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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나홀로 시대 살아가기

‘거미줄 매달린 달팽이’ 정서적 결핍→분노 폭발

마음이 고프다…한국은 지금 ‘허기(虛飢)사회’

  • 주창윤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oo@swu.ac.kr

‘거미줄 매달린 달팽이’ 정서적 결핍→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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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탐식 환자’ 된 대한민국
  • ● 흙수저와 헬조선…‘세대’는 가고 ‘계급’만 남아
  • ● “받는 대로 갚아줘야” 대중심리 확산
  • ● 힐링은 그만…‘취향공동체’로 문화적 치유를
어느 시대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대중이 공유하는 ‘정서의 경험’이 있다. 정서의 경험은 동시대성을 반영한다. 2013년 나는 ‘허기사회’라는 책을 통해 우리 시대가 공유하는 정서의 경험을 ‘정서적 허기’로 정의했다. 우리 시대가 정서적 허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중이 더 깊은 허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예측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성장, 저물가, 고용불안, 무한경쟁의 확대 등과 같은 불황경제가 지속될 것이고,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문화의 확장 속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과잉 연결은 대중으로 하여금 ‘진정한 관계’의 결핍을 느끼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서적 허기는 단순히 배고픔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 대중은 몸의 배고픔이 아닌, 마음의 배고픔에 빠져 있다.



무기력증에 빠진 한국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탐식 환자들을 심리치료하면서 ‘왜 사람은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를 탐구했다(‘Shrink Yourself : Break Free from Emotional Eating Forever!’·2007). 그를 찾아온 환자들은 아무리 탐욕스럽게 먹어대도 배가 고프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의 탐식 기저에는 ‘무기력증’이 있었다. 멈추지 않는 식욕은 무기력증을 해소하려는 시도였다. 따라서 무기력증을 치유하지 않으면 탐식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굴드는 ‘정서적 식욕’의 문제를 제기했다. 탐식이란 먹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탐식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을 지칭하는 용어는 ‘압축성장’, 마음의 상태를 함축하는 단어는 ‘역동성’이었다. 이 둘은 ‘가능성의 실현’을 의미했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해 보였다. 압축성장은 희생을 요구했지만, 대중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역동성을 잃지 않았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파이’의 크기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장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낙관의 세계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비관의 세계관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대중이 느끼는 정서적 허기의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다. 점점 더 마음이 고픈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정서적 허기는 크게 두 갈래, 즉 경제적 결핍과 문화적 결핍에서 나온다. 지난 5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5~3.5% 수준에 머물렀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기조엔 변화가 없었다. 가계부채는 1200조 원대를 돌파했고, 퍼플 칼라(purple collar,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자)에서만 고용 증가가 나타났다. 청년 일자리, 질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고용 불안감이 60%에 육박할 만큼 고용의 불안정성 또한 심화했다.

경제적 결핍은 문화적 결핍을 초래하지만, 그렇다고 문화적 결핍이 경제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세대 간 단절, 신보수화의 확대로 인한 이념적 단절, SNS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과잉,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밖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가상공간 속에서 이어지는 불안감 등 또한 문화적 결핍을 야기한다.

가능성을 잃어버린 현실로부터의 ‘탈주’는 가상의 관계에 집착하게 만들고, 가상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불안감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부추긴다. 이 모순은 심리적으로 가상의 관계에 집착하게 만든다. 이것은 빠르게 붕괴하는 관계에 대한 불안 심리를 완화해주는 듯하지만 실은 일시적인 위로에 불과하다.

우리 시대의 초상을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달팽이’와 같다. 우리 사회는 거미줄에 매달린 것처럼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불안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대중은 우리가 거미줄처럼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밖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달팽이처럼 웅크리고만 있다. 지나친 비유이지만, 최근 드러나는 다양한 정서적 허기 ‘현상’을 보면 과장됐다고만 할 수는 없다.



‘위로의 맛’에 탐닉

‘거미줄 매달린 달팽이’ 정서적 결핍→분노 폭발

먹방, 쿡방 열풍은 ‘정서적 허기’의 반증이다. [뉴시스]

지난 1 ,2년 사이 다양한 트렌드가 부상했다. 먹방(먹는 방송), 혼밥(혼자 밥 먹기), 요리 프로그램의 확대, 단맛의 인기, 다양한 혼자 놀기(컬러링북, 나노블록 쌓기, 명화 그리기, 종이 접기, 혼자 여행하기 등), 특정 인물(혹은 사물)에 몰입하는 덕후 현상, 스낵컬처(웹드라마, 웹툰 등), 김치녀/씹치남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혐오·분노의 확대, 1990년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퇴행적 문화현상, 셀카봉, 블랙박스의 인기, 세대계급론의 확대….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현상의 기저에 깔린 공통점은 정서적 허기다. 대중은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며 허기를 채우고자 한다.

정서적 허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은 음식이다. 지난해 방송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르는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먹방은 한국만의 독특한 트렌드다. 아프리카TV의 먹방 중계는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즐기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카타르시스에 기댄다. ‘먹는다’는 것은 육체적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보자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무기력한 배고픔이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다. 탐식 환자와 유사하게 대중이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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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윤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oo@sw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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