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신동아-공정거래연구소-안철수 의원 공동기획 | 공·정·성·장 길을 찾다

“신뢰와 소통이 최고의 품질보증서”

하도급사와 ‘相生 드림팀’ 꾸린 김관교 유선종합건설 대표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신뢰와 소통이 최고의 품질보증서”

1/3
  • ● 논 다섯 마지기 집 장남…돈 벌러 건설 현장 투신
  • ● 실력 못 믿는 업체에 “아파트 가져가라”…5년 고생
  • ● 성과공유, 현금거래, 소통 워크숍 ‘共生 전략’
  • ● 일확천금 욕심 버리고 ‘할 수 있는 것 제대로 하기’
“신뢰와 소통이 최고의 품질보증서”

박해윤 기자

“내세울 것도 없는데 서울에서 인터뷰하러 오시다니….”
경기 수원시 오목천동 (주)유선종합건설 대표실에서 만난 김관교(55) 대표는 순박한 농부 같은 인상이다. 투박하지만 공손한 말투, 두터운 손, 하얀 페인트가 좁쌀처럼 튀어 묻은 회사 점퍼 차림에서 소탈함이 묻어났다. 십수 년은 족히 묵었음 직한 대표실의 기름 난로가 스산한 겨울날씨를 보듬었다. 사무실 입구에 걸린 ‘회사 5S 운동’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Smile Look(부드러운 미소), Smile Talk(칭찬하는 대화), Smile Call(명랑한 언어), Smile Work(성실한 직무), Smile Mind(감사하는 마음).
▼ 건설회사는 대개 ‘무재해’ ‘안전 생활화’ 같은 운동을 펼치는 줄 알았는데, 독특하네요.
“건설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지만 사무실에 오면 ‘노가다꾼’도 좀 부드러워져야죠. 웃으면 좋잖아요. 스마일~.”
겸손한 처신에선 알아채기 어렵지만, 김 대표는 경기 남부지역 건설업계에서 상당한 유명인이다. 30여 년 건설인으로 살아오면서 타고난 부지런함과 현금거래만 하며 쌓은 신뢰, 파이를 나누는 성과 공유로 그의 회사는 하도급사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 ‘넘버원’이 됐다. 이 회사가 연 매출 400억 원의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된 비결이기도 하다.   
▼ 줄곧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네요.
“경기대 건축공학과 80학번입니다. 1983년 12월 건설회사에 입사했으니 30년이 넘었네요. 논 다섯 마지기(661㎡, 약 1000평)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그것도 6남매 중 장남이었으니 얼른 돈을 벌어야 했어요. 우리 때는 다들 그랬어요. 전기대 낙방하고 고민했는데, 경기대에서 장학금 줄 테니 입학해서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학창 시절에 공부는 좀 했거든요(웃음). 고향이 경기 화성이라 대학 다니면서 집안 농사 거들고 소 키울 수 있겠더라고요. 논 다섯 마지기로 여덟 식구가 살아가려니 얼마나 팍팍했겠어요. 그땐 건설경기가 좋아서인지, 어른들이 ‘빨리 돈 벌려면 건축공학과 가라’고 했어요.”



전국 공사판 전전…38번 이사

▼ 그래서 돈을 빨리 벌었습니까.
“그건 좀…. 누나 결혼식에도 못 가고 대기업 건설사 면접시험을 보러 갔는데 떨어졌어요. 건축기사 1급 자격증이 있어 중견 건설회사에 입사했는데, 아 그게 참 고행이더군요. 전국의 공사 현장은 다 돌아다녔습니다. 광주 운암주공아파트, 대전 엑스포, 화성군청사 신축 공사…어휴, 안 가본 공사판이 없어요.”
김 대표는 7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늘 ‘대기업 레테르’를 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1990년 유명 대기업 건설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그곳에서 국내 최초의 초고층(30층) 아파트를 시공했고, 그때의 경험을 살려 건설기술교육원이 주최한 사례 발표대회에서 ‘초고층 공사 시 가설계획’을 발표해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건축기술사 1급 자격증을 따고 중견 건설회사 차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부지런한 소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화성시청 신축공사를 하던 중 외환위기 여파로 부도를 맞는다. 그러나 고향인 화성에 ‘고향 신청사’를 짓는다는 자부심 때문에 빈손으로 철수할 수는 없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책임자로 나서 모든 공사를 ‘돌관작업’으로 직영 처리하며 성공적으로 시청을 개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의 제안으로 회사를 차린다.
“설날에 가족들이 모였는데, 건설업을 하던 동서가 자신이 아는 회사를 인수하라는 거예요. (공사) 실적이 거의 없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였는데, 그 때가 취직 후 이사만 38번을 한 터라 좀 지쳐 있을 무렵이었어요. 홀로 되신 노모께서 ‘아비야, 꼭 그렇게 지방을 돌아다녀야 하냐, 먹고살 게 없냐’고 하시기에 ‘그래, 나도 사장이 돼 고향에 자리를 잡자’고 마음먹었죠.”
화성시청 공사를 어렵사리 마치고 회사를 차렸지만, 인수한 회사는 공사 실적이 없다보니 입찰에 참여하는 데 애를 먹었다.
“2003년부터 5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발주처 관계자가 ‘건물 지어봤어?’ 하기에 ‘내가 화성시청을 지은 사람이다. 공사비만 제때 달라’고 했죠. 그런데 낙찰을 받아도 철골이며 레미콘 같은 건축자재를 대주겠다는 곳이 없었어요. 보통 자재를 받고 한 달 뒤에 기성금을 받아 물건값을 주는데, 신생 회사에 뭘 믿고 수억 원어치의 자재를 주겠냐는 거죠. 그래서 얼마 되지도 않지만 제 명의로 된 아파트를 담보로 내놓을 테니 레미콘과 철근을 달라고 했습니다.”


1/3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관련기사

목록 닫기

“신뢰와 소통이 최고의 품질보증서”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