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샌프란시스코 통신

어느 날 생면부지 혈육이 나타난다면…

유전자 간편 검사 시대의 명암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19-07-09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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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미국에서는 간편 검사로 의뢰자의 유전자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100달러(약 12만 원) 안팎의 비용을 내고 침 한 방울을 업체에 보내면 유전병 위험, 잠재적 질병 발생 가능성, 심지어 어린 시절 헤어진 부모나 형제까지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유전자 간편 검사 시대’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9월 유전자 간편 검사 덕에 34년 만에 상봉한 르네 알란코(오른쪽), 저스틴 크래트 남매. [사진제공·르네 알란코]

    지난해 9월 유전자 간편 검사 덕에 34년 만에 상봉한 르네 알란코(오른쪽), 저스틴 크래트 남매. [사진제공·르네 알란코]

    유전자 검사와 분석 기술 발전은 인류에 반가운 선물이다. 최근 유전자 분석회사들이 내놓는 100달러 안팎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 이용자가 점점 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 업체는 특정 키트(kit)에 타액을 묻혀 우편으로 보내면 개인 유전자를 세세히 분석해 알려준다. 

    그런데 이 편리한 서비스가 생각지 못한 고민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 내 조상 중에 중국인, 일본인, 아랍인, 유럽인이 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될 수 있다. 향후 특정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지를 받아들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는 생면부지의 혈육이 존재한다는 뜻밖의 얘기를 듣기도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15분 정도 떨어진 도시 샌라파엘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르네 알란코. 그는 1984년 3월, 당시 4세 정도로 추정되던 나이에 서울시내 한 시장통에 버려졌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는 청소년기 어느 순간부터 혈육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2008년엔 가족을 만나고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입양기관과 경찰 도움을 받아 수소문에 나섰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다. 허탈하게 미국에 다시 돌아온 르네는 가족 찾기를 단념했다.

    남매에게 일어난 기적

    르네 알란코(오른쪽), 저스틴 크래트 남매의 입양 서류에 붙어 있던 사진. [사진제공·르네 알란코]

    르네 알란코(오른쪽), 저스틴 크래트 남매의 입양 서류에 붙어 있던 사진. [사진제공·르네 알란코]

    지난해 여름, 르네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다(두 사람은 10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뛸 듯이 기뻤던 그는 2세를 계획하며 이것저것 준비를 시작했다. 그 무렵 ‘23andMe’라는 유전자 분석회사의 검사 키트도 주문했다. 아들을 입양한 직장 동료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들에게 검사 키트를 사준 얘기를 듣고 난 뒤였다. 직장 동료는 그 키트 덕분에 입양한 아들이 유전적으로 45%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이란 사실을 알게 됐고, 아주 먼 친척도 찾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르네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아이를 갖게 되면 혹시 유전적인 질환을 전할 가능성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비용도 100달러 안팎에 불과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23andMe’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르네는 ‘건강에 특별히 신경 쓸 문제가 없다.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유전 질환과 관련해 걱정할 문제도 없다’는 내용에 안도했다. 이후 온라인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세한 검사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러다 ‘DNA 친척(DNA Relatives)’ 항목도 클릭했다. 유전적으로 조금이라도 연결된 친척을 찾아주는 서비스였다. 비록 같은 검사를 받은 사람들에 한정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바로 거기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당신은 오리건주 세일럼(Salem)에 사는 한 남성과 유전적으로 45.1% 일치한다. 그가 당신의 남동생인 것으로 예측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르네가 서울 한 시장에 버려지기 정확히 하루 전, 남동생도 근처에 버려졌다. 이후 남동생은 캘리포니아주 바로 위에 있는 오리건주 한 가정에 입양됐다. 둘은 각각 다른 가정에 입양돼 살면서 그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워낙 어릴 때 버려지고 입양돼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스틴이란 이름의 남동생은 르네가 ‘23andMe’ 서비스를 이용하기 4년 전인 2014년, 먼 친척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이 회사의 유전자 검사 키트를 구매했다. 이후 르네의 유전 정보까지 이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DNA 정보가 ‘형제자매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수준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 

    르네는 이 검사 결과를 보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고 남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계정에서 사진을 발견해 닮은 데가 있는지 찾아봤다. 딱히 비슷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르네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동생은 아빠, 저는 엄마를 닮았나 봐요. 서로 안 닮았더라고요.” 

    고민 끝에 그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히 이런 내용이었다. 

    “안녕, 저스틴. 내가 네 누나인 것 같아.” 

    다음 날 아침 저스틴이 답신을 보냈다. 

    “당신, 혹시 장난해?” 

    누나 르네가 의심하는 동생 저스틴에게 유전자 검사 결과를 온라인으로 보내주면서 비로소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됐다. 한동안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마침내 만났다. 누나가 동생이 사는 곳으로 날아갔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제각각 버려지고, 또 비슷한 시기 미국 가정에 각각 입양됐던 남매는 그렇게 34년 만에 상봉했다. 간편한 유전자 검사 서비스 덕분에 일어난 기적이다. 르네는 말했다. 

    “우리 남매에겐 ‘23andMe’가 은인이에요. 그 업체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서로 존재도 모른 채 살던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어요.” 

    르네는 5월, 약혼자와 함께 2주 동안 한국을 여행했다. 당초 동생 저스틴과 동행하려 했다. 유전자 검사로 상봉한 남매가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막판에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르네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저스틴에게 한국 여행을 권했을 때 처음엔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오니 겁이 난 모양”이라고 밝혔다. 

    “저와 기적처럼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게 행복하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버려진 곳에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언젠간 꼭 동생과 함께 한국에 다시 갈 생각이에요.” 

    르네의 이야기다.

    청천벽력 같았던 ‘아버지의 비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는 61세 캐런 마이어. 3월 어느 날 아침 그는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낯선 이가 보낸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캐런 씨. 완전히 뚱딴지같은 얘기일 텐데요. 하여튼 제가 저희 가족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흠, 혹시 당신 아버지가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정자 기증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 이름은 샌드라 토프터였다. 알고 보니 샌드라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캐런의 이복동생이었다. 심지어 생물학적 아버지가 같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살아온 동생이 샌드라 말고도 두 명 더 있었다. 61세 캐런의 이복동생은 모두 1963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캐런의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3월 29일자에 ‘새로운 형제자매, 오래된 비밀(New Siblings, Old Secrets)’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들 4남매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시발점은 샌드라 어머니의 고백이었다. 치매를 앓다 질병으로 생을 마감할 상황이 된 샌드라의 어머니는 4년 전 딸에게 “인공수정으로 너를 낳았다”는 말을 꺼냈다. 50년 넘게 감춰온 비밀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샌드라의 아버지도 자신이 딸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해줬다. 샌드라는 언니와 함께 유전자 분석회사 키트를 사서 검사를 받았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아버지가 각각 다른 자매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샌드라는 검사 결과, 친척으로 나타난 낯선 인물을 찾아나섰다. 한 명 한 명 찾으면서 총 4명의 이복남매를 확인했다. 조사 결과 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학교 근처 산부인과에 정자를 기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에 따르면 이들의 인공수정 사실은 수십 년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캐런과 3명의 이복동생이 태어나던 당시 인공수정 시술을 한 의사는 죽을 때까지, 심지어 죽고 나서도 정자 기증자의 신원을 비밀에 부쳤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 분석 기술의 발전은 당사자의 비밀 서약이 의미 없는 시대를 가져왔다. 의사와 부모가 아무리 비밀을 유지해도 유전자 검사는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람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새로운 가족’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상당수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밀이 사라지는 세상’의 프라이버시

     미국 스탠퍼드대 근처 도시 로스앨토스에 있는 정자은행 캘리포니아 크리요뱅크.

    미국 스탠퍼드대 근처 도시 로스앨토스에 있는 정자은행 캘리포니아 크리요뱅크.

    미국 스탠퍼드대 캠퍼스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도시 로스앨토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크리요뱅크(California Cryobank). 1977년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성장한 이 은행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정자은행이다. 스탠퍼드대, 하버드대 등 명문대 재학생과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의 정자를 제공한다고 광고하는 업체다. 

    정자 기증자 조건도 매우 엄격히 통제한다. 키는 172cm 이상이어야 하고, 나이는 19~38세여야 하며, 현재 대학생이거나 대학 졸업생이어야 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하며,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노동할 수 있는 남성(정자를 기증하고 보수를 받기 때문에 필요한 조건)이어야 한다. 필자도 e메일로 정자 기증에 대해 문의해봤다. 곧 답신이 왔다. 맨 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원자의 1%만 합격. 당신도 그들 중 한 명인가요?” 

    그 아래는, 정자 기증이 아이를 원하는 사람의 꿈을 이뤄주는 일이며, 1주일에 두세 번 방문해 ‘기여’를 하면 한 달에 최대 1500달러까지 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미국 최대의 정자은행 중 하나인 이 업체가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프라이버시 보호였다. 기증자와 기증받는 고객 모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며 신원 정보를 어느 한쪽과도 공유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증자 정보를 공개하면 기증자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 측은 기증자 한 명의 정자로 25~30가족을 구성하도록 해주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 명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둔 아이가 최다 30명까지 태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 30명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평생 살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전자 간편 검사의 시대에는 이 전제에 의문이 생긴다. 이 때문에 최근 전문가들은 “세상이 바뀌었다. 정자, 난자를 제공받아 임신한 경우 아이가 어릴 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의대 임신보건센터 로리 패시 교수는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인터뷰에서 “자녀가 7세가 되기 전 그 사실을 알려야 갑작스럽게 겪는 정체성 혼란 등의 충격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런 해법은, 지금 당장 충격에 맞닥뜨린 중년 자녀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자신의 출생 과정에 대해 수십 년을 숨겨온 부모에 대한 배신감에 괴로워하는 이들, 평생 모르고 살아온 ‘생면부지 유전자 가족’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 말이다. 앞으로 정자 난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은 뒤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자녀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부부의 고민도 깊어질 듯하다. 유전자 간편 검사의 시대는 선물만 가져오진 않았다.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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