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그들이 학교폭력에 “법대로” 외치는 이유

“가해 사실 은폐·축소하는 학교 못 믿겠다”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19-07-08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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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측에 ‘서면’으로 학폭위 개최 요구하는 부모 늘어

    • 온라인에서 회자 중인 ‘현실적인’ 학교폭력 해결법

    • 상해진단서, SNS 캡처 화면 법정서 증거로 채택

    • 소송 몇 년 걸리더라도 “가해학생에 책임 묻겠다”

    • 무너진 신뢰 회복하고 정상적인 ‘학폭위’ 운영에 힘써야

    “학교폭력 대처의 핵심은 학교·교육부·어른 ‘패싱(배제)’이라고 봐야죠.” 

    서울 서초동의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 이모 씨는 ‘신종 학교폭력 대처법’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요즘 대한민국 학생·학부모는 학교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게 이 변호사의 얘기다. 최근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신종 학교폭력 3대 대처법’이 유행이다. 이는 학교폭력 대응방법을 담은 일종의 매뉴얼로 크게 ‘▲학교에 섣불리 폭력 피해를 알리지 말 것 ▲교육청의 학교폭력실태조사에 사실대로 응하지 말 것 ▲어른들을 절대 믿지 말 것’으로 나뉜다.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피해학생 측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개최를 요청하면 학교는 의무적으로 학폭위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폭위의 공정성이 결여됐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학교폭력 징계처분은 총 9단계로 나뉜다. 1호(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2호(신고자와 피해자에게 접촉금지 및 보복금지), 3호(교내봉사), 4호(사회봉사), 5호(특별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9호(퇴학) 등이다. 

    그런데 최근 초·중·고교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학생 측이 담임교사와 학교생활부(학생부) 부장교사, 교장 및 교감 등에게 학교폭력 사실은 고지하되, 학교폭력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학교 측과 적극적으로 의논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학폭위를 개최해달라’는 요구가 적힌 ‘서면’을 학교 측으로 송부할 뿐이다. ‘학교에 섣불리 폭력 피해를 알리지 말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학교폭력 발생 건수 줄이려 가해 사실 축소·은폐

    푸른나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과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학교폭력예방 가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

    푸른나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과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학교폭력예방 가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

    서면으로 학폭위 개최를 요청하는 이유는 나중에 학교 측이 학교폭력을 축소 혹은 은폐했을 경우 피해자가 ‘정식으로 학교에 학폭위 개최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학교가 교내 폭력을 축소하려는 이유는 학교폭력 발생 횟수에 따라 학교 및 교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한 중학교 교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정부가 교육부, 경찰청과 함께 ‘학교폭력근절대책’을 수립했다. 학교폭력을 예방이 아닌 근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학교폭력 발생 건수를 줄이고자 일부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축소 혹은 은폐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전국 시·도 교육청이 연간 두 차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온라인 학교폭력실태조사’ 역시 ‘믿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이 설문조사는 학생이 자신의 학교와 이름, 학교에서 배부한 인증번호를 입력해야 참여 가능하다. 피해자 신분을 밝히고 하는 설문조사이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마치 군대 선임에게 구타당했다고 소원수리를 쓰는 것과 같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모든 학생을 조사에 참여시키고자 교사가 수업 중 학생을 한 명씩 앞으로 불러내 컴퓨터 설문조사에 직접 응하도록 강요하는 일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폭력 대응 신종 매뉴얼에 등장하는 ‘어른을 믿지 말라’는 내용 역시 교사와 학교, 교육청, 학폭위 위원들을 믿지 말라는 의미로 통한다. 학교 현장에는 한때 ‘담임교사와의 상담→학생부 교화→학교장 조치’라는 일련의 절차가 있었다. 담임교사가 자체 해결이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보고, 중대한 사안이라 판단되면 학생부에 넘겨 조치를 취한 뒤 학교장의 명령으로 봉사 내지 정학, 퇴학 등의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다 2012년 미성년자의 학교폭력이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것을 줄이고, 학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학폭위’가 의무적으로 열리게 됐는데, 학폭위 위원들의 전문성 결여와 솜방망이 처벌 등에 따른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 1월 교육부는 학폭위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2020년 1학기부터 전국 초중고교 내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학교 측에서 학교폭력을 은폐· 축소하려 한 정황이 밝혀질 경우 해당 교직원에 대한 징계를 가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학폭위에 대한 불신이 쉬 사라지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학부모 윤성희 씨는 “예전에는 학교에서 누가 때리거나 괴롭히면 선생님한테 알리라고 말했는데, 요즘은 꼭 엄마한테 먼저 말하라고 가르친다”고 털어놓았다. 

    사법기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가해학생을 처벌하고자 하는 학부모도 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현실적인 학교폭력 해결법’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해당 글에는 ‘가해학생에게 맞을 때마다 학교 측에 알리고 경찰에도 신고해라’ ‘학교와 경찰이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검찰에 가겠다고 하라’ ‘형사소송, 피해보상, 민사소송 등 주어진 제도와 권리를 활용하라’ ‘어떤 경우에도 가해학생 측과 합의하지 마라’ 등의 주장이 담겨 있다. 학교폭력 1차 책임자인 학교나 교사는 수사권이 없는 반면 사법기관은 학교폭력 사건 수사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 문제 해결에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증거 수집용 ‘SNS’ 화면 캡처 필수

    학교폭력은 엄연한 범죄행위로, 학폭위의 징계처분은 물론 형사처벌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집단폭행의 경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공동폭행·공동상해로 인정돼 가중 처벌이 가능하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찰의 학교폭력 검거 현황은 2015년 1만2495건에서 2016년 1만2805건, 2017년 1만4000건, 2018년 1만3367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초중고 학생 수가 608만8827명(2015년)에서 558만4249명(2018년)으로 약 8.3%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당 신고 건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이버폭력, 따돌림은 물론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건에서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페이스북 게시글, 유튜브 게시물같이 소셜미디어(SNS) 상에서 이뤄진 폭행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 특히 떼카(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에서 여러 명이 한 명을 괴롭히는 것) 피해가 심각한데,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유튜브나 SNS 등에서 영상이나 사진, 댓글을 이용해 행사한 폭력도 학교폭력으로 간주된다. 

    최근 한 학교에서는 ‘떼카’로 괴롭힘을 당한 학생이 가해학생들을 상대로 학폭위를 열었는데, 가해학생들은 카톡 대화방 내용 중 피해자에게 불리한 내용만 캡처해 학폭위에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피해자 부모가 가해 학생들이 올린 카톡 게시글과 SNS 댓글의 계정자를 밝히고, 게시물들이 올라간 시점 등이 잘 보이도록 화면을 캡처해 가해자들의 주장을 반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 부모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학폭위 심의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피해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가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학폭위에 대비해 경찰에 신고하고 변호사도 선임하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사건 당일’의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사건 당일 행동요령 중에는 ‘상해진단서 발급받기’가 있다. 아이가 신체적 폭행 혹은 신체적 접촉에 의한 피해를 보았다면 그날 바로 병원에 가서 상해진단서를 발급받는 게 유리하다는 내용이다.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법원은 상해진단서의 객관성을 판단하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발급받은 상해진단서는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해진단서는 학폭위를 포함해 법적 절차상 손해배상 혹은 형사고소, 재심 등에서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증거로 꼽힌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형법은 폭행보다 상해를 무겁게 처벌하고 있어 상해진단서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폭행은 합의만 되면 곧바로 종결되지만 상해는 합의한다고 해도 양형에만 영향을 줄 뿐 법적 진행은 계속된다는 차이가 있다.

    사건 당일 증거 수집이 중요

    사진 증거도 사건 당일 바로 촬영하는 게 유리하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부모 최모 씨는 “증거가 될 만한 건 모두 사진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가 폭행으로 눈 주변을 다쳤다면 매일 상처 부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폭행이 있던 시점에 누가 주변에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진술이 엇갈리거나 가해학생이 폭행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목격자의 증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폭력 상황을 목격한 학생들을 특정해 학교 측에 알리면 사안 조사가 쉽게 이뤄질 수 있다. 만일 목격 학생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피해학생이나 피해학생 학부모가 피해 사실의 확인을 위해 전담 기구에 실태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모호한 것이 있다. 어디까지가 목격자이고 어디까지가 학교폭력 가담자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사건에 동참했는지 여부와 폭력이 발생할 것을 예상했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학생들끼리 피해학생을 언제 어디로 나오게 하자고 사전에 얘기를 나눴거나, 폭행이 일어날 때 옆에서 망을 봐주는 일을 했다면 이는 명백한 학교폭력 가담자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민사소송이 늘어나면서 일각에서는 “아이들 싸움으로 장사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직접 경험한 이들로서는 ‘법과 제도를 이용해서라도 내 아이를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법대로 하는’, 그 과정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가해학생이 원심 재판에 항소해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최장 2~3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2년 전 딸의 얼굴을 때린 아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인 학부모 장모(여·48) 씨는 “처음부터 민사소송을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나도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가해학생 측이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피해자 측이 ‘심부름센터’ 등에 의뢰해 가해학생에게 겁을 주는 일도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학생을 협박한 혐의와 함께 교사의 수업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만큼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학교폭력은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방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소년재판 담당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는 학교폭력에 학부모들은 더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법을 잘 모른다. 학교폭력을 법대로 처리하려는 이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왜 이들이 법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폭위에도 ‘모범 사례’ 있다

    [동아DB]

    [동아DB]

    또한 법이 개입하기에 앞서 학교 내에서 ‘교육적 해결’이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폭위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처분이 자칫 과하지 않도록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나, 근본적으로 가해자가 반성할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실제 일부 학교에서는 교사 및 학폭위 위원들의 지도와 훈육으로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변화된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학폭위 처리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당 학교에서 학폭위를 담당했던 한 교사는 “A학생과 B학생은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관계였는데, 시험 스트레스가 컸던 나머지 A학생이 B학생의 얼굴을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A학생 학부모가 B학생과 학부모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담당교사가 두 학생을 불러 상담한 뒤 솔직한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편지를 쓰게 해 두 아이의 관계가 쉽게 회복됐다”고 밝혔다. 

    교육계 내에서도 ‘학생과 학부모가 왜 학교를 불신하는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1년째 학생부 부장교사를 맡고 있는 한 교사는 “지도와 훈육을 통해 선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음에도 학교폭력을 다루는 방법 자체에 미숙한 교사가 많다. 법으로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피해자 측에도 씻기 힘든 상처를 줄 수 있는 만큼 최후의 보루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육 당국 스스로 지금과 같은 학폭위 제도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학교와 교사들도 교육적 선도와 처벌 중 무엇이 효과적일지를 고민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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