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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DNA’ 내면화한 北 주민 끌어안아야

탈북 ‘통일학 박사’의 ‘결이 다른’ 통일 시선

  • 주승현 | 민주평통 자문위원, 정치학 박사(통일학) joosy3050@naver.com

‘저항 DNA’ 내면화한 北 주민 끌어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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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몽골공화국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중국의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다. 네이멍구 몽골인은 몽골공화국 몽골인보다 민족의 습속을 더 많이 간직하고 산다. 그럼에도 중국 공민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몽골공화국이 아니라 중국을 조국으로 선택한 것이다. 북한 주민이 한반도의 새로운 통일국가에 동화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한반도 북부가 네이멍구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북한에서는 유치원 이전부터 어린이에게 수령 찬양의 노래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가르친다. 체제 존립의 구심점인 수령과 민족적 과제인 통일을 각각 정체성과 지향성으로 삼은 것이다.  
탈북민인 필자가 한국에 와서 정치학을 통해 분단과 통일을 공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 군인으로 근무하며 분단의 최전선을 목도했고, 휴전선을 넘어 한국에 와서는 현실을 통해 탈북자로서의 이물감을 맛보았다. 민족의 아픔은 차치하더라도 집요하게 내 삶을 괴롭히는 분단 트라우마와 분단적 정체성을 극복하는 길은 통일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통일’이라는 단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내 예상과 달랐다. 북한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지난 10년간 종교행사와 탈북민 친목모임에서 전체 합창으로 두 번 부른 게 전부다. 그것 말고는 노래방에 가서 혼자서 딱 한 번 부른 적이 있다. 내가 통일을 얘기할 때 어느 순간 내게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이 있음을 간파했고 점차 그 의미를 깨달았다. 통일로 인해 왜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소원의 목록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집, 좋은 삶으로 점철되는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가사가 들어앉을 공간은 없어 보였다.



야누스의 두 얼굴, 통일  

통일을 소망한다 함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아님을 드러내는 잘못된 단대호(單隊號) 같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학부와 대학원 전 과정에서 분단과 통일 문제를 공부해 우리나라에서 손꼽아도 몇 안 되는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을 들여다보고 얘기하는 것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려워서인지 학위를 취득한 몇몇 선배마저 다른 분야와 직업으로 발걸음을 돌렸으나 나는 우직하게 통일을 붙잡았다. 그동안 공채로 여러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보다는 ‘통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포만감이 훨씬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통일이라는 단어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일 무용론과 통일 기피론이 사회에 만연하고 장밋빛 통일론은 현실 인식의 저급함과 허황함으로 치부된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만큼은 ‘정말 대박’이었다. 정부는 물론이고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과 종교뿐 아니라 기업과 개별적 시민의 입에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통일이라는 낱말이 낯익고 친숙하게 오르내린다. 통일 관련 연구소의 이름과 세미나 소식을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으며 통일 관련 금융상품까지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통일 붐

 왜 하필 지금 통일을 말하는가. 북한 주민을 위해서? 아니면 미완의 광복이 70년을 지나서? 영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작금의 문제에서 답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제에 있다고 본다. 굳이 에돌 것도 없다. 통일이 민족의 절대적이고도 신성한 의무이자 과제라는 명제 말고도,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와 혼돈의 시대에 성장과 변화의 동력과 출구를 우리는 통일과 북한 땅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비단 성장이 지체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안보, 종교 등 전 영역을 포함한 지정학적·지경학적·지전략적 관점에서 통일은 한국에 성장의 유일한 활로이며 생존의 출구가 됐다.
그러나 통일이 한국에는 대박, 북한에는 초대박일 것이라는 논리가 우매한 것으로 실증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필자가 인식하는 분단은 부부의 생이별이자 부모와 자식 간 헤어짐이다. 그리움, 간절함이 통일을 소원하는 노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분단 70년이 경과하면서 1000만 이산가족은 점차 사라져가고, 통일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비록 한 민족이지만 이념과 제도뿐 아니라 생각과 언어, 체형과 문화까지 딴판인 경우가 많아 이제는 서로를 알기 위해 강의를 듣고 사전을 뒤적거려야 한다.
휴전선을 넘어오기 전 필자는 DMZ에서 국군이 내보내는 심리전 방송을 제압하는 요원으로 6년간 근무했다. 한국에서 보내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그 시간만큼 들으면서 복무한 것이다. 그때는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의 정세를 파악하고 일상적인 서울 말투를 쓰는 일에는 자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확신은 귀순한 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날 저녁 KBS 뉴스를 보는 순간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뉴스, 앵커, 야당과 여당, 슈퍼마켓과 같은 일상적 용어조차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10분 만에 TV를 꺼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DMZ에서 알아들은 내용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대북방송은 북한 주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만 선택해 내보낸 것이었다.



서로 얼마나 알까?

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느끼는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개구쟁이’ ‘누룽지’ ‘서비스’ ‘치킨’이 북에선 ‘발개돌이’ ‘가마치’ ‘삯발이’ ‘닭유찜’이다. 사선을 넘어왔지만 언어조차 이해 못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던 상황을 두고 당시 나는 또 다른 사선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탈북민 친구는 이런 현실을 비관해 자살 시도까지 했을 정도다.
이러한 경험을 한 터라 나는 지난해 탈북 학생의 언어 이해를 돕고자 남측 말을 북측 말로 전환해주는 스마트폰 앱 개발에 참여했다. 남북한 언어 번역 앱인 ‘글동무’를 만들면서 든 생각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 살면서 또 하나의 언어를 새로 배웠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민족을 규정하는 기본적 부분인 언어마저 이럴진대 다른 분야는 오죽하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얼마 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막간에 전날 다녀온 탈북민 정착시설 하나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하나원의 탈북민과 대화가 안 통해 그곳 직원들이 통역을 해줬다며 ‘문명사회에 하루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식의 대화가 오가는 걸 보고 우리 사회의 다소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의식도 교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한국에 자발적으로 입국한 이들이 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탈북민의 한국 사회 적응만큼이나 그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도 중요하다. 통일국가에서 북한 주민에게만 한국으로의 일방적 동화와 적응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학과에 입학해 첫 수업에서 들은 피난민 출신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학의 중심과 목표는 분단 극복과 통일에 있다. 정치학도이든, 정치인이든 제1의 목표와 소명은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는 것이다.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아무리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발전과 문명을 얘기해본들 분단 문제조차 해결 못하는 우리를 뒤에서 비웃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최고의 목표는 통일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이어야 하는데도 우리는 이 중요한 과제를 묻어버리고 살아온 게 아닐까.  
통일학 박사인 필자에게 사람들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자주 묻는 것은 대개 통일이 언제쯤 될 것이냐다. 그다음은 ‘통일 후 잘나갈 직업’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래도 신중해야 한다.   

통일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누가 통일을 주도하고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냉정하고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분단국이 대등한 상황에서 합의통일을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각각의 정부는 자신들의 사상과 체제로 통일하기를 고집하며, 이를 위해 힘의 주도권을 다투면서 통일을 이루려 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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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현 | 민주평통 자문위원, 정치학 박사(통일학) joosy30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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