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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th story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북한 혁명단체 여성 조직원의 北 청년 지하학습記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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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은 사람의 운명(命)을 바꾸는(革) 일이다. 한국인 혁명가 은서는 중국에서 북한 내 반체제 집단 ‘횃불’을 조직하는 일을 했다. 현서는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꿈 많은 북한 대학생이다. 예쁘장한 얼굴에 뽀얀 피부를 지녔다. 현서는 은서와 지하학습을 하면서 변해갔다. 어느 날 현서가 은서에게 말했다. “조국이 바뀌려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도부가 바뀌어야 해.” 2016년 1월, 은서와 현서는 각각 서울과 평양에 산다.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일러스트·박용인

수은주가 영하 25도를 가리키던 2009년 겨울이다, 눈발 흩날리던 날 중국 ○○시 △△대학에서 현서를 처음 본 것은.
은서는 현서를 보고 ‘한국 어느 대학에서 왔는지 몰라도 이번 학기에 남학생 여럿 울리겠군’ 싶어 웃음이 났다. 현서는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등교했다. 딱 봐도 한국 여대생이다. 예쁘장한 얼굴에 뽀얀 피부는 ‘20대 초반은 확실히 다르구나’ 하는 질투심마저 느끼게 했다. 현서는 단정하게 머리를 올려 묶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에 중국어 책을 끼고 다녔고 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서울 사람보다 더 서울 사람 같던, 꿈 많은 북한 여대생 현서와 훗날 혁명을 논한 은서는 2006년 중국에 왔다. 중국행을 결심한 겨울의 어느 날, 한국 ○○시 버스터미널. 아버지의 걱정은 딸이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때까지 이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고 중국까지 가야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건강해라. 밥 잘 챙겨 먹고. 위험한 곳에는 가지도 말고, 위험한 일은 하지도 말거라.”
은서가 중국으로 간 까닭은 북한 독재정권을 뒤집어보겠다는 사명감에서다. 혁명가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중국에서 대북활동을 하면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지갑에 넣어둔 가족사진을 꺼내 보며 의지를 다졌다. 



‘혁명가 은서’ ‘대학생 현서’

이 기록의 ‘은서’와 ‘현서’는 가명이다. 2016년 각각 서울과 평양에 사는 은서는 30대, 현서는 20대다. 은서는 신원을 노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동아’와의 대화에 응했다. 1월 4일 서울 통인동에서 ‘북한 민주화 혁명가’ 은서를 만났다. 은서는 동안(童顔)이면서 씩씩한 말투를 가진 매력 가득한 여자다.
현서가 북한에서 온 것을 알기까지, 은서에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현서는 서울 여대생보다 더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늘 중국어로만 말하던 현서가 북한 억양으로 우리말 하는 것을 들으면서 은서는 화들짝 놀랐다. 현서는 중국에 파견된 북한 무역일꾼의 딸이었다.
▼ 현서와는 연락이?
“끊겼어요.”  
▼ 대북활동은 언제부터?
“○○학번인데요. 대학 때 학생운동하면서 시작했어요. 부모님은 지금도 중국에서 뭐 하다 왔는지 잘 모릅니다.”
▼ ‘혁명’이란 말이 은서 씨 세대와 잘 안 어울려요.  
“1990년대 후반 북한 실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문제의 원인이 뭘까, 궁리했죠. 혁명가로 여기고 살았는데, 남은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소리 내 웃으면서 은서가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웃으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혁명’이란 말에 상당히 거리감을 느낄 것 같아요.”
▼ 북한 체제가 바뀐다면 과정이 어떻든 ‘혁명’이란 이름이 붙겠죠.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북한 혁명을 꿈꾸며 중국에 온 은서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나온 현서는 언니, 동생으로 친하게 지냈다. 은서는 쾌활하다. 후배들이 ‘언니’ ‘누나’처럼 따를 정도로 시원시원한 성격. 이런 성격이 대북활동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현서는 발랄하고 청순하다”고 은서는 말했다. 현서는 쇼핑을 즐겼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을 다녔으며 SNS로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키가 크고 몸이 늘씬한 은서만큼은 못해도, 현서도 술을 곧잘 마셨다. 노래방에서 현서는 힙합과 랩을 즐겨 불렀는데, 한국 노래도 섭렵했다.



“더는 진실을 회피하지 않겠어”

“현서는 정이 많은 아이였어요.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고요. 어느 날 혼자 밥 해먹기 힘들지 않냐면서 어머니가 직접 담갔다는 김치 한 통을 가져다 줬습니다. 북한식 김치는 고춧가루 외에 다른 양념이 거의 안 들어가요. 시원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깔끔해요. 현서 어머니가 담근 김치는 정말 맛있었어요. 지금도 그 맛을 못 잊어요. 현서 말고 다른 북한 친구도 어머니가 양념한 명란 반찬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젓갈 형태가 아니라 참기름과 고춧가루 등으로 버무린 것이었어요. 남쪽에서는 안 먹는 음식인데, 그것도 엄청 맛있었어요.”
현서가 어느 날 은서에게 물었다.
“조국은 규율이 너무 엄격해. 현실이 갑갑해, 언니. 예전에 조선이 붕괴될 수도 있었는데 왜 안 무너진 거예요?”
현서는 이렇듯 호기심이 많았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다.   
▼ 정확한 낱말은 아닌 것 같지만 ‘포섭(包攝)’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의식화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북한 학생들을 어떻게 포섭했나요.
“아이들 특성에 맞춰 교안과 책을 따로 준비했습니다. 운동권 학생 시절 후배들 공부시킨 경험이 있어 북한 학생에게 맞춘 교안을 만드는 게 수월했어요. 처음에는 ‘우리 역사 공부나 해보자’ 하는 식으로 접근해 공부했죠.”   
▼ 그러곤 철학 공부하고…. 오래전 한국 운동권 교육 방식과 비슷하네요.
“맞아요.”
현서와 공부를 시작한 초기에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세계사’ 등의 책을 건넸다. ‘세계사’에는 사회주의의 발생과 발달, 붕괴 과정이 담겼다. 은서가 준 책을 읽은 현서가 은서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게 두려워 일부러 알지 않으려 애썼는데, 이젠 내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아가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 더는 세상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으려 해.”



온 가족이 한국 책 돌려 읽어

▼ 책은 실물로 건넸나요. 아니면 파일로 만든 것? 오래전 한국 운동권에선 김일성 저작집을 일일이 타이핑한 파일이 유통됐잖아요.  
“북한 유학생을 상대로 할 때는 파일로 하는 게 좋아요. 문제가 생겼을 때 파기하기 수월하죠. PDF 파일로 해놓은 게 있고요. 타이핑을 해 문서 파일로 제작한 것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대북활동하면서 책을 타이핑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컴퓨터 화면으로 읽는 게 불편하다면서 책으로 달라곤 해요. ‘나 만날 때만 봐야 한다’고 말해주고 도서관 같은 곳에 함께 가 ‘김정일 리포트’ 같은 책을 읽게 했죠.”
▼ 어떤 책이 인기가 많았습니까. 아니, 효과가 있었습니까.
“북한 체제를 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책은 싫어했어요. 일례로 ‘수용소의 노래’ 같은 책은 부담스러워하더군요. ‘김정일 로열패밀리’ 같은 책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 책은 다른 동지들이 교육을 맡은,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자와 노동당 출신 엘리트에게도 호응이 대단했대요. 폭로 성격이 있는 데다 권력 내부의 은밀한 이야기가 담겼거든요.”
‘김정일 로열패밀리’는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이 서울에서 쓴 수기다. 동아일보 출판팀이 1996년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한 책을 시대정신이 2004년 제목을 바꿔 발간했다.  
▼ ‘김정일 로열패밀리’는 영국인이 영국 왕실 실상을 폭로한 책을 읽는 느낌과 비슷할 것도 같네요.
“맞아요. 권력 핵심에서 일어난 비화가 담겼거든요. 폭로 성격도 강하고요. 로열패밀리 사진도 실려 신빙성도 높아 보이고요. 남자아이들은 ‘나는 김정일의 경호원이었다’ 같은 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호원이 남조선에 정말로 가 있느냐?’ 식으로 질문하면서.”
현서의 부모도 은서가 현서에게 전해준 책을 읽었다. 현서 아버지는 ‘사람아, 아 사람아’ 를 재미있게 읽었고, 어머니는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하룻밤에 다 읽고는 울었다고 현서가 은서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현서에게 “비슷한 책이 있으면 더 갖다달라”고 했는데, 현서는 “마음이 아파 더는 어머니에게 책을 못 보여줄 것 같다”고 했다.



 “누나, 우리 따로 만나요”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일러스트·박용인

“북한 아이들이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를 달달 암기했지만 온전히 이해한 게 아니라 북한 역사를 저보다도 더 몰랐어요. 장난으로 ‘생활총화 한 것 갖고 와봐’ 했더니 애들이 총화 문서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원수님 말씀’ ‘수령님 말씀’ 하면서 문구를 적어놨는데, 총화라는 게 수준이 많이 떨어집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더라고요. 총화를 지도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녀석이 저와 친했습니다. 한동안 총화를 안 해서 결과가 없을 때도 많았어요. 이따금 점검, 검열이 나와 석 달치 총화 결과를 한꺼번에 쓰기도 했죠. ‘누나, 이거 어떻게 써야 해요?’라며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부모가 수령님 말씀 앞 구절을 써주면 아이들이 덧붙이는 글로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하는데 ‘○○을 잘못했다. 앞으로 ○○○하겠다’ 식으로 형식적으로 끝나요. 아이들이 총화를 엄청 귀찮아하죠. 한국 아이들과 똑같아요. 우리는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사람인데….”
▼ 활동비는.
“월 2500위안요.”
지금 환율로 약 45만 원이다.
“방값이 포함된 금액이에요. 월세가 600위안, 나중에는 1200위안까지 했거든요. 굉장히 힘들었죠.”
북한 반체제 인사를 키우는 일을 한 중국의 한국인 혁명가는 1인으로만 활동했다. 단선 연계로 지도하는 사람 1명하고만 연락을 주고받았다. 은서 같은 조직원들이 횡적으로 연계된 것은 없었다. 북한 혁명을 도모하는,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이 만났는데, 서로 같은 일을 하는지 모르고 지낸 경우도 있다. 단선 연계로만 활동한 것은 중국 공안이나 북한 보위부가 조직을 포착했을 때 조직 전체가 드러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북한 아이들이 중국에서 생일잔치 할 때 4000위안씩 씁니다. 70만 원 넘는 돈이죠. 월 2500위안으로 활동한 저보다 걔들이 훨씬 부자였죠. 함께 술 먹고, 놀고, 사진 찍고, 노래방 가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술자리에서 놀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누나, 따로 보자’ ‘언니, 만나자’ 하는 거예요.”  
▼ 경계심은.
“애들마다 달라요. 저희도 녀석들을 파악해야 하거든요. 보위부 첩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얘기를 할 때 덥석 무는 친구는 일단 의심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이 여자보다 경계심이 강해요. 특히 한국 남자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국 여자에 대한 경계심은 크지 않아요. 따로 만난 아이들에게는 생활총화 가서 나 만난 얘기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생활총화 소조라는 게 있어요. 예컨대 특정 소조에서 3명이 저와 함께 ‘지하학습’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도 나와 책을 읽는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만약에 일이 잘못됐을 때도 1명만 문제가 돼야 하거든요.”
은서는 20대 때 북한에서 혁명을 일으키겠다면서 중국으로 갔다. 북한에서 온 대학생과 나이차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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