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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합의 전 실태조사 제대로 했어야”

위안부 피해자 기록관리 미흡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일본과 합의 전 실태조사 제대로 했어야”

  • ● 2006년 신고한 할머니, 피해자 명단에서 누락
  • ● 정부, 피해자 238명 구술기록 확보 못해
“일본과 합의 전 실태조사 제대로 했어야”

2005년 신고된 이○○ 할머니의 피해 사실이 확정된 위원회 기록. 이혜민 기자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고, 협상 내용에 대한 논란이 해를 넘겨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위안부 관련 기록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는 8만~2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우리 정부가 갖고 있는 관련 정보는 생존자 중심의 피해 내용이다. 그러나 이마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신고인이 누락된 사례가 있다.



‘인정’ 받고도 명단 누락

2005년 10월 4일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한 노인요양병원. 이곳에 머물던 이○○(당시 82세, 2008년 11월 사망) 할머니가 남동생 이△△(당시 73세, 현재 84세) 할아버지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 및 신고인 조사’를 받았다. 할머니는 4년 전부터 언어·인식능력 장애가 나타나 면담은 불가능한 상태였고  남동생이 누나를 대신해 피해 사실을 설명했다.  
당시 조사는 국무총리 산하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1차 위원회’, 2004년 11월~2010년 4월 운영)가 실시했다. 이후 ‘1차 위원회’는 재조사를 거쳐 이 할머니의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남동생의 증언뿐 아니라 ‘팔렘방 관련명부 4종’ 즉 유수명부, 복원명부, 강○○, 송△△ 수첩에 이 할머니의 이름이 기재됐기 때문이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는 238명(2016년 1월 5일 현재). 이들은 모두 정부로부터 피해 사실을 인정받을 당시 생존자로서 생활안정지원금 등을 받았다. 현재는 생존자 46명(국내 42명, 국외 4명), 사망자 192명으로 분류돼 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등록현황’ 238명에 포함돼 있지 않다. 신고 당시 생존자였던 이 할머니가 피해자 명단에서 누락된 이유는 뭘까.
먼저 ‘위안부 피해자 명단’이 만들어지는 절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투 트랙’으로 명단을 확보해왔다(1993년부터 2000년까지는 보건복지부가 피해자 조사를 실시하고 명단을 만듦).  
먼저 ‘1차 위원회’와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 2010년 5월~2015년 12월 운영)에 위안부 신고가 들어온 경우다. 피해자가 살아 있을 경우 조사 후 피해 사실이 확정되면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로 기록을 넘겼고, 여가부는 심의를 통과한 피해자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및 건강 지원 사업’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했다. 피해자가 사망했을 경우 조사 후 피해 사실을 확정한 뒤 보상금은 지급하지 않고 피해자 수로만 집계했다. 두 번째 트랙으로 여가부는 여가부대로 시청, 구청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을 신고한 생존자 조사를 실시해 사실이 인정되면 지원금을 지급해왔다.



피해 사실 쉬쉬하는 가족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여가부의 실수로 명단에서 누락됐다고 위원회 관계자 A씨는 주장했다. 국회 인재근 의원실의 요청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 명단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2013년 10월 25일 이 할머니가 생존자 지원 대상에서 누락된 사실을 알고, 의원실을 통해 질의하자 여가부는 “이 할머니에 대한 자료를 위원회로부터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게다가 이 일을 계기로 위원회가 이△△ 할아버지를 재조사하자 “부인부(여가부)가 여러 번 찾아와서 자료도 다 주고 통장도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그 후 소식이 없다”며 “그 이유를 알아봐달라”고 청했다. 다음은 위원회 A씨의 주장이다.
“여가부는 의원실에서 문제 제기를 하자 처음에는 ‘위원회에서 이 할머니의 자료를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후 위원회에서 여가부로 문서를 보낸 기록(문서번호)을 확보해 질의하자 ‘모른다’고 했고, 재차 설득하자 ‘소위원회 개최 후 기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후 ‘회의 기록을 볼 수 있느냐’고 묻자 이번에는 서면 회의를 했다며 ‘대상자 등록 신청 취하서’만 보여줬다. 어떻게 한두 달 새 이렇게 다르게 답변할 수 있나.”
이에 대해 여가부는 당시 담당 직원이 해외에 근무해 자세한 경위를 알 수 없다며 질의 일주일 후 이렇게 답했다.
“당시 할아버지에게 ‘보상금은 피해자 당사자 혹은 피해자 부양자인 양아들(사실혼 관계인 남자의 아들)에게 줘야 하므로 양아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하자 할아버지가 양아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걸 원치 않아 피해 신청 취하서를 작성했다. 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이 확정된 후 여가부로 넘어온 사례 중 여가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는 이 사례가 유일한 것 같다.”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인물은 피해자의 동생인 이 할아버지. 기자는 피해 조사 신청 당시 할아버지가 거주한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손자와 연락이 닿았지만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인터뷰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위안부 피해자 연구자들의 지적처럼 “위안부 피해자 가족들이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걸 수치스러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피해자가 사망해 정부에서 보상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구술기록 제대로 관리 안 돼

이 할머니의 명단 누락은 정부의 실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 할머니가 사망한 데다 신고자인 동생이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진실을 밝혀내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 실태 조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앞에서 보듯 이 할머니의 명단 누락에 대한 의원실의 질의에 여가부는 한 달여 동안 다른 얘기를 했다.
2013년 인재근 의원은 정부의 부실 관리 사례를 예시했다.
△현재(2013년 당시)까지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237명의 피해자 등록까지 생성되는 ‘대상자등록신청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심의위원회 심의자료(심의 회의록, 심의자료, 회의결과) 미보관 △2001년부터 현재까지 여성가족부에서 등록된 37명에 대한 서류 중 소재불명인 문건 1건 존재 △대상자등록신청서에 기재한 237명의 강제동원 당시 내용 미파악 △237명 중 강제동원 당시 나이 149명 미파악 △피해자 10명의 출신지역 오류 △2003년 이전 위안부 피해자 연도별 접수 및 처리 건수 미정리 △일본군위안부 법적용대상자 등록대장 피해자 생년월일 기재 오류 3건
여가부는 그 후 자료 관리를 제대로 해왔을까. 관련 업무를 담당한 인재근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조사 결과 정부가 피해자로 등록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구술기록조차 100% 갖고 있지 않아 보도자료를 낸 2013년 이후 1년 넘게 여가부에 문의했지만 ‘자료를 찾는 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신동아’의 질의에 대해서도 여가부 관계자는 “인 의원의 지적을 받은 후 관련 사업을 진행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면서도 “구술기록이 개인정보라 공개할 수 없는 데다 현재 업무가 바빠 그 여부를 파악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위안부 피해자 사망자를 추가로 찾아 신고해도 정부는 이를 위안부 피해자로 집계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간 사망자는 주로 위원회에서 집계했지만 위원회가 지난해 활동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다.
위안부 연구자인 강정숙 박사는 정부의 부실한 기록물 관리 실태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가 일본과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피해자 실태조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위안부 실태조사를 적극 확대하기 바란다”고 희망했다.

신동아 2016년 2월 호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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