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부자와 미술관

‘숨은 보석’ 캐내는 신진 기예 양성소

해머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입력2016-03-25 13: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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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머 미술관은 1년 내내 강연, 음악회, 영화 상영 등 무료 이벤트를 줄기차게 마련한다. 기획전, 상설전도 공짜다. 고흐 등 인상파 명작에서부터 신진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까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 LA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비엔날레도 연다. 대학 부설 미술관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보면 안 된다.
    미국이나 유럽 대도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이 많다. 그중에는 ‘숨은 보석’이라 할 곳이 여럿이다. 특히 대학 부속 미술관을 주목할 만하다. 명문대로 꼽히는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A) 부설 미술관인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도 그런 경우다. 사업가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1898~1990)가 1990년에 세운 곳인데, 1994년 UCLA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UCLA 캠퍼스 바로 옆, 윌셔 불러바드(Wilshire Boulevard)에 있다.

    아먼드 해머는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털 페트롤리엄(Occidental Petroleum Corporation) 사장을 지낸 인물. 그는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 원)에 상당하는 개인 수집품을 전시하고자 해머 미술관을 세웠다. 그는 20년 가까이 LA카운티 미술관 이사를 지내며 자신의 수집품을 이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작품 소유권 및 전시 방법 등에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약속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해머는 1988년 회사 건물 옆에 독립 미술관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공사 중에 회사 주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건축비가 계속 증액됐기 때문이다. 주주들의 소송으로 법원은 ‘건축비가 6000만 달러를 넘지 않도록 한다’고 결정했고, 이에 따라 미술관도 무사히 완공됐다.



    전시 절반을 여성 작가에게

    미술관은 1990년 개관했다. 그런데 한 달 후 해머가 사망한다. 이후 미술관은 운영자금, 해머의 재산 처리 문제 등으로 각종 소송에 휘말렸다. 운영자금은 해머가 내놓은 3600만 달러 상당의 수익자산으로 조달하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미술관 소장품 소유권과 유가족의 역할 및 권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에 1994년 UCLA가 운영권을 인수하면서 미술관은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마련하게 된다. 아먼드 해머 재단(Armand Hammer Foundation)은 ‘UCLA가 99년간 운영권을 맡는다’는 데 동의했다.



    UCLA는 기존의 부설 미술관인 와이트 갤러리(Wight Art Gallery)와 그룬왈드 회화예술센터(Grunwald Center for the Graphic Arts)를 해머 미술관에 귀속시켰다. 또한 해머 재단이 소장품과 수익재산에 대해 일정한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학 측이 해머 재단의 권한을 축소하려고 나서면서 마찰이 빚어졌다. 미술품의 원소유자가 연고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미술관은 이런 분쟁에 휘말리곤 한다.

    2007년에 와서야 대학 측과 해머 재단은 새로운 합의에 이르렀고, 미술관 운영도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 양측은 미술관 설립의 기초가 된 195점 중 92점을 재단이 소유하고, 나머지 103점은 미술관이 소유하기로 했다. 92점의 가치는 5500만 달러, 103점의 가치는 2억5000만 달러라고 한다. 아울러 미술관이 소유한 5500만 달러 상당의 유가증권 등을 이용해 UCLA가 2020년까지 미술관 건물을 사들이기로 했다. 전시 공간 확충 등에 대해서도 원만하게 합의했다. 

    이후 미술관은 계속 확장돼 1년 예산이 5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로까지 증가했고, 정규 직원도 100명 이상으로 늘었다. 운영자금은 미술관 소유 수익자산, UCLA 예술 분야 예산, 기부금, 회비 등으로 충당한다. 대학이 지원하는 금액은 운영자금의 10% 안팎이다. 미술관은 매년 조각정원에서 모금을 위한 연회(Gala Event)를 개최한다. 2014년에는 연회에서 250만 달러를 모금했다. 2013년 미술관 관람객은 20만 명에 이르렀다. 주 고객은 예술가들이라고 한다.

    해머 미술관은 연중 끊임없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주일에 6일가량 야간 행사를 열 정도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부터 강연, 독서회, 심포지엄, 영화 상영, 음악회 등이 열리는데 대부분 무료다. 기획전, 상설전도 무료다. 2006년에는 300석을 갖춘 빌리 와일더 극장(Billy Wilder Theater)을 마련해 각종 행사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 빌리 와일더는 유명한 유대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이자 영화감독으로, 그의 아내가 500만 달러를 기부해 이 극장을 세웠다.



    Made in LA

    1990년 11월 28일, 해머 미술관은 개관 기념 전시로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후 유명 동시대(Contemporary) 작가의 개인전을 여는 것이 관례가 됐다. 그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작가를 재조명하고 이들에게 명성을 안겨주는 기회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의 본테코(Lee Bontecou) 회고전이다. 해머 미술관은 절반 이상의 전시를 여성 작가에게 할애하고, 매우 창의적인 해외 및 지방 작가에게도 전시 기회를 제공한다.
     
    2010년에는 ‘Made in LA’라는, 로스앤젤레스 예술가만을 위한 비엔날레를 만들었다. 2012년에 첫 개최된 비엔날레에 60명의 작가가 참여해 해머 미술관을 비롯한 LA 여러 곳에서 행사가 열렸다. 이 비엔날레는 작가에게 현금 10만 달러를 수여하는 ‘Mohn Award’를 만들었는데, 개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국제적으로 가장 큰 액수의 상이다. 2014년 2회 ‘Made in LA’에서는 Morn Award 외에도 상금이 각각 2만5000달러인 ‘Career Achievement Award’와 ‘Public Recognition Award’를 수여했다. 상금 대부분은 이 지역 유명 부자 컬렉터 파멜라 몬(Pamela Mohn)과 몬 가문 재단(Mohn Family Foundation)으로부터 기부받는다.

    아먼드 해머는 미국 재계 및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거물이다. 그는 컬럼비아대 의대 출신의 의사였지만, 곧 사업에 뛰어들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소련의 권력자들과 특수관계를 유지하며 1921년부터 10여 년간 소련을 내왕했는데, 이러한 이력이 사업의 밑천이 됐다. 소련과의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쌓아올린 해머는 이런 과정에서 이중 스파이란 오해를 받았고, 정보 당국으로부터 감시를 받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 부모를 뒀기에 태생적으로 소련과 특수관계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의사였는데, 의약품 관련 사업을 하면서 소련에 의약품과 화학제품을 팔았다. 아버지가 일련의 범죄 혐의로 구속된 후 아들들이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크게 성공시켰다. 해머는 레닌을 직접 만났을 만큼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미국 제품과 소련 제품을 적절하게 교역했다. 해머는 냉전 이후에도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해머는 1957년 미국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의 최고경영자가 됐고, 죽을 때까지 이 회사를 지배했다. 이 시기에 그는 유럽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작품을 특히 많이 수집했는데, 이들 작품이 훗날 해머 미술관을 세우는 ‘종자’가 됐다.

    그는 유력 정치인들과도 교류가 깊었다. 닉슨 대통령에게 많은 후원금을 냈고, 앨 고어 부통령과는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교육, 의료,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자선사업을 벌였고,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오르내렸다. 1986년 ‘포브스’지는 그의 순 재산이 2억 달러라고 보도했다.

    미술관은 소장품을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관리한다. ①그룬왈드 센터(Grunwald Center for the Graphic Arts) ②조각정원(Franklin D. Murphy Sculpture Garden) ③해머 컬렉션(Armand Hammer Collection) ④도미에 컬렉션(Daumier and Contemporaries Collection) ⑤해머 동시대 컬렉션(Hammer Contemporary Collection)이다.


    ‘풍자의 거장’ 도미에 작품 다량 소장


    그룬왈드 센터는 4만 점이 넘는 판화, 드로잉, 사진, 작가 스케치북, 작품 아카이브 등을 보유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이 망라돼 있다. 렘브란트, 피카소 등의 작품은 물론 우키요에 등 일본 에도 시대 판화 작품도 볼 수 있다.

    1967년 만들어진 조각정원에는 칼더, 마티스, 호안 미로, 헨리 무어, 이사무 노구치, 로댕, 데이비드 스미드 등 유명 작가들의 70점 넘는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해머 컬렉션은 이름 그대로 해머의 수집품이다. 규모는 크진 않지만, 해머가 수십 년에 걸쳐 엄선한 유럽 및 미국의 명품들로 구성돼 있다. 렘브란트, 고야, 모로, 고갱, 고흐 등의 작품이 포함됐다.

    도미에 컬렉션은 19세기 프랑스 판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의 작품과 당시 삽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해머 미술관이 소장한 도미에 작품은 7500여 점으로, 프랑스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도미에 작품을 갖고 있다. 도미에는 ‘캐리커처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린 당대 최고의 캐리커처 작가로, 주로 부르주아, 정치인, 귀족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미술관이 소장한 도미에 작품 중 꼭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Don Quixote et Sancho Panza·1866~1868)다. 돈키호테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도미에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가난한 유리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파리로 이주해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채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예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잠시 미술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는 시사만화가(caricaturist)로 명성을 떨쳤다. 사회를 풍자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삽화를 많이 그려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루이 필립 왕을 비판한 삽화 때문에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말년에는 실명(失明)하는 불운을 겪었다.

    해머 동시대 컬렉션은 1999년부터 현대 및 컨템퍼러리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 수집을 하는데, 최근 들어 소장 작품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LA 지역 미술애호가들의 후원 덕분이다. 2012년에는 오랜 기간 미술관을 후원해온 독지가 2명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품 150점을 기증했다. 여기에는 잭슨 폴록, 빌렘 드쿠닝, 필립 거스통 등 미국의 1세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다.



    ‘코덱스 해머’의 운명

    해머 미술관에서는 고흐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한 점인 ‘생레미 병원’(Hospital at Saint-Rémy, 1889)은 고흐가 고갱과 크게 다툰 후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작품이다. 고흐가 자신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뉴욕현대미술관 소장)을 그린 곳이 생레미 병원이다. 렘브란트의 ‘검은 모자를 들고 있는 남자’(Portrait of a Man Holding a Black Hat, 1637)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도 그중 하나다. 역시 해머의 수집품이다.

    해머가 가장 자랑한 수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자필로 쓴 과학 공책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다. 그는 이를 1980년 경매에서 512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 공책은 18장이 반으로 접혀져 앞뒤에 글이 쓰여 있기에 모두 72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빈치가 쓴 30여 개의 저널 중 가장 유명한 것이다. 해머는 이 공책을 사들인 후 그 이름을 ‘코덱스 해머(Codex Hammer)’로 바꿨다.

    하지만 미술관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94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이 공책을 내놓았고, 빌 게이츠가 308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자연히 이름도 ‘코덱스 레스터’로 환원됐다. 빌 게이츠는 다 빈치의 유산을 마이크로소프트 홍보에 유익하게 이용하고 있다. 



    최 정 표


    ●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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