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대한민국 움직이는 혼맥(婚脈)

LG家, ‘통혼(通婚) 경영’ 김무성家, 정·재계 깊은 인연

대한민국 움직이는 혼맥(婚脈)

  • 소종섭 | 시사평론가 jongseop1@naver.com

    입력2016-04-11 13: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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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다양하다. 먼저, 사회 규범인 법이 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치권과 법조계도 있다. 물질적 재화의 생산주체인 경제계도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흐름을 반영하듯, 국제관계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은 서로 연결돼 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보이는 것, 정해진 것만이 다가 아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힘이 사회를 움직이기도 한다. 물론 그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힘 가운데 하나가 결혼으로 맺어진 혼맥(婚脈)이다.

    필자는 이에 주목해 최근 ‘한국을 움직이는 혼맥 금맥’(시사저널사)을 펴냈다. 이 책엔 재벌과 전·현직 대통령,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인물들의 가문이 등장한다. 단순히 혼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넘어 창업가가 기업을 세우고 성장시키는 과정, 전·현직 대통령의 성장사와 유력 대선주자의 일생, 결혼 비화 등을 담았다.



    신데렐라는 없다?

    혼맥은 곧 금맥(金脈)이다. 혼맥과 금맥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대를 이어 우리 사회의 부(富)와 권력을 움직인다. 어떤 경우는 또렷이 드러나지만 어떤 경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혼맥은 세습과도 연결된다. 한국은 이미 세습사회다. 재계, 정계, 법조계, 연예계 등 어디를 살펴봐도 부와 권력의 세습은 늘고 있다. 이는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나아가 사회가 양극화하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대다수 한국 재벌은 정치권력과 이러저러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다. 광복과 6·25전쟁, 군사정권을 거치며 일제가 남긴 적산기업을 불하받거나 전쟁 복구, 정부 경제개발계획의 흐름과 발을 맞춰가며 기업을 키웠다. 한마디로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했다. 정부는 산업화를 위해 기업을 키워야 했고 기업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권력과 손을 잡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검은돈이 오간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재벌의 성장을 오롯이 정경유착 덕분으로만 설명하는 건 옳지 않다. 거듭된 역경에도 굴하지 않은 남다른 의지, 돈이 되는 길목을 읽어내는 혜안, 시대 흐름을 꿰뚫는 결단을 한 창업가들만이 자기 회사를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재벌들이 정경유착으로 성공했다고 단칼에 깎아내릴 수 없는 이유다.

    재벌 중에는 성장과정에서 재력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형제자매나 친척이 정계에 진출하거나 정계와 혼맥을 맺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특히 창업 세대가 그러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으로 6선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 전자의 대표 격이다. 1970년대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리를 듣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혼맥을 맺은 한화, SK의 경우는 후자의 대표 사례다.

    재벌가 1세대가 재계-정계로 이어지는 혼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2세대에선 재계-재계, 재계-언론계로 이어지는 혼맥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진다. 이는 정치권력의 힘이 그만큼 약화됐음을, 즉 사회가 발전하면서 재벌과 언론의 힘이 강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3세대는 대부분 유학파인 데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중매보다 연애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 해도 서로 만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상대가 재벌가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갖춘 집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아침에 고귀한 신분으로 상승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영화에서나 존재할 뿐 현실화하는 경우는드물다.

    재벌가 중 혼맥이 가장 화려한 곳은 LG다. 삼성, 현대, 한진, 금호아시아나, 대림, SK, 태광, 경방, 두산, GS, LS, LIG, 효성, 벽산, 사조그룹 등과 혼맥이 연결된다. LG 주변에선 ‘통혼(通婚) 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 구자학은 1956년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와 결혼했다. 당시에도 삼성-LG 간 혼사는 세간의 큰 화제였다. 구인회의 동생인 구태회의 손녀 구은희가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 정일선과 결혼함으로써 현대가(家)와, 구자학의 차녀 구명진이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과 결혼해 한진가와 연결된다.


    재벌 혼맥의 ‘허브’ LG

    구인회를 비롯한 여섯 형제는 구인회가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창업한 이후 1950년대 들어 사장 구인회, 부사장 구철회, 전무 구태회, 지배인 구평회 등 ‘형제 경영’ ‘우애 경영’ 체제를 갖춰 오늘날 LG그룹의 ‘인화(人和) 경영’으로 이어졌다.

    이들 형제는 경쟁이라도 하듯 막강한 혼맥을 구축했다. 구인회는 홍재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이재준 전 대림그룹 회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 등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첫째 동생 구철회는 허창수 GS 회장,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혼맥이 연결된다. 다른 동생들도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등과 사돈 관계다.

    LG가 혼맥은 이명박 전 대통령(MB), 박근혜 대통령과도 연결된다. 구인회의 4남 구자두의 외아들 구본천은 MB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장녀와 혼인했다. 사돈 관계인 GS그룹-벽산그룹을 통해서는 박 대통령과 연결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부친 허준구의 조카 허영자가 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의 장남 김희철과 결혼했다. 김인득의 차남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의 부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박상희의 딸 박설자다.

    LG가 혼맥이 이렇게 화려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녀를 많이 낳았고, 창업주 구인회가 혼사에 각별히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6남 중 맏아들인 구인회는 6남4녀를 낳았다. 구인회의 첫째 동생 구철회는 4남4녀를 낳았고, 구인회의 맏아들 구자경은 4남2녀를 뒀다.



    재계-정계 인연

    한국 사회가 급성장하는 시기에 재벌가는 가족의 일원이 정계로 진출하거나 혼맥을 통해 정계와 연을 맺은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삼성가의 경우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3, 5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상희의 차남 정재은과 중매결혼했다. 이병철의 맏아들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의 동생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이다. 손 회장의 장녀 손희영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인 이동훈의 아들 이재환과 결혼했다. 이맹희의 차남 이재환도 민기식 전 국회의원의 딸 민재원과 혼인했다.

    현대가에선 창업주 정주영의 6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1988년 국회에 진출해 13~19대까지 7선 의원을 지냈다. 정주영 전 회장은 자신이 직접 1992년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뛰어들기도 했다. 정주영의 막냇동생 정세영의 큰딸 정숙영은 6공화국 실세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아들 노경수와 결혼했다.

    LG가는 창업주 구인회의 첫째 동생 구철회의 장녀 구위숙이 6선 의원을 지낸 이한동 전 국무총리, 노재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사돈이 됐다. 구철회의 차남 구자성의 장녀인 구본희는 5선 의원을 지낸 정재문의 아들 정연준 미디어플러스 사장과 결혼했다. 정재문의 부친 정해영은 7선 의원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구자성의 아들 구본욱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의 딸과 결혼했다. 구인회의 셋째 동생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은 6선 의원으로 국회 예결위원장과 부의장을 지냈다.

    한화그룹은 창업주 김종희의 형 김종철이 전두환 정권 당시 국민당 총재를 지내고 12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동생 김종식은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림그룹은 창업주 이재준의 형 이재형이 7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을 지냈다. 동부그룹도 창업자 김준기의 부친 김진만이 7선 의원으로 공화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김준기의 동생 김택기는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코오롱그룹에선 창업주 이원만이 공화당 의원을 지냈고, 김종필· 정일권 전 국무총리, 이효상 전 국회의장, 신병현 전 경제부총리와 사돈 관계를 맺었다.



    윤보선家 혼맥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호형호제하던 SK그룹 창업주 최종건은 4녀 최예정을 이후락의 3남 이동욱과 결혼시켰다. 재벌가와 정계의 혼사에서 정점을 찍은 곳이 SK그룹이다.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과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결혼한 것.

    이후로는 2010년 7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딸 신경아와 결혼한 정도가 눈에 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벌가와 혼맥을 형성한 경우는 많지 않다. 독립운동가(이승만), 군인(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치인(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 중에서 대통령이 나왔기 때문인 듯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격동의 현대사는 대통령들이 자녀 혼사에 신경 쓸 여유를 주지 않았다. 재벌가와 혼인하는 걸 권력과 재벌의 유착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박정희·박근혜가와 관련해선,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의 사위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의 차남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이 눈에 띈다. 육영수 여사의 첫째 동생 육인순의 사위는 장덕진 대륙개발 회장, 한승수 전 국무총리, 윤석민 전 국회의원 등이다. 한 전 총리의 사위는 김진재 전 국회의원의 아들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이다. 둘째 동생 육인수는 국회의원을 지냈다. 가수 은지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누나 박귀희의 손자다.

    대통령 집안 중 혼맥이 가장 화려한 것은 윤보선가다. 윤 전 대통령의 할아버지 윤영열은 안성군수, 부친 윤치소는 중추원 의원을 지냈다. 큰할아버지 윤웅렬은 구한말에 군부·법무대신을 역임했다. 삼촌 윤치영은 국회의원과 공화당 당의장을 지냈다. 사촌형 윤일선은 전 서울대 총장, 6촌형 윤영선은 전 농림부 장관이다. 윤보선의 동생으로 경기지사를 지낸 윤완선은 을사늑약 후 자결한 충정공 조병세의 외손녀 이정순과, 둘째 동생 윤원선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증손녀 이진완과 결혼했다. 이화여대 음대 학장을 지낸 윤연경이 윤완선의 딸이다.

    다음으로 혼맥이 화려한 대통령은 이명박가다. 효성, LG, 삼성그룹과 연결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오명 전 부총리 등과도 혼맥이 닿는다. MB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딸 이성은이 구인회 LG 창업주의 넷째 아들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의 아들 구본천 LG벤처투자 사장과 결혼했다. 이성은의 동생 이지은은 오 전 부총리의 아들 오정석 서울대 교수와 결혼했다. 이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이수연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아들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과 결혼했다.

    전두환,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은 혼맥으로 연결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의 부친은 이규동이다. 이규동의 동생 이규광은 사기 사건으로 유명한 장영자의 친언니 장성희와 결혼했다. 장성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 차용애의 외사촌 동생이다. 전두환가는 셋째 아들 전재만이 동아원그룹 이희상 회장의 장녀 이윤혜와 결혼했다. 이희상을 통해 노태우-이명박 전 대통령과 혼맥으로 연결된다.



    김무성家 혼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은 1960년 장면 정권에서 집권당인 민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지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이다. 부자가 집권당 원내대표를 지낸 것은 김무성 대표의 경우가 유일하다.

    김 대표의 누나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은 현영원 신한해운 회장과 결혼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딸이다. 현 회장은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현정은의 언니 현일선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동생인 유특한 유유산업 창업주의 아들 유승지 홈텍스타일코리아 회장과 혼인했다. 현 회장의 동생 현승혜의 남편은 12,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지연태의 장남 지덕현 덴츠이노벡 대표다.

    김 대표의 큰형은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민주당 신파의 실력자이던 전 국회의원 오위영의 딸 오덕주와 결혼했다. 작은형 김한성의 장인은 오탁근 전 법무부 장관이다. 김 대표의 장인은 5선 의원을 지낸 최치환 전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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