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황승경의 극과 인간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이 왜 탐욕의 화신인가”

  • lunapiena7@naver.com

    입력2019-07-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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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反유대 역사에서 탄생한 ‘베니스의 상인’

    •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미수 사건이 계기

    • 재판관 변장한 ‘포샤의 명판결’에 환호

    • ‘안토니오 vs 샤일록’ 권선징악, 지금도 유효할까

    상대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형사(民·刑事) 문제는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어떤 문제가 대화로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법원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고심 끝에 찾은 법원 재판관이 특정인과 결탁하거나 여론에 휩쓸려 판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 희대의 재판이 있다. 기독교도를 증오하는 원고는 정해진 기일까지 돈을 갚지 않은 한 기독교인을 고소한다. 당초 계약대로 심장과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원하는 원고(原告) 샤일록과 친구의 결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담보로 보증을 선 피고(被告)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 우리는 이 사건의 결말을 ‘재치와 지혜의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기막힌 명판결’로 기억한다. 그러나 샤일록은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고 절규한다. 당시 극도의 반(反)유대주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셰익스피어는 희곡 곳곳에 샤일록의 울분과 분노, 안토니오의 기만과 ‘내로남불’ 지도자의 불공정을 드러낸다.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박근형 연출·각색)은 400년도 더 된 당시 판결에 대해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볼 거냐고.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역사상 후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작가로 꼽힌다. 아마 셰익스피어 본인도 이렇게 오랫동안 인류에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예상 못했을 터. 흔히 소설로 생각하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희곡들은 하나같이 등장인물의 생생한 성격 묘사와 관객의 허를 찌르는 전개, 교묘하게 짜놓은 절정이 빛나는 걸작들이다. 셰익스피어는 런던 시내의 지식인 집안 출신이 아니라 런던에서 170km 가량 떨어진, 25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일반 가정의 아이들처럼 문법학교를 졸업했다. 책이 흔치 않던 시절에 교재로 쓰이던 고전문학(그리스 로마의 시, 산문, 비극, 희극이 총망라된 책)을 탐독했고, 이는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배어나온다.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shutterstock]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shutterstock]

    그는 케임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 출신 동료들처럼 수준 높은 ‘상아탑 학문’을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22세에 상경해 연극 현장에서 관객과 호흡하면서 대중의 진심을 사로잡는 극을 피부로 접할 수 있었다. 연극을 제작하면서 가끔 배우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 대다수는 기존에 있던 이야기를 재창작한 작품이었다. 다만, 전래 민담(民譚) 수준의 이야기에 탁월한 문체와 구성을 입혀 재창작했기에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는다고 해도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도 이탈리아 저술가 조반니 피오렌티노 경이 1378년에 지은 만담집 ‘페코로네’의 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베니스의 상인’ 공연이나 희곡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어릴 적 동화책이나 교과서에서 읽은 희곡 속 재판 내용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420여 년 동안 우리는 이를 비열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법 없이도 살 선량한 안토니오의 권선징악(勸善懲惡) 재판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종교적 약자인 샤일록이 무덤을 박차고 나올 정도로 억울한 ‘짜고 치는 고스톱’식 재판으로 볼 여지도 있다. 연출자 박근형은 탐욕의 상징으로 알려진 샤일록에 초점을 맞춰 셰익스피어 원작을 보편적 정서로 재해석해 샤일록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그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물질에 집착하고 무한한 물욕을 가진 샤일록을 우리와 오버랩시킨다.



    바사니오의 부탁, 샤일록의 조건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의 한 장면. [서울시뮤지컬단 제공]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의 한 장면. [서울시뮤지컬단 제공]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의 부탁을 받는다.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한 귀족 가문의 자제 바사니오는 벨몬트의 부자 상속녀 포샤에게 청혼하러 가기 위한 여비가 없었다. 결국 안토니오는 여비를 빌려주기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평소 반유대주의자 안토니오에게서 모멸감을 느껴온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제안에 특이한 조건을 내건다. 무이자로 돈을 빌려줄 테니 원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베어낸다’는 조건이었다. 안토니오는 흔쾌히 서명한다. 

    그러나 화물을 실은 자신의 배가 난파당하자 안토니오는 빚더미에 오르게 되고, 샤일록에게 빌린 돈 또한 갚을 수 없게 된다. 샤일록은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의 설움과 박해를 한 방에 날려버릴 차용증서를 들이밀며 엄중한 법 집행을 요구한다. 소식을 접한 바사니오도 황급히 돌아왔지만 친구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샤가 법정에 등장해 “살은 베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다. 판결을 이행할 수 없는 데다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위협한 경우 범인의 재산을 압수해 반은 국고(國庫)에, 반은 피해자에게 준다’는 외국인법에 따라 샤일록의 재산은 몰수되고 그리스도교로 강제 개종하라는 명령까지 받는다.  

    사촌인 법학자(재판관) 벨라리오로 변장한 포샤가 판결을 내린 만큼 공문서 위조 및 위계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어 그녀의 판결은 무효다. 뮤지컬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재판을 감독해야 할 베니스 공작은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샤일록을 “동정심도 없는 비정한 인물”이라 비난하고, 방청석의 베니스인들은 여론을 선동한다. 법정 한 귀퉁이에 앉은 샤일록의 유대인 친구들은 외면당한다. 샤일록은 ‘덫에 걸렸어’라는 노래를 통해 법에 호소하려는 힘없는 이교도가 결국에는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과 그 논리에 무너지는 고통과 아픔을 노래한다. 

    상처(喪妻)한 샤일록의 하나뿐인 혈육인 딸 제시카마저 안토니오의 친구 로렌조와 사랑의 도피를 하며 아버지를 버렸다. 샤일록은 복수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안토니오는 판결로 얻은 샤일록 재산의 절반을 ‘자비’라는 명목으로 샤일록의 딸 제시카와 그 사위 로렌조에게 주겠다고 한다. 

    샤일록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 인간 군상이다.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은 악을 징벌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는 무엇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지, 진정한 자비란 무엇인지 관객에 되묻고 있다. 다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연출의 강한 연극적 의지는 음악으로 휘몰아쳐야 하는데, 극적으로 상승하지 못하는 짧은 음악은 일순간 집중도를 떨어뜨려 아쉬움이 남는다.

    여왕 암살미수 주모자는 유대인

    유대인들은 11세기 중반 노르만 왕조 시기 영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다. 다른 중세 유럽 교회처럼 영국 교회도 교리상 기독교인들에게 고리대금업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유럽에서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기에 오로지 현금만 소유할 수 있었고, 제한된 거주지역(게토)에서 유대인 표시로 검은색 혹은 노란색 모자(카파)를 쓰고 낮에만 활동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럽에서 그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일거리는 고리대금업이었다. 이 ‘사각지대’에서 200년 동안 이교도 유대인들은 탁월한 성실함과 경제 감각으로 부를 누리며 영국 땅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75년 영국의 에드워드 1세는 자국의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인법을 만들어 고리대금업을 금지하고, 유대인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개종을 요구했다. 유대인들이 종교를 바꾸지 않자 영국 정부는 ‘경제를 교란시킨다’는 죄명으로 그들을 처형하고, 1290년 모든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했다.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린 영국 상공업자들의 빚은 한순간에 탕감되고, 도탄에 빠졌던 영국 경제는 단기 호황을 맛보게 된다. 

    그로부터 244년이 지난 1534년, 국왕 헨리 8세는 수장령을 내세워 성공회를 영국 국교로 선포하며 다시 유대인의 경제활동을 허용했다. 이후 영국의 유대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들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번창했다. 동시에 영국인들의 채무도 늘어만 갔다. 그러던 중 1594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암살미수사건이 일어나 영국을 경악게 했다. 주모자는 바로 여왕의 주치의였던 유대인 로드리고 로페스였다. 

    영국인들은 자국을 부강한 국가로 만든 여왕을 매우 사랑했으며, 나라의 태평성대를 위해 환갑이 넘은 여왕의 건강을 간절히 기원했다. 이 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안 그래도 유대인을 바라보는 삐뚤어진 시선을 더욱 왜곡시켰다.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듯,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 엘리트 극작가 그룹(University Wits)인 말로, 데커, 그린, 플레처, 모몬트의 희곡에서는 유대인 비하 문구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셰익스피어도 암살미수사건이 일어난 1594년과 1596년 사이에 ‘베니스의 상인’을 집필한다.  

    또한 영국은 1592년부터 1594년까지 페스트가 창궐해 20만 런던 시민 중에 2만 명가량이 희생되는 비상시국이었다. 1년이 넘도록 극장은 무기한 폐쇄됐고, 연극인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그러니 1594년 천신만고 끝에 극단에 들어간 셰익스피어는 왕성한 창작욕으로 야심만만하게 신작 집필에 박차를 가했다. ‘베니스의 상인’뿐 아니라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리처드 3세’ 모두 이 시기 작품이다.

    샤일록에 대한 재평가

    셰익스피어는 소작농의 자손으로 당시 영국은 중세 시대를 지나 근대의 태동기였다. 혼란스러운 시대 흐름을 파악한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은 소작농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워 구두나 장갑을 만들어 파는 잡화점을 열었다. 존은 타고난 처세술로 동네 유지로 급부상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셰익스피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능수능란한 화술과 세상을 살아가는 각기 다른 인간 군상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엘리트 출신 극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대인에게 접근하고 있다. 차별받는 유대인의 피맺힌 한과 설움을 샤일록의 대사로 구구절절하게 표현했다. 

    “그는 나를 모욕했지요. 내가 손해를 보면 나를 비웃었고, 내가 이익을 보면 나를 조롱했어요. 그는 내 민족을 경멸했다고요.” 

    셰익스피어는 베니스를 내세워 영국 사회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하고 해답을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뮤지컬은 ‘셰익스피어적 인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재판의 결과보다 원인에 집중하고 그 상처를 헤아린다. 난파당한 줄 알았던 안토니오의 상선이 물건을 가득 싣고서 베니스항에 정박하자, 그의 친구들은 ‘정의는 승리한다’고 환호한다. 하지만 관객은 그들의 행복에 박수 칠 수만은 없다. 안토니오가 과연 정의로운 인간인가?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유대인을 경멸할 것이라며 유대인을 멸시하는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뮤지컬은 절대적인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사회에 숨은 인과관계의 이중성을 과감하게 무대에 펼쳐 보이며 관객에게 묻는다. 합법적으로 돈에 집착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그가 당한 수모를 법리적으로 앙갚음하려는 샤일록을 사악한 탐욕의 화신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대표적 ‘문학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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