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연속기획

‘비밀의 삼성’ 깨고 ‘오픈 이노베이션’ 나서라

삼성의 도전, 한국의 과제 ①바이오·제약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6-02-15 10: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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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출신 바이오 강자’ 꿈 현실화 채비
    • 위탁, 복제약 경험 쌓아 신약 개발 ‘도약’
    • 해외 고급인력 활용한 선진기술 전파 기대
    • 패스트 삼성? 바이오 ‘특수성’ 인정하고 인내해야
    한국은, 아니 세계는 ‘반도체 출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제약회사를 만나게 될까. 지난해 9월 ‘뉴 삼성물산’을 출범시켜 삼성바이오로직스(최대주주는 지분율 51%의 삼성물산)를 ‘오너 직계’의 위치에 놓은 삼성그룹은, 12월 21일 인천 송도 3공장 기공식을 계기로 미래 먹거리 차원에서 바이오산업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예고편’도 있었다. 3월 보아오포럼 개막연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향후 IT,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2010년 ‘비전2020’을 발표하며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바이오·제약을 꼽으면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개발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세웠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과 ‘복제약 개발’로 제약업에 진입한다는 청사진이다.
    그러나 2010년 즈음에는 ‘삼성 바이오’에 대한 사회 일반의 기대가 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 신화’가 시작되기도 했거니와,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거인’ 삼성이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커 보이지도 않았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스마트폰은 활기를 잃어가고 반도체는 앞날이 뿌옇지만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시장 규모는 7810억 달러(약 960조 원)였는데, 이 중 바이오의약품의 비중은 23%(1790억 달러)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825억 달러)보다 두 배 이상 크다. 2020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3000억 달러 가까이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반도체와 ‘같은 문법’

    2018년 3공장(용량 18만L)이 완공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2공장과 합쳐 총 36만L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삼성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7년부터 매출이 크게 증가해 삼성의 ‘캐시 카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공장 가동을 통해 2020년경 매출 2조 원에 영업이익 1조 원, 2025년경 매출 4조 원에 영업이익 2조 원(4공장 가동 전제)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착착 진도를 나간다. 그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유방암 치료제 등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왔는데, 그 첫 번째 성과물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국내 환자에게 처음 처방됐다. ‘브렌시스’(성분명 에타너셉트)라는 관절염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다. 이 약은 오리지널인 화이자의 ‘엔브렐’과 효과나 안전성이 동일하면서 가격은 30% 저렴하다고 한다. 곧 유럽 판매 허가도 취득할 예정이다.
    삼성이 빠른 속도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및 바이오시밀러 개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삼성이 ‘반도체 집안’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터럭만한 오염이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외부와 차단된 클린룸에서 진행되는 반도체 공정을 요약하는 두 단어는 ‘미세화’와 ‘정밀화’. 바이오의 문법도 똑같다. 삼성전자 출신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이미 빅데이터가 완성돼 있다. 모든 데이터를 체크하다 변화가 발생하면 온 타임(On Time)으로 조절하도록 공정이 자동화했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도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정밀하고 미세한 공정을 통해 명확한 조성비를 구현, 항상 동일한 성능이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반도체의 삼성이 잘할 수 있다고 본다.”
    강점은 제조공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초정밀 반도체 공장을 짓던 ‘가락’으로 역시 외부 공기가 전혀 유입되지 않아야 하는 초정밀 바이오 공장을 짓는다. 2012년 완공된 삼성바이오로직스 1공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검증을 단 한 번에 통과했다. 시행착오 없는 건설은 비용을 줄이고 생산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높인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3공장 기공식 날 기자간담회에서 “L당 생산비용이 다른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업의 4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경기를 매우 민감하게 ‘타는’ 산업이다. 미래 수요를 예측해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때’를 만났을 때 즉각 물량을 풀어내야 한다. 당장 공급 과잉이라고 손놓고 있으면 ‘내일은 없다’. 김 대표는 “반도체 사이클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오에서도 과감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콩나물에 자 대서야…

     삼성은 2020년 바이오 부문에서 1조8000억 원의 매출(위탁생산 9000억 원, 바이오시밀러 9000억 원)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삼성의 ‘신규’ 사업이 될 수 있을지언정, 연간 수십조 원의 매출을 내는 반도체나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큼의 ‘대표 사업’이 될 순 없다. 시장에선 삼성이 향후 위탁생산과 복제약 개발 경험을 발판으로 바이오 신약 개발에 도전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삼성을 필두로 바이오가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제약시장 규모는 20조 원가량이다. 최근 합병으로 탄생한 세계 1위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엘러간(70조 원)과 2위 노바티스(60조 원)의 연 매출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역량과 의지는 뛰어나다는 평가다. 정부도 올해 바이오 연구개발(R&D) 분야에 전년 대비 27.4% 증가한 5913억 원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적극 나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데 대해 정대진 산업통상부 창의산업정책관은 “한국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에 주목한다는 점을 대내외에 보여주면서 삼성의 대규모 투자에 따른 전후방 효과에 대해 환영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의 이승주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은 “바이오의약 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나날이 늘어나는 인재, 정부 지원, 중국·일본과의 유전적, 지리접 근접성 등 다양한 기회 요소가 있다”고 평가했다. (상자기사 참조).
    양재혁 한국바이오센터 정보공유확산실장은 삼성의 ‘맨파워’에 주목했다. 그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중간관리자 이상 인력 중 70%가 외국인이라고 들었다”며 “글로벌 바이오의약 분야에서 경험이 있는 이들로부터 우선 삼성이 배우고, 그다음으로 한국 바이오 업계 전반으로 그 노하우가 퍼져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을 위시한 삼성 반도체 주역들이 산업·정부·학계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반도체·IT 생태계에 기여하듯, 장기적으로는 삼성발(發) 바이오 역량 확산을 기대하는 것이다.





    삼성페이 떠올려라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패스트(fast) 삼성’이 결실을 보기까지 십수 년이 걸리는 의약 분야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삼성 특유의 ‘비밀주의’를 벗고 오픈 마인드로 경쟁사를 포함한 여러 이해 주체들과 협력해나갈 수 있을지가 바이오 사업 성패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삼성 출신 한 인사는 “콩나물 키우는 사람이 매일 자로 몇 센티 컸는지 재면 콩나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겠느냐”며 “삼성의 조직문화가 딱 그렇기 때문에 장기 사업을 잘 못한다. 바이오시밀러는 몰라도 바이오의약 특허 개발을 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신약은 개발하기 쉽지 않고 오래 걸리기도 하거니와, 판매까지 가는 데 많은 관문을 거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은 ‘리스크’를 줄이고자 앞다퉈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선다. 경쟁사와도 손을 맞잡는다.
    얼마 전 당뇨병·암·심혈관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노피와 아스트라제네카(영국)가 각자 보유한 특허물질(개발 초기 단계의 신약 후보 물질) 21만여 개씩을 공유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두 회사는 상대 회사의 특허물질을 비용 없이 사용하고, 상대 회사의 특허물질로 신약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개발한 쪽이 이익을 독점하기로 합의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자신을 오픈하며 적극적으로 협력에 나서지만, 아직 우리는 외부 공개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벤처 업계의 한 전문가는 “아무리 삼성이라도 바이오 분야에서는 ‘나 혼자 한다’ 전략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미국 스타트업 루프페이를 인수해 삼성페이를 성공시킨 사례를 떠올려 바이오 사업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삼성 출신 인사는 “삼성이 잘하는 것은 업(業)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한다는 것”이라며 “반도체 특성에 잘 맞췄듯 바이오 특성에도 잘 맞춰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승주 사노피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
    ▼“자유로운 이직 허용하는 게 ‘오픈 이노베이션’ 핵심”▼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사노피가 혁신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자 전략의 핵심이다.”(올리비에 브랜디코트 사노피 CEO).
    글로벌 제약업계의 최근 화두는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사노피는 국내에서도 이를 적극 추진하는데, 그 중심에 이승주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이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생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사노피에 합류했고, 2010년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 대전에 바이오 관련 연구개발(R&D) 인력이 많기 때문. 그는 바이오·신약 분야 연구자들의 친목 도모 및 최신 연구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혁신신약살롱’을 만들고 5년째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 상품화 가능성 높은 신약 물질을 확보했다면 더 큰 수익을 위해 제약사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게 낫지 않나.
    “그게 ‘닫힌 이노베이션’의 전형이다. 1960년대까지 할리우드 영화계도 수직계열화한 영화사가 배우와 작가를 직접 고용해 영화를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신약이 될 확률은 매우 낮고, 되더라도 신약 출시까지 12년 이상 수천억 원을 투자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허가를 받더라도 환자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 설사 그런 재원과 리스크를 안고 갈 수 있는 회사라도 요즘 할리우드처럼 외부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적극 도입하고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
    ▼ 사노피는 한국에서 신약 후보 물질 10여 개를 공개했다. 한국은 아직 신약 개발 역량이 낮지 않나.
    “안 그렇다. 오히려 일부 분야에선 선진국보다 앞서 있다. 아시아 호발(毫髮) 질환 연구가 한 예다. 몇 년 사이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졌다. 지적 자산을 나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파트너와 공유해 윈-윈 하는 게 핵심이다.”
    ▼ 지난 5년간 한국의 바이오·의약 연구 인력들을 만나왔는데.
    “한국엔 국내외에서 뛰어난 기초과학 성과를 낸 젊은 연구자가 많다. 열정도 있고, 해내겠다는 근성이 대단하다. 다만 산업체 취업을 기피해서인지 산업체 경력이 있는 바이오 인재 풀이 중국, 일본보다 빈약하다. 종합적인 전문지식이 필요한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바이오제약은 산업체 경력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반도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진대제 박사도 외국 산업체 경력을 쌓고 한국에 왔다. 재미 유학생 중 중국계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글로벌 회사에 취직하려 하는데, 한국 유학생들은 모국에서 교수직 기회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 바이오제약 업계가 세계 수준으로 도약해 좋은 조건으로 대우한다면 바이오 연구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산업체에 진출할 것이다.”
    ▼ 한국의 바이오 역량을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은 신약 임상개발 환경과 송도에 집중된 단백질 신약 제조 서비스업이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바이오 벤처의 독창성은 중국에, 기세는 일본에 부족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기초 연구다. ‘네이처’ 논문 기준으로 한국은 이미 10년 전 중국에 역전당했고, 일본과의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과학 투자액은 적지 않지만 운영의 묘가 필요한 것 같다. 혁신적 신약은 탄탄한 기초 연구 성과에 토대를 둔다.”



    임원 ‘3년 평가’ 안 된다

    ▼ 제약회사는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M&A에 인색하다. 전문인력 부족도 고민거리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인재의 ‘자유로운 이직’이다. 우리도 일본처럼 산업계 인재를 대학에,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 인재를 산업계에 보내 활발하게 오가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에 산업체 포스닥 제도가 있다. 이걸 잘 활용해야 한다. 진대제 박사 경우처럼 외국 산업계 경력자도 적극 유치해야 한다.”
    ▼ 바이오의약 산업을 한국 대표 산업으로 키우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이오 스타트업 지원이다.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덕분에 스타트업 지원이 활발하지만, 여러 제도나 관행이 IT 위주라 초기 투자 금액이 크고 투자 회수 기간이 긴 바이오 의약품 특성과 맞지 않는 면이 있다. 바이오 실험 기재 등 하드웨어 지원은 좀 되고 있지만 멘토링, 엔젤 투자, 노하우 공유 등 소프트웨어 지원이 빈약하다. 외국에는 제약사가 작은 벤처에 실험 공간을 빌려주거나, 벤처캐피털이 실험공간을 제공하면서 멘토링하는 경우도 있다.”
    ▼ 한국 기업들은 단기 성과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바이오 성공요건 2가지를 꼽는다면 ‘특수성 인정’과 ‘인내심’이다. 정부 정책이든 대기업이든, 바이오의약에 IT 등과는 다른 특화된 정책적 배려를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선진국에는 바이오 연구소를 짓거나 입주할 때 배려해주는 특화된 부동산도 존재한다. 십수 년에 걸친 수천억 원의 투자를 견디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오늘 내는 성과는 선배들 덕이고, 오늘 성과의 열매는 후배들의 몫’이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임원을 3년 단위로 평가하면 바이오시밀러처럼 단기 성과가 가능한 과제에만 집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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