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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은 ‘돈의 손’ 아닌 ‘신의 손’

정운찬 前 총리와 다시 읽는 ‘국부론’

  • 정운찬 | 前 국무총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보이지 않는 손은 ‘돈의 손’ 아닌 ‘신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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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덤 스미스는 무조건적 자유방임을 주장한 적이 없다. 개개인의 ‘도덕적 능력’에 바탕을 둔, 정의법칙이 살아 있는 사회체제 안의 자리심(自利心)을 옹호했다. 꼭 240년 전 출간된 ‘국부론’에서 스미스가 꿈꾼 ‘보이지 않는 손’을 우리는 아직 진정으로 구현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돈의 손’ 아닌 ‘신의 손’


고전(古典)이란 ‘모두가 좋다고는 하면서도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이라고들 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of Nation)’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실제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경제학자 중에서도 10%가 안 될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 국부론을 처음 접했다. 가정교사 월급을 받은 날, 청계천 헌책방에서 국부론을 샀다. 축약한 문고판 영문 서적(Modern Library Edition)이었다. 핀 만드는 공장을 예로 들며 분업의 이점을 설명한 내용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 같은 이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은 1776년에 나왔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해다. 또한 조선이 국립도서관인 규장각을 세운 역사적인 해다.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띄엄띄엄 읽었지만, 교과서에 실린 고전을 부분적으로나마 내 힘으로 해독한다는 것은 억누르기 힘든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부론을 가르쳐주거나 읽으라고 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 경제학계에는 영미 경제학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현실과 견주어 이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일환으로 일단의 경제학 교수들이 조순 선생님을 모시고 경제사상연구회를 결성해 경제학 고전을 읽고 토론했다. 그 결과물로 ‘아담 스미스 연구’(민음사, 1989)를 비롯해 ‘J. S. 밀 연구’, ‘슘페터 연구’ 등을 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아담 스미스 연구’에 담긴 내용을 자유로이 원용하며 쓴 것임을 밝혀둔다.

가까이에서만 보던 것을 한발 물러서서 보면 그동안 보지 못하던 전체적 윤곽을 비로소 보게 되고, 또한 근시안적 시각으로 인해 발생한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파악하기 전에 사람들은 지구에서 본 것만을 바탕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천동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코페르니쿠스의 시도는 모든 이의 우주관을 180도 바꿔놓았다.



중상주의 시대 사회철학자

보이지 않는 손은 ‘돈의 손’ 아닌 ‘신의 손’

애덤 스미스와 동시대를 산 화가 존 케이가 목판에 새긴 애덤 스미스 초상.

보이지 않는 손만 부각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또한 나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나무만 보다가 애덤 스미스의 철학이라는 숲을 보게 될 때, 보이지 않는 손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국부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국부론을 집필할 때 스미스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그 철학적 배경은 무엇인지, 그가 가정한 전제들이 현대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 그의 다른 저서들과 함께 놓고 볼 때 국부론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지는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스미스 사상의 핵심이 곧 보이지 않는 손이고, 보이지 않는 손이란 곧 자유방임이라고 귀결하는 우리의 사고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국부론 출간 240년을 맞는 올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나무는 숲의 어떤 부분인지 알아봄으로써 국부론을 이해하는 시야를 넓혀보자.

애덤 스미스의 철학은 그가 글래스고 대학 윤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2년간 강의한 내용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강의는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윤리학(Ethics), 법학(Jurisprudence),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으로 나뉜다. 많은 이가 경제학자 또는 고전경제학자의 창시자로만 알고 있는 스미스는 사실 인간과 사회에 대해 연구한 사회철학자였다. 그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한 획을 그은 것은 틀림없지만, 그의 경제학 이론을 잘 이해하려면 그가 활동한 시대적 배경과 경제학 이외의 부분을 알아야 한다.

스미스가 활동한 18세기 영국은 중상주의 시대였다. 이미 17세기에 시민혁명이 성공해 의회정치가 시작됐고, 신흥 경제세력으로 중소 상공업자들이 떠올랐다. 중상주의는 국가가 부유해지려면 금은(金銀)의 축적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봉건사회의 신분이 개인을 구속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점차 신분과 직분에 근거한 사회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서 개인의 중요성이 대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당시의 시대적 화두는, 신분과 직분에서 해방된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형성할 때 과연 그 사회에서 질서, 평화,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스미스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구가 신의 섭리나 국가의 중재 없이도 건전한 사회 질서와 양립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사상은 당시의 중상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진보적인 것으로, 민주적인 사회 개혁의 이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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