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세태 리포트Ⅱ

“술 너무 마시고 인간미 메말랐다”

외국인 유학생 눈에 비친 ‘이상한 한국 대학생들’

  • 입력2016-01-14 10: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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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보다 대학생이 더 마셔
    • 한 학기 내내 존댓말…냉랭
    • 학점 무한경쟁…이익만 좇고 자기 일만 관심
    • 권위적이고 불합리한 선후배 관계
    우리나라엔 1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이 체류하고 있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 대학, 한국 대학생은 어떤 모습일까. 고려대에 재학 중인 몇몇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 대학생의 이상한 문화’라는 주제로 직접 쓴 글을 소개한다. 일부 글은 한국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들을 인터뷰해 썼다. 특정 대학에만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우리 대학 문화를 보여준다. 우리네 젊은 세대가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일상의 단면들을 비춘다.
    많은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 대학생들이 ‘술을 엄청 마신다’ ‘인간미가 메말라 있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꼽았다. 이어 ‘선후배 관계가 너무 권위적이다’ ‘한 학기가 지나도 친해지기 어렵다’ ‘학점 무한경쟁을 벌이고 자기 일에만 관심을 둔다’고 지적했다.



    밤마다  한국 오빠, 언니들과…

    어떤 한국인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술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한국은 1등 아니면 2등일 것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한국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1년 평균 소주 120병, 맥주 204병을 마신다고 한다. 남자는 한 달에 12번, 여자는 한 달에 6번 음주를 한다.  
    이건 놀라운 수치지만, 나는 더 놀라운 수치를 발견했다. 해외 언론에 소개된 한 논문이 말하기를, 한국 대학생이 한국 직장인보다 술을 더 자주 마신다는 것이다. 한국 대학생들은 이런 과음 습관에 대해 죄책감 같은 것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내가 본 것과 일치하기에 사실 내겐 별로 놀랍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직장인보다 한국 대학생의 음주 문화가 더 ‘노답’이라고 생각한다.
    술은 한국 대학생의 생활 속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입학해 오리엔테이션에서 술 마시고 토하지 않으면 OT를 마음껏 즐기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이 자리에서 신입생은 선배가 권하는 대로 술을 마시면서 선배의 연락처를 받아낸다. 많은 학생은 학기가 시작된 뒤 개강파티, 학과모임, 동아리모임, 선후배 모임 등 수많은 모임에서 술과 함께 나날을 보낸다. 교수님과의 종강파티에서도 술이 빠지지 않는다.
    한국 대학생들은 공부하느라 취업 준비하느라 스트레스 받는다고, 생활이 무미건조하다고, 학과 행사에 빠지면 안 된다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친구와 더 친해지고 싶다고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기 위해 이유를 찾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술 마시며 게임하는 건 한국 대학생 사이에 널리 퍼진 문화다. ‘딸기가 좋아’ ‘지하철~지하철’ ‘모모가 좋아하는 경마~게임!’, ‘랜덤게임~랜덤게임 모모가 좋아하는 랜덤게임’…등 수많은 게임이 술을 부추긴다. 한 학생은 “예술도 술 없인 안 된다”면서 “예(yeah)! 술!”이라고 말한다.
    5년 전 나는 베이징이공대 대표로 한국 대학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한국에 처음 왔다. 그때 매일 밤 한국 오빠, 언니들과 술을 마셨다. 즐거운 자리였지만 토할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술을 거의 안 마시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이런 자리는 항상 공포로 다가온다.
    여러 나라 대학생들이 저마다 고유한 음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한국 대학생 문화는 진짜 특별하다. 
    우안기·대학원(언론학)

     


    중국엔 없는 종강파티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중국 사이엔 한 줄기 강밖에 없다. 두 나라 국민은 많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인으로서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을 보게 됐다.
    중국에선 대학 졸업 때까지 학생들은 술을 거의 못 마신다. 술을 마시고 싶을 땐 교수님이나 주위의 눈을 피해 마신다. 반면, 한국에선 대학 축제 시즌이 되면 온 캠퍼스가 술집으로 변한다. 날이 밝을 때까지 술을 마신 뒤 1교시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도 많다. 중국 대학에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또한 중국 대학에선 종강파티라는 게 없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술을 마시는 일은 당연히 없다. 한국 대학에선 종강파티가 있고 그 자리에서 교수님이 능동적으로 술을 시킨다.  
    〈채청의·미디어학부〉

    뒤풀이와 차(次)

    유학생 신분에서는 마주치는 모든 것이 때론 기괴하고 신기하다. 그중 중국인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뒤풀이였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학과 행사는 학교 게시판에 공고된다. 포스터는 “가볍게 몸만 오면 됩니다” “배를 비우고 오세요” 같은 기발한 문구로 넘친다. 이런 학과 행사는 학생들 간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여서 대다수 학생이 참가한다.
    그러나 사실 학생들은 행사 자체엔 크게 관심이 없다. 가장 중요한 자리는 행사 후 진행되는 뒤풀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술이다. 한국인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국 대학생들이 ‘차(次)’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뒤풀이 자리의 횟수를 거듭하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땐 많이 놀랐다. 이 자리에선 받은 잔을 한 번에 다 비워야 했다. 나는 다음 날 동이 틀 무렵 해장국을 떠 먹으면서 비로소 이 문화 체험을 끝낼 수 있었다.
    임방정·미디어학부  





    언제 그랬냐는 듯

    한국 대학생들은 “술자리가 부담스럽다”고 말하면서도, 나중엔 언제 그랬냐는 듯 죽을 것처럼 또 술을 마신다.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는 게 이상하다. 가장 큰 문제는 선배가 주는 술을 거부하기 힘든 문화다. 대학생 과음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주원쓰·미디어학부  



    ‘식권’과 침묵

    한국 대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특별한 문화는 선후배 관계일 것이다.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전통으로 인해, 한국 대학생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학번에 있는 선배를 존중한다. 나의 한 한국인 친구는 자신의 선배와의 관계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설명한다. “선배가 나를 많이 아껴준다. 또 선배가 내게 밥을 자주 사준다. 이 관계는 졸업 후에도 지속된다.”
    그러나 몇몇 장점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살아본 많은 한국인은 이런 선후배 관계 맺는 것을 꽤 싫어한다. 실제로 많은 한국 대학생이 이 관계로 인해 갖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놀란 건, 저학년 학생이 선배에게 식사를 일상적으로 대접받는 점이다. 나도 학과의 한국인 선배로부터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이게 문화이므로 그녀에게 감사했지만 동시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선배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적지 않은 저학년 학생은 마치 선배를 ‘식권’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다른 문제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잠재적 권력을 쉽게 남용한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 대학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폭음을 강요하는 것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화를 내거나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선배는 수강 신청이나 교내 테니스코트 사용에서도 저학년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린다.
    가장 큰 문제는, 선배가 틀리거나 옳지 않을 때 후배가 이를 지적하거나 바로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려면 후배는 큰 용기를 내야 한다. 아니면 선배가 무슨 말을 하든 잠자코 있어야 한다. 이런 관행은 수업시간의 팀 프로젝트에서도 나타난다. 나의 한국인 친구는 팀 프로젝트 모임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팀원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장황하게 말하면서 시간을 낭비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그 모임의 다른 팀원들은 후배 학번이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더 나은 학교가 되려면, 학생의 나이가 많든 어리든 동등하게 상호 존중받아야 한다.
    다이아나 플로레스·국제학부

    한 학기 내내 존댓말…충격

    한류 탓에 전 세계 많은 사람이 한국에 관심을 갖는다. 누군가가 ‘집합!’이라고 한 것처럼 많은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으로 모이게 됐다. 나와 친한 일본인, 베트남인, 몽골인, 러시아인, 미국인 유학생 15명에게 한국 대학의 가장 이상한 문화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이중 11명이 ‘존댓말’을 꼽았다. 
    사람은 현실이 자신의 머릿속 고정관념과 다르게 나타날 때 이상하다고 느낀다. 한 러시아인 여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또래의 한국인 학생들과 함께 팀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들은 제게 존댓말을 했어요. ‘아직 초면이라 어색하니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그들은 제게 존댓말을 썼어요. 충격이었어요.”
    미국인 유학생도 여기에 동조했다.
    “저도 그랬어요. 미국 대학에선 존댓말 개념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은 그냥 초면이라도 성격이 맞는다고 여기면 친해지고 그래요. 한 학기 내내 같이 지냈는데도 존댓말을 쓰는 건 상상하기 힘들죠. 그래서 한국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비롯한 중국인 유학생들도 한국 대학생들이 존댓말을 지나치게 많이 쓴다고 여긴다. 외국인은 한국어와 자신의 모국어가 잘 대응되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또 그 언어를 기반으로 한 문화도 낯설게 느낀다.
    내 모국어는 중국어다.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수많은 존댓말을 탈락시켰다. 요즘 중국 대학에선 학생들끼리 존댓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선후배 간에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외국어를 들을 때 본능적으로 모국어로 번역한다. 한국 학생이 중국인 학생에게 존댓말을 쓰면 중국인 학생은 그것을 번역할 적당한 모국어를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한국 문화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몇몇 외국인 학생은 “저는 한국인 팀원들과 빨리 친해져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분들은 말을 놓지 않았다. 계속 그러니 답답하다”라고 말한다. 한 학기 4개월이 지나는데도 다시 존댓말로 돌아가는 이 인간관계의 요요 현상. 한국 대학의 이상한 문화다.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건 좋은 일이지만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지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멀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국 대학생들도 ‘편리한 교제’로 나아가는 게 어떨까 싶다.

    〈최해정·미디어학부〉



    인간미 없는 일회용 팀플

    요즘 사람들은 일회용품을 즐겨 쓴다. 한국 대학의 팀 프로젝트(조별과제) 활동도 거의 일회용이다. 중국인 유학생으로서 2년간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이 점이 제일 적응하기 어려웠다.
    한국 대학 수업에서 팀플은 일상적 일이지만 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엔 내가 한국어도 달리고 학습능력도 부족하고 팀 멤버들과 성격도 잘 안 맞아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친구들은 한국 대학의 팀플 자체가 일회용이라고 말해줬고 나도 공감하게 됐다. 
    수업시간에 팀 과제를 위한 팀이 구성되면 그다음엔 팀원들끼리 서로 얼굴 볼 필요 없이 주로 카카오톡 방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이게 내가 아는 팀플 문화의 실상이다. 간혹 팀 과제가 복잡하거나 내용이 많을 땐 팀원들이 모일 수 있다.
    그러나 과제가 완성되면 팀원들은 수업시간에 서로 말도 잘 하지 않는다. 카톡방에서도 당연히 말을 하지 않는다. 과제를 내자마자 한마디 말도 없이 카톡방에서 탈퇴하는 멤버도 여럿 봤다. 한 외국인 친구는 “한국 대학의 팀플은 일종의 꿈”이라고 말한다.
    “꿈속에서 대화하듯 사람을 대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만 이건 만나는 게 아니다. 해야 할 과제만 존재하고 인간미가 메말라 있다. 한국 학생들끼리도 그렇게 팀플을 한다. 미국 대학에서 팀플을 했을 때는 서로 잘 지냈고 지금도 SNS로 연락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한 팀플에서 만난 선배 한 명과 전공수업 3개를 같이 듣는데 길에서 만나면 인사도 잘 하지 않는다.”
    요즘 한국 대학생들은 학점 챙기랴, 아르바이트하랴, 스펙 쌓으랴, 외국어 공부하랴 늘 정신이 없다.
    그래서 팀플도 과제만 내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말을 섞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엔 인간미가 있어야 한다.
    진림지·미디어학부



    “타인 신경 써줄 여유 없어”

    우리는 서울시내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을 여럿 만나봤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유익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한국 학생들로부터 인간미를 느끼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영국인(25) 유학생은 “한국 대학생들은 대개 나와 ‘잠깐’ 대화하고는 다시 외면한다. 친해지기 어렵겠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한 몽골인 유학생(22·여)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 외국인에게 말을 안 건다고 들었다.
    그래서 몇 번 한국어로 인사하며 다가가봤지만 실패했다. 별로 대화를 나눌 뜻이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 재중동포(22)는 “팀 과제를 할 때마다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한 대학생 조종석(28·남) 씨는 “취업난 탓에 대학생들이 타인에게 신경 써줄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한국 대학생들도 모두 겪는 일인데,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이 자신들을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대학 내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찾기 힘들고 경쟁의식만 남은 것에 대해 특히 거부감을 나타냈다. 한국 학생들은 학점만 신경 쓰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 중국인 유학생(20·여)은 “학점 무한경쟁을 벌인다. 모두 학점 따는 것만 중시한다. 이익만 좇을 뿐 주변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몇몇 외국인 유학생은 권위주의 풍조가 수업시간으로 이어져 교수에게 도통 질문을 안 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학점 경쟁으로 교수의 권한이 더 커지면서 학생들이 교수에게 질문하기를 꺼린다는 것. 학생들은 이를 ‘수업 중 음소거’라고 한다. 교수의 정치적 취향에 맞춰 리포트 논조를 손보는 일도 잦다고 한다.  
    한 우즈베키스탄인 유학생(24·여)은 “몇 번 질문하다 한국 학생들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특히 학생들은 수업이 끝날 무렵 질문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안병국(24·남) 씨는 “학생들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주로 수업 후 교수에게 따로 질문한다. 타인의 수업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무언(無言)의 약속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우리 대학생들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단단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김정훈·경영학부, 이민재·불어불문학과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 글쓰기’ 수강생들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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