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Interview

“청년 일자리 문제는 부실한 진로교육 탓”

‘진로교육 代母’ 진미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원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김건희 객원기자 | kkh4792@hanmail.net

    입력2016-01-13 15: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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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간 시간강사 하며 일자리에 문제의식
    • ‘사람을 일에 맞추는’ 진로교육 바꾸자
    • 창업을 ‘필수교양’으로 지정해야
    진미석(58)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원장은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똑똑한 시골 소녀가 늘상 접한 ‘직업인’은 교사였고, 선생님과 자주 만나 대화하면서 학자의 꿈을 키웠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땄다.
    교수가 될 꿈을 품고 돌아왔지만 그를 위한 교수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 진 부원장의 표현대로라면 ‘한국의 일자리와 진로교육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시기’를 보낸 뒤 1996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위스콘신대 ‘교육과 일 연구소(Center on education and work)’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며 교육과 고용 관련 연구에 매진했다.
    1997년 12월 한국에서 직업능력개발원이 문을 열자 그간의 연구 성과를 이곳에서 구현하기 위해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다. 이후 한국 직로·직업교육 1세대로 이 분야 연구에 집중하면서 정책과 대안을 제시했다. 그가 ‘진로교육계 대모(代母)’로 불리는 이유다. 12월 10일 오후 ‘신동아’ 회의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재능에 맞춘 일자리 창출

    ▼ 개인적으로 힘든 경험이 일자리와 진로교육 연구로 이끈 셈이군요.
    “1989년부터 1995년까지 7년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했어요.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는데,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현실이 충격이었어요. 일자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됐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취업했다면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좌우하는 것은 일자리예요. 이건 제게 매우 중요한 의제입니다.”
    ▼저출산으로 자녀 수가 줄다보니 자녀에게 거는 기대는 커졌지만, 한국 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청년 세대는 ‘헬(지옥)조선’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오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어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자녀에게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말했는데, 막상 공부 열심히 한 자녀는 성공은커녕 취직조차 못해요. 기성세대가 자녀를 키울 때 눈높이를 잔뜩 높여놨는데, 이제 와서 청년들 눈이 높아서 문제라고 합니다. 청년들은 혼란스럽죠. 물론 이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4~5년 정도 고생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눈 딱 감고 도전하겠지만, 고생의 끝이 보이지 않으니 도전할 엄두가 안 난다는 게 문제죠. 나도 화가 날 것 같아요. 기성세대로서 후배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 진로교육과 일자리 전문가로서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청년들은 지금 잘하고 있어요. 역량을 갖춘 인재도 많고요. 여러 진단이 있겠지만, 나는 기성세대와 학교, 사회가 진로교육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고 봐요. 진로교육의 관점부터 바뀌어야 해요. 사람을 일자리에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가진 재능에 맞춰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대학에서 창업을 필수교양 과목으로 지정해 학생들이 졸업 후 언제든 창업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거죠. 졸업하자마자 창업을 할 수도 있고, 직장에 다니다가도 언제든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시장에 없던 새로운 ‘아이템’이 나올 수 있어요. 물론 이런 환경이 조성되려면 직능원도 노력해야 하지만 재정, 법, 행정 등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해요.”


    삶을 살아가는 여러 방법

    진 부원장의 연구 성과는 한국 진로교육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국내 처음으로 실업계고(현재 특성화고) 여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학교 진로교육 프로그램(SCEP)을 만들었다. ‘창의적 진로개발’을 선보이며 교육현장의 진로교육 패러다임을 바꾼 것도 그다. 약 6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직업진로 정보망 ‘커리어넷(career.go.kr)’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 진로교육이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도 많은데요.  
    “과거엔 내신성적이 하위권인 학생들이 특성화고(옛 실업계고)를 갔는데, 특성화고가 경쟁력을 갖추면서 입학생 내신성적이 40~70%대로 상승했어요. 특성화고는 취업(고졸 특별채용전형)과 진학(특성화고 특별전형)이 모두 가능해 선택 폭이 넓어졌죠. 이에 비해 1~39%, 71~100% 범위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일반고로 진학해 상·하위권 학생이 극명하게 나뉩니다. 일반고는 대학 진학이 목표이다보니 흥미가 없는 하위권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없어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교육은 직업학교(일반고에 적을 두고 직업학교에서 수업받는 제도)가 맡는데, 문제는 직업학교가 이 학생들을 다 커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런 학생들이 진로교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요.”
    ▼ 대책은 없나요.
    “모든 학생이 대학 진학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심리상담 검사와 보충교육도 중요하지만, 장사를 하기 위해 반드시 영어, 수학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닌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와 관련한 역량을 키워줘야 해요. 목표와 의지가 없는 학생들에겐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사람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직업을 갖게 됐는지 가르쳐줘야죠.”
    그 연장선에서 진 부원장은 요즘 전국 초중고 학생들과 직업인을 이어주는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을 진두지휘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했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성공하는 삶’이 돼버린 대한민국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교육이 녹록할 리 없을 터.
    “공부를 못하면 좋은 직장에 못 간다는 고정관념부터 바꿔야죠. 다양한 직업인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것을 터득하는 게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겁니다. 그래서 젊고, 능동적이고, 교육적 안목을 가진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 멘토링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요.
    “5개 학교 학생들이 동시에 멘토링 수업에 참여합니다. 다른 지역의 학생들을 화면으로 함께 만납니다. 같은 또래인데 교복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니 호기심이 생기고 집중도도 높아져요. 학생들은 수업 때마다 멘토에게 ‘돈은 얼마나 버느냐’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했느냐’고 물어요. 멘토 중에는 솔직하게 답하는 분도 있고, 재치 있게 넘기는 분도 있어요. ‘연예인 누구를 만났냐’ ‘누가 제일 예쁘냐’는 질문도 반드시 나옵니다. 학생들은 종종 ‘진짜 직업인을 만난 것 같다’고 하는데, 이는 쌍방향 교육이 이뤄졌다는 증거입니다.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을 통해 학교현장에 새로운 러닝(학습) 커뮤니티가 생긴 것이라고 평가해요.”





    교사 역할이 중요

    ▼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직종은 연예인이겠죠?
    “맞아요. 연예인과 운동선수죠. 그 밖에 스포츠 트레이너, 푸드 닥터, 바리스타, 헤어디자이너도 인기 직업이에요. 공무원에도 관심이 많아요. 의외로 ‘사(士)’자 직업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해요. 제조업 관련 직군 멘토링 수업도 폐강률이 높은 편이죠.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의 목표는 세상의 다양한 직업인을 만남으로써 학생들이 시야를 넓히게 돕는 겁니다.”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은 MOOC(온라인 공개강좌)를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창조경제’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 사업을 2015년도 ICT 기반 공공서비스 촉진사업으로 채택했다. 그만큼 경쟁력을 가진 서비스라는 얘기다.
    ▼ 사업이 확대되고 있는데, 확실히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사가 나서야 해요. 지역, 학교, 학급, 동아리에 따라 학생들의 성향이 다른데, 이를 1차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교사입니다. 사전에 ‘학생들에게 어떤 직업에 대해 알려주면 좋을까’ 를 고민하고 조사하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요. 교사와 학생이 직업인을 만난 후 어떤 점을 느꼈는지 토론하는 것도 좋은 학습과정이 됩니다. 교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유도하는 게 직능원의 과제입니다.”
    ▼ 앞으로의 목표는.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은 온라인 시스템이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한번은 라오스에서 활동하는 국제기구 관계자의 현지활동을 실시간으로 국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수업을 기획했는데, 인터넷 환경이 불안정해 못했어요. 새해엔 학생들이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글로벌 현지 중계를 자주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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