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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는 ‘문 앞 배송’의 이면

“아파트 공동현관문 비번 버젓이 돌아다닌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요즘 뜨는 ‘문 앞 배송’의 이면

  • ● 새벽 배송, ‘N잡러’ 사이에서 인기
    ● 느슨한 배송업자 신원 확인 시스템, 대면 확인 않는 곳도 있어
    ● 새벽 배송 시 아파트 공동현관 ‘마스터키’로 자유롭게 들락날락
    ● 보안 허술해지면 주거침입 범죄 늘어날 수도
요즘 뜨는 ‘문 앞 배송’의 이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월급쟁이들의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 그래서인지 ‘투잡’으로 눈을 돌리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최근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08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0.8%가 ‘현재 투잡 중’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투잡을 넘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N잡러’도 유행이다. 한 직장에서만 일해 돈을 버는 전통적 일자리 개념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 배경에는 디지털 플랫폼의 활성화가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쉽고 간편하게 단기 계약을 맺어 일하는 시스템으로, 흔히 ‘긱잡(gig job)’ 혹은 ‘알고리즘 노동’이라 한다. 

최근 직장인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투잡은 ‘쿠팡 플렉스’다. 온라인 유통업계 1위 쿠팡이 지난해 8월 말 개시한 ‘일반인 택배 배송 서비스’로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어 ‘공유경제형 일자리’로 여겨진다. 쿠팡 플렉스에 가입한 ‘플렉서’가 하는 일은 쿠팡맨과 같지만 쿠팡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배송차량도 개인이 직접 준비한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아파트 단지로 가져다주는 물품을 도보로 배달해주는 도보배송은 차량이 필요 없다. 

쿠팡 플렉스는 근무 외 시간을 이용해 부수입을 얻으려는 젊은 층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낮 시간을 이용해 아르바이트하려는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신청과 교육정보 등 공지 사항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구글 폼 등 디지털 기반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때문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 현재 플렉서로 활동하는 인원은 10만 명이 넘는다. 

배송 업무는 크게 주간배송·당일배송·새벽배송 세 가지로 나뉜다. 주간배송은 특정 지역을 맡아 배송하는 방식이고 당일배송은 여러 지역을 돌며 소량을 배송하는 방식이다. 또 새벽배송은 새벽 2시30분부터 시작해 오전 7시까지 배송을 마친다. 잘만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유경제형 일자리가 맞다.




간편하지만 위험한 플렉스 가입 시스템

쿠팡 플렉스의 배송 업무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홍중식 기자]

쿠팡 플렉스의 배송 업무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홍중식 기자]

하지만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쿠팡 플렉스 가입 시 대면 신원 확인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플렉서로 활동하기 위한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스마트폰에 쿠팡 플렉스 앱을 설치하고 이름과 전화번호, 주민번호 등을 입력하면 된다. 이후 배송업무위탁계약·개인정보처리업무위탁계약·보안확약서·개인정보처리방침안내·방문자안전수칙동의서 등 5가지 계약 내용에 체크한 뒤 원하는 배송 장소와 시간을 선택하고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쿠팡맨 채용’이란 아이디의 관리자로부터 배송자로 선정됐다는 카톡을 받으면 시간에 맞춰 배송 물량이 모여 있는 캠프로 이동해 차량에 물건을 실은 뒤 배송지로 출발하면 된다. 

문제는 쿠팡 플렉스에 입력한 플렉서의 개인정보가 실제 배송자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요즘 누군가 주민번호를 도용해 플렉서로 활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처음 플렉서로 활동하는 사람의 경우 캠프에서 신분증을 보고 신원을 확인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다는 게 현장 플렉서들의 주장이다. 내부 규정상 신임 플렉서는 신분증과 실물을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일부 지역에서 이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있다는 것. 지난 4월 처음 플렉서 활동을 시작한 최모 씨는 “서울 강남 OO캠프에서 기프트(배송 물건)를 처음 받아 배송했는데, 쿠팡 측 관계자가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플렉서 김모 씨도 “현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와서 북적이기 때문에 관리자들도 신분증 확인할 정신이 없다. 나 역시 신분증 확인 절차를 밟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때 플렉서 단톡방에 비번 올라가

일반 택배 및 새벽 배송이 늘어나면서 공동주거 공간 보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뉴스1]

일반 택배 및 새벽 배송이 늘어나면서 공동주거 공간 보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뉴스1]

신분 도용이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 플렉서 중 상당수가 야간에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혹시 모를 범죄가 일어났을 때 신분을 속이고 플렉서에 등록한 경우라면 용의자 확인 단계에서부터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서울 중랑구에서 플렉서로 활동 중인 이모 씨는 “케이뱅크 같은 인터넷은행도 비대면 가입을 선호하지만 신분 확인 절차만큼은 영상통화로 이뤄진다. 가입자 처지에서는 100% 비대면이 훨씬 편하긴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집을 방문하는 플렉서들은 영상통화 정도의 확인 절차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쿠팡 플렉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들어 유통업체들의 새벽배송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야간 택배량의 증가로 보안 문제를 우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파트의 공동현관문이 수시로 열리는 상황 자체가 보안에 취약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벽배송의 성장세는 기업의 매출 확대와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실제로 새벽배송이 등장한 후 온라인을 통한 식품 구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식품거래액은 지난해 13조19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8.2% 성장했다. 

이 중 농축수산물 거래액은 2010년 6813억 원에서 2017년 2조650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가구당 식품 구매액도 오프라인은 2014년 468만5359원에서 2017년 464만516원으로 줄어든 반면 이 기간 온라인 구매액은 10만6097원에서 20만4062원으로 2배가량 늘었다. 현재 새벽배송을 실시하는 업체는 쿠팡을 비롯해 마켓컬리, 헬로네이처, 이마트, 롯데슈퍼 등이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택배 물량에 아파트, 연립 등 공동주택의 보안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온라인 주문 이용객 중에는 새벽배송을 이용하고 싶어도 아파트 공동현관의 비밀번호를 공개하는 게 꺼림칙해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야간 경비원이 없을 경우 새벽 시간 집 앞에 물건을 놓고 가기 위해서는 아파트 공동현관의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일부 택배 기사들 사이에서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플렉스 역시 한때 각 지역 플렉서들이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단톡방)에서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공유돼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마스터키 사용 허용하는 아파트들

올 초 플렉서로 잠시 활동한 직장인 곽모 씨는 “처음 플렉스에 가입하면 문자로 오픈채팅방 링크를 보내주는데, 그곳에서 서너 명의 쿠팡 직원과 200~300명의 플렉서가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았다. 가끔 경비실과 통화가 안 된다며 급하게 아파트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 쿠팡 측은 오픈채팅방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단톡방 대신 캠프별로 ‘플러스친구’를 만들어 플렉스 관리자와 1:1 채팅만 가능하게끔 한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공동현관 인터폰에 사인펜으로 비밀번호를 적어놓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SNS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아파트 공동현관 인터폰에 작은 글씨로 비밀번호가 적혀 있는 사진을 게시하면서 보안의 취약성을 호소하는 글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한편 유튜브 등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쿠팡 플렉스 체험 후기들 중에는, 새벽배송 ‘꿀팁’으로 ‘관리사무소에서 마스터키(공동현관 오픈 용)를 빌리라’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전후 상황을 모르는 일반인은 깜짝 놀랄 일이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플렉서들이 임의로 마스터키를 받는 게 아니라, 쿠팡과 사전에 협의한 아파트만 마스터키를 내주고 있다”고 해명했다. 

택배 기사들의 고충은 십분 이해하나 주거지역의 보안이 무력화되는 상황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도 문제고, 또 단지마다 비싼 돈을 주고 설치한 공동현관 자동문이 무용지물로 전락해버린 건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공동현관 보안 무너지면 가정 안전도 위험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공동주택의 보안이 허술해지면 그만큼 범죄의 표적이 될 개연성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배송업자가 아니어도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편리성과 보안을 맞바꾸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파트 공동현관은 엄연히 ‘1차 보안 방어선’으로 이곳의 보안이 무너지면 개별 가정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라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에 따르면 주거침입 발생 건수는 2013년 8268건에서 2017년 1만1829건으로 4년 만에 43.1% 증가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주거침입 발생 건수도 같은 기간 2119건에서 2282건으로 7.7% 늘었다. 집집마다 도어록 등 잠금장치가 있긴 하지만, 아파트 복도 등에 숨어 비밀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훔쳐보거나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북의 한 주택가에서는 20대 남성이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3일 만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경찰조사에서 “범행 일주일 전 계단에 숨어 여성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진술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2월 부산 해운대구에서는 아파트 복도 천장에 화재감지기로 위장한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입주민들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촬영한 40대 남성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주거침입은 성범죄나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주거침입 성범죄는 981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주거침입 강제추행이 483건(49.2%)으로 가장 많고, 주거침입 강간도 335건(34.1%)이나 된다. 

이종화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공동현관문의 보안을 무력화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소비자가 업체측에 비밀번호를 알려줬다고 해서 이를 다수가 공유하는 행위는 하루빨리 근절돼야 한다. 현관문 보안을 풀어놓거나 암묵적으로 공유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범죄 가능성은 커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동아 201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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