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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다리 책’ 확장 ‘읽기’ 확산

복각본 시집 출간 바람

  • 장은수 |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곁다리 책’ 확장 ‘읽기’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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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라고 불리는 이런 책엔 공통점이 있다. 단지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심지어 읽을 내용 자체가 없는 경우도 흔하다), ‘…북’을 계기 삼아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하도록 기획된 책이라는 점이다. 책의 존재 이유가 ‘읽기(reading)’가 아니라 ‘활동(action)’인 이러한 유형의 책들을 과연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책의 탈을 쓴 문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보수적 시각으로 보면, 문구형 도서는 책의 본령을 벗어나 독서의 실핏줄을 막히게 하는 혈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형 등 완구와 함께 각종 기념일에 널리 선물로 선택됨으로써 비로소 책이 대중 사이에 본격적으로 확산됐음을 잊어선 안 된다. 어쩌면 문구형 도서의 유행은 책이라는 매체에 내재하는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는 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날 독자는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책을 놓고 무언가를 ‘더하고’ 싶어 한다. 읽는 일만으로도 당연히 충분하지만, 거기에 무언가를 더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려 한다.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고, 독서 모임에 나가 이야기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서 구절 놀이를 하고, 색칠하거나 필사하거나 스크래치해서 남한테 자랑한다. 본말이 전도돼 읽는 일보다 이런 활동을 더 즐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김소월이 보낸 진달래꽃

문구형 도서는 독자의 활동 욕구를 충족해준다. 열풍은 ‘책 활동(book activity)’에 기반을 두고 ‘책 콘텐츠(book contents)’ 활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책의 본원 가치가 무시되는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책의 사생아’로 부르면서 문구형 도서 열풍을 우려하는 것이다.
복각본 시집을 기획한 소와다리 출판사 김동근 대표의 말은 독자 대중의 욕망을 선명히 보여준다. ‘초판본 진달래꽃’을 출판했을 때 마치 김소월이 소포를 통해 직접 책을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의 마케팅으로 독자를 감동시킴으로써 독자의 소장 욕구와 소셜미디어 활동을 자극했다.
“솔직히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책을 내면 독자들이 눈여겨봐줄까 고민했죠. ‘만약 김소월이 직접 시집을 보냈다고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온 책을 받는 기분은 상상할 수 없겠죠. 책이 더 기다려지고, 반가울 거 같겠죠.”(2월 1일 연합뉴스)
‘오가닉 미디어’의 저자 윤지영의 말처럼,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에선 ‘연결가치’만이 유일한 가치이며, 연결가치를 제공하는 모든 활동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복각본 시집 열풍은 20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사진 공유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불었다. 시집을 배송받은 후 소포에 담긴 소월의 엽서에 감동한 독자들이 이를 사진으로 찍고 간단한 소감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됐다. 책 독자와 소셜 미디어 이용자는 라이프 그래프가 일치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다른 작용이 없는 경우, 소셜 미디어의 작동 경로를 따라 독자들이 반응하므로 복각본 시집의 구매자 역시 2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더 나은 것이 없는 물건’

‘곁다리 책’  확장 ‘읽기’  확산

‘문구형 도서’의 유행을 불러온 성인용 컬러링북 ‘비밀의 정원.’

복각본 시집의 인기를 두고, 어떤 이들은 ‘복고 열풍’이니 ‘물성(物性)의 회복’이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 식으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 초판본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복원한 이 시집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아날로그적 요소에 대한 진한 향수와 함께 디지털 화면의 매끈함이 도저히 가져다줄 수 없는 종이의 투박한 물성에서 오는 인간적 느낌이 확연하다.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작품 고유의 분위기, 즉 ‘아우라’를 조금은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후적 해석은 뿌리와 가지를 뒤집어 말하기 십상이다. 사실 복고나 물성은 열풍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출판의 대지 밑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는 힘인 책 콘텐츠와 독자 사이의 인터페이스 변화가 일으키는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이 현상은 뿌리를 내리면서 책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도 있고, 순간적 유행에 그치면서 거품처럼 꺼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이 가져오는 지속적 충격(충격의 직접적 효과는 독자 이탈로 나타난다)에 적응하려고 인간과 책 사이의 오랜 연결을 다시 정의하려는 본원적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해질 게 분명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와 마찬가지로 책은 처음 발명되고 나면 나중에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물건에 속한다. 손으로 감각하고 눈으로 읽으면서 머리로 되새기는 책의 고유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책의 불멸성은 동시에 한 시대의 첨단기술을 활용해 인쇄, 제본, 활자, 사진, 그림 등을 표현함으로써 책의 인터페이스를 늘 아방가르드 상태로 유지해온 장인적 분투의 결과였다.
오늘날 책의 세계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책의 인터페이스를 혁신하고, 책 콘텐츠를 증강하고 융합함으로써 독자의 경험을 혁신하려는 것은 출판산업의 기본 행동이 됐다. 전자책, 북앱, 주문형 출판, 모듈형 출판, 개인화 출판, 크라우드펀딩 출판 등 놀라운 혁신이 새로 일어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



‘복각’ 없는 ‘복각본’

복각본 시집엔 사실 ‘복각’이 없다. 복각(復刻)은 옛날에 출판된 서적 또는 잡지를 활자, 종이, 제책 방식까지 물리적으로 가깝게 재현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소와다리의 시집들은 고성능 디지털 사진을 찍거나 스캔을 뜬 후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모양만 비슷하게 복원한 책이다. 복각본이 아니라 ‘영인본(影印本)’에 가깝고, 출판사 표현대로 ‘오리지널 디자인’만 살린 책들이다. 이 시집들을 복각본이라 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이들 시집의 유행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인터페이스 혁신을 분명히 보여준다. 개인이 적은 비용으로 소장할 수 있는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다면, 누구나 책 사진을 찍어 공유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독자를 대량으로 모으고 베스트셀러를 반복해 보여주는 인터넷 서점이 없었다면, 이 책의 광범위한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문구형 도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오늘날 출판은 책의 인터페이스를 혁신하려는 시도들로 풍요롭다. 곁다리 책으로의 확장은 지금은 심리적으로 다소 불편할지라도, 독자를 책 문화 속에 붙잡아놓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읽기’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출판의 역사는 이러한 경우를 수없이 보여줬다. 복각본 시집을 통해 책의 매력을 처음 깨달은 20대 여성들이 반가운 건 이 때문이다.


신동아 2016년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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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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