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이달의 경제보고서 | LG경제연구원

방임하고 인내하라 마술이 일어난다!

기업 내 스타트업 키우기

  • 강진구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입력2016-05-18 16: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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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내부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 혁신적인 스타트업과 체계적인 기업은 언뜻 안 어울리는 조합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 내 스타트업은 지속가능성에서 기업 밖 스타트업보다 뛰어나다.
    창의적이고 민첩한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기업 내부에서 스타트업을 키우는 일은 오늘날처럼 변화무쌍한 기업 환경에서 필수적인 듯하다. 글로벌 복합기업 GE가 소규모 별동 조직 300여 개를 스타트업처럼 운영하는 것도 새로운 환경을 선제적으로 읽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기업 안의 스타트업은 차고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과 차이가 있다. 자금력과 시스템 등 겉으로 드러난 여건도 다르지만 목표도 조금 다르다. 대기업 내 스타트업은 사업 아이템의 성공을 넘어 모회사의 사업을 보완하거나 기존 주력 사업의 대체·확장을 대비하는 데 목적을 둔 경우가 많다.

    성공적인 스타트업 연쇄 창업가인 댄 샤피로 글로포지(Glowforge) 최고경영자(CEO)는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대기업 대부분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사내 스타트업 제도를 시도하지만, 이건 진짜 스타트업과 크게 다르다. 본질적으로 스타트업보다 대기업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기업에서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일은 기존 제도와 고정관념을 벗어나 혁신을 이루려는 도전이다. 기업 내 스타트업을 육성할 때 어떤 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까.

    1. 시스템 이전에 개인 역량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야 하는 스타트업에선 시스템 이전에 사람 자체가 힘이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스타트업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기업 내에서 스타트업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스타트업에 맞는 리더’를 잘 뽑아야 한다. 관리를 잘하는 유형이 아니라 기발한 발상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고, 구성원에게 그러한 발상과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스타트업에 적합하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팀을 해당 직무 경력자로만 구성하지 않는다’는 구글의 원칙을 주목할 만하다. 구글은 ‘경력자가 늘 하던 대로 처리하다 보면 창의적인 해법이 나올 여지가 적다’는 생각에 이러한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구글에서는 팀장에게 팀원 발탁 권한을 주지 않는다. 성과가 나쁜 팀의 팀장에게 팀원을 뽑을 권한을 주면 팀장의 수준을 뛰어넘는 팀원을 뽑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을 뽑아준 팀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팀원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2. 역할 따로 없는 책임완결형 조직

    거대 기업은 항공모함에 비유할 수 있다. 항공모함은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역할의 전문화와 분업화, 효율적 협업이 극대화한 조직 모델이다. 각각의 역할은 작업복 위에 입은 조끼 색깔로 구분된다. 요원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100가지가 넘는 수신호와 수신기로 소통한다. 완벽한 협업으로 이뤄지는 항공모함 갑판 조직은 가장 ‘신뢰성 높은 조직’으로 꼽힌다. 이 조직이 사고 발생률이 극히 낮은 비결은 철저한 역할 구분에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이러한 ‘역할 명확화’가 창의성과 유연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떠 있는 구명 보트와 같은 스타트업은 한 사람 혹은 한 팀이 한 아이템에 대해 A부터 Z까지 책임져야 한다. 서로 책임을 따질 여유가 없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임기응변으로 돌파해야 하므로 팀원 누구라도 사업 전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GE의 내부 스타트업 조직 중 하나인 PET/CT스캐너개발팀은 2014년 8월 엔지니어, 마케터, 디자이너 출신의 직원들로 구성됐지만 역할 구분은 없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제한된 예산으로 고객의 사용 편리성, 성능, 가격 등에서 기존 시장을 뒤엎을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 토의했다. 시제품을 만들고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도 너나없이 함께 했다. 기존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2~4년은 족히 걸렸을 일을 덕분에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해냈다.

    3. 육성보다 채용에 집중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재는 수비형 가디언이 아니라 공격형 스타다. 스타형 인재의 중요한 특징은 육성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기업 안에 있더라도 스타트업 조직에서는 사람을 키울 여력이 없다. 육성이 필요 없는, 스스로 알아서 성장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육성이 아닌 채용에 집중해야 한다. 비범한 천재 한 명을 뽑기 위해, 또는 한 명의 형편없는 사람을 뽑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

    구글은 면접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실무 현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육성이 아닌 채용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채용 인터뷰도 10여 차례 진행한다. 구글 입사 지원자는 장차 자기 상사가 될 사람과 동료, 부하 직원이 될 사람도 면접관으로 만나야 한다. 새로 채용될 사람과 함께 일할 팀원들이 모여 뽑을지 말지를 심사숙고하게 한다.

    구글의 기술개발 담당 수석부사장 앨런 유스터스는 “최고 수준의 기술자가 갖는 가치는 평균적인 기술자의 300배에 가깝다. 공대 졸업반의 기술자 전체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단 한 명의 비범한 기술자를 선택하겠다”고 강조한다. 구글은 ‘채용과 육성에 리소스를 적절히 배분하는 것보다 채용에 더 투자해 좋은 인재를 뽑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4. 정규분포 대신 멱함수분포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정규분포 곡선을 신봉한다. 평균을 중심으로 좌우가 같은 모양으로 대부분의 구성원이 중간에 몰려 있고, 극소수 고성과자와 저성과자로 나뉘는 종(bell) 모양의 곡선을 성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인 애플이나 구글의 생각은 다르다.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거대한 성과 대부분을 만들어낸다는 멱함수 법칙이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고 본다. 멱함수분포는 파레토 법칙(80대 20 법칙)이나 블랙스완(극단적으로 예외적이라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의 개념과 맥이 닿는다. 잡스가 애플 직원들을 ‘소수의 깨달은 자와 다수의 쓰레기들’이라는 극단적 이분법 논리로 규정한 것도 멱함수분포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멱함수분포를 기준으로 평가·보상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구글은 여느 기업들처럼 성과 보상 테이블을 만들고 해당 틀 안에 모든 사원의 보상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특급 인재들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평가와 보상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분배의 공정성’이 아니라 ‘절차의 공정성’에 힘을 쏟는다. 정확한 평가보다는 수긍할 만한 평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구글이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평가 방식은 ‘동료평가’다.

    5. 소사장 비전으로 동기 부여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동기 부여 요소는 승진과 보상이다. 그런데 스타트업에서는 내가 담당하는 아이템으로 성공적인 사업가, 즉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비전이 추가된다. 기업 내 스타트업도 이러한 정보를 모를 리 없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사업 조직을 일궈내고 사내 소사장으로 성장하는 비전은 스타트업 직원들의 동력을 자극할 수 있다.

    연봉 인상이나 복리후생 같은 외재적 동기만으로는 스타트업 직원들의 열정을 끌어내기 어렵다. 오히려 호기심 충족, 조직과 사회에 대한 기여, 중요하고도 힘든 과제를 책임을 갖고 완수했을 때의 성취감, 상사와 동료의 인정, 자부심 같은 내재적 동기가 더 중요하다. ‘주인의식과 책임감 때문에 일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직원들의 내재적 동기를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매출 목표 대비 달성도와 같은 단기 성과지표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과감한 도전과 성취감, 자부심을 사라지게 하고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근시안적 소극성을 부추길 뿐이다. 형평성에 치중하는 것도 내재적 동기를 약화시킨다. 예컨대 대박을 터뜨린 사업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직원에게 고작 평균보다 10~20% 많은 성과급을 주는 식의 보상으로는 성취감은커녕 자괴감을 갖게 한다.

    6. 의도된 방임과 인내심

    대기업의 강점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에 있다. 그런데 이런 강점이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데 독이 될 수 있다. 스타트업은 속성상 누군가의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댄 샤피로는 “대기업에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행이나 원칙이 스타트업에선 통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성공 방식’을 스타트업에 가져오면 ‘나쁜 습관’과 ‘치명적인 버릇’으로 변질된다”고 꼬집는다. 보고와 지시는 대기업 직원에게 당연시되는 관행이자 원칙이지만, 모든 직원이 1인 기업가가 되기를 원하는 스타트업에서는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거대 기업 내 스타트업 역시 최소한의 관리는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의도된 방임’과 ‘인내의 관리’다. 거대 기업은 사업 방향에서 큰 틀의 전략적 점검을 하되 스타트업에 구체적인 방법을 맡기고 믿어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1차 성공이 위기 될 수도

    스타트업이 거대 기업 안에서 순조로운 출발을 하려면 우선 기존 사업과 관련성이 낮고 규모가 작은 사업 아이템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기존과 다른 사업 방식, 새로운 조직 운영이 관심을 덜 끌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겨도 기업 전체의 성과에 큰 영향이 없어야 일정 기간 조직의 내공을 길러낼 수 있다.

    조직 내 스타트업의 문제는 사업의 1차 성공 이후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인정받아 사업과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주변의 관심도 커진다. 관심의 증가는 ‘더 이상 이전처럼 쉽게 일을 저지르고 추스르는 자유가 허락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보지 않은 분석과 보고, 검토가 크게 늘고, 조직 운영 방식도 기존 거대 조직의 그것으로 변할 수 있다. 결국 조직의 활력은 떨어지고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며 애써 확보한 인재들마저 이탈할 조짐을 보인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란제이 굴라티 교수는 1차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이 이후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라지는 배경을 연구하며, 스타트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4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① 전문적 역할 규정 : 한 사람 또는 한 팀에서 규모와 범위가 넓어진 사업의 모든 것을 관장하기는 어렵기에 최소한의 역할 구분이 필요해진다. ② 새로운 관리체계 도입 : 조직이 커지면 확실한 중간보고 체계가 요긴해진다. 중간관리층을 없애는 극단적인 조직 실험을 강행한 시도가 실패로 끝난 구글도 결국 중간관리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③ 체계적인 기획과 예측 시스템 구축 : 즉흥성이 중요한 소규모 스타트업과 달리 커진 조직에서는 즉흥적 아이디어가 창의적으로 잘 발현되도록 관리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④ 기업문화 유지 : 초기의 열정적인 기업문화가 전설적인 이야기로만 회자되지 않고 유지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기업 품 안이 유리

    굴라티 교수의 4가지 조건 중 ‘기업문화 유지’를 제외한 3가지는 모두 대기업이 갖춘 요소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스타트업은 대기업 안에 있을 때 유리할 수 있다. 실제 국내 한 대기업의 신사업추진 조직책임자는 “대기업 안에서 스타트업으로 성공하기 쉬울 수 있다. 직원들 월급 줄 걱정이나 복리후생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초기 자본투자의 부담이나 실패에 대한 부담도 적다. 경영관리, 생산, 품질, 디자인, 인사 등 기존의 수준 높은 제도를 공유하는 혜택도 누린다”고 말한다.

    대기업 내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일은 1차 성공까지가 핵심이다. 이질적 조직을 용인하고 의도된 방임이라는 고도의 관리를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때까지가 중요하다. 이때까지 기다리는 조직의 인내심 여부에 따라 거대 기업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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