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美·中 통상마찰 장기화, 세계경제 대참사 전조?

“트럼프 임기 끝나도 중국 때리기 계속”

  •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inkyo@inha.ac.kr

    입력2019-06-24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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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20 회의서 미·중 통상 현안 해소 어려울 듯

    • 통상 분쟁? 미국이 중국을 일방적으로 때리는 구조

    • 美 요구는 中 체제 문제와 결부, 中이 수용키 어려워

    • 시진핑 ‘일대일로’, 미국 경계로 속도 조절 불가피

    • 트럼프 집권 후 ‘세계통상 무질서 시대’ 도래

    • WTO는 내년부터 사실상 사망선고 받게 될 것

    • 韓 경제 수뇌부, 최악 상황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5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루이지애나주 핵베리의 캐머런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기지를 방문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을 겨냥해  “미국은 더는 ‘돼지저금통’이 아니다”라고 썼다. [AP=뉴시스]

    5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루이지애나주 핵베리의 캐머런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기지를 방문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을 겨냥해 “미국은 더는 ‘돼지저금통’이 아니다”라고 썼다. [AP=뉴시스]

    오는 6월 28~29일로 예정된 오사카 세계 주요국 정상회의(G20) 기간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의를 한다. 하지만 양국 간 통상 현안을 해소할 해법에 양 정상이 합의하기는 어렵다.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미·중 통상 마찰을 1980년대 미일 통상 분쟁과 비교하기도 하나 차원이 다른 것으로 봐야 한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은 미국의 무역수지 불균형 개선 요구를 버티기 어려웠다. 당시는 미·소 간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은 컸다. 일본은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엔화 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플라자 합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당시 국제정세를 반영한다. 달러당 260엔이던 환율은 1년 후 120엔으로 조정됐고 일본 경제는 30년간 침체를 겪었다.

    결사항전과 협상의 달인

    일본과 달리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저항할 수 있는 경제안보 및 지경학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최근 둔화하고는 있지만 중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미국 경제 규모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구매력(PPP) 기준으로는 이미 미국을 능가했다. 이에 미국에 맞설 수 있고 세계 패권을 넘볼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3조1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에다 막대한 구매력을 활용해 미·중 분쟁에서 자국을 지지하도록 통상외교전도 펼 수 있다. 

    러시아가 중국 편을 드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몇몇 국가는 중국의 수조원 대 ‘일대일로 프로젝트’ 카드에 홀리고 있다. 중국은 일본에 비해 산업 발전 단계는 낮으나 광대한 영토와 자원 덕에 국민경제 자급도가 높다.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다. 

    또 중국은 미·북 협상 국면에서 북한과 협의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협상 국면에서 중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중국은 가끔 북한 카드로 미국의 통상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애초 중국 당국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연구했다. 그간 미국의 대중국 통상정책 결정 과정에서 경제이익파와 국가이익파가 대립했으나 늘 경제이익파의 정책이 채택돼왔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라는 점에 주목했다. 적절한 수준에서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려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는 방식을 통해 장기적으로 버티면 자신들이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봤다. 또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라는 예외적인 지도자의 개인적 발상이라고 파악했다. 더불어 중국은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은 길어야 8년이므로 무역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중국에 유리한 정치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뮬러 특검’이 러시아 게이트를 조사하고 있었다. 중국은 경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중도하차할 수 있을 것으로도 예상했다. 중국은 미국 민심을 흔들기 위해 트럼프 지지층인 농민의 관심 품목인 대두와 돼지고기 수입 중단을 결정하기도 했다.

    301조와 232조

    이러한 점을 종합해 2018년 여름 중국 수뇌부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결사항전을 결정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 전·현직 수뇌부가 베이징 동쪽 베이다이허에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의 평가처럼 ‘협상의 달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대응을 예견하고 대중국 무역제재를 포괄적이고 장기전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중국의 전략적 장점을 약화시키고 있다. 저서 ‘협상의 기술’에서 스스로 내비치고 있듯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협상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불균형 해소에 한정해 논의하고자 한다. 미국은 무역 이슈에서 기술탈취 방지, 지식재산권 보장, 국영기업 보조금, 환율정책의 투명성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며 중국의 방어막을 무력화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이란 제재 위반을 이유로 캐나다에 도착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구금한 데 이어, 5G 설비에 보안 백도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反)화웨이 국제연대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초기만 해도 중국이 보복하면서 전세가 유사한 것으로 보였다. 한데 시간이 갈수록 중국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미·중 간 통상 분쟁이 아니라 미국이 일방적으로 때리는 구조다. 미국이 요구하는 사항은 중국의 사회주의 정치체제와도 결부돼 있어 중국이 수용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미·중 통상마찰은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미국이 강제기술이전 금지와 지식재산권 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중국제조 2025’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 시절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면서 ‘제조업굴기’를 추진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제조 2025’를 산업정책으로 내걸고 대대적인 제조업 육성에 나섰다. 로봇, 바이오, 우주항공, 인공지능 등 미래산업에서 2025년까지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2045년에는 미국을 제쳐 세계 최대 제조업 강국으로 발전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중국에는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낼 정도로 과학기술 수준이 우수한 분야도 있다. 하지만 다른 미래산업에서는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중국제조 2025 목표 달성에 나서는 과정에서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이 미흡하다는 점을 들어 5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상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발표해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이에 중국도 대등한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의 보복 조치에 트럼프 대통령은 2000억 달러 추가 조치를 지시하고, 또다시 보복할 경우 3250억 달러어치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할 것임을 밝혔다.

    최대 무기는 미국 국내법

    5월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자기 문명을 우월하게 여기면서 다른 문명을 개조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미국을 비판했다. [AP=뉴시스]

    5월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자기 문명을 우월하게 여기면서 다른 문명을 개조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미국을 비판했다. [AP=뉴시스]

    대중국 정책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무기는 미국 국내법이다. 미국은 지식재산권 위반을 이유로 스페셜 301조를 발동해 고율(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또 1962년 제정된 무역확대법 232조(통상안보규정)를 발동해 세계 모든 수출국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232조는 미국의 국가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긴급히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지난해 미국은 이미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에 대해 232조를 발동해 그 위력을 국내외에 과시했다. 지난 5월 상무부가 권고한 ‘자동차에 대한 232조 조치’를 올 연말까지 연기한 것은 중국 제재와 연관돼 있다. 중국산 자동차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EU), 일본 등이 반(反)중국 국제연대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지렛대로 232조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중은 부에노스아이레스 G20 정상회의에서 6개월의 일시 휴전과 무역협상에 합의했다. 무역 불균형보다는 중국의 통상제도 개혁을 요구한다는 점을 인식한 중국이 시간을 벌기 위해 미국에 휴전을 제안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1조 달러 상당의 미국 상품 수입안을 제시해 미국의 반응을 살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대중국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온건파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대신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타이저 미국무역대표(USTR)를 대중국 협상의 수석대표로 임명해 중국을 확실히 압박하도록 요구했다. 11차례 협상으로 양측은 만족할 만한 합의안에 도달했다. 

    하지만 서명을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 내에서 협상안에 반대하는 기류가 형성됐다. 중국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한 검증위원회를 구성하며, 만약 중국이 합의사항을 위반할 경우 미국이 언제든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을 내정 간섭으로 받아들였다. 중국은 자국에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수십 페이지 분량의 합의 내용을 삭제해 미국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양국 간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더구나 통상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스페셜 301조 발동으로 부과한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양국 간 인식 차이가 있다. 중국의 류허 수석대표는 당장의 관세 부과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산 수입 확대에 중점을 뒀을 수 있다. 장기적 부담으로 여겨지는 ‘검증’ 등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썼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제도의 구체적 개선과 검증을 중시하고, 상대국의 불성실한 조치에 대해 언제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즉 효율성을 담보하는 절차와 과정에 협상력을 집중했다.

    설사 민주당으로 정권 바뀌더라도

    5월 9, 10일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미·중 무역협상을 진행한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가 10일 워싱턴 미 무역대표부(USTR) 건물을 떠나며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오른쪽)와 대화하고 있다. [AP=뉴시스]

    5월 9, 10일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미·중 무역협상을 진행한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가 10일 워싱턴 미 무역대표부(USTR) 건물을 떠나며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오른쪽)와 대화하고 있다. [AP=뉴시스]

    또한 중국의 전략적 실패도 엿볼 수 있다. 중국은 시간이 자신들 편이라고 인식하고 트럼프 대통령 임기만 잘 넘기면 될 것으로 내다봤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장 8년 임기의 대통령이다. 이에 중국은 미국이 단기적 성과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 방안을 준비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미국 여야 정당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 설사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대중국 정책이 변경될 가능성은 낮다. 

    트럼프 대통령이 2500만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미국 안에서는 수입물가 인상, 중간재 수요 기업의 경영 애로 가중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전체의 중장기 이해관계로 보면 자신의 정책은 국익과 부합하며, 선거 전략으로도 불리할 것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 반대론자들은 소수이고 다수는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확신한다. 일부 언론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부정적이지만, 반대 강도는 점진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부지역 농민(대두, 돼지고기 등)의 피해를 보상할 연방정부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피해 보상 및 반대론 확산에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매년 1000억 달러의 관세수입을 거둬 농가와 소비자 손실을 보상할 것임을 트위터로 흘리고 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인상 지시에 대해 중국은 맞대응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중국 국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왕조시대 중화민족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취지의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운 시진핑 정부가 미국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로 미국산 대두와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했지만 중국의 물가 인상과 수급 상황 악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품목은 중국 국민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이다. 현재 중국에 광범위하게 퍼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국내 공급망에까지 차질이 생길 경우 수급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친선의 길이냐 TPP 맞대응이냐

    1980년대 하반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전략을 수립했다. 골자는 이렇다. 저부가가치 산업은 해외 개도국으로 이전하고, 미국은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서비스업, 지식재산 로열티 등에 특화함으로써 경제구조를 업그레이드해 세계경제 발전을 선도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구상하에 미국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 극복에 중국이 소방수로 나서면서 미국은 자국 중심의 일극주의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위기 수습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추진했다. 2015년 말 타결된 TPP 협정 서명에 즈음해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 타결을 반기면서 이제 중국이 아태 지역에서 자국 중심의 무역 질서를 형성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이 패권 약화를 우려할 만한 요인은 중국에서도 나왔다. 덩샤오핑 주석은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들에게 향후 100년 동안 중국은 미국 등 강대국과 경쟁구도를 만들기 보다는 국력 강화에 노력해야 할 것임을 유훈으로 남겼다. 즉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힘과 실력을 기른다)를 주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쩌민 국가주석에 이어 집권한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의 굴기를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은 세계 질서에서 중국의 역할과 위상 확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두고 ‘고대 실크로드가 동서양의 문물 교류, 평화와 친선의 길이었고 일대일로는 이를 현대적 개념으로 실현해나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추진된 전략임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립하고 50개 이상의 국가를 출자국으로 참여시켰다. 일대일로는 세계 주요 통상 경로에서 격리돼 있는 국가의 통상물류 인프라를 건설해주고, 개도국의 글로벌 통상체제 참여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격리된 지역에 구축된 대규모 물류 인프라가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스리랑카 등 일대일로 참여 국가들이 막대한 공사비 부담으로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에 이들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자금을 신청하자 IMF 대출 결정 권한을 가진 미국은 일대일로 관련 자금 제공을 전면 불허했다. 

    그리고 2018년 11월 허드슨연구소 특강을 계기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부당성을 강도 높게 지적했다. 또 파푸아뉴기니 APEC 정상회의에서 펜스 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설전을 벌였고, 일대일로를 ‘쌍방향 길이 아닌 중국의 일방통로’라고 주장했다. 일대일로에 대한 미국의 불만과 우려를 여과 없이 쏟아낸 것이다. 미국의 IMF 대출 개입과 경계경보 발령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통상은 무질서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통령의 트윗으로 수천억 달러 상품에 대한 관세가 정상적 절차를 생략한 채 부과되고 있다. 미국이 임기가 끝난 상소기구 위원의 재임용을 반대하면서 내년이면 WTO 상소기구의 역할이 중지된다. 상소기구는 무역분쟁에 대한 WTO의 최고 심판기구다. 상소기구 활동 중단으로 일방적인 무역제재에 대해 WTO에 제소할 수도 없게 된다.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중단으로 WTO 입법 기능은 이미 상실됐기에 내년부터 WTO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하방 압박과 경제위기

    고로 중국뿐 아니라 세계가 우려해야 할 사항은 미국의 WTO 무력화 전략이다. 2016년 미 대선 과정에서 WTO 탈퇴를 언급할 때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미·중 통상마찰이 격화하는 와중에 미국이 내놓은 대중국 전략과 연계해 곱씹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고도로 계산된 전략의 결과였다. 

    미중 통상마찰은 이미 장기화의 길로 들어섰다. 각국은 무역전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올해 국내에 발간된 저서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에서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는 조만간 세계경제에 큰 위기가 닥칠 수 있고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얽히면 어마어마한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중 통상마찰은 당사국 간 문제를 넘어 세계 모든 국가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과 대외지향적인 정책으로 성장했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중은 각기 자국 편에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 마땅한 해법이 없을 뿐 아니라 어느 한 국가에 줄을 설 수도 없다. 향후 무역 질서에 대한 전망 자체가 불투명하다. 미·중 공히 우리나라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다. 우리나라와는 생산 네트워크와 글로벌밸류체인(GVC)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 

    최근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는 “외부 환경 악화로 우리 경제가 하방압박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작 경제위기 수준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짐 로저스와는 전망이 사뭇 다르다. 지금이라도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 경제를 진단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 1961년 출생
    ●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美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석·박사
    ● 인하대 대외부총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외교통상부, 산업통상자원부 자문위원
    ● 現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저서 : ‘FTA통상론’ ‘동아시아 경제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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