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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별들 속 영혼의 이정표를 찾다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밤하늘 별들 속 영혼의 이정표를 찾다

1. 밤 9시 이후에야 진짜 시작되는, 작가의 삶

밤하늘 별들 속  영혼의 이정표를 찾다

야간비행 생텍쥐페리, 허희정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생텍쥐페리는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어머니, 저는 요새 야간비행에 관한 책을 쓰고 있어요. 하지만 내면 깊숙이에서 바라보면, 이 책은 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진짜 인생은 항상 밤 9시 이후에 시작되곤 했으니까요.” 생텍쥐페리의 진정한 무대는 밤이었다. 그는 밤하늘의 별들 속에서 영혼의 이정표를 찾았다. 그는 ‘야간비행’에서 어머니의 따스한 돌봄이 없는 고독한 세계, 광막한 밤의 세계에서 홀로 싸우는 남자들의 고독한 투쟁을 그린다.
생텍쥐페리는 일을 사랑했지만 ‘관계’를 더욱 사랑했다. ‘손편지 중독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는 편지에 미쳐 있었다. 편지를 나르는 우편기 조종사의 임무만큼이나 ‘편지를 쓰는 순간의 벅참’과 ‘편지를 기다리는 순간의 설렘’을 사랑했다. 편지를 통해 당신과 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굳건히 이어져 있음을 느끼는 것. 그것이 생텍쥐페리를 별빛조차 찾기 힘든 막막한 밤하늘에서도 고독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야간비행’의 조종사들은 바로 그 편지를 실어 나르는 하늘의 메신저다. 그들은 연애할 시간도, 가정을 돌볼 시간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쇼핑할 시간도 없다. 비행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이전, 하늘은 끝없는 신비와 무서운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은 오직 뛰어난 비행기술과 본능적인 직관만으로 그 풀리지 않는 하늘의 신비와 맞서 싸워야 했다.
생텍쥐페리의 주인공들 중 나에게 가장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이 바로 ‘야간비행’의 리비에르다. 그는 비행사들의 조련사다. 그리고 그 많은 비행기가 광막한 밤하늘에 떠 있는 동안 자신 또한 잠 못 이루며 밤하늘의 신비와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리비에르는 비행에 인생을 바쳤다. 젊은 시절에는 하늘을 나는 일에, 중년 이후에는 하늘을 나는 조종사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데에. 그리하여 그에게 비행이 아닌 나머지 인생은 없었다. 그의 눈은 항상 하늘에 있었다. 그 나머지 시간은 하늘을 날아가는 후배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데 쓰였다. 그는 후배 조종사들의 용기를 북돋웠고, 강하게 몰아붙이는 훈련을 통해서만 후배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사랑했지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걱정했지만 안쓰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이런 시간마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사랑할 시간, 사랑하는 사람을 돌볼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지만, ‘이것으로 나는 되었다’고 진정으로 만족한다. 하늘을 나는 일, 하늘을 나는 자들을 돌보는 것은 그에게 너무도 절대적인 책무였기에, 행복하기 위해 곁눈질 따위는 해본 적이 없기에. 리비에르에게서는 어떤 범접할 수 없는 위엄, 고결한 힘이 느껴진다. 자신의 일을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만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리비에르에게 인간이란 ‘반죽해야 할 말랑말랑한 밀랍’이었기에.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밀랍에 아름다운 영혼, 불타는 의지를 불어넣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다.
 


2. 목숨 바쳐 사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꿈꾸다

‘야간비행’을 읽고 있으면 인간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사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의 숭고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한평생을 뛰어넘는 그 무엇, 단지 살아 있는 동안에만 한정되지 않는 그 무엇,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가꾸고, 이루고, 마침내 뛰어넘는 그 무엇. ‘야간비행’의 주인공들에게 그것은 끝 간 데 없이 계속되는 하늘과 구름바다이기도 했고, 온갖 고난 속에서도 서로를 완벽히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과의 우정이기도 했고, 따스한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서로 웃음지을 수 있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기도 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시대에 조종사들은 하늘을 과학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신비의 대상으로 봤다. 조종사들은 비행 중에 구름바다가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천상의 쾌락’을 느끼지만, 그 구름 아래에서는 ‘지옥의 고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늘 함께 느껴야 했다. 가장 동경하는 대상이 가장 무서운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늘은 ‘지상의 인간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비밀로 가득 찬 곳이었고, 조종사들은 때로는 지상의 안락을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끝내 ‘하늘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극한 해방감을 선택했다.
남편을 멀리 비행 보낼 때마다 아내의 가슴은 미어진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지상의 삶을 떠나 오랜 시간 동안 밤하늘을 유랑하게 될 남편을 보내야 한다. 남편을 보낼 때마다 강인해지려 다짐해보지만, 어떤 고통은 아무리 반복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당신을 저 위험한 하늘로 보낸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내 영혼을 통째로 뒤흔드는 고통, 아무리 반복돼도 길들지 않는 고통이다. 파비엥의 아내는 남편을 하늘로 보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왜 수백만 명의 남자 중에 오직 이 사람만이 오늘밤 저 알 수 없는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가 된 것일까’ 하고 원망도 해봤지만, 사랑하는 그 사람을 그녀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보내야 했다. 그곳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었으므로.



3. 저 하늘의 별이 된 조종사의 꿈

‘야간비행’의 압권은 홀로 밤하늘을 표류 중인 파비엥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고의 비행’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한참 동안 헤매던 파비엥은 어느 순간 가녀린 별빛의 무리를 만난다. 너무도 오랫동안 광막한 어둠 속을 헤맨 파비엥에게 저 높은 하늘가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빛은 때 아닌 구원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홀로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인 그에게는 그 가녀린 별빛이 달콤한 구원처럼 느껴진다. 그는 연료가 다 떨어져가는 비행기로 탐색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고도로 바다 가까이를 탐색하다가, 이제는 그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보기로 한다. 지상의 어디에도 착륙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탐색을 계속했다.
어떤 계기판도 구원을 가리키지 않는 지금, 이제 그는 직관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파비엥은 그곳이 구원의 약속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지금 그에게 가장 위안을 주는 별빛의 들판으로 날아오른다. 이런 눈부신 장관(壯觀)은 지상의 어떤 인간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별들이 시계를 꽉 채운 밤하늘의 구름 들판, 하늘 안의 무릉도원, 용감한 조종사가 아니라면 결코 도전할 수 없는 고도의 그 하늘. 거기서 그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삶과 죽음이 맞닿은 아슬아슬한 가장자리를, 최고의 열락과 최악의 고통이 차라리 하나가 되는 무한의 경지를 경험했다.
리비에르는 파비엥의 실종 소식을 듣고 나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지만, 파비엥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동료가 비행에서 결코 돌아오지 않는 것만큼 조종사를 위축시키는 일이 있을까. 바로 몇 시간 전까지 그들과 함께한 파비엥으로부터 통신이 두절되고, 돌아올 수 있다는 가녀린 희망마저 사라지자 동료들의 가슴에는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 같은 먹구름이 드리운다.
하지만 누군가는 비행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나 깨나 저 머나먼 곳에서 날아올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 자신의 편지가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우편기는 날아올라야 한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파비엥이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웠음을. 파비엥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음을.
‘야간비행’에서 마침내 죽음을 맞는 파비엥의 마지막은 고통스럽다기보다 오히려 ‘평생 찾아오던 그 무언가’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매번 무한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던 그가 마침내 무한 가까이에 다다른 것 같은 기이한 감동을 준다. 파비엥의 죽음이 비극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평생 꿈꿔 오던 그 무엇과의 합일’처럼 지극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향해 온몸으로 질주하다가 산화한 영혼은 결코 허무한 죽음을 맞은 게 아닐 거라는 생텍쥐페리의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파비엥은 결코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육신의 옷이 너무 무거워’ 잠시 육체의 갑옷을 벗어두고 지구 밖으로 떠나 하늘의 별이 된 어린 왕자처럼, 우리가 돌봐야 할 또 하나의 별이 되어 바로 저기 저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이렇듯 생텍쥐페리의 작품에는 ‘별이 된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신의 소행성 B602로 떠나기 위해 무거운 육신을 버린 어린 왕자, 야간비행에서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 파비엥, 생텍쥐페리가 지극히 아끼고 존경하던 멘토이자 위대한 조종사 기요메,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까지.


신동아 2016년 2월 호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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