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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극과 인간

오페라 ‘1945’

韓日 두 위안부 여인의 처절한 삶

  •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오페라 ‘1945’

  • ● 광복 후 만주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의 민초들
    ● 위안부 여인들의 생존 투쟁,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
    ● 親日의 불편함, 인류애로 승화
    ● 2017년 호평받은 연극, 9월 오페라로 공연
2017년 공연된 연극 ‘1945’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2017년 공연된 연극 ‘1945’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는 광복을 맞았다. 연극 ‘1945’는 광복 이후 만주국 수도 신경(新京, 지금의 장춘)의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기차를 기다리던 조선·일본인 두 위안부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곡작가 배삼식은 하룻밤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민초들의 억척스러운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광복 직후 그들의 비루한 삶은 그동안 공연으로 조명되지 않았다. 

전재민 구제소는 전쟁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들이 임시로 기거하는 장소다. 중국인들이 외국인에게 내준 구제소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발을 붙였다간 뼈도 못 추렸다. 분노에 찬 조선인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광복 후 조선 내 일본인들은 미군정 당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만주의 일본인들은 고스란히 무법천지의 위험에 노출됐다. 광복 직후, 재일(在日) 조선인 귀환에 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재만(在滿) 조선인의 귀환에 대한 기록은 적다. 이들의 생생한 귀환 현장은 실제로 만주에서 지옥 같은 아비규환을 경험한 염상섭, 김만선과 여러 경로를 통해 소식을 접한 채만식 등의 몇몇 소설 속에서만 기억된다.


전재민 구제소라는 공간

작가 배삼식은 생존 본능과 인간적 갈등을 ‘광복 직후 만주’라는 특별한 시공간에서 사실적으로 가공했다. 어쩌면 정치적 성향으로 편 갈라 줄 세우던 암흑의 시절에 인간 본질에 대한 고찰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1945’는 기록되지 못한 채 방치된 민초의 삶과 역사적 공백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메워나간다. 한국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가 같이 지낸다는 설정 자체가 친일적인 오해를 야기할 수 있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또 다른 담론을 제시한다. 관객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참다운 이해’ ‘사랑’ ‘화해’라는 개념에 접근한다. 2017년 국립극단의 연극(연출 류주연)으로 공연된 ‘1945’는 9월 27, 28일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작곡 최우정, 연출 고선웅)로 재해석해 공연할 예정이다(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희곡은 1945년 늦가을 만주부터 1946년 초여름 서울의 굴곡진 격동의 시공을 그리고 있다. 일제는 1931년 만주에 주둔한 관동군을 움직여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중국 북동부를 점령하고는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앞장세워 만주국이라는 허울뿐인 나라를 세웠다. 당시 세계 경제공황의 타격에서 벗어나려는 일제는 군사적인 필요성과 함께 농업생산력 향상이라는 이유로 만주로의 농업이주를 적극 장려했다. 8·15광복 직전 35만 명의 일본인 이주민이 만주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18만 명가량만 겨우 귀국할 수 있었고, 그나마 귀국 여정도 순탄치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간난아이까지 파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당시 중국인들이 일본 아이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당시 현실을 바탕으로 극은 시작한다. 



막이 오르면 위안소의 서른 명 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두 명의 위안부가 꼬깃꼬깃한 지폐를 침을 발라가며 세고 있다. 조선인 명숙과 일본인 미즈코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기찻길을 따라 무작정 걷던 일본인 아녀자들이 이질(痢疾)에 걸린 틈을 이용해 그들의 아이들을 중국인에게 팔았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자신들 덕분에 굶어 죽을 아이들이 살 수 있었다고 애써 합리화한다.


명숙과 미즈코, 두 위안부의 여정

연극 ‘1945’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1945’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일제의 돈줄이었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본사가 있던 장춘은 남만철도의 시작점으로 조선으로 가는 열차를 타려면 모두 장춘에서 타야만 한다. 천신만고 끝에 위안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은 두 여인은 장춘에 도착하면 각자도생해야 한다. 명숙은 중국인과 조선인들이 일본인 미즈코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을 알기에 고민한다. 명숙은 설상가상으로 위안소에서 임신까지 한 미즈코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벙어리 동생 미숙이라고 속여 전재민 구제소로 데리고 간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인가. 구제소에서 그들은 위안소의 조선인 포주였던 선녀를 만난다. 선녀는 자신도 잡혀온 신세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거침없이 항변한다.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난 이후 약 100년이나 지났지만 만주에는 아편중독으로 죽은 중국인 주검이 거리 곳곳에 나뒹굴 정도로 아편중독자가 많았다. 만주의 중국인 중 20~30%가 아편중독자였다는 통계도 있다. 

극 중 선녀와 명숙 또한 아편중독 금단현상 때문에 종종 손을 떤다. 그중 선녀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주사를 계속 맞는다. 마약에 중독된 것이다. 구제소의 조선인들은 벙어리로 신분을 감춘 미즈코를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가엽게 여긴다. 조선인 신분증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돕는다. 

1945년 광복 직전까지 만주에 이주한 조선인은 215만 명에 달했다. 만주에는 조선 출신의 최대 동포 사회가 만들어졌다. 이를 반영하듯, 극 중 전재민 구제소에는 같은 조선인이지만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광복만 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건만,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 내에는 부정부패와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 구제소에서 한글강습회를 열었지만 찾는 이가 없어 실망한 전직 조선인학교 교사 원창과 그의 가족들, 악덕 지주를 피해 만주로 온 이 노인과 그의 가족들, 구제소 하급 관리자로 군림하려는 기회주의자 최 주임, 선녀의 과거를 모른 채 그녀와 꿈같은 미래를 꿈꾸는 마음씨 좋은 수봉, 폐렴으로 구제소에서 여동생을 잃은 마음 따뜻한 영호 등등. 이들은 기약 없이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서로 동고동락한다. 구제소 사람들은 명숙이 내놓은 종잣돈으로 떡 장사를 하며 밥을 함께 지어 먹으며 가족처럼 돈독하게 지낸다. 그러나 미즈코의 신분이 발각되는 순간 이들은 안면을 몰수한다. 그동안 쌓은 정은 온데간데없고,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분노와 적개심이 활활 타올랐다.


“우린 더럽지 않아. 더러운 건 당신 눈이야”

연극 ‘1945’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1945’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패전 국민인 일본인은 온갖 불이익이 도사리는 만주 땅을 하루빨리 떠나야했다. 그런데 사정은 조선인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만선일보 편집장으로 광복 전 10년 동안 만주에서 생활한 횡보 염상섭(1897~1963)의 회고록에 따르면, 1945년 8월부터 만주는 사회적으로 극심한 무질서와 혼란으로 공권력이 무너진 상태였다. 밤마다 주민 자치 순찰을 돌아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외교적으로는 소련군의 개입으로 동아시아는 민감한 국제 정세의 각축장이 돼 있었다.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테러와 폭력이 난무했다. 

여기에 ‘조선인이 일본인의 만주 식민 지배에 협력했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의 분노도 한몫했다.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감정이 폭발한 그들은 애꿎은 조선인들을 상대로 폭력과 약탈을 일삼았다. 소련과 중소우호동맹(1945년 8월 14일)의 체결로 동북지역 대도시와 철도운영권을 이양받은 국민당은 재만 조선인들을 막다른 궁지로 몰아넣었다. 일본인처럼 재산을 환수하고 귀환시킨다는 방침을 정한 것.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어제까지 돈독했던 이웃사촌들마저 좌우(左右) 이념으로 양분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민초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둘 ‘귀향 가방’을 쌌다. 전재민 구제소의 조선인들은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수동적이다. 그러나 그 삶은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할 긴박한 현실에 처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명숙이 과거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구제소 사람들은 속마음을 숨기며 무거운 침묵을 이어간다. 맑은 영혼을 가진 영호는 침묵을 깨고 명숙을 변호한다. “지옥에서 건져내 고통을 씻어주자”는 영호의 말에 명숙은 냉소적으로 답한다. 

“우린 더럽지 않아. 더러운 건 우릴 보는 당신, 그 눈이지.” 

명숙은 기차를 타지 않고, 미즈코와 함께 기꺼이 구제소를 나온다. 다음 날, 명숙과 헤어진 조선인들의 여정은 기구했다. 장춘을 출발해 몇날 며칠을 기차로 달려 단둥에 내린 후 다시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 땅 신의주에 도착했다. 신의주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38선에 도착했을 때에는 석탄가루와 이슬이 범벅돼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서울에 입성하자 방역을 이유로 살충제인 하얀 DDT가루 세례를 받고는 소복 입은 귀신이 됐다. 연극은 며칠 사이 저승사자와 귀신이 된 이들의 상징성을 강조한다. 또한 조선의 전혀 다른 환경에 다시 적응하며 차별받아야 했던 현실을 비춘다.


미군 지프 타고 나타난 명숙

1946년 초여름이 되자 원창의 아이들인 숙이와 철이는 미군정청 근처에서 미군 지프를 타고 있는 명숙을 발견한다. 구제소에서 사라진 명숙이 미군과 함께 차를 타고 있던 것이다. 관객들은 우선 명숙이 안전하게 서울에 왔다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장면이 바뀌면서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미즈코와 명숙은 항구에 서 있다. 그들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 각자의 발걸음을 옮기며 막이 내린다. 

격동의 시기에 악착같이 살아왔지만 언제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고달픈 민초들. ‘1945’는 그들의 처지에서 성찰한다. 연극을 연출한 류주연은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펼쳐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생존 투쟁 이면의 혼란스러운 쓰라림을 관객에게 그대로 선사하고, 불편함 속에서 관객은 참다운 인간 본성을 사색한다. 

9월 공연될 오페라 ‘1945’는 작곡가 최우정의 수려한 극적 선율과 인간미를 강조하는 연출가 고선웅의 결합으로 관심을 모은다. ‘1945’가 오페라에서는 어떻게 등장할지 사뭇 기대된다.




신동아 2019년 8월호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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