, 백 산수 모바일 앱 메인 화면.

    생수의 최대 장점이 ‘저렴함’이라면 최대 단점은 ‘불편함’이다. 특히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물을 사다 날라야 한다는 점이 일종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 주문이 활성화되면서 마트에서 직접 물을 사다 나르는 번거로움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택배 배달 시 주문자가 집에 없을 경우 아파트 경비실에서 집까지 무거운 물통을 ‘낑낑’대고 들고 와야 한다. 



    생수 배달을 주로 이용하는 직장인 김모 씨는 “2ℓ들이 생수 한 개 무게가 2kg이니, 6개들이 한 묶음 무게는 무려 12kg이다. 이 무거운 걸 경비실에서부터 집 안까지 들고 오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물 한번 나르는데 땀을 비 오듯 쏟기도 한다”고 푸념했다. 

    이런 불편함도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생수업계는 자체 배송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온라인 주문을 통해 한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주문하는 소비자가 늘어나자 충성고객을 위한 ‘정기배송’ 서비스를 출시한 것. ‘제주삼다수’(이하 삼다수) ‘아이시스8.0’(이하 아이시스) ‘백산수’ 등 업계 1~3위 업체들은 자체 배송 앱(애플리케이션)을 내놓고 가정용 정기배송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정기배송의 가장 큰 장점은 무거운 생수를 문 앞까지 배달해준다는 점이다. 기존의 우유배달처럼 정해진 수량과 배송주기, 요일 등을 설정해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어 한결 편리하다. 모바일 앱으로 정기배송을 선택해 주문하거나, 대리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배송 내용을 정하면 된다. 물 배달은 대리점 직원이 직접 해준다. 

    현재 가정배송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브랜드는 ‘삼다수’다. 삼다수를 유통·판매하는 광동제약은 지난 4월 한 달간 삼다수 가정 배송 앱을 통한 주문이 1만524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앱 다운로드 수는 총 1만7882건으로 하루 평균 596건으로 집계됐다. 

    1998년 출시한 삼다수는 지난해 전체 시장점유율 40%를 차지하며 생수 시장의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우 김혜수를 모델로 내세워 앱 배송 관련 TV 및 모바일 광고도 시작했다. 현재 모바일 앱에서는 500㎖ 20개짜리(8600원)와 2ℓ 6개짜리(6000원)를 팩 단위로 판매하는데, 500㎖와 2ℓ를 합해 최소 3팩 이상 주문 가능하다. 배달료는 무료이고 구매금액의 3%를 포인트로 적립해주며, 5000포인트 이상이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가격은 쿠팡 등 온라인 마켓과 비교해 다소 비싼 편이다. 쿠팡의 경우 삼다수 500㎖ 20개 1묶음 가격은 4900원, 2ℓ 6개 1묶음은 5800원이다(5월 13일 기준). 물론 일부 온라인 몰에서는 삼다수 가정배송보다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생수 시장이 ‘블루오션’인 이유

    삼다수 다음으로 시장점유율 2위(12%)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는 모바일 앱 ‘롯데칠성몰’ 안에 ‘정기배송 홈서비스’로 입점했다. 이용 방법은 삼다수와 유사하며 용량에 따라 다양하게 주문 가능하다. 가격은 200㎖ 40개 8930원, 300㎖ 40개 9400원, 500㎖ 40개 1만2260원, 1ℓ 6개+300㎖ 20개 7900원, 2ℓ 12개+500㎖ 20개 1만3600원, 1ℓ 12개+200㎖ 20개 1만900원 등이다. 정기배송 3회 차마다 아이시스 8.0 300ml 20개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생수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말 생수 OEM 업체인 ‘산수음료’(현 산청음료)를 680억 원에 인수했다. 산수음료의 생수 공장은 경남 산청군 지리산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롯데칠성음료는 이번 인수로 수원지 확보에 성공해 향후 취수량을 늘려나갈 전망이다. 

    업계 3위(점유율 8.2%)인 농심 ‘백산수’ 역시 모바일 앱을 통해 정기배송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앱을 통한 주문은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70% 급증했다. 모바일 앱에서는 330㎖ 20개 7500원, 500㎖ 20개 8000원, 2ℓ 6개 5500원에 판매 중으로 가격의 5%는 마일리지로 적립된다. 농심도 백산수를 신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다. 박준 농심 부회장은 지난해 농심 정기 주주총회에서 “백산수를 한국과 중국에서 1위 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농심은 중국 전역 백산수 매출을 오는 2025년까지 5000억 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백산수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생수 시장규모는 2017년 대비 13% 성장한 1조2000억 원대다. 2015년 이후 꾸준히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을 유지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3년에는 2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업계는 생수 시장을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보고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삼다수, 아이시스, 백산수 외에도 평창수(해태)가 시장점유율 4.5%를 차지하며 뒤따르고 있고, 강원평창수와 휘오(코카콜라), 석수(하이트진로), 동원샘물(동원F&B), 풀무원샘물(풀무원)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이마트 등 유통 업체 자체 브랜드(PB) 생수까지 가세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내로 생수 경쟁에 참여하는 업체도 두 군데다. 먼저 오리온은 제주 용암해수산업단지에 29,752㎡(약 9000평)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미네랄 함량이 높은 생수를 판매할 예정이다. 신세계푸드도 지난 2016년 12월 경기 가평군에 있는 생수 제조업체 제이원을 인수해 공장을 보수 완료한 뒤 올해 본격적으로 자사 브랜드와 OEM 제품을 생산, 판매할 계획이다.

    핸드백 속 생수 전쟁 치열

    수입산 프리미엄 생수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뉴스1]

    수입산 프리미엄 생수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뉴스1]

    점점 더워지는 날씨도 생수 업체들에는 호재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기상관측 사상 111년 만의 극심한 폭염을 경험한 바 있다. 폭염일수가 31일을 넘었고 서울 최고기온이 39.6℃를 기록할 정도로 최악의 폭염이 계속됐다. 기상청은 올해도 예년 못지않은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물 소비도 자연스럽게 늘 전망이다. 생수 업계는 건강을 생각해 탄산음료나 주스 대신 생수를 찾는 소비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한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생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핸드백 속 생수 전쟁’이 치열하다. 가방 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프리미엄’ 생수를 들고 다니며 수분 섭취에 공을 들이는 여성이 많아진 덕분이다. 

    연예인 등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진 생수 중에는 일반 생수 가격의 3~4배를 뛰어넘는 것들도 있지만 그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 손에는 반려견의 목줄을, 또 한 손에는 고가의 생수병을 들고 조깅하는 할리우드 셀럽의 사진은 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최근 생수 업체들은 해외 생수 수입을 늘리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판되는 수입 생수 브랜드는 70여 개에 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천연 미네랄, 비타민, 천연 암반수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슈퍼푸드로 불리는 항산화제 아사이베리가 포함됐다거나, 천연 과일·허브향이 첨가돼 목 넘김이 좋다는 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코코넛생수 마니아인 30대 여성 직장인 최모 씨는 “나만의 작은 사치로 출퇴근 길에 코코넛생수를 한 병씩 사서 마신다. 필라테스 등 운동 후에 물을 마시면 온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내 생수 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80년대까지는 주로 수돗물을 끓여 보리차나 결명자차 등을 마셨다. 한때는 티백으로 우린 차를 물처럼 마시는 게 유행이었다. 당시 정부는 국민들이 수돗물을 깨끗하지 않다고 인식할까봐 생수산업을 강제로 막았다. 그러다 1994년 ‘먹는 물 시판 금지’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나오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1995년 1월 ‘먹는 물 관리법’이 제정됐고 본격적으로 생수 시장 문이 열렸다. 첫해 약 600억 원 규모이던 생수 시장은 이후 연평균 10% 안팎의 빠른 성장률을 보이며 지금까지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작은 페트병 소비는 많지 않았다. ‘생수’라고 하면 으레 사무실이나 식당에서 먹는 ‘업소용’을 떠올렸다. 그러다 2011년 페트병이 처음으로 생수 시장의 절반 이상(54.1%)을 차지했다. 위생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집에서도 생수를 마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기 전용 물도 출시됐다. 분유와 이유식을 먹는 영유아를 위한 물로 매일유업의 ‘매일 첫 워터’가 대표적이다. 

    생수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건강과 웰빙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물은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먹거리인 만큼 향후 생수 시장의 고급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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