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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 리포트Ⅰ

취미는 잠, 멍때리기, 취준 전화번호 다 지우고 혼밥

대학가 무취미族, 아싸族

취미는 잠, 멍때리기, 취준 전화번호 다 지우고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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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미활동이라고 할 만한 게 딱히 없다’는 대학생이 많다. 밥도 혼자 먹고 강의도 혼자 들으며 무리의 외곽을 빙빙 도는 학생이 적지 않다. 이들을 지칭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행위’와 ‘관계’로부터의 도피. 고려대 학생들이 대학가의 ‘무취미족’과 ‘아싸족’을 취재했다.
취미는 잠, 멍때리기, 취준 전화번호 다 지우고 혼밥

동아일보

A씨(25·고려대 교육학과)는 최근 취업 이력서를 작성하다가 막막해지고 말았다. 취미를 작성하는 칸에 쓸 말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A씨 주변엔 해외여행을 밥 먹듯 다니는 친구도 있고, 주말엔 농구 모임을 찾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A씨에겐 이렇다 할 취미활동이 없다. A씨는 하소연한다.
“내세울 취미가 없는 대학생이 많다. 그런데 이력서는 꼭 취미란을 둔다. 이 칸을 비워두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아 적당히 메운다. ‘사람은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고 차별이다. 이력서에서 취미란을 없애야 한다.”



현실도피형 수면

요즘 20대 대학생 중엔 A씨처럼 특별한 취미 없이 사는 이가 적지 않다. 취미는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므로, 취미를 넓게 해석하면 이 세상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취미는 어떤 육체적·전문적 활동이 수반된, 말 그대로 취미란에 적을 만한 취미다. 예컨대 사진, 서예, 등산, 하이킹, 수영, 클래식 감상 같은 전형적 취미활동을 뜻한다.
취재 결과, ‘취미 없음’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은 매우 소극적인 활동으로 취미를 대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무취미 활동은 대체로 잠, 멍때리기, 대리체험, 취업준비로 유형화할 수 있다.
B씨(21·서강대 국어국문과)에겐 잠자기가 유일한 취미다. “잠을 잘 때는 어떤 잡생각도 들지 않고 힘도 안 들어서 좋다”고 한다. 그는 “평일 내내 학교에서 수업과 과제에 치여 산다. 그러다 보면 주말에는 집 밖에 나가기도 싫다. 주로 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한다”고 했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보통 오후 1시까지 늘어지게 잔다. 이어 점심을 먹은 뒤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또 잔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잔다.
주말에 몰아서 자는 B씨와 달리 C씨(20·이화여대 경영학과)는 평일에 틈틈이 잔다. 할 일이 많이 쌓여 있어도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잠부터 자고 본다는 것이다. C씨는 “일단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풀리기 때문에 의욕이 조금이라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귀가한 뒤에도 과제가 쌓여 있을 때가 많다”며 “그것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그냥 잔다. 일종의 현실 도피인 셈이다. 잠 외엔 취미가 없다”고 말했다.
2012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17분으로 한국인 평균 수면 시간 6시간 44분보다 짧았다. 잠을 적게 잔 이유는 과제(31.7%), 공부(19.7%) 등이었다. 이렇게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일부 학생들은 특별한 취미생활 없이 틈만 나면 잠을 청한다.
D씨(25·고려대 경영학부)의 유일한 취미는 ‘멍때리기’다. D씨는 “많은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며 “그럴 땐 20~30분 동안 멍때린다. 그러고 난 뒤엔 머리가 맑아지고 능률이 오르는 것 같다”고 했다. 평소의 뇌는 기초값과 활성값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만 과로에 시달리면 뇌가 기초값으로 돌아가지도, 활성화하지도 못한다. 멍때리면 뇌는 기초값을 찾는다고 한다.



“스마트폰 볼 힘도 없다”

E씨(24·부산대 건축학과)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거나 창밖 구경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학과 특성상 밤을 새워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과의 몇몇 친구도 멍때리는 습관을 갖고 있다. 다들 지쳐 있고 시간을 내 취미활동을 할 형편이 안 된다”고 전했다.
멍때리기는 연소증후군(burnout syndrom)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연소 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사람이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 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세다. 그러나 멍때리기는 능동적으로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는 점에서 연소증후군과는 다르다.
서울 월곡동에 사는 직장인 F씨(26)는 강남의 직장까지 통근하는 두 시간 동안 완벽하게 멍때린다고 한다. 그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볼 힘도 없다. 출퇴근길 두 시간 동안 퀭한 눈으로 우두커니 있는 게 내 유일한 취미인 셈”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대학생은 취미활동도 ‘대리적’으로 즐긴다. 등산이나 낚시 같은 취미활동을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남이 산을 오르거나 낚싯대를 던져놓고 기다리는 지루한 영상을 하염없이 보면서 대리적으로 즐기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가 온라인 게임을 취미로 삼고 있지만, 무취미족은 온라인 게임조차 직접 하지 않으며 주로 남이 하는 게임을 관전하는 데 만족한다. 무취미족은 스마트폰, 인터넷, 텔레비전을 십분 활용하는 셈이다.
G씨(22·고려대 교육학과)의 유일한 취미활동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이다. G씨가 주로 보는 비디오는 BJ(1인 방송인)들의 게임 실황방송이다. G씨는 “직접 게임을 하려면 돈도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직접 게임을 하는 것보다 실황방송을 통해 게임 스토리를 즐기고 BJ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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