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Lady Green

“日 최초 60타대 기록 세우고 싶어요”

새 도전 나선 ‘친절한 보미씨’ 이보미

  • 글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사진제공 · KLPGA

    입력2016-01-27 17: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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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4~6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인근 미요시 컨트리클럽에서 펼쳐진 4개국 여자골프투어 대항전 ‘더 퀸스(The Queens)’. 그동안 한일 대항전으로 치러지던 이 대회는 유럽여자프로골프(LET)와 호주여자프로골프(ALPGA) 투어가 참가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2015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를 평정한 이보미(28·마스터즈 GC)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팀을 이끌고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팀은 전인지, 박성현, 조윤지, 이정민, 고진영, 배선우, 김민선 등 국내 상금 순위 7걸과 미국 LPGA 시즌 4승으로 신인왕을 거머쥔 김세영 등 막강한 면면이었다.


    1, 2라운드에서 홈 이점을 살린 일본팀이 7승1무로 앞서갔다. 한국팀은 4승2무2패로 2위. 9명의 팀 선수 전원이 출전하는 마지막 3라운드에서 한국팀은 역전 우승을 노렸다. 일본과 맞붙는 3경기를 모두 이긴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눈부셨다. 고진영, 김민선, 김세영, 배선우가 연승을 이어갔다. 하지만 5번째(10조)로 출전한 조윤지가 일본 선수에게 지면서 결국 일본팀에 우승을 넘겨줬다. 조윤지는 1, 2라운드에서 2승을 올렸지만, 마지막 날 마지막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경기를 내줬다. 이날 한국팀 기록은 8승1패. 조윤지 외 모든 선수가 이겼지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효과 제대로 본 ‘2초 퍼팅’

    경기 후 이보미는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 조윤지에게 큰 부담을 안긴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이보미는 “내가 캡틴으로서 부족했다. 자만했다. 내가 윤지 조에 갔어야 하는데 윤지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줬다”며 안타까워했다.
    이후 이보미는 각종 시상식에 참석하는 한편, 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위해 1000만 엔(한화 약 1억 원)을 기부하고 국내 팬클럽 회원들과 송년 모임을 갖는 등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바쁜 연말을 보냈다. 201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그를 만났다.
    “모처럼 푹 쉬고 있어요. 못 만나던 친구들도 만나고. 어제도 친구가 집에 와서 자고 갔는데, 같이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랬죠. 살만 찌고 있어요, 하하.”
    ▼ 전지훈련 계획은.
    “1월 초 일본에 한두 번 갔다 와서 15일에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갈 예정이에요.”
    ▼ 2015년 한 해를 평가한다면.
    “성적도 성적이지만 매 대회에서 뭔가를 배우거나 느꼈다는 게 큰 성과죠.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았어요. 한동안 ‘2등을 많이 해서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덕분에 우승도 여러 번 했잖아요. 골프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된, 정말 최고의 한 해였어요.”
    ▼ 일본에서 아직 깰 기록이 남아 있나요.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평균 타수 60타대를 기록한 선수가 없어요. 4개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올해 경우 무려 38개 대회가 열려요. 이 모든 대회에서 평균 60타대를 만든다는 게 굉장히 어렵고 힘들겠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 지난해 드라이버샷 거리와 정확도가 높아지고 퍼트도 안정을 찾으면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은데, 비결이 뭔가요.
    “일본 혼마 사람들이 전지훈련 중인 미국까지 와서 맞춰준 드라이버 클럽이 제게 너무 잘 맞았어요. 그동안 왼쪽으로 가는 공이 많아서 힘들었는데 그게 많이 잡혔고, 자신 있게 스윙을 하다보니 거리도 더 늘어난 듯해요. 그 드라이버 하나로 지난해 끝까지 쳤어요.
    늘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퍼팅이에요. 나름대로 연구를 꽤 했는데, 어드레스(준비자세)에 들어가면 불안한 생각이 들어 (방향이나 거리를) 본 대로 친 경우가 거의 없더라고요.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어드레스 후 2초 안에 치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점점 좋아졌어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죠.”
    ▼ 키 158cm의 작은 체구에서 드라이브샷을 250야드까지 보내는 게 놀라워요.
    “어릴 때부터 무거운 클럽을 많이 썼어요. 체구는 작아도 무거운 클럽을 이겨낼 파워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러면서 저절로 힘이 길러진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가벼운 클럽을 쓰고 있죠.
    아마추어 분들에게 한 가지 팁을 알려드리자면, 드라이버는 스윙 스피드와 얼마만큼 정확하게 맞히느냐에 따라 거리와 정확성이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스윙 스피드라는 게 몸이 빨리 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원심력을 얼마나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요. 공을 맞히는 순간 몸이 멈춰야 샤프트(골프채)가 따라오면서 스피드가 나고 힘을 실을 수 있어요. 그런 스윙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치다보면 힘 안 들이고 비거리를 늘릴 수 있을 겁니다.”



    일본 팬들이 미워하면…

    이보미는 지난해 5월 호켄노마도구치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이전까지 9개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만 4차례 기록하는 등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이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시즌 7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보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이 대회를 꼽았다. 특히 자신의 후원 기업이자 대회를 주최한 호켄노마도구치 사장과 팬들의 응원 덕분에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는 것.
    “제 단점이 미리 걱정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난해 초반부터 우승하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인터뷰부터 걱정되더라고요. ‘내가 우승하면 많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텐데 어떡하지’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이 대회 때 사장님이 ‘주변 눈치 보지  마라, 네가 우승하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다’고 진심으로 말씀해주셔서 ‘아, 이렇게 나를 진정으로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열심히 해서 우승하게 됐죠.”
    ▼ 왜 그런 걱정을?
    “일본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잘하고 있었잖아요. ‘나까지 잘하면 일본 사람들이 한국 선수들을 미워하지 않을까’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참 바보 같은 생각인데, 혼자 고민을 많이 했어요.”
    ▼ 자신감만으로 시즌 7승을 올렸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정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지나친 자신감이나 자만에 빠져서 경기에 덜 집중하는 것 같고. 간절함이 있어야 한번 생각할 것도 여러 번 생각하고, 욕심을 버리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시즌 7승은 이보미에게 최우수선수와 상금왕, 최저타수상 등 3관왕을 안겼다. 이보미는 그 영광을 2014년 9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돌린다. 지금도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직도 아빠 생각이 많이 나요. 못했을 때도, 잘했을 때도 아빠가 안 계시다는 게 정말 아쉽고 속상하죠. 시합 끝나고 엄마랑 식사하면 늘 아빠 이야기로 돌아가요. ‘아빠가 좀 더 사셨으면 어땠을까’ ‘아빠가 그때 왜 그렇게 몸 관리를 못했을까’ ‘우리가 왜 아빠를 더 신경 쓰지 못했을까’ 뭐, 그런 이야기가 반 이상이죠. 아빠한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도 남아 있고…. 이제는 아빠와 좋았던 일만 생각하려고 해요. 꿈에도 좋은 모습으로만 나오셔서, 그게 아빠가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결같고 겸손한 선수’

    ▼ 인생의 좌우명 같은 게 있나요.
    “‘나는 할 수 있다’. 매우 간단하지만 이 말 한 마디가 사람 마음을 다르게 먹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고 시작한다면 반 이상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예 시작을 않는 게 낫죠.”
    ▼ 늘 잘 웃는 것 같아요.
    “원래 성격이 긍정적이에요. 가족들은 저를 ‘친절한 보미씨’라고 해요. 가족들에겐 별로 안 친절한데 다른 사람한테만 친절하다고 언니가 지어줬죠, 하하. 웃음도 많고요. 볼 때마다 눈웃음으로 인사하면 서로 기분 좋잖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늘 웃다보니까 이미지가 굳어져서, 이젠 안 웃으면 주변에서 ‘어디 아프냐’ ‘무슨 고민 있느냐’고 걱정하세요.”
    ▼ 자신에게 ‘골프’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런 심오한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같은 존재? 그냥 골프가 너무 좋고 고마워요. 이런 운동에 제가 재능이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해요. 그런데 아직도 골프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더 많이 알고 싶고, 계속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올해 목표는.
    “작년에는 상금왕만 바라보고 죽을 힘을 다해 달려왔는데, 올해는 도전의 해라고 생각해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도 있고, 일본 메이저대회도 꼭 우승하고 싶어요. 올해 미국 LPGA에는 3개 대회 정도 출전할 생각인데, 여기서 얼마만큼 좋은 성적을 내느냐가 중요하겠죠.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 이동거리가 길어 올해는 3승만 해도 만족할 것 같아요.”
    ▼ 미국 LPGA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생각은 없나요.
    “올해엔 없어요. 저를 후원하는 일본 기업도 그렇고, 일본 팬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아직은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래 제 인생 목표가, 은퇴하기 전에 미국 LPGA에 진출하는 건데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 프로 생활은 언제까지?
    “어릴 때는 빨리 시집가고 싶었어요. (결혼할) 나이가 되고 보니까 ‘무슨 시집이냐, 지금 잘하고 있는데’ 하면서 좀 더 하고 싶고. 언제까지라고 시기를 정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날까지는 투어를 계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요.
    “아직 많이 부족해요. 저 스스로 그렇게 큰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한결같고 겸손한 선수였다, 그리고 한국을 빛낸 선수였다고 기억해주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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