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새 연재 | 강지남 기자의 국경 없는 쇼핑백

단골 마케팅+스마트 물류=‘거리의 종말’

해외직구도 무료배송 시대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6-01-14 13: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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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직구가 일상적 소비생활로 자리 잡은 요즘이다. 스마트폰과 신용카드 한 장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원하는 물건을 내 집까지 배달시킬 수 있다. 최근에는 ‘역직구’가 화두다. 해외 상품 소비만 하지 말고 우리 상품을 전 세계에 내다팔자는 것이다. 그러니 ‘해외직구’란 용어는 더 이상 맞지 않다. 쌍방향의 글로벌 전자상거래, 즉 국경을 넘나드는 전자상거래(Cross-Border e-Commerce) 시대다. 전 세계인이 국경 없이 소비생활을 즐기는 것은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우리의 일상과 산업환경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이 연재에서는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잡아 ‘국경 없는 쇼핑백’의 은밀한 속내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배송료 파괴’다. 바다 건너에서 물건을 주문하면서도 배송료 한 푼 내지 않는 시대다!
    ‘Free International Delivery on all orders over £50’
    갓난아기가 잠든 황금 같은 한낮. 한 달 넘게 집에 갇혀 있던 산모는 유럽 여행 기분이라도 내보자며 ‘런던비즈니스산책’(박지영, 2013)을 펼쳐 들었다. 첫 장은 ‘소매점의 황제’ 필립 그린. 그가 누군가. 이효리가 사랑하는 패션 브랜드 ‘톱숍’의 창업주이자, 아들 생일파티에 수십억 원을 쓴다는 억만장자. 런던에 사는 저자는 그의 또 다른 패션 브랜드 ‘미스 셀프리지’ 역시 영국의 젊은 여성들로부터 꽤나 사랑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련된 디자인의 옷을 저가에 내놓는 게 비결이란다.
    마침 꽤 멋진 원피스 한 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직 복직하려면 반년도 더 남았지만, 옷장을 열 때마다 쳐다보며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얘들아, 엄마도 나름 커리어우먼이란다), 다이어트를 격려할(저걸 입으려면 출산 전 몸매로 돌아가야 해!) 채찍 같은 소장품. 그리하여 구경이나 해보자며 컴퓨터를 켜고 www.missselfridge.com에 입장한 순간, 대한민국 국기가 조그맣게 뜨더니 저 문구가 나타났다. 50파운드, 8만 원어치만 사면 서울 맨 끄트머리에 있는 우리집까지 무료로 갖다준다고? 정말?



    ‘Delivery Charge 0’

    나는 1세대 해외직구족이다. 2008년 아마존에서 지도책을 산 것을 시작으로 2009년 첫아이를 낳고부터는 주로 태평양 건너에서 아동복을 조달받았다.
    해외직구의 가장 큰 장벽은 배송료다. 미국 업체에 아동복을 100달러어치 주문하면 배송료로 30달러가량을 내야 한다. 독일 아마존에서 커피머신을 샀을 때는 배송료를 7만 원 가까이 지불했다. 물론 적지 않은 배송료를 들이더라도 같은 제품을 국내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해외직구를 하지만 그래도 배송료는 좀 아깝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8만 원 들고 서울 거리로 나가 회사에 입고 갈 만한 원피스 한 벌 구해보라. 백화점은 언감생심이요, 보세 옷가게에서도 주눅 드는 액수다. 그래서 심혈을 기울여 미스 셀프리지에서 옷을 골랐다. 마침 세일까지 하고 있어 평소 입을 옷 두 벌을 보태 세 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Subtotal £67’. 바로 그 아래에 ‘Delivery Charge £0’라고 떴다. 그리고 8일 후 정말로 물건이 집에 도착했다!(혹시 착불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런던 옥스퍼드스트리트 매장에 걸린 원피스를 손에 넣은 것이다.
    2년 전의 이 경험을 계기로 글로벌 e커머스 업계의 무료배송 실태를 틈틈이 관찰해보니 국제 무료배송을 제공하는 업체는 꽤 많고,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대부분 미스 셀프리지처럼 일정 가격 이상 구매하면 배송료를 청구하지 않는 식이다.
    영국 온라인 패션쇼핑몰 아소스(asos)는 미스 셀프리지보다 더 파격적이어서 20파운드 이상 주문하면 무료 배송해주고, 그 이하여도 배송료가 3파운드(약 5300원)에 불과하다. 해외직구족의 입문 코스라 할 미국 아이허브(iHerb)의 무료배송은 가히 이마트 급이다. 구입액이 40달러 이상이면 공짜로 배달해준다. 비록 이마트는 당일 배송(4만 원 이상)이고,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하는 아이허브는 영업일 기준 3~5일이 소요되지만.
    국제 무료배송과 관련해 진짜 무서운 선수는 역시나 ‘대륙’에 있다. 중국 최대 인터넷 전자상거래 타오바오(淘宝网)의 해외판 격인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는 구매 가격과 상관없이 세계 각국으로 무료배송을 해준다. 스마트폰 케이스나 케이블선 등 1만 원도 안 되는 IT 액세서리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해 무료로 배송받았다는 구매 후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물건을 받으려면 한 달쯤 기다려야 하고, 종종 배달사고가 난다는 게 경험자들의 전언이다(유료배송을 선택하면 DHL, UPS 등을 통해 좀 더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받을 수 있다).



    싼 것도, 무거운 것도 공짜

    알리익스프레스의 등장은 한국에 재미난 트렌드를 낳았는데,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들이 ‘셀프 웨딩’을 준비하며 중국에서 웨딩드레스를 조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웨딩드레스 상당수가 중국산이고, 빌려 입는 값만 해도 20만 원이 넘으니 아예 중국 웨딩드레스 제조업자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것이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wedding dress’를 검색하면 190만 건이 넘는 상품이 주르륵 뜬다. 가격은 대체로 30~150달러.
    상대적으로 가벼운 의류나 IT 액세서리는 그렇다 쳐도, 무게와 부피가 꽤 나가는 리빙(living) 제품을 무료 배송해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 멀리 스웨덴의 부산쯤 되는 남동부 해안도시 칼마르(Kalmar)에 있는 스칸디나비안디자인센터(scan dinaviandesigncenter)가 그런 곳이다.
    이 회사는 집 안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이딸라 접시, 마리메꼬 머그잔, 진드기 걱정 없다는 파펠리나 러그 등을 한국 백화점보다 많게는 60%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천국’이다. 이 회사는 199달러 이상 구입하면 무료배송을 해준다. 나도 무료배송 받은 적이 있는데, 무게가 9.4kg나 됐다. 물건이 깨질세라 에어캡(뽁뽁이)을 잔뜩 두른 탓에 상자도 컴퓨터 한 세트를 너끈히 넣을 수 있을 만큼 컸다.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이 정도 무게의 소포를 우체국 국제특송(EMS)으로 보내려면 10만 원쯤 든다(9.5kg에 10만5800원). e커머스 업체들은 물류회사에 개인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겠지만 그래도 몇 만 원은 들지 않을까. ‘Free International Delivery’ 서비스를 하고도 남는 게 있을까.
    스칸디나비안센터닷컴에는 한국 시장을 담당하는 한국인 마케터가 있다. 어경선 매니저다. 그는 최근 유행하는 북유럽 이민 성공 사례다. 국내 대학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가서는, “내가 한국 시장을 키우겠다”며 이 회사 문을 두드려 서너 달 인턴으로 근무한 뒤 2014년 정식 채용됐다. 그는 “한국은 유럽 국가를 제외하면 매출 비중이 상당한 주요 시장”이라고 했다. 일본은 자체적으로 리빙 시장이 발달했고 중국엔 아직 배송 장벽이 있지만, 한국은 리빙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북유럽 스타일’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임재국 대한상공회의소 물류혁신팀 연구위원은 “물류는 효율이 생명”이라고 강조하면서 “국제운송은 IT 기술을 바탕으로 고효율화하고 있어 앞으로는 국제 운송비가 국내 운송비보다 저렴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선두 물류사인 DHL이 2014년 펴낸 ‘물류 트렌드 레이더’ 보고서는 주요 메가트렌드 중 하나로 ‘거리(distance)의 종말’을 꼽았다. 국가 간 수·출입 관문이 간소화하고 물류 효율이 극대화하면서 저비용 물품 운송이 가능해졌다는 뜻에서다. 보고서는 ‘소상공업체들이 효율적으로 세계 전역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찾는 인재요? 컴퓨터·로봇·데이터·패키징 사이언스 전문가죠.”(어재혁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장)
    국내 1위 물류기업 CJ대한통운은 기업 부설 연구소로 종합물류연구원을 운영하는데, 최근 1년 사이 연구 인력을 40여 명에서 60여 명으로 늘렸다(앞으로 더 늘린다고 한다). 미션은 연구개발(R&D).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고도로 효율화한 물류 시스템을 개발해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물류 혁명에 대응하는 것이다.



    ‘물량’과 ‘물류’의 시너지

    어재혁 원장은 ‘노가다’ 물류회사에 이런 변화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가 해외직구의 확산이라고 말했다. 대량의 기업 물건을 컨테이너에 실어 운송하는 계약물류(CL·Contract Logistics) 비중이 여전히 크지만, 글로벌 e커머스가 쑥쑥 성장하면서 기업-개인 간(BtoC), 혹은 개인 간(CtoC) 물량이 무시 못할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배달해야 하는 물건이 ‘소품종 다량’에서 ‘다품종 소량’으로, 해상 중심에서 항공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런 니즈에 대응하려면 컨테이너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빅데이터를 분석해 물류 흐름을 예측하고, 로봇과 첨단 패키징 기술을 활용해 물류 처리 속도를 높여야 한다. 어 원장은 “상품 경쟁력이 어느 수준으로 높아진 이후에는 물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며 “유통과 물류 사이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직구가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물류업체까지 판도를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덩치가 깡패’다. 물량이 많을수록 협상력이 커지므로 더 저렴한 가격에 첨단 물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래야 고객에게 무료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하루라도 더 빨리 배송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고객을 늘리는 효과도 가져온다. 알리익스프레스 입점 셀러들이 개별적으로 차이나 포스트와 계약을 맺는다면 배송료 단가는 지금보다 훨씬 비싸질 것이다. 덩치가 작다면 한데 뭉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국제 배송료 파괴가 소비자의 글로벌 전자상거래 이용을 촉진하고, 글로벌 물류 확대가 물류비를 낮춘다. 이는 다시 무료배송 확대에 기여한다. 이 ‘선순환’에 어떻게 올라탈 것인가. 이것이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에 진출하려는 업체들의 과제가 됐다.
    런던에서 무료 배송받은 원피스는 어떻게 됐냐고? 아줌마가 입기엔 생각보다 길이가 짧아 지금까지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옷장 속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해외직구 실패를 막으려면 반드시 체크할 사항이 여럿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심도 있게 살펴볼 예정이다.  

    인터뷰 | 요르겐 보머 스칸디나비안디자인센터 CEO“글로벌 신세대 겨냥한 ‘Quick & Free’ 배송 필수”


    ▼ 국경을 넘나드는 전자상거래(Cross Border e-Commerce)가 확산될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세계인들은 스마트폰 발전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쇼핑할 수 있게 됐다. 해외에서 물건을 사는 데 대한 걱정도 많이 사라졌고, 언어 장벽도 많이 낮아졌다. 얼마 전 16세 딸이 일본 웹사이트에서 쇼핑하는 것을 보고 일본어를 아냐고 물었더니 ‘아빠, 구글 번역기가 있잖아요’ 하더라. 전과 달리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경계선이 없다.”
    ▼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도 무료배송 서비스를 고집하는데. 
    “글로벌 고객은 배송료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 빨리 배송받고 싶어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대가는 매우 비싸다. 하지만 전 세계 고객에게 물건을 팔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두 요소 간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저유가라 국제 물류비가 합리적인 수준이지만, 앞으로 e커머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국제 물류비가 인상되면 무료배송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 무료배송이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핵심 요소다?
    “그렇다. 심리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은 오프라인 상점에서 쇼핑하느라 시간과 교통비를 지출하는 것을 비용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을 할 때는 해외에 주문하는 건데도 배송료를 장애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 더 많은 판매자가 국제 무료배송 서비스에 도전할까.
    “물론이다. 유럽의 e커머스 회사들은 글로벌 전자상거래가 돌이킬 수 없는 트렌드라는 것을 잘 안다. 점점 더 많은 회사가 해외 판매에 나설 것이며, 글로벌 고객을 잡기 위해 무료배송을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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