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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노블레스 오블리주 깃든 美 서부의 문화 자존심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노블레스 오블리주 깃든 美 서부의 문화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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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스앤젤레스를 ‘신개척지’라고 하지만, 사실 LA는 보스턴보다도 50년 앞서 유럽에 의해 개척된 ‘정통’ 있는 지역이다. LA 사람들은 이런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라크마’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대형 미술관을 세웠다. LA 부호들은 이 미술관의 소장품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수천만 원짜리 이벤트 티켓을 흔쾌히 산다.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는 세 가지 개념으로 나뉜다. 첫째는 LA시, 둘째는 LA카운티, 셋째는 LA메트로폴리탄 지역이다. LA카운티는 캘리포니아 주의 한 행정구역으로 면적은 경기도와 비슷하다. LA카운티 내에 88개의 자치시가 있고, 그중 하나가 LA시(the City of Los Angeles)다. LA시는 LA카운티의 수도다.
일반적으로 LA카운티와 그 주변 지역의 도시들을 합쳐 LA라고 하는데, 이것이 LA메트로폴리탄이다. 흔히 LA를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이자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는데, 이때의 LA는 LA메트로폴리탄으로, 이 지역의 인구는 무려 1800만 명에 달한다. 수도권 지역의 모든 도시를 합쳐서 ‘서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LA시 다운타운을 통과하는 큰길, 월셔 불러바드(Wilshire Boulevard)에는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된 큰 미술관이 있다. 미국인들이 ‘라크마’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CMA)이다. 미 서부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고, 소장품이 12만 점 이상인 종합미술관이다. 그리스·로마의 고대 유물에서부터 중국 인도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작품, 라틴아메리카, 유럽 등지의 작품이 망라돼 있다. 관람객은 1년에 100만 명이 넘는다. 명실공히 ‘서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서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61년 정식 설립된 미술관의 전신은 ‘LA 역사·과학·예술 박물관(Los Angeles Museum of History, Science and Art)’. 이 박물관의 한 부분이다가 별도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불과 50여 년 만에 이런 세계적 미술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2011년 자료에 따르면 미술관의 수익자산은 3억 달러다(소장품 가치 제외). LA카운티가 매년 2900만 달러를 보조하는데, 이것으로 미술관 1년 지출액의 3분의 1가량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연간 4000만 달러 정도 모이는 회비와 기부금 등으로 채운다.
미술관의 중요 사항은 이사회가 결정한다. 사업가, 배우, 가수 등 LA의 유명인사들이 이사를 맡는데, 이들은 적어도 연간 10만 달러 이상을 직접 기부하거나 유치해야 한다. 이사직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자리인 셈이라 LACMA의 이사 직책은 이 지역에서 사회적 위상이자 명예로 통한다.  
LA는 동부에 비해 문명화가 뒤지고 미술관도 훨씬 늦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LA는 동부의 보스턴이나 제임스타운보다 50여 년 먼저 서양인들이 뿌리내린 곳이다.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 연안에 도착한 것이 1492년이고, 스페인 사람이 멕시코를 거쳐 처음 LA에 찾아든 것이 1542년이다. 이에 비해 영국인이 버지니아 연안의 제임스타운에 도달한 때는 1607년, 보스턴 연안에 닿은 때는 1620년이었다.



LA 시민들, 궐기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깃든 美 서부의 문화 자존심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은 ‘LA 부자’들의 자발적 기부로 세워지고 오늘날 명성을 얻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명 작곡가 헨리 라자로프, 대재벌 엘리 브로드, 언론사업가 제리 프렌치노 등(위부터)을 꼽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서부의 심장’ LA도 동부에 뒤지지 않는 자부심을 갖는다. 1848년 미국 땅으로 귀속되고 1850년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31번째 주로 편입됐기에 LA가 신개척지인 것처럼 인식될 뿐이다. 동부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LA 사람들은 전 세계 영화와 대중예술을 주도한다는 자부심이 아주 강하다. 그런 곳에 내놓을 만한 미술관이 없다는 것은 적잖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에 LA 사람들은 훌륭한 미술관을 만들자며 궐기했다. 미국의 여느 미술관처럼 LA 지역 부호들이 나섰다. 하워드 애먼슨, 안나 빙 아놀드, 바트 리턴 세 사람이 마중물이 됐다. 애먼슨은 맨 먼저 200만 달러를 쾌척하며 미술관 설립을 독려했다. 1965년 지금의 위치에 터를 정하고 1150만 달러를 들여 건물 세 채를 지었다. 이 건물들에는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애먼슨 빌딩, 빙 센터, 리턴 갤러리(1968년에 Frances and Armand Hammer 빌딩으로 개명)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술관은 1980년대 얼 파월 관장의 주도로 무려 2억900만 달러의 기부를 유치, 소장품과 미술관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1986년에는 늘어난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3500만 달러를 들여 네 번째 건물인 앤더슨 빌딩(Robert O. Anderson Building)을 지었다(2007년에 Art of Americas 빌딩으로 개명). 이로써 오늘날의 미술관 모습이 거의 갖춰졌고, 이후에는 주변의 새 건물을 사들이고 기존 건물을 개축해 현재에 이르렀다.
LACMA 설립에 거금을 쾌척한 애먼슨(1906~1968)은 보험업으로 큰돈을 번 금융인이다. 대공황 때 화재보험으로 사업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부동산과 석유사업에 투자해 엄청난 재력을 쌓았다. 네브래스카 출신으로 19세 때 온 가족이 LA로 이주했다고 한다. LACMA 이외에도 LA뮤직센터 등 각종 문화사업과 자선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공화당의 후원자로 많은 정치자금을 댔다고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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