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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

  • 글·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사진·조영철 기자 korea@donga.com

‘키다리 아저씨’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

‘키다리 아저씨’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
이명학(61) 한국고전번역원장은 최근 뜻밖의 연하카드와 편지를 받았다. 카드엔 앙증맞은 그림과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학부모가 보낸 편지에는 ‘아이들보다 더 감동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가 만든 효(孝) 애니메이션이 지난해 부산청소년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뽑혀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만난 학부모들이 ‘자주 볼 수 있도록 CD에 담아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길래 만들어 보내드렸어요.”
성균관대 한문교육학과 교수인 이 원장이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1996년 선친께서 ‘효 공원을 만들자. 서울 근교에 부지를 알아봐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손자 손잡고 와서 도시락을 먹으며 효를 배우고 체험하는 공원인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공원에 넣을 콘텐츠가 마땅찮았어요. 그래서 ‘효 공원 프로젝트’는 잠시 보류했죠. 그러자 선친께서 효 애니메이션을 만들자고 하셨는데 당시에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 포기했어요.”
그의 부친 이상목 전 동아계측기기 대표는 평양 출신으로 17세 때 혈혈단신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분단과 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효 공원을 구상한 것은 북의 부모에게 효도를 못한 부친의 안타까운 심정에서 비롯된 듯하다.
“2011년 암 투병 중인 아버님께 전에 하시려다 못한 효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렸죠. 무척 좋아하시며 ‘인성교육은 어려서 해야 하니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라’고 하셨어요.”


‘키다리 아저씨’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

효 애니메이션 CD와 이명학 원장이 받은 감사편지.

방송국 PD와 작가를 만나 캐릭터와 줄거리를 만들었다. 효행과 신의를 지킨 이들의 행실을 기리는 ‘소년어사 차봉석’ 등 10분짜리 애니메이션 5편을 만들어 6700여 초등학교와 소년원, 해외 한국문화원에 무상 보급했다. 제작기간 1년, 사비 2억여 원을 들였다. 그러나 부친은 2011년 타계하면서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다.
“CD를 요청하는 분이 많아 얼마 전 다시 제작했어요. 호주의 한 교포는 자녀에게 보여주려고 자동차에서 CD를 틀었는데,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다고 해요. 어릴 적 남루한 부친을 부끄러워한 자신이 생각나서….”
이 원장은 요즘처럼 설이 다가오면 몰래 눈물 짓던 부친이 떠오른다고 했다. 설날 임진각 망배단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부모를 그리워하던 모습이다.
“선친은 신문 배달하는 아이의 헌 신발을 보고는 새 운동화를 사주셨어요. 당신도 그렇게 공부했기에 어려운 사람을 모른 체하실 수 없덨던 겁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 이 원장은 부친이 평생 모은 재산 10억 원을 모교인 중동고에 기부했다. 학교 측은 부친 호를 딴 ‘고천(高泉) 장학금’을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한다. 이 원장은 2006년부터 ‘참빛누리 봉사단’을 만들어 매월 사회복지시설을 찾고, 2007년부터는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성균 한글백일장’을 열어 입상자 전원을 성균관대 석사과정 장학생으로 선발했다. 어려운 외국 학생들에게 유학 기회를 주고 지한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행사가 임박하면 유학 비용과 항공료를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한다.
그는 자신이 받은 ‘대한민국 스승상’ ‘100대 좋은 대학 강의상’ 상금도 모두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세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지체장애인 정은숙 씨가 대학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못한다는 딱한 사연을 듣고는 제자들과 ‘몰래’ 등록금을 지원했다. 정씨의 졸업식 날 처음 만난 ‘키다리 아저씨’의 감동 스토리는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과거엔 효가 사회적 규약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선 ‘배려’인 것 같아요. 부모에게 배려하면 효도, 친구에게 배려하면 우정이 되는 거죠. 부모부터 다른 이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배려하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이 원장의 책상에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온 감사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신동아 2016년 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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