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굶지 않고 살 뺀다? 그 새빨간 거짓말

“노력 없는 체중 감량은 신기루”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7-0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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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출의 계절’을 맞아 다이어트 관련 시장이 활황세다. 특히 인기를 모으는 건 ‘고통 없이 살을 빼준다’는 제품들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각종 정보가 넘실거린다. 매일 꾸준히 먹기만 하면 살을 저절로 빼주는 물질이 정말 있을까. 부작용은 없을까.
    식단 조절과 운동, 체중 감량의 만능열쇠다. 문제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점이다. 굶지 않고, 운동하지 않고도 부작용 없이 살을 빼는 건 많은 이의 꿈이다. 최근 이것을 약속하는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음껏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몸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런 제품에는 대부분 열대식물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이 함유돼 있다. 이 열매 껍질에 들어 있는 물질 HCA(hydroxycitric acid)는 체내에서 잉여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바뀌는 것을 막는다고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도 기능성을 인정했다. 식약처의 ‘건강기능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것을 억제하여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줌.’ 

    이제 의문을 던져보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 2011년 이그호 오나크포야 박사가 비만전문학술지 ‘비만(Obesity)’에 기고한 논문을 살펴봤다.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의 체중감소 효과’에 대한 내용이다. 선행 논문 9편을 메타분석한 이 연구에 따르면, HCA 함유 제품 복용 시 체중 감소 효과가 나타나기는 했다. 그러나 감량 폭이 미미했다. 2주부터 최장 12주까지 HCA 함유 제품을 섭취한 피험자의 평균 체중 감소량은 0.88kg으로 나타났다. 한 약사는 이에 대해 “3개월에 걸쳐 1kg을 빼는 건 특정 물질을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의 체중 감소 효과가 과대 포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3개월에 0.88kg 감량하면 만족?

    열대 식물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열매 껍질에는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걸 막아주는 기능성 물질이 들어 있다.

    열대 식물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열매 껍질에는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걸 막아주는 기능성 물질이 들어 있다.

    한국인은 밥, 빵 등 탄수화물 위주 식습관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잉여 탄수화물의 지방 전환을 막아준다’는 기능성이 소비자를 더욱 강하게 유혹한다. 식약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HCA 함유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가 119개 있다. 프로바이오틱스(106개) 제조업체 수보다 오히려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 물질 함유 제품을 먹고 ‘고통 없이’ 살을 뺐다는 후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증언’을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체중감량 포장 제품의 임상적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를 봐도 그렇다.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의 체중 감량 효과에 대한 세계 각국 논문을 광범위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총 13편의 논문에서 HCA 함유 제품을 복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몸무게’가 유의하게 감소한 결과를 확인했다. 반면 두 무리 사이에 통계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아예 관련 내용을 기술하지 않은 논문도 10편 있었다. ‘체지방’ 항목을 기준으로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임상시험에서 복용군(HCA 함유 제품을 복용한 사람 그룹)의 체지방량이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고 밝힌 문헌이 12개 있었다. 그러나 7개 문헌에서는 두 군 사이에 통계적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거나 그 내용이 보고되지 않았다. 체질량지수를 뜻하는 ‘BMI’의 경우도 총 9편의 문헌에서 복용군이 대조군에 비해 수치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8편에서는 통계적 차이가 없거나 보고되지 않았다.



    관련 회사 연구비 받고 쓴 논문

    ‘허리둘레’ ‘엉덩이둘레’ ‘콜레스테롤 수치’ 등 일반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변화하기를 원하는 지표를 중심으로 관련 논문을 분석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일부 논문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과를 증명했으나, 일부 논문은 그렇지 않았다. 박주연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번 연구가 HCA 함유제품 섭취의 단기적 체중 감량 효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두 가지를 확인한 건 분명하다. △연구 대상자를 12주 넘게 추적 관찰해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한 논문은 없다는 것, 그리고 △HCA 함유 제품의 유효성을 입증한 연구 상당수가 관련 업체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보조제로서 HCA 함유 제품의 효능을 판단할 때는 이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 그러니 “굶지 않고 살 뺄 수 있다”고 광고하는 제품을 먹어도 기대만큼 살이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금전적인 피해가 생긴다. 문제는 여기서 나아가 건강상 피해까지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HCA 함유 제품을 먹고 심각한 간 손상을 입었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됐다. 이에 식품의약국(FDA)이 특정 제품(하이드록시컷)을 전량 리콜한 일도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HCA 함유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논문 15편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부작용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간 손상, 심장질환, 위장장애, 피부발진, 관절통증 등 증상이 다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저질환이 없던 39세 여성이 체중 감량 목적으로 HCA 함유 제품을 복용한 뒤 복부 불편감, 황달 등을 호소한 일이 있다. 검사 결과, 약물에 의한 간 손상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 4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신채민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강기능식품이 의약품은 아니다. 하지만 부작용 사례가 다수 보고된 만큼, 관련 제품을 복용하고자 할 때는 전문가와 먼저 상담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에 대한 의료계 안팎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식약처는 2017년 이 물질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부작용 발생과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 복용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에 현재는 ‘건강기능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에 이 물질에 대한 ‘섭취 주의사항’만 덧붙여둔 상태다. △간·신장·심장질환, 알레르기 및 천식이 있거나 의약품 복용 시 전문가와 상담할 것 △이상 사례 발생 시 섭취를 중단하고 전문가와 상담할 것 등의 내용이다. 또 식약처는 HCA 물질의 기능성 내용을 현재 ‘(전략)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줌’에서 ‘(전략)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음’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최근 관련 내용을 행정 예고했다. 

    이지현 약사는 이에 대해 “건강기능식품은 여러 물질을 혼합해 제조한다. 어떤 물질이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찾아내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중요한 건 건강기능식품 허가를 받은 제품이라 해도 복용 중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섭취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그릇된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체중을 줄이고 오래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식사량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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