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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강정’ 드러난 ‘보여주기’ 대북정책

동북아 정세의 재구성

  •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前 국가정보원 북한담당 기획관

‘속 빈 강정’ 드러난 ‘보여주기’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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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wishful thinking 매몰돼 북핵 관리 실패
  • ● 한미동맹에도 균열 감지…베트남만 못한 한국
  • ● 中 공산당, 북핵 관련해 내부 의견 충돌
‘속 빈 강정’ 드러난 ‘보여주기’ 대북정책


북한은 1월 6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노동당의 전략적 결심에 따른 수소탄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주장의 정확성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지만,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 다종화와 핵 능력의 증대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왔으며 일정한 성과를 거뒀음이 다시 확인됐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2009년 2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 이후 핵 능력을 더욱 강화했음을 보여주고, 이 같은 흐름은 한국 정부의 대북·대중 정책과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등과 맞물려 동북아 정세를 심각하게 변동시키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 평가해보면 다음과 같다.


‘속 빈 강정’ 드러난 ‘보여주기’ 대북정책

노동신문 1월 11일자 1면.

첫째,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대중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줬다. 박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친중정책을 통해 중국을 지렛대로 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일 대박’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 초 집권한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북한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기 위해 공들여 키우던 친중파 장성택이 2013년 12월 숙청되면서 북한에 대한 개입 능력이 약화됐고,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류윈산 방북 이후에는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도 통일되지 못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실행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은 북한을 통제하지도 못했고, 북한으로부터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구한, 중국을 지렛대로 한 북한의 변화가 ‘주관적 바람(wishful thinking)’에 불과함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8·25합의 등 내용보다는 형식적 보여주기에 치우치는 이른바 ‘원칙 있는 남북 신뢰 구축 이벤트’들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속 빈 강정’이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국가정보원은 핵실험 관련 정보, 북한 내부 정보 파악에 거듭 실패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도 실패

둘째,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줬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로 확고하게 진입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임을 인정받지 못해도 실질적으로는 핵무기 보유국가로 인정받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북한이 중국을 포함해 어느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자주성을 세워나갈 확실한 근거를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소위 ‘북한 레버리지’는 약화될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실행 과정에서 드러난 북중관계의 실상은 박근혜 정부의 ‘중국 환상론’과 친중정책을 약화시킬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중관계는 1949년 신(新)중국 건국 이후 최고라고 칭송됐고,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에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박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그 정점을 찍었다. 당시 미국 등 서방세계와 국내 일각에서 ‘도를 넘어선 친중정책’이라고 비판할 때 핵심 방어논리로 등장한 것이 북핵 문제,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한 중국의 결정적 역할론이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과정은 이 같은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확인시켜 줬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대중정책도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대북정책에 대한 공산당 내부의 혼선을 보여줬다. 중국 공산당은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공작소조(조장 시진핑)를 구성, 집중 토의 끝에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에 대한 분리정책을 취하게 된다. 북핵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친중정부를 세우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북중관계는 당시 주석 후진타오와 김정일의 화해 과정을 통해 핵실험 직후 악화된 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그러나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2013년 3월 시진핑 체제의 등장과 2013년 2월 시작된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을 배경으로 북중관계는 변화한다. 시진핑은 박근혜 정부의 친중화를 유도하기 위해 김정은 체제와 거리를 두면서 친중파 장성택을 지원하는 정책을 택했다. 하지만 장성택의 숙청, 중국 경제 침체 및 양극화, 공산당 내 권력투쟁 등의 문제로 북한에 대한 개입이 약화됐다.
그 결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해 통제도 못하고, 통보도 못 받게 된 것이다. 나아가 4차 핵실험 직후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추시보’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체제를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라는 대단히 이례적인 내용의 논평원 기고문이 나왔다. 이 기고문은 중국 당국뿐만 아니라 북핵에 대한 환추시보 사설의 강한 비판적 태도와는 상반된다. 지난해 10월 방북한 정치국 상무위원 류윈산이 이 기고문의 배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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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前 국가정보원 북한담당 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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