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추적

‘더딘 사드 논의’ 주고 ‘강한 대북 제재’ 받고?

한반도 충돌 美中 막후 ‘휴전’ 說

  • 이상현 | 세종연구소 동북아평화협력센터장 shlee@sejong.org

    입력2016-03-23 15: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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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해 다양한 제재를 가했다. 효과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다를지 모른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국제사회는 전례 없이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 의회가 통과시킨 대북제재법안(H.R.757)에 서명했다. 이 법은 북한의 금융·경제를 국제사회와 차단해 핵·미사일 개발이나 사치품 구입에 쓸 돈줄을 묶으려 한다. 특히 제재 범위를 북한과 불법거래를 하거나 북한의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제3국의 개인과 단체로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은 미국 대통령에게 재량권을 부여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도 전례 없이 강경한 내용을 담았다. 과거 유엔의 대북 제재가 비효율적이었던 주된 이유는 미국과 중국의 국가이익 대립에 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우려해 소극적 대북 제재로 일관했다.
    3월 3일 발효된 이번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은 중국의 태도를 어느 정도 변화시킬 만한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르면, 북한을 출입하는 모든 화물 컨테이너에 대해 의무적 검열이 시행된다. 북한의 최대 외화벌이 수단인 지하자원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항공기·로켓 연료 공급도 중단된다. 북한 군사력에 사용될 만한 모든 품목의 북한 반입도 금지된다. 이런 조치들은 북한 정권에 실질적 타격이 될 수 있다. 17명의 북한인과 정찰총국, 국가우주개발국, 원자력공업성 등 12개 북한 기관도 제재를 받는다. 북한 은행의 해외지사 설립도 금지된다.
    미국이 추가적 제재에 들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은 대북 제재 법안과 안보리 결의안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 같다. 미국 국내 정치가 대선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점에서 더 그렇다.



    향후 3~6개월 긴장 고조

    대북 제재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최근 이들 국가 사이의 핵심 이슈는 ‘지정학의 부활’이지 ‘북한 핵’이 아니었다.
    다만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은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다. 유엔 회원국들의 이행보고서가 제출되는 향후 90~180일 사이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안전’과 ‘방위’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  
    예상대로 북한 정부는 유엔 결의안에 대해 3월 4일 “당치 않은 구실로 자주적이며 정의로운 주권 국가를 고립 압살하기 위한 가장 노골적이며 가장 극악한 국제적 범죄행위”라고 반발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실전 배치한 핵탄두를 임의의 순간에 쏴버릴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위협적 발언을 했다. 노동신문은 “우리에게는 미국을 마음먹은 대로 공격할 수 있는 강력한 최첨단 공격수단들이 다 있다. 핵 타격 수단들이 침략의 아성들을 조준권 안에 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소형화된 핵탄두를 실전배치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물 샐 틈 없는 제재가 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방책인데, 그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도 석유와 식량을 공급해줬다. 북·중 교역을 통해 실질적으로 북한의 생명선 노릇을 해왔다. 중국이 이런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번 대북 제재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최근 미·중이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까닭에 미·중 협력이 쉽지 않다. 양국은 북한 문제에서 지향점이 다르다.
    미국은 언젠가 자국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폐기시키려 한다. 북한은 툭하면 미국 본토 및 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상당수는 미국을 가장 위협하는 국가 중 하나로 북한을 꼽는다. 여론을 중시하고 선거로 권력이 교체되는 미국 정치의 특성상, 행정부가 북한 핵·미사일에 가볍게 대처할 순 없다.
    반면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다. 워싱턴보다 베이징이 북한에 훨씬 가깝지만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느끼진 않는 듯하다. 오히려 일각에선 ‘북한이 중국의 완충지 노릇을 해주고 중국을 대신해 미국·일본과 싸워주니 중국이 북한을 사실상 방임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중국이 시늉만 하면…”

    미·중은 북한 문제 외에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대만에 대한 미국 무기 수출 문제, 사이버 안보 문제, 중국 내 인권 문제, 위안화 환율 문제 등 도처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첨예하게 맞붙어 다투는 부분이 남중국해 문제와 주한 미군기지 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한 무인도를 매립해 전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인공 섬으로 조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제약해 미국의 동아시아 접근성을 약화시키려는 도전행위로 간주한다.
    중국이 2013년 11월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한 이후 미국은 중국의 해양 팽창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항행의 자유에 관한 한, 미국은 중국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중국의 점증하는 공세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본다. 아무래도 남중국해가 중국의 앞바다이고 미국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미국이 이렇게 대처하는 듯하다.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선 공수가 바뀐 형국이다. 미국이 공세적이고 중국이 수세적이다. 중국은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여기서 미국에 밀리면 향후 공세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사드 문제는 겉으로 대북 제재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사실 둘은 긴밀히 연결된다. 일각에서 ‘미국은 대북 제재에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드 배치에선 속도조절을 하며 다소 유연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사드는 굳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미·중이 공식 발표만 안 했을 뿐 사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으로 비친다. 우리 정부도 사드에 관해 ‘배치한다’ ‘안 한다’를 당장 결론 내려 하지는 않는다. 한미 국방부는 3월 4일 사드 배치 협의를 위한 공동실무단 구성을 약정했다. 이런 공론화 과정을 좀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 배치가 확정된 것처럼 보도한다면 이는 언론이 앞서가는 것이다. 사드 배치 논의가 6개월을 끌지 1년을 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정부도 빨리 나가자는 것이 아니고 적당히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시늉만 한다면, 북한이 5, 6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미는 아마 주저 없이 사드 배치를 단행할 것이다. 심지어 사드 포대를 여러 대 추가로 도입할지 모른다. 현 시점에서 중국은 대북 제재에 성의를 보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사드는 중국에 상당히 실효성 있는 압박 카드다.
    중국은 외교부장이 ‘항우의 칼춤’ 고사성어까지 인용하면서 한반도 내 사드 배치에 경기를 일으켰다. 주한 중국대사와 ‘환추시보’ 같은 중국 관영언론은 한국에 대한 위협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은 왜 사드에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중국의 주장대로,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되는 사드 레이더는 마음만 먹으면 중국 내륙의 미사일 기지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이 보유한 핵·미사일의 전략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는 주한미군의 사드 레이더를 북한 쪽만 감시하도록 하겠다고 정치적 약속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주한미군 사드 레이더의 실질적 가치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견해도 많다. 일본 내 미군기지에 있는 레이더 등으로도 미국은 이미 중국 내부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선 별말을 하지 않는다.
     


    사드 기싸움

    따라서 사드에 대한 중국의 극렬한 반대가 기술적 이유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중국이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이 한번 밀리면 향후 한·미·일 군사협력과 대(對)중국 포위 공세에 계속 밀릴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기세 싸움을 중시했고 이번에 한반도에 미군 레이더가 못 들어오게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어둘 필요가 있다고 본 듯하다.
    아마도 중국은 “우리가 이번에 대북 제재를 제대로 할 테니 당신들도 사드  건에 성의를 좀 보여달라”는 취지로 미국에 제안했고 미국이 이를 수용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중 최고위급이 막후에서 논의했을 이런 일을 밖에선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이런 ‘중국의 강한 대북 제재’와 ‘미국의 더딘 사드 논의’ 맞교환 추정은 이후 벌어진 상황에 의해 뒷받침된다. 중국은 안보리 결의와 동시에 북한 제재에 본격적으로 돌입했고 미국은 고위 당국자의 발언으로 사드 배치 논의의 속도를 확연히 늦추면서 유연하게 나왔다.
    미국이 중국에 지렛대로 활용할 수단은 사드밖에 없을까.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또 다른 대중국 압박수단도 갖고 있다. 미 의회는, 이란 제재 때와 달리, 이번 대북 제재 법안을 내면서는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해 대통령에게 재량권을 부여했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미온적으로 나오면 미국 행정부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차근차근 이행하면 된다. 그러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실질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이 중국에 이중으로 부담이 되고 중국을 행동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이 현재의 갈등을 넘어 핑퐁외교 때의 좋았던 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큰 틀에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G2를 자처하는 중국이 이판사판 파국적 대결을 벌일 것 같진 않다. 진 쪽은 물론이고 이긴 쪽에도 엄청난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나라는 갈등이 전면적 충돌로 확산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관리하면서도 북한 문제 같은 특정 사안에선 ‘국지적으로’ 세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美에 과감하게 못 맞선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에 대적할 중국의 ‘종합 국력’이 현재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자국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미국에 대한 외교적 발언권도 서서히 약화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국이 경제적인 면에서 수세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강철처럼 굳건해 보이던 중국의 7% 경제성장률은 그 밑으로 내려앉는 추세다. 외환보유고도 줄고, 수출도 감소세고, 외국 자본도 빠져나가고, 위안화 환율도 불안하다. 국제 투기자본은 중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한다.
    중국은 위기를 극복할 신성장 동력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놓고 미국에 과감히 맞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세컨더리 보이콧이 시작되면 가뜩이나 경제가 안 좋은 중국은 경제적으로 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중국은 향후에도 대북 제재의 수위와 관련해 미국의 의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은 당분간 남북관계 경색과 대북 제재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북한이 가장 아파할 에너지, 금융, 교역 부문에서 중국이 제대로 제재를 가해주기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말보단 행동이라고, 한국은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키는 행동으로 중국에 강한 대북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은 ‘사드 배치는 한국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면서 중국의 간섭에 선을 긋는다. 여기엔 ‘중국이 지금까지 북한 비핵화를 위해 해준 일이 뭐가 있는가’라는 배신감이 깔려 있다. 또한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그냥 맞고 있으라는 말인가’라는 설득력 있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동시에 한국은 “사드를 배치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중국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맞대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침묵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중국으로선 북·중관계뿐만 아니라 미·중관계, 한·중관계도 중요해졌다. 중국은 중대한 선택의 순간 앞에 섰다.



    이 상 현
    ● 1960년 부산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대 박사(정치학)
    ●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
    ● 現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 논저 :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 : 배경, 구조, 전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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