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정여울의 책갈피 속 마음여행

영원히 빛바래지 않는 우리 안 순수의 뿌리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입력2016-01-11 13: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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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양 하나만 그려줘!”라는 것이었다.
    “뭐?” “양 하나만 그려줘요….”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후다닥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상야릇한 한 꼬마가 보였는데 나를 근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어떤 희망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막 한복판에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 막막한 느낌을 상상하자마자 불쑥, 낯선 소년 하나가 다가온다. 어린 왕자가 내 마음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순간이다. 밀밭처럼 황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에 아무것도 제대로 찌를 수 없을 것 같은 연약한 칼을 손에 쥐고 어깨에 별 장식을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눈부시게 매단,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년이.
    어린 왕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을,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말한다. 하필 그가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해 아무런 대책 없이 모래 위에 벌러덩 누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어린 왕자는 대뜸 말한다. “저기,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이런 맑고 투명한 대화를 나눠본 것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우리는 언제쯤 ‘어린 왕자의 해맑은 화법’으로 거리낌 없이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어릴 적 화가를 꿈꿨지만 누구도 그의 그림을 알아봐주지 못했기에 비행사가 되어버린 ‘나’에게 어린 왕자는 밑도 끝도 없이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양을 그려달라고 보채는 아이 때문에 귀찮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비행기를 수리해야 하는 이 비행사는 아무렇게나 상자를 하나 그려 건네준다. 누가 봐도 그저 평범한 상자였지만, 어린 왕자는 그 멋대가리 없는 상자 속에서 자신만의 소중한 어린 양을 발견한다.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소중한 어떤 존재를 발견하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어린 왕자의 마음 아닐까.
    그림 그리기를 포기해버린 이 실패한 화가 지망생에게, 처음으로 어린 왕자는 최고의 칭찬을 해준 셈이다. 그는 신이 나서 내친김에 더 나아간다. 그 양을 좀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말뚝과 고삐도 그려준다고. 어린 왕자는 화들짝 놀란다. 양에게 왜 고삐를 매어줘야 하지? 고삐를 맬 말뚝은 왜 박아야 하지? 그것은 양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양이 도망갈 곳이 없는데. 게다가 양을 고삐로 매어놓다니, 양이 얼마나 답답할까. 어린 왕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양의 처지에서 생각할 줄 알았던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려면

    그 별의 땅은 바오밥나무의 씨투성이였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자칫 늦게 손을 대면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다. 그것은 별 전체를 휩싸버리고, 뿌리로 구멍을 판다. 별이 너무 작아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폭발해버린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환상적’이라고 칭찬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 숨은 혹독한 돌봄과 기다림의 시간을 모른 척한다. 바오밥나무는 인체에 퍼지는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지구를 병들게 하는 산업쓰레기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토양을 짓밟는 존재다. 우리는 자꾸만 잊는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쁘다면서, 온갖 핑계를 대가며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을 잊곤 한다. 조그만 어린 왕자조차 이렇게 매일 바오밥나무가 별을 뚫어버리기 전에 바오밥싹을 뽑아내고 있는데, 우리는 제 집 앞 눈 쓸기조차 귀찮아하니 말이다. 내 방의 바오밥나무, 내 삶의 바오밥나무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뽑아본 적이 있는지 천천히 곱씹어보는 밤이다.



    “언젠가는 마흔네 번이나 해 지는 걸 봤지.” (…)
    “그런 거 알아요? 아주 서글퍼지면 해 지는 게 보고 싶거든요.”
    “마흔네 번을 본 날 그럼 너는 그토록이나 슬펐단 말이냐?”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슬픔은 참 이상하다. 슬플 때 기쁜 것을 보면 왠지 모를 이물감이 드는데, 슬플 때 나보다 더 슬픈 것을 보면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갑고 애틋하다. 그렇게 나와 닮은 슬픔, 나보다 더한 슬픔을 보는 것이 사탕발림식 위로보다 더 깊은 치유의 열쇠가 돼준다.
    어린 왕자도 그러지 않았을까. 이 비좁은 별 안에서는 그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자기를 닮은 슬픔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석양의 빛깔에는 우리도 모르는 치유와 성찰의 에너지가 들어 있다. 매일 해 지는 풍경을 10분만, 아니 5분만 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우리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내게만 미소 짓는 별

    “그때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지 말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 꽃은 나에게 향내를 풍겨주고 내 맘을 환하게 해주었어. 도망가서는 안 되는 건데 그랬어! 그 하찮은 꾀 뒤에 애정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꽃들이란 모순덩어리거든! 하지만 너무 어려서 사랑해줄 줄을 몰랐지.”

    사랑하지만,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을 때. 그럴 만한 힘이 없는 존재임을 털어놓을 수가 없을 때. 사랑하지만,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떠나고나서야, 도망치고나서야 깨닫는다. 상대방이 내게 원하는 것은 대단한 모습도, 완벽한 모습도 아니라는 것을. 한 번 더 그를 향해 미소 짓고, 한 번 더 그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음을. 그는 ‘괜찮다’고 한다. 내가 없어도 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눈망울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로서는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 같을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을 갖게 되는 거지.”

    어 린 왕자는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면서도 자신의 아픔보다는 아저씨의 아픔을 걱정한다. 아저씨가 자신의 사라짐을 너무 아파하지 않도록, 미리 슬픔의 예방주사를 놓는다. 내가 내 별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저씨는 누구도 갖지 못한 별을 갖게 될 거라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장미를 사랑하는 어린 왕자의 별을. 아저씨가 밤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유독 환하게 미소 짓는 별을 발견한다면 그건 바로 어린 왕자의 별일 거라고. 이 외로운 아저씨는 이제 어둠 속을 혼자 날아도 무섭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발목께서 노란빛이 반짝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나무 쓰러지듯 넘어졌다. 모래 때문에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눈 앞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아주 작은 버팀목이라도 돼주고 싶지만, 그는 나의 마음을 거절한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랑하지만 함께 갈 수 없는 길 앞에서는, 누구나 그토록 냉정해질 것이다. 그를 붙잡고 싶지만, 그를 부르고 싶지만, 붙잡을 수도 부를 수도 심지어 바라볼 수조차 없다.
    외로울수록 밤하늘의 표정이 잘 보인다. 고독할수록 별들의 웃음소리가 잘 들린다. 밤하늘의 별이 웃고 있다. 울고 있다. 웅크리고 있다. 날아가고 있다. 가끔 나에게도 그것이 보인다. 해 지는 풍경을 보기 위해 적어도 마흔네 번쯤은 의자를 옮기고 싶은 그런 날. 어린 왕자의 별에 두고 온 장미의 안부를 걱정하느라 한숨도 잘 수 없는 그런 날. 오직 나를 향해서만 환하게 웃어주는 별이 내게도 있을 것만 같다.



    영혼의 망원경

    돌이켜보니 10대 초반부터 거의 10년에 한 번씩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곤 했다. 10년 후에도 또 10년 후에도 새로운 슬픔의 우물이 차올라 눈물을 흘리곤 한다. 지금은 그리운 것, 잃어버린 것,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이 예전보다 더 많아져, 내 안에서 어린 왕자의 그림자가 짙고 길어졌다. 하지만 별을 바라보며 웃는 법을 잊지 않는다면, 내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별들이 하나하나 부르는 노랫소리의 화음을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 내게도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저 하늘의 수많은 별 중에서 오직 내 안의 어린 왕자,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지만 닿을 수 없는 어떤 존재를 찾아낼 수 있는 영혼의 망원경이, 내게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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