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이영미의 스포츠 ZOOM 人

“나는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타깃필드 ‘홈런왕’ 꿈꾸는 박병호

  • 미니애폴리스=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입력2016-01-06 18: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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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B 강속구? 타자는 적응하게 돼 있다”
    • “노력했고 준비했기에 기회 잡았다”
    • ‘밀당’ 하지 않고 계약서 도장 찍어
    박병호(30)의 이름 뒤에는 이제 넥센 히어로즈가 아닌 미네소타 트윈스라는 소속 팀이 뒤따른다. 지난 12월 2일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입단식을 마친 박병호는 LG 이후 또다시 ‘트윈스’ 팀과 인연을 맺으며 한국의 18번째 메이저리거가 됐다. 오랫동안 메이저리그를 꿈꿔왔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온 박병호는 입단 기자회견이 끝나자 단상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들고 “I want to win (a) championship(우승하고 싶다)”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KBO리그에서 4차례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른 박병호가 과연 메이저리그에서도 거포 본능을 발휘할까. 1285만 달러의 포스팅비를 주고 4년 연봉 1200만 달러에 박병호를 영입한 미네소타 트윈스(5년차 때는 옵션이 걸려 있고, 옵션이 행사되면 5년간 최대 1800만 달러가 지급된다). 트윈스맨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적응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다.



    “朴은 제 스윙을 할 줄 안다”

    12월 2일 오전 9시,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위치한 미네소타 트윈스 홈구장 ‘타깃필드’의 예매 창구. 비시즌이지만 창구 한 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한 중년여성이 창구 앞으로 다가서는 기자에게 친절한 미소를 띠며 “박(Park)의 기자회견을 보러 온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누군가가 당신을 목적지로 안내해줄 것”이라고 했다. 문을 열자 젊은 남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야구장 안으로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장 중 아름다운 구장 ‘빅 5’에 꼽히는 타깃필드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그라운드가 이방인을 반겼다.
    남자의 안내로 지하 2층에 마련된 프레스룸으로 들어섰다. 프레스룸은 미네소타 트윈스 클럽하우스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에 한국의 ‘홈런왕’ 박병호의 미네소타 입단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폭스스포츠에선 박병호의 입단식을 생중계하기 위해 방송장비를 설치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트윈스를 취재하는 지역신문 기자들도 하나둘 프레스룸으로 들어섰다.  
    9시 55분. 프레스룸 입구에 박병호와 구단 관계자들이 나타났다. 테리 라이언 단장과 마이크 래드클리프 부사장이 먼저 단상에 자리했고, 박병호와 에이전트 앨런 네로가 뒤를 따랐다. 박병호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져도 잔뜩 굳은 얼굴은 좀처럼 풀리질 않았다. 나중에 행사를 마치고 박병호에게 “왜 그렇게 표정이 굳었냐”고 묻자 “어휴, 엄청 긴장했어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막상 (기자회견) 단상에 오르니까 많이 떨리더라고요”라고 털어놨다.
    현지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메이저리그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메이저리그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한국 리그에서 흔치 않은 95마일(시속 153km) 강속구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 등 한국에서의 과거보다는 미네소타 선수로 활약하게 될 박병호의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낮은 연봉에 ‘폭발’한 팬들

    이에 대해 박병호는 자신감 있는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에 대응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타자는 투수에 반응하게 돼 있다. (공을) 많이 보면 적응할 것이다”라고 주저 없이 답한 것이었다. 옆에 있던 테리 라이언 미네소타 단장도 “어떤 선수에게나 과도기가 있다. 박병호는 제 스윙을 할 줄 안다. 그는 19세가 아니라 29세다”라며 신뢰를 보냈다.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오랫동안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회화 공부를 위해 개인교사를 뒀을 정도다. 넥센에서 팀 내 외국인 선수들과의 의사소통도 박병호가 ‘톱’이었다. 그러나 트윈스 입단식에선 한국어로만 답했다. 옆에 통역이 있기도 했지만, 행여 본의 아니게 잘못된 표현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터라 영어를 입 밖에 꺼내지 않은 것이다.  


    현지 언론이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적응에 대해 관심을 뒀다면 한국에서 간 기자들은 주로 계약 내용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박병호의 계약조건과 관련해 열이 받은 한국 야구팬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발하는 마당에 박병호가 어떤 형태로든 설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들어오기 전, 에이전트를 통해 기간과 액수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조건을 받아들였기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한국의 많은 팬이 연봉 액수에 대해 아쉬워한다고 들었다. 분명한 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했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메이저리그에 아무나 오는 건 아니지 않나. 이곳에 오고 싶다고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그 점을 높이 생각했다. 메이저리그의 문을 여는 게 무엇보다 더 중요했고, 그 문을 열 수 있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금액이라 해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사인할 때 기분 좋게 했다.”
    박병호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그랬다. 박병호도 예상보다 작은 금액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이른바 ‘밀당’을 하지 않았다. 류현진처럼 계약 종료 몇 분을 남겨 놓고 모험을 거는 제스처도 피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앞세웠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응한 것이다.


    박병호 묻고, 추신수 답하다

    박병호는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타격 폼을 수정했다는 얘기도 전했다. 추신수는 이와 관련해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줬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패스트볼을 바로 던지지 않는다. 대부분 싱커나 커터를 곁들인다. 커터 같은 경우는 들어오는 궤적이 패스트볼과 비슷하다가 마지막에 살짝 움직인다. 그걸 잡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싱커도 몸쪽 싱커가 들어오면 피하다가 이게 싱커인지 투심인지도 모르고 그냥 당하게 된다. 요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특징이다.”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지난 스프링캠프 동안 1루수 박병호에게 3루 수비 연습을 병행하라고 주문했다. 연습경기 때도 일부러 3루 수비를 맡겼다. 박병호를 보러 온 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 박병호는 ‘1루뿐만 아니라 3루 수비도 가능한 선수’라는 걸 증명하려 한 것이다. ‘멀티 플레이어’를 선호하는 메이저리그의 입맛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예민한 병호 씨

    이에 대해 박병호는 “3루 수비 연습을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다. LG 시절에도 3루를 봤고, 넥센에서도 3루 펑고 연습을 했다. 내가 3루 수비에 적합하냐 아니냐는 스카우터들이 판단할 몫이다. 나로선 꼭 해외 진출이 아니더라도 1루와 3루를 겸업할 수 있다면 야구에서 더 도움이 된다고 봤다”고 털어놨다.
    미네소타의 폴 몰리터 감독은 박병호에게 지명타자와 1루수를 번갈아 맡기겠다고 밝히면서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스프링캠프 기간 우리는 그가 적응 과정에서 어떤 절망을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에 대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게 몰리터 감독의 생각이다.
    강정호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터라 박병호 입단식에선 유독 강정호의 이름이 여러 차례 거론됐다. 2016년 시즌에도 박병호는 강정호와 패키지처럼 묶여 비교될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KBO리그 야수 출신으로 두 선수의 활약은 더할 나위 없는 ‘샘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정호와 박병호는 다르다. 야구 스타일에서도, 생활 방식에서도 차이가 많다. 강정호는 ‘류현진과’다. 때론 무심한 듯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면이 많다. 피츠버그 선수들과 처음 대면한 스프링캠프에서 앤드루 매커친 등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먼저 다가가 ‘형’ ‘안녕’ 같은 호칭과 인사말을 가르쳤고, 시즌 초 더그아웃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선수들과 춤을 추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한국에선 나도 인기 스타였다”고 하도 자랑을 해 별명이 ‘강스타’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박병호는 추신수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야구에 대해 모범생이고, 성실과 노력이 그의 인생을 대변한다. 성격이 예민한 부분도 닮았다. 가끔은 예민함을 내려놓고 류현진, 강정호처럼 넉살 좋게 주변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메이저리그 적응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박병호는 이에 대해 “미네소타 트윈스 입단을 앞두고 많은 선후배로부터 조언과 격려의 메시지를 받았다”면서 “하루빨리 이곳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선수들을 알아갈 것이다. 잘 해낼 자신이 있다. 좋은 마음으로 지켜봐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LG 2군 6년의 내공

    박병호는 입단식을 마친 뒤에도 미니애폴리스에 남았다. 가족이 살 집을 구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 집을 보러 다니며 미니애폴리스란 도시의 깊이를 느끼는 중이다. 입단식 이후 현지 언론은 물론 국내에서도 박병호의 활약에 대해 다양한 예상과 추측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긍정적인 기사, 부정적인 기사가 섞여 있는데 기자는 박병호가 들려준 얘기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그의 성공을 예측해본다.
    “LG 시절 2군에서 6년을 보낸 후 넥센에 와서 제일 놀라웠던 건 매일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그 후론 어떻게 해서라도 이 자리만큼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트레이드 되던 해에 잔여 경기를 다 뛰었고, 이후 3년간 전 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을 때는 붕대를 감고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그렇게 한 것은 매일 타석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제대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박병호가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한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는 것이다. 노력했기에, 준비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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