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특별기획 | 북핵, 북핵, 북핵, 북핵!<세계는, 한국은 | 마지막회>

흡수통일 유일한 길은 독일式 ‘접근 통한 변화’

날뛰는 北 무릎 꿇리려면?

  • 장량(張良)|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정치학박사

    입력2016-01-21 15: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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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낫을 마구 휘두르며 “다 찔러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자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싶지만 그러다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4차 핵실험에 흥분할 때가 아니라 우리 실력을 냉정히 평가하고 나서 북을 무릎 꿇려 흡수한 후 인구 7500만 명, 면적 22.2만㎢, 동-서 800㎞ 남-북 1500㎞ 영토 범위를 갖는 강국으로 가는 길을 모색할 때다.
    1970~80년대 필자의 고향에서는 뜨거운 여름날 막걸리를 폭음하고 대취해 상의를 다 벗어던진 채 낫을 들고 “다 찔러 죽이고 나도 죽자”고 소리 지르며 날뛰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동네 사람들은 걱정은 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듯이, 그의 형에게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팬 뒤 집으로 끌고 가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잘못하다 형이 동생이 휘두른 낫에 다치기도 했다. 바로 지금 북한이 핵무기라는 커다란 낫을 들고 날뛰는 못된 동생 꼴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원자탄보다 폭발력이 100배 이상 강한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또 한 번 시퍼렇게 날 선 낫을 들고 설치기 시작한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 형을 코너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힘깨나 쓰는 이웃 중국의 정치인, 외교관, 학자는 물론이고 보통의 국민까지 나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정신 나간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담장을 접한 이웃집 망나니 동생을 앞장서서 혼내주려고 하진 않는다. 그자를 징치(懲治)하려다 자기네 식구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자가 그렇게까지 된 것은 멀리 떨어진 동네에 사는 미국이 그자의 행실이 나쁘다고 상대도 해주지 않고 수시로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동네 사람들이 부추기는 대로 몽둥이를 들고 정신 나간 북한을 상대해 유혈낭자하게 싸워야 할까. 각기 이해관계가 다르고, “큰일났다”고 말은 하면서도 제대로 도우려곤 하지 않는 동네 사람들을 설득해 함께 징치에 나서야 할까. 이해관계가 다른 이웃 사람들이 망나니 동생의 형 뜻대로 움직여줄까. 북한을 징치하려다가 휘두르는 낫에 찔려 중상을 입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방어는 철저히 하되, 못된 동생 북한으로 하여금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게 하고, 낫을 치우게 한 뒤 낫을 들고 설치는 이유를 찬찬히 물어보고 해결책도 모색해가야 할까. 



    “짧은 순간을 움켜쥐어라”

    26년 전인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처럼 분단된 처지이던 서독은 동독을 어떻게 다뤘을까. 디트리히 겐셔 전 독일 외상은 독일 통일이 “비구름 뒤에 숨은 태양이 잠깐 얼굴을 내민 짧은 순간을 움켜쥐어 달성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통독(統獨)은 도둑처럼 온 것이 아니라 찰나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독일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인내와 지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통독은 콘라드 아데나워(총리, 보수)가 이뤄놓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에곤 바르(특임장관, 진보)가 설계하고, 빌리 브란트(총리, 진보)가 감리했으며, 헬무트 슈미트(총리, 진보)를 거쳐 헬무트 콜(총리, 보수)과 디트리히 겐셔(외상, 중도)가 종결지은 독일 민족의 숙명적 과업이었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 바르는 통독은 소련과 함께 가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서독은 소련이 바라는 대로 동독을 안정시켜야 하며 경제협력을 통해 동독 주민의 삶을 개선시켜 동·서독 간 경제·문화적 유대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바르의 주장이었다. 그는 이를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rung)’라고 했다. 변화를 위한 조치가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결국 통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바르는 민족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였다. 바르의 아이디어는 사민당(SPD) 출신 총리 브란트의 지지를 받아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구체화했다. 동방정책은 처음에는 서독 보수(기민당/기사당)는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 심지어 동독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미국의 외교안보 책사(策士) 헨리 키신저는 동방정책이 독일을 유럽의 중심에 위치시키려는 비스마르크식 고전적 외교 책략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국이 동방정책을 반대하면 서독과 여타 유럽 국가의 관계가 악화되고, 이는 결국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해 동방정책을 지지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세 갈래 길

    동방정책은 동·서독 간 세력균형의 기초 위에서 서독의 국익을 확대하고자 추진됐다. 브란트 정부는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대(對)소련 접근을 시도했다. 그 뒤를 이은 사민당(진보) 슈미트 정부, 기민당/기사당(보수) 콜 정부는 동방정책 수행 과정에서 초강대국이자 우방국인 미국의 핵심 이익에 결정적으로 반하는 행보는 하지 않았다.
    서독은 미국의 의심을 받아가면서 소련과 함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창설을 주도했다. 동독과 교역을 확대하고, 동·서독 간 왕래도 쉽게 하는 양자협정도 체결했다. 이는 서독에 대한 동독의 경제의존도를 높였다. 동방정책은 국내외 정세 변화에 따라 양상을 바꿔가면서 1990년 통독 때까지 계속됐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을 경우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030년까지 1.5~2.5%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질과 양,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탈바꿈해야 한다. 질 측면의 변화는 과학기술 혁신과 경제·사회구조 개혁에 기초한 경제 활성화이며, 양 측면의 변화는 통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면적 12만3000㎢, 인구 2500만 명, 석탄 철광 우라늄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으며 대륙으로 가는 교량 노릇을 할, 북한이라는, 다른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통일 대상이 있다. 아무리 깡패같이 행동하더라도 이런 북한을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의 심각한 경제 문제와 북핵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통일을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대외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통독의 책사 바르가 말한 ‘접근을 통한 변화’ 역시 대안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거듭 핵실험을 자행하면서도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바라고 있다. 중국 역시 남북한 관계 개선과 경제협력을 원한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집권 후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도 경제 건설에 매진해나갈 것임을 표명하곤 했다. 
    북한 4차 핵실험 이후의 대북정책은 다음의 3갈래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①적극적 관여(engagement) 정책으로 전환해 북한의 변화를 촉진 ②북한 내부의 상황 전개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한반도 안정을 위한 현상 유지 추구 ③핵실험 자행과 같은 김정은의 망동을 체제 붕괴의 전조로 인식하고 봉쇄(containment)를 통한 북한 붕괴 정책 실시.
    봉쇄정책은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가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실시한 유럽대륙 봉쇄나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실패로 끝난 데서 알 수 있듯 성공한 예가 드물다. 중국이 숨통을 틔워주는 한 북한 봉쇄는 불가능할뿐더러, 가능하다 해도 한반도의 극심한 불안정과 북한의 중국 경제 의존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15년 현재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90% 이상이며 중국 위안화는 오래전부터 북한에서 주요 거래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圍師必闕 窮寇勿迫

    따라서 유일한 통일 방안은 이제 막 시장화를 시작한 북한의 체제변화를 촉진하는 정책 추진이라고 하겠다.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려면 대북 경제협력이 필요하다.
    북한은 2014년 이후 농촌에서는 포전제(분조관리제 틀 속에서 가구별로 영농 자율성을 부여하는 과도기적 제도), 도시에서는 기업소별 독립채산제를 실시하는 등 농장 및 공장 운영과 관련한 시장적 요소의 상당 부분을 합법화했다. 중국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수준으로 시장화가 진행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에는 장마당을 능가하는 수준의 국영 판매소가 속속 등장하는 등 시장화가 점점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오는 5월 초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새로운 정책이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판 개혁·개방 등 새로운 노선이 제시될 소지도 있다. 시장화 단계에 진입한 북한은 정권 안보를 위해서라도 시장 요소 확대를 계속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①의 정책(적극적 관여)을 구사할수록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키며, 평양에 더 많은 딜레마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고, 통일의 조건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또한 ③의 정책(봉쇄를 통한 붕괴 촉진)으로 갈수록 북한은 물론,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은 고립될수록 추가 핵실험을 포함한 단말마적 정책을 계속해나갈 공산이 크다.
    우리가 핵무기와 미사일을 가진 북한을 두려워하듯 북한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한국을 무서워한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한국이 체제(흡수)통일을 기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실시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휴전선 남쪽에 선진국 수준 경제를 운용하는 한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배층은 정권 안보가 확보되지 않은 개혁·개방은 자신들의 신변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손자병법’ 군쟁편(軍爭篇)에 ‘위사필궐(圍師必闕) 궁구물박(窮寇勿迫)’이라는 말이 있다. 퇴로가 막힌 군대는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만큼 적군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퇴로를 열어주고, 궁지에 몰린 도둑은 가진 힘을 다 쏟아 저항하는 만큼 끝까지 쫓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려면 봉쇄·압박보다는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경제협력 정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祖江 프로젝트’

    무력통일이나 합의통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유일하게 남는 것은 경제협력을 통한 점진적 흡수통일뿐이다. 점진적 흡수통일은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에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도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이다.
    4차 핵실험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에도 개성공단은 운영되고 있다. 이는 북한에 개성공단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본재를 조달하기 위해 더 많은 외화를 원한다. 지린성과 랴오닝성 등 중국에서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 수가 수만 명을 넘어섰다. 옌볜조선족자치주에만 6000명 넘게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관광수입 증대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동·서해 연안과 북·중 국경, 대동강 연안 등을 개발구로 지정하기도 했다.
    한국은 북한이 지정한 개발구 중 한 곳에 진출해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면 북한과 한강 하구 조강(祖江,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이룬 강) 남쪽에 위치한 강화도의 부속도서 교동도와 그 북쪽 대안(對岸) 황해도 연백평야를 교량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 연백평야는 동쪽의 개성, 서쪽의 해주와 옹진반도로 연결된다.
    그렇게 되면 강화, 김포 등에 소재한 우리 기업체가 북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 강화나 김포는 한국 땅이라 공장 추가 설립과 운영에 가외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며 공장지대를 특별 관리하면 북한 근로자의 탈출 같은 곤란한 문제도 막을 수 있다. 강화, 김포 등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북쪽의 연백평야나 해주, 옹진반도 등지로 공단을 확대할 수 있다. 생산된 제품은 인천항과 영종도 인천공항을 통해 수출한다.
    강화, 김포와 기존의 개성공단, 연백평야, 해주, 옹진반도를 연결하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중심으로 수시로 발생하는 군사 긴장도 완화할 수 있다. 조강 프로젝트가 자리 잡으면 다롄에서 선전에 이르는 중국 연안도시에 진출한 기업 중 인건비 급상승 등 기업 환경 악화로 한계에 달한 업체 다수가 이 지역으로 이전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남포, 신의주, 원산, 금강산, 흥남, 청진 등의 개발도 상정해볼 수 있다. 조강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남북 긴장이 완화되면 인천 앞바다 경기만을 대규모로 매립해 ‘국가 내 국가’라 할 수 있는 홍콩과 같은 국제도시 건설도 추진해볼 만하다. 이 역시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과 통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대일로’와도 조응

    중국은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중서부 개발에 적극적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전까지 중국 최대 공업지대였으나 지금은 낙후된 만주 공업지대 복구에도 열의를 갖고 있다. 베이징대 진징이(金景一)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 통일 시 만주지역 GDP는 약 1600억 달러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창춘-지린-투먼-훈춘 개발에도 소매를 걷었다. 지린성 정부를 포함한 중국 당국은 창-지-투-훈을 고속철도로 연결하고, 이를 나선항, 청진항에 추가 연결해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의 물산을 부산과 상하이, 선전, 홍콩 등으로 운송하려 한다. 2014년 말 현재 하얼빈-상하이 간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육로 운송 시 15일·4800달러, 다롄항을 이용한 해상 운송 시 8~10일·2000달러가 소요되는데, 창-지-투-훈을 경유해 나선항(혹은 청진항)을 이용하면 6~8일·1700달러가 소요된다.
    중국은 랴오닝성 다롄-선양-단둥 삼각지점(triangle)을 고속열차로 연결하는 등 압록강 하구 지역을 이용한 북한과의 협력 증대도 대비한다. 마지막 구간인 다롄-단둥 간 고속철이 지난해 12월 완공됐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옌볜조선족자치주 및 단둥을 포함한 만주 진출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압록강, 두만강변의 우리 업체들은 북한 주민에게 발전상을 알리는 일종의 쇼윈도 구실을 할 수 있다. 만주지역에 대한 한국의 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차원의 만주, 연해주 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계기로 추진된 FTA 특구에 옌볜조선족자치주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강 하류의 조강을 축으로 한 남북 경제협력구가 자리를 잡으면, 남북 간 추가 경제협력 수요도 생겨날 것이다. 신뢰 구축 단계에 도달하면 △서울에서 개성, 평양을 거쳐 신의주와 단둥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서울에서 금강산, 원산, 청진을 거쳐 투먼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 청진에서 갈라져 나선과 연해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건설도 검토해볼 만하다.
    중국도 단둥에서 부산, 투먼에서 목포로 연결되는 고속철도·고속도로 건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과 만주, 연해주가 고속철도·고속도로로 직접 연결되면 경제교류 증가는 물론, 한국과 중국 기업에 의해 동북부 만주와 연해주 지역 개발이 촉진될 것이다. 이와 별도로 인천, 평택과 다롄, 또는 롄윈(連雲)항, 웨이하이 등 중국 연안 항구를 연결하는 서해 열차 페리 운행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 경유 고속철도나 고속도로 아이디어에 대한 레버리지로도 활용할 수 있다. 서해 열차 페리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부산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유럽까지 열차로 여객이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진출 확대를 위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진 중인 중국이 희망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경제협력 제도화해야

    교통과 물류에 이어 에너지 분야 협력도 검토해야 한다. 시베리아 극동에서 시작해 북한 동해안을 경유하고, 한국 동해안을 통과해 일본 규슈와 서부 혼슈로 이어지는 시베리아 극동 석유·천연가스 운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파이프라인은 지하에 묻히므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적다. 토지 사용료와 함께 석유와 천연가스 일부를 공급받게 될 북한도 적극 응할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 나아가 일본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메가 그리드 구축도 남북 경제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러시아의 수력 에너지, 몽골의 풍력 및 태양열 에너지를 북한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공급하면, 경유지가 되는 북한은 만성적 에너지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 따르면, 몽골의 풍력 에너지로만 한국 전력 수요의 23배, 태양열 에너지로는 13배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대만 통합의 신호탄이면서 협정 자체로는 대만에 더 유리한 내용이 담긴 중국-대만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2010년 6월 제2차 국공합작회의가 개최(1937~1945)된 바 있는 충칭에서 체결됐다. 이에 따라 대만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한층 더 심화했다. 2015년 현재 대만의 대중국 경제의존도는 40%가 넘는다. 대만 경제는 이제 중국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중국은 대만 독립을 반대하는 국민당은 물론 독립을 찬성하는 민진당과도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놓았다.
    중국이 ECFA를 통해 대만을 중국 경제권으로 끌어들였듯 북한의 대한국 경제 의존을 심화하려면 남북경제협력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북한과의 교역 때 마이너스 관세를 부과하는 등 특혜를 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군사적 신뢰관계 구축에 이르지 않더라도 ECFA 체결 등 경제협력의 제도화만으로도 북한 체제의 이완을 야기할 수 있다. 평화리에 점진적으로 북한을 흡수할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1871년의 독일 통일도 프로이센의 강력한 군사력과 함께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외교 및 관세동맹이 밑바탕이 됐다. 당시에도 관세동맹이 프로이센에 대항하던 바이에른 등의 군사력만 강화해 준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비스마르크 등 프로이센 지도부는 독일 통일을 위해 관세동맹을 밀고 나갔다. 관세동맹이 주는 경제 혜택을 거부할 수 없었던 바이에른, 바덴 등 남부 독일 국가들은 결국 통일 대열에 합류했다.
    김정은이 지배하는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려면 국민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또한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이 믿을 만한 상대라고 인식하게 해야 한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군사적 수단에 호소해보려는 유혹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덧붙여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결코 감내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전략무기 지원 없이도 단독으로 전쟁을 치를 전술·전략체계를 갖춰나가면서 군의 전투력도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가 통일을 이뤄내면 인구 7500만 명, 면적 22.2만㎢, 동-서 800㎞, 남-북 1500㎞의 영토 범위를 갖는 강국이 된다. 통일은 단순히 ‘한국+북한’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 4~5배 이상의 국력 향상을 가져다줄 것이다. 통일 이후에도 당분간 한국 경제와는 별도로 운용될 북한 경제는 20년 이상 연평균 15% 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한국은 통일 15~20년 후에는 독일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게 될 것이다.



    통일한국의 꽃놀이패

    세계는 통일된 한국을 어떻게 대우할까. 아시아 3강의 하나로 대두한 남아시아의 대국 인도를 보자. 인도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과 러시아, 베트남 등으로부터 적극적인 구애를 받고 있다.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통일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독일 인도 등 강국 모두가 중시할 수밖에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통일한국은 중국 국가주석과 일본 총리가 취임 후 가장 먼저 방문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가 말한 바와 같이 한반도는 조선왕조 말과 6·25전쟁 시기처럼 국력이 약하던 시기에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 전쟁터가 됐으나 통일한국은 더 이상 강대국 간 싸움터가 아니라 만주와 몽골, 연해주 등에 경제·문화적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국제정치는 국가와 국가 간 작용과 반작용, 갈등과 협상, 타협의 산물이다. 한반도의 장래는 워싱턴과 베이징 간 협상과 타협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주변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결정되느냐, 불리하게 규정되느냐는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의 능력과 의지, 대외정책의 향방에 달렸다. 조속히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북한은 물론 한국도 병자호란 이후 조선과 같이 인근 강대국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흥분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북한이 날뛴다고 우리도 가볍게 움직여선 안 된다. 이는 북한이 바라는 바다. 북한이 또다시 핵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이유를 분석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은 UN 제제에 동참하더라도 자국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접적 대북 제재는 취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북한 정권 안보에 심대한 타격을 줄 ‘이란식 제재’는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무기 위협에 직접 노출된 우리가 날뛰는 북한을 무릎 꿇려 흡수통일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으며 평화리에 북한을 흡수할 수 있는 길은 ‘접근을 통한 변화’밖에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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