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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963년 전두환·노태우 쿠데타 음모 옐로카드<신상카드> 기록하려다 무산”

25년 만에 ‘신동아’ 手記 연재 재개 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1963년 전두환·노태우 쿠데타 음모 옐로카드<신상카드> 기록하려다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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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하나회 진술해달라”

“1963년 전두환·노태우 쿠데타 음모 옐로카드<신상카드> 기록하려다 무산”

1991년 신동아 9월호에 실린 김충립의 수기(위)와 연재 이후 살해 협박 소식을 다룬 동아일보 9월 3일자 사회면. 지호영 기자

▼ 그 후 YS가 집권했고 하나회 척결이 이뤄졌다.
“신동아 수기 연재가 하나회 척결 공론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YS 당선 후 내가 미국에 있을 때 검찰에서 전화가 왔다. ‘귀국해서 하나회와 관련된 진술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
▼ 어떻게 했나.
“나는 ‘쓴 그대로다. 만약 (누군가가) 내 수기의 내용에 대해 부정하거나, 검찰이 조사하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나가겠다’고 했다. YS는 군을 잘 모르니까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 취임 열흘 남짓 지났을 때 (권영해) 국방장관을 불러 곧바로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을 바꾸고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으니…. 이후 ‘5·24 숙군’이라고 불리는 군 고위직 인사를 통해 하나회 회원들 중 3성 장군 이상 전원과 소장급 일부가 군복을 벗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나회 파워를 모르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아는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거다.”
▼ 왜 그렇게 보나.
“나는 그들을 잘 안다. 부부동반 모임에도 매월 참석했을 만큼 가까웠다. 사전에 (하나회 척결 계획이) 알려졌다면 쿠데타가 났을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나회 출신 인사에게서 직접 들었다. 수도경비사령관 등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대전복(對顚覆)부대 지휘관이 전부 하나회 핵심 인사였으니까.”
▼ 25년이 지나 다시 입을 여는 이유는.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음모와 암투가 잘못 알려졌거나, 여전히 진실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하나회 세력은 왜곡되게 그려진다. 만추(晩秋)의 나이에 내가 아는 기록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글이 동서화합과 화민일국(和民一國)의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그가 작성한 수기는 A4 용지 200장 분량이다. 수기와 함께 건넨 서류봉투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써내려간 A4 50매 분량의 누렇게 해진 메모 기록, 사실 확인과 관련된 수천 통의 전화기록이 담겨 있었다. 편지지 위에 급하게 흘려쓴 메모도 눈에 띄었다. 그는 역사의 갈림길에 선 당시 상황을 기록에 남겼고, 이를 다시 확인하면서 수기를 썼다고 했다.



全 “왜 당신만 반대하나”

▼ 하나회가 어떻게 왜곡됐다는 건가.
“5·18에 대해 군인이 폭동을 제압했다는 명분을 세우고, 군인으로 정당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5공 세력은 1980년 1월부터 집권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고 정국은 핵심세력이 기획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그들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사안도 인정하지 않는다.”
▼ 시나리오에 의한 계획?   
“1979년 12·12 사건 이전까지는 신군부에 집권 의지가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를 잡아들일 때만 해도 그저 사건을 매듭짓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때까진 정권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 1월이 되면서 전두환 소장을 대통령으로 만들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12·12를 수습한 뒤 이듬해 1월 보안사령부 내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나는 ‘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 같은 의견을 낸 보안부대원이 많았나.
“며칠 후 보안사령관실로 불려갔다. 그 자리에서 전두환 사령관은 ‘모두 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데, 당신만 ‘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지. 이유가 뭔가?’ 하고 물었다. 나는 ‘순리대로 돌아가 국민이 원할 때 나서라’고 했다.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을 중심으로 합동수사본부와 하나회 회원들이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에 합의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초단기 집권 시나리오였다. 2월에는 창당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 지시를 받고 내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3, 4월엔 전두환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중앙정보부장(서리)을 겸직했다. 이후 이어진 언론 통폐합, 대장 승진, 대통령 취임 등은 모두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인가. 그는 1989년 ‘5공 청문회’에서 “당시에는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아니다. 나는 수경사 보안반장, 특전사 보안반장, 정호용 특전사령관 정보보좌관으로 일했기에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중앙정보부, 보안사, 계엄사 등 모든 정보기관 첩보를 받아 매일 정호용 사령관에게 요약 보고했다. 여러 곳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통해 전두환 소장을 옹립해 정권 창출에 나서리라는 걸 인지했다.”



“하나회 건드렸다 어쩌려고…”

“1963년 전두환·노태우 쿠데타 음모 옐로카드<신상카드> 기록하려다 무산”

김충립 씨가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해놓은 메모. 지호영 기자

김 전 반장은 1988년 11월 국회 문화공보위 언론 통폐합 청문회 증인 요청을 받자 급거 귀국해 언론 통폐합 상황을 국회에서 증언했다. 그가 “언론 통폐합은 허문도 씨가 주도했고, 정호용 장군은 반대했다”고 증언함으로써 1주일간 갑론을박하던 청문회는 종결됐다. 이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7년 신군부 등장 후 보안사가 언론인 강제 해직과 통폐합을 주도한 ‘언론반’을 설치했다는 근거 문서인 ‘언론조종반 운영계획’을 처음 확인했다. 언론인 회유공작 계획인 ‘케이(K)-공작’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결재를 받아 시행됐다고 밝혔다.
“나는 전두환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이고, 수경사와 특전사의 보안반장은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자리였다. 모든 정보를 꿰고 있었기에 내게 ‘음모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12·12 당시 쿠데타를 진압하려는 김오랑 소령이 총탄에 쓰러진 것을 보고는 마음이 돌아섰다. 김 소령은 착하고 정직한 군인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김 소령 관련 일화도 수기에 쓸 것이다.”
▼ 보안반장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뭔가.
“굵직한 사건 뒤에는 대부분 음모와 암투가 있었다. 1963년 ‘4대 의혹사건(김종필 등 육사 8기들이 공화당 창당 준비를 하면서 정치자금을 조성하려 벌인 사건, 자세한 내용은 수기 참조)’이 터지자 당시 노태우 대위, 전두환 소령 등 육사 11기들이 육사 8기생 40여 명을 제거하기 위한 쿠데타를 모의했다. 1963년 7월 6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후배 장교들의 가담을 종용하던 중 음모가 발각돼 정승화 방첩부대장 지시로 구속 조사를 받았다.”
▼ 당시는 보안사에 근무하기 전인데.
“1974~75년 청와대의 지시로 보안사 대전복계에서 대령급 이상 장교 800여 명의 신상카드인 일명 ‘옐로카드’를 작성했다. 장군 1명의 존안자료를 차곡차곡 쌓으면 높이 50cm가 넘었다. 그 기록을 대통령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한 장에 담는 작업이었다. 내가 주도해 직원 5명과 시작했다. 그때 모 장군의 존안자료에서 관련 기록을 찾았고, 쿠데타 음모 기록을 옐로카드에 쓰려 했지만 상관의 지시로 뺐다. 상관은 ‘훈방으로 끝난 사건이고, 하나회 회원을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 그러느냐’고 만류했다. 쿠데타 음모 확인 작업도 했다. 지금도 내가 만든 ‘옐로카드’는 기무사령부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안다. 사실, (전두환·노태우가) 대통령이 됐으니 유야무야 됐지, 쿠데타 음모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리고 윤필용 사건도 중요하다. 젊고 유능한 장교 30여 명이 군에서 밀려났고, 중앙정보부에서도 30명의 우수한 공무원이 퇴직당했다. 그 공백을 김재규, 전두환 등이 메웠고, 결국 10·26과 신군부 등장으로 이어졌다. 한국 근현대사의 전환점이었다.”
1973년에 일어난 ‘윤필용 사건’은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게 쿠데타 음모설로 번져 윤 사령관과 손영길 준장 등 장교 30여 명이 횡령과 수뢰 혐의 등을 덮어쓰고 숙청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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